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想은 식사를 위한 포크일 뿐…

메타피지컬 클럽
루이스 메넌드 지음|정주연 옮김|민음사|648쪽|2만2000원

▲ 왼쪽부터 윌리엄 제임스, 올리버 홈스, 찰스 퍼스, 존 듀이
 
 
 
 
 
 
 
역사란 끊임없는 시간의 연속일 뿐이지만, 그 흐름의 한 허리를 날카롭게 베어내면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무늬가 새롭게 떠오른다. 1872년 1월.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끝나고 7년이 흐른 이때를 단면으로 잘라낸 역사가는 130년간 아무도 없었다. 그다지 특별한 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는 30대 초반 젊은 지식인들의 모임 하나가 결성되었는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식인들의 토론 모임은 이것 말고도 숱하게 많았고, 훗날 그 멤버들조차도 이 모임을 특별하게 기억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임은 고작 아홉 달간 지속되었을 뿐이었다.

잊힐 뻔한 이 모임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멤버 중 한 사람인 찰스 샌더스 퍼스(1839~1914)였다. 그는 35년 뒤 자신의 미(未)출간 원고에서 “반(半)은 비꼬는 의미로, 또 반은 반항적인 의미로 모임에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이름하여 ‘메타피지컬(Metaphysical·형이상학) 클럽’. ‘기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퍼스는 “나의 철학은 이 클럽에서 이룬 성과였다”고 덧붙였다. ‘클럽’은 다시 100년 뒤 이 책의 저자(뉴욕시립대 교수)에 의해 “미국의 정신을 만든 지식인들의 모임”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지나친 찬사는 아닐까? 대체 어떤 모임이었길래? 퍼스 외에 ‘클럽’의 핵심 멤버는 남북전쟁의 영웅이자 진보적인 법사상가로 훗날 연방대법관을 지낸 올리버 웬들 홈스(1841~1935)와 현대 미국심리학의 아버지인 윌리엄 제임스(1842~1910)였다. 이들은 이 클럽에서 “갖가지 생각과 표현으로 서로를 자극하는” 논쟁을 통해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이란 철학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퍼스의 제자이자 제임스의 나이 어린 친구이며 홈스의 팬이었던 존 듀이(1859~1952)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이 실용의 철학을 완성했다.

미국이 세계에 내놓은 유일한 철학이라 할 프래그머티즘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사상’이기보다는 사상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이다. 관념적인 진리 추구에 몰두한 유럽 철학에 반기를 들고 궁극적인 원리가 갖는 권위에 도전한다. 사상이란 불변의 원칙이나 신념체계가 아니라 포크나 나이프처럼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다. 이 철학의 핵심은 “사상이 이데올로기가 되어선 안 된다”는 믿음이다.

프래그머티즘은 사상과 신념을 신성한 제단(祭壇)에서 인간의 세계로 끌어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유럽의 철학자들은 이를 철학의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이념과 사상을 이유로 인간성을 유린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어쩌면 ‘유일한 진리’라는 미망(迷妄)을 부정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관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의 태도일지 모른다.

“의견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상대를 죽여도 좋다”는 끔찍한 남북전쟁을 겪은 ‘클럽’ 멤버들은 원칙과 신념이 쉽게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프래그머티즘을 고안했고, 이들의 사상은 미국의 저술가들과 사상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해와 관용, 언론의 자유와 문화적 다원주의에 기초한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홈스·제임스·퍼스의 전기를 병렬적으로 풀다가 ‘메타피지컬 클럽’에서 셋을 만나게 한 뒤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듀이의 이야기로 옮아간다. 남북전쟁부터 다원주의와 자유의 문제까지 역사와 철학을 교묘하게 얽어 미국 사상의 거인(巨人) 4명의 종합전기이자 100년을 관통하는 오롯한 미국지성사가 되도록 했다. 조일 곳에서 조이고 풀 곳에서 푸는 저자의 역량이 감탄을 자아낸다. 2002년 퓰리처상(역사 부문) 수상작이다.

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