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투 렌트', 통쾌하게 '깬다'
멜로인줄 알았는데… 예술인줄 알았는데… 통쾌하게 ‘깬다’
▲ 룸투렌트 | |
남녀가 포개져 있는 포스터만 보면 ‘그저 그런 멜로’일 것 같다. 감독은 이집트 출신, 상영관은 씨네큐브. 여기까지 들으면 예술성 짙은 제3세계 영화겠지 싶다. 그런데 진짜 ‘깬다’.
시나리오작가가 되고 싶어 영국 런던에 온 이집트 청년 알리(사이드 타그마위)는 더빙·요리사·밸리 댄스 강사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하숙집 여주인을 모델로 불륜이야기를 썼다가 쫓겨나고 비자 만료일은 점점 다가와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다. 친구 아메드(카림 벨카드라)의 집에서 게이 사진작가 마크(루퍼트 그레이브스), 쇼걸 린다(줄리엣 루이스)의 집으로 옮겨 다니며 위장결혼에 필요한 돈을 모으지만 5000파운드가 어디 쉽나. 우여곡절, 작가로 데뷔할 기회를 잡지만 감독은 삼류 포르노를 찍고 있다. 싸게 위장결혼 해주겠다던 린다는 사실은 유부녀란다.
참 처량한 이주자의 초상이다. 그런데 영화는 내내 유쾌하다. 주인공이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비굴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슬픔을 억지로 감추거나 무작정 꿋꿋하기만 한 ‘바른생활 청년’도 아니다. 그래서 인간적이다. 마크의 방에서 자기 손에 얼떨결에 수갑을 채워버리는 알리, 제2의 마릴린 먼로를 꿈꾸는 린다의 흐느적거리는 말투, 마크를 질타하던 아버지의 성적취향 등 영화 곳곳에 유머가 배어 있다. 칼레드 알 하가르 감독은 영국 국립영화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 겪은 에피소드와 이방인의 감정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웬만하면 그냥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갈 법도 한데 알리는 끝까지 버틴다. 웬만하면 버려도 괜찮을 ‘금붕어 어항’은 하숙집(room to rent)을 옮길 때마다 꼭 챙겨 다닌다. 알리에게 꿈은 타인에겐 하찮고 버리기 쉬워 보이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금붕어 어항 같은 것이다.
결국 알리는 정말 황당한 방법으로 영국인 아내도 얻고, 집도 얻고, 작가의 꿈도 이룬다. 영화가 이어가던 내러티브를 해치거나 관객에게 배신감을 주는 어이없는 결말은 아니다. 오히려 통쾌한 웃음을 주는, 그래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반전이다. ‘룸 투 렌트’는 사랑스러운 영화다. 1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