뻔한 이야기, 절대 못 참아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올가 토카르축 등 지음|최성은 등 옮김|도서출판 강|276쪽|1만원

이 소설집은 문학의 새로움 찾기를 위한 진지한 모색의 결과물이다. 7일부터 13일까지 서울과 경북 영주에서 열린 국제문학축전 ‘2006년 서울, 젊은 작가들’에 참가한 16개국 작가 가운데 올가 토카르축, 알레한드라 코스타마그나 등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9명의 단편들을 모았다.

소설집 제목인 ‘눈을 뜨시오…’는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축의 작품. 그녀는 구태의연함에 빠진 문학을 조롱하고 새로운 발상을 추구하는 자신의 소설쓰기를 추리소설 기법으로 절묘하게 설파한다. 주인공 C는 추리소설 애독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살인, 수사, 가해자의 정체 폭로로 이어지는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범죄와 형벌에 관한 모든 규칙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은 오로지 작가뿐이다. …바로 그 점이 C에게는 진부하게 느껴졌다’.(9~10쪽)

C는 핏자국을 연상케 하는 기묘한 빛깔의 추리소설을 골라 읽는다. 소설 속 무대는 프랑스 북부 플랑드르의 한 고성. 추리소설 작가들이 모였다. 작가 토카르축이 한국의 국제 문학축천에 참가했듯, 그들은 세계 추리소설의 미래를 진지하게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작가들은 살인자 알아맞히기 게임을 시작한다. C는 도입부에서 흥미를 느끼지만, ‘뻔한 긴장 구도’를 강요하는 소설에 식상한다. 소설의 매너리즘을 참을 수 없게 된 그녀는 직접 소설 속으로 들어가 소설의 등장인물인 추리작가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추리작가들은 게임이 실제 살인사건으로 번지자 당황한다. 그들은 범인을 찾아 나서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살인자는 소설 밖에 있는 독자 C이기 때문이다.


독자가 소설로 뛰어들어 살인을 저지르는 구도는 필연적으로 현실과 상상의 공간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린다. 소설 말미에 C의 집으로 경찰이 들이닥친다. C는 어쩌면 실제 공간에서도 살인을 저질렀을 수 있지만 소설은 거기서 끝난다.

유태계 아르헨티나 작가인 마르셀로 비르마헤르는 수록작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바람난 유부남을 등장시켜 삶의 부조리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유대인 구역인 온세거리에 사는 40대 남자 하비에르는 늘씬하고 가슴이 풍만한 라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크리스마스날 밤, 그는 단티니스씨 집에서 파티를 하다가 그녀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그녀는 “전 단티니스 씨 집으로 갈 거예요. 당신은 거기서 왔지요?”라고 묻는다. 단티니스씨의 집에 그녀의 정부가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소설가 마리오 데지아티는 단편 ‘눈꺼풀 너머’에서 신경증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문체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전복된 가치관, 평화를 향한 구호 이면에 전쟁을 선동하는 모순 등이 부각된다. 작가는 지진과 화산폭발로 문명이 파괴되고 오직 주인공만이 살아남는 장면을 통해 낡은 인류의 종말과 새로운 인류의 시작을 꿈꾼다. 그것은 새로운 문학에의 갈망이기도 하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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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5-1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태훈 기자군요. 미녀에 약하다는^^ 믿든지 말든지^^

stella.K 2006-05-1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호호. 새로 알았네요. ㅋㅋ

라주미힌 2006-05-1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오늘 내 얘기 하는줄 알았네요...

stella.K 2006-05-1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