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스토리
임경선 지음 / 뜨인돌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하루키를 한 마리 외로운 늑대로 표현했던 사람은, 작가 필립 말로우다. 사실 이 책에 묘사 된 작가 하루키는 친구도 그리 많지 않고, 사람이 많은 것은 질색이며(그랬던 그가 재즈바를 운영 했었다는 사실은 다소 아이러니 하다. 물론 호구지책이었겠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 한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이사를 광적으로 좋아해서 어디든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2, 3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하는 별난 취미의 사내로 나와있다. 그리고 인스턴트 식품은 극히 안 좋아해서 웰빙으로만 먹는단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이기지 못하는 유혹이 딱 하나 있으니, 미국산 도너츠를 무척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재미있는 아저씨다!

90년 대, 언젠가 모르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주요한 문학의 코드였다. 그 시절 하루키의 소설 한 두 권쯤 안 읽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었고,  그 시절 나 역시도 하루키의 소설을 3권쯤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니 한동안 잊혀졌던 그의 소설 한 두권은 더 읽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무엇이 이토록 하루키에 열광하도록 만들었을까? 하루키는 이 책의 저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마도 자신의 소설이 한국에서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것은, 이념 논쟁이 한창이던 80년 대를 지나 90년 대는 '나'라고 하는 것이 화두가 되면서 인기를 모았던 것 같다고 조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소설의 하나 같은 주제는 진정한 '나 다운 것'이 무엇이냐 였다. 이런 개인주의가 하루키 문학과  함께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것.  

하지만 난 80년 대나 90년 대나 변함없이 개인주의자였고, 앞으로 내 삶이 특별히 변화되지 않는 이상 개인주의자적인 삶은 계속 될 것 같다. 그렇다면 90년 대를 거쳐 오면서 내가 '하루키'를 읽었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당연 시류에 영합한 소행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하루키가 뭔데 난리야? 나도 한번 읽어 봐야 뭔가 이야기 상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안 읽으면 이야기 상대에서  '소외'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보단, 호기심이 그의 소설을 읽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래도 명색이 책 좀 읽을 줄 안다는 인간이 '하루키'를 모른대서야 말이 안되지 않는가? 그래서 그럴까? 앞에서도 밝혔듯이 언제나  나는 '개인주의'자 였기 때문에 하루키의 소설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개인주의자가 늘 그렇듯, 그들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편견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내 생각이 잘못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상대의 생각도 틀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 줘야하지 않은가?가 개인주의자들의 사고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말인데, 난 그 시절(하루키가 한창 문명을 떨치던 시절) 일본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그 편견이 얉아지고 있긴 하지만). 그때 내 친구랑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무슨 말 끝에 "일본 소설은 백치미적인 것 같아."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나와는 달리 일본 소설에 호의적이었던 것 같은데  나의 '백치미'란 표현을 상당히 인상적으로 받아 들였던 것 같다. 내가 '백치미'라고 표현했던 것은 수식은 좋은데 사람의 영혼이나 삶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우리 문학은 소위 말하는 '한'이라는 정서가 있고, 수 많은 질곡으로 점철되어 퍼올릴만한 질펀한 삶이 표출되어  있는데, 내가 읽은 일본 소설이란 수동적 삶에서 느껴지는 세미한 파장을 쫓는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와는 좀 맞지 않게 느껴졌다. 어쨌거나 이것은 하나의 개인적 취향이고, 스스로 갖는 느낌을 표현했을 뿐이니 그 친구는 반박이나 논쟁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랬다면 피했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어쩌면 개인주의는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키의 단편엔 꽤나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하루키'의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은 장사가 좀 되기 때문에, 여기 저기서 그의 단편을 편집할 때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엔 이런 단편들이 없고, 저 출판사에서 나온 책엔 저런 단편들이 없었기다. 그래서 나는 그의 단편집만 두권을 읽었던 것이다. 중복되는 것과 중복되지 않는 것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노르웨이 숲>을 읽었다. 지금은 하도 오래 전에 읽어 기억하는 바는 없지만, 하루키 소설은 일본적인 것에서 상당히 많은 거리감을 두고 있고, 미국풍에 가까운 묘사를 했다는 것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미국 소설 역시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하루키의 소설엔 그 어떤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작가는 미국에 상당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라고 생각했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 책에서 미국 소설을 즐겨 읽었으며 특히 트루먼 카포티에게 경의를 표했으며, 레이몬드 카버와 스티븐 킹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내가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그러면 그렇지!' 하며 난 혼자 퀴즈라도 맞힌 것처럼 쾌재를 올렸다.   

처음에 내가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 '평전'인가 했다. 사실 웬만해서 살아있는 사람을 주제 삼아 평전을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움베르토 에코의 평전이 나온만큼 이것도 그런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역시 평전이라고 보기엔 가볍다. 그냥 어느 묘령의 작가가 하루키를 너무 좋아해서 그에 대한 자료를 모두 모아놓고, 자기 좋은대로 편집한 것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읽는데 부담이 없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읽으면서 하루키의 인간적인 면들을 접할 수가 있어서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나의 경우 여느 작가들의 삶이나 글쓰기에 관한 기사나 저작물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 책 역시 개인적으론 만족감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특이한 점이라면, 하루키에 대한 글을 쓰면서 저자 자신의 체험이나 어린 시절의 느낌들을 간간히 써 놓고 있다는 것인데, 나 개인적으론 하루키만 알고 싶지 저자에 대해선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아 오히려 방해물처럼 느껴졌다. 작가는 왜 무모(?)하게 이런 시도를 했을까? 아마도 이것을 일컬어 '개인주의 글쓰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테면 하루키란 작가가 저자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가를 말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독자를 생각한다면 절제의 미도 보여줘야 했던 것 아닌가? 아니면 그렇게 개인적인 얘기를 하고 싶었다면 좀 더 세련된 뭔가의 기술적 장치를 써서 독자에게도 공감을 줬던가. 그만큼 하루키란 작가가 저자에게 상당한 영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난 이 점이 별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중에 하루키 사후에(아직 인생을 더 살아야할 사람이지만) 누군가는 본격적인 평전을 내지 않을까? 기대 반, 아쉬움 반으로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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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2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오랜만에 반가운 리뷰 추천합니다.^^ 보관함에도 담아가요^^

2007-03-25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3-25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다시 리뷰를 고칠까 하는 생각에 들어왔는데, 벌써 읽으셨네요. 근데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막상 고칠려니 번거롭네요. 리뷰는 쓰면 쓸수록 아쉬움이 남아요. 추천 고맙슴다.^^
숨어계신 님/그랬다면 더 솔직하고, 더 개인적이어야하고, 더 세련되야 할 것은데 그러지 못한 것 같더라구요. 리뷰를 쓰면 쓸수록 그냥 안 넘어가는 꼬장스러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막상 저의 리뷰 다시 보면 부끄러워 못 보겠으면서 말이어요. 흐흐.
암튼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2007-03-25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3-2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나의 이웃님/지적 고맙슴다. 솔직히 내 글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게 참 어렵더라구요. 이렇게 지적해 주면 나야 고맙죠. 아, 그러고 보니 이 댓글에도 님이 지적한 게 또 나오는군요. 흐흐. 예전에 나의 은사님은 '왜냐하면'을 지적하셨고, 오래 전나의 '나름대로'란 말을 너무 많이 쓴다고 지적을 받았더랬죠. 이젠 님이 지적한 것과 한판 승부를 버릴 차례군요. 하하. 거미줄에도 걸려 넘어지는 게 저랍니다. 지적해 준 것 늘 상고하고 있겠슴다. 진지하고 성깔 있다는 말 내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려요.^^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 회사에서 살아남기에 관한 기사가 나서 여기 스크랩해 둔다. 이쯤되면 살벌하고, 아무도 믿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이것과 더불어 우리나라 직장인 거의 대부분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는데, 이래저래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불쌍하다.

 

 

‘비운의 회사원’은 없다 ‘순진한 회사원’이 있을뿐…

  • 나, 일 잘한단 소리 들었어… 동료들과 가족처럼 지냈어… 근데 왜!!

    “당신을 보는 수천개의 눈에 눈떠라” 직장내 살아남기 전략
  • 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 ‘능력이 뛰어나면 승진은 따논 당상?’ ‘직장에 언론의 자유는 있다?’ ‘직접 하기 어려운 말은 이메일로 전달한다?’ ‘직장 사람들은 가족이나 마찬가지?’ ‘내가 옳다면 회사는 상사보다 내 편을 들어줄 것이다?’ ‘휴가는 재충전의 시간이므로 충분히 즐기고 온다?’…. 이중 하나 이상의 항목에 ‘예(Yes)’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지금 ‘위험한 상태’다.

    미국의 기업 컨설턴트이자 인사 분야 베테랑인 신시아 샤피로(Shapiro)의 충고. 샤피로는 국내 출간 3주 만에 7만 부가 팔려나간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서돌)의 저자다. 그런데 샤피로의 지침은 미국 기업문화에서만 통용되는 건 아닐까? 21세기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 386들이 기득권자가 된 세상인데, 기업의 ‘잣대’도 바뀐 건 아닐까? 그래서 10년 이상 국내 기업에서 인사 관련 업무를 해온 베테랑들에게 물었다. 각론은 달랐지만, 모두가 동의한 사실은 있었다. “회사엔 당신을 지켜보는 수천 개의 눈이 있고, 이에 대비한 서바이벌 전략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는 것!”

    • 일러스트=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 ◆능력과 실적이 전부 아니다…α(알파)를 찾아내라

      샤피로는 우선 “고용주의 눈으로 자신을 평가하라”고 강조한다. 국내 인사 베테랑들도 이에 기꺼이 동의한다. CJ그룹에서 15년간 인사 관련 업무를 해온 이종기 부장은 “능력과 역량이 기본 베이스이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다른 관점’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다른 관점’이란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과 충성심. 구시대적 발상처럼 들리지만 “회사의 비전, 중장기적 전략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높은 직원을 특별 대우하는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세 군데 기업에서 14년간 인사 업무를 담당해온 강경원 풀무원 인사팀장은 “우리 기업 문화는 능력 외에 상사·동료와의 원만한 관계, 회사 방침에 대한 우호적 태도 등 공통의 가치를 중시한다”면서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회사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다니는 직원은 ‘그 친구 성과는 어떠냐’는 질문이 상부에서 내려오고 바로 조회에 들어간다. 대안 없는 비판은 삼가라”고 귀띔했다.

      ◆‘블랙리스트’를 두려워 말고 ‘핵심인재 리스트’를 노려라

      직원을 관리하는 비밀지침과 블랙리스트는 존재할까? 전문가들은 “경영진의 인사 철학에서 비롯된 ‘비공개 지침’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왓슨 와이어트의 최현아 컨설턴트는 “한국처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기업문화에서는 경영주의 평소 철학과 인재를 평가하는 주관적 안목이 중시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 기업일수록 사소한 인터랙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테면 술 마신 뒤의 행동, 스트레스 표출 방법, 심지어 밥을 함께 먹을 때의 태도가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인사 실무자들은 “블랙리스트는 없다”면서도 “연봉제로 인한 조직원 평가 기록이 매년 누적되면 블랙리스트는 자연히 노출되기 마련”이라고 답했다. “단, 블랙리스트 대신 핵심인재 리스트에 관심을 가지라”고 조언하는 강경원 팀장은 “어떤 일이든 기꺼이 일을 떠맡을 자세, 회사의 문제를 마치 내 문제인 양 달려드는 태도가 핵심인재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

      ◆진짜 MVP가 되고 싶다면 상사를 돋보이게 하라

      ‘예스 맨’이 되란 뜻은 아니다. 강 팀장은 “상사가 시키는 일에 일단 ‘예’라고 답하되 시간이 지나 협의점을 찾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샤피로의 표현을 빌자면 “권력자들은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 냉정하다. 회사의 눈에는 당신 상사의 눈에 비친 당신이 전부”다.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공을 상사에게 돌려 조직에서 상사를 돋보이게 하는 전략을 즐긴다는 것. 최현아 컨설턴트 역시 “상사의 마음에 드는 것은 필요하다. 무조건은 아니더라도 잘 지내라”고 충고한다. 일한 만큼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경영주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고 느낀다면 상사와의 관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일단 자신을 낮추고 상사의 조언을 구하라. 진심을 담아 터놓고 이야기하라. 승진에서 누락되었다고 상사에게 공식적으로 불만을 드러내서도 안된다. 승진을 요구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므로!

      ◆비용청구서, 이메일, 그리고 당신의 외모

      인사 베테랑들은 “비용 청구서는 회사가 당신의 충성도를 재는 비밀척도”라는 샤피로의 주장에 대부분 동의했다. 이미 법인카드나 비용 청구서에 대한 기업의 모니터링이 강화되고 있으며, 지침을 어겼을 경우 별도의 징계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는 게 현실. 따라서 “개인적 한계 범위를 조금이라도 넘길 경우, 그것이 업무상 인정된다 할지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며, 경영진에게 자신이 회사 돈을 최대한 아껴서 쓰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고 충고한다.

      샤피로는 또 회사 이메일에는 비밀스러운 내용을 적지 말라고 경고한다. 개인 이메일을 회사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것. 국내 실무자들은 “회사가 이메일까지 체크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회사 이메일은 공적인 업무 내용으로 용도를 국한시키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외모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데에는 모든 전문가들이 일치했다. “그 사람의 이미지가 곧 회사의 이미지이니까요. 외모, 옷차림, 언어적 감각, 매너 모든 면에서 조직이 원하는 밸류에 적합한 사람을 선호하는 건 당연합니다.”

      너무 강퍅하고 비굴한가? 물론 당신이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은 회사’를 다니고 있을 경우에만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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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콜릿
    조안 해리스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초콜릿'이란 단어를 입력하고 클릭을 해 봤더니 이 이름을 달고 있는 책이 수십 권이 뜬다. 좀 놀랐다. 원래 초콜릿이 사람의 입맛을 달콤 쌉싸름하게 유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로라는 작가들이 이것을 소재로 그렇게도 많이 책을 내놓은 줄은 미처 몰랐다. 책도 유행을 타긴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초콜릿'이 한때의 트렌드였다면, 얼마 전엔 '개'를 소재로한 이야기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올해는 '고양이'가 트렌드다.

     

    이 책은 저자의 음식 3부작 중 하나라고 한다. 블루베리, 오렌지, 초콜릿을 소재로 했다. 몇년 전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동명 영화를 인상 깊게 본적이 있어, 한번쯤 소설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봤을 때나 책으로 읽었을 때나 내가 갖는 의문은 정말 '초콜릿'이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는가이다. 초콜릿을 싫어하진 않지만 일부러 즐겨하진 않는다.  요즘엔 초콜릿의 고급화와 대중화를 선언했는지 젊은 두 남녀의 욕망의 줄다리기를 컨셉으로한 한 CF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저 초콜릿이 사람을 강하게 끌 수 있는지 의문이 간다. 하지만 막상 편의점엘 가서 이 초콜릿의 가격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까지의 먹고자 하는 욕망은 사라지고 과연 이 가격에 이 초콜릿을 사? 말아? 갈등하고 있는 나를 보면 나는 '상대적인 금욕주의자'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찌보면 먹는 것에 대한 유혹이 성에 대한 유혹을 앞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담과 이브의 최초의 유혹을 보라. 그깟 사과 알만한 선악과를 따 먹겠는가? 말겠는가를 고민하다 어처구니 없이 한입 베어 먹은 걸 가지고 벌거벗은 수치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어야 하지 않는가? 그 역사 이후 우리 인간을 얼마나 많이 먹는 것을 가지고 아귀다툼을 하며 먹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는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해야 했더란 말인가? 게다가 정력에 좋다면 뭐든지 먹고 보자는 우리나라 사람들 보면 기가 차고, 걸상만 빼고 뭐든지 다 만들어 먹는다는 중국 사람들 보면 신기해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그런데 그깟 '초콜릿'이 뭐 그리 대수라고 이처럼 은밀하고도 서정적이게 이야기를 써 놨더란 말인가?  

     

    영화에서는 비주얼이 상당히 좋다. 정말 줄리엣 비노쉬가 만드는 초콜릿을 보면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것도 그거지만 찬 바람을 뚫고 두 모녀가 어딘가를 가고 있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다. 그때 둘이 입었던 빨간색 망또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초콜릿은 잃어버렸던 부부의 사랑을 이어주고, 인간관계의 화해를 가져오며,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자기 선언을 하게 만드는데 묘한 마력(?)을 뿜어낸다. 특히 종교적인 위선과 권위에 도전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저자가 종교를 초콜릿이란 도구를 통해 허위와 권위를 수면위로 끌어올리려 했다는 것이 일견 아쉽게도 느껴졌다. 물론 종교에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난 왠지 작가가 의도적으로 까발리려고 했던 것 같다 나름 그것을 변호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해 못할 것도 아닌지라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게다가 어찌보면 작가는 신앙을 흠잡으려 했다기 보다 인간의 자유가 종교적인 위선과 권위에 짓밟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아마도 그것을 말하려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저자의 문체가 서정적여서 좋다. 하지만 흠이 있다면 요즘같이 흡인력있고 재밌게 읽혀지게 되기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한권의 책을 읽는데 며칠이 걸렸던가? 감히 입에 떠올리지도 못하겠다. 초콜릿 본연의 유혹보다 이 책을 이쯤해서 덮을까 하는 유혹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그래도 무사히 완독했다. 다행히다. 읽는 내내 진한 코코아의 유혹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다 읽고 나서는 그런 유혹은 다시 없어지긴 했지만. 그 보단 매일 인스탄트 커피 두 스푼에 설탕 한 스푼, 우유 섞은  커피 한잔의 유혹이 더 크니까 그것으로 코코아의 유혹을 대신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열린 책에서 찍어내는 이 페이퍼백 소설에 적지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고래적부터 책의 모양새가 그래왔겠지만, 개개인의 인체공학에 맞춘 책이 앞으로 등장 하겠는가? 기대도 안한다. 하지만 너무 가볍게 만든 탓에 편하게 책상에 놓고 가볍게 한장씩 넘길 수  없었고, 꼭 손으로 들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했다. 만일 어떤 사정이 있어 한 손으로만 생활해야 하는(그것이 한시적이든, 영구적이든 간에) 사람에겐 엄청 불편한 것이다. 어쩌다 책을 읽다 머리나 콧등이라도 긁을라치면 읽은 페이지를 잃어버리지 않게 책을 엎어 놓고 긁어야 한다. 그 불편함을 아는가? 게다가 글씨와 행간은 왜 이리도 작고 촘촘한 것인지? 이것을 문학은 좋아하나 눈 나쁜 선배나 어르신한테는 결코 선물해서는 안될 책 1순위가 되어 버렸다. 나 역시도 시력이 예전만 같지 않이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기차게 좋은 내용이 아니면 손도 대지 않을 확률이 아주 높다. 아무리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는 하지만, 기왕이면 책 내용도 좋고, 튼실하게도 만들면 좋지 않은가? 싸게도 팔면 금상첨화겠지만 싸게 파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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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돌이 2007-03-1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만 봤었는데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책으로 다시보면 기억이 나려나요? 님의 리뷰를 보니까 그래도 책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ㅎㅎ

    stella.K 2007-03-20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느낌이 다르더구요. 좀 더 섬세하다고할까? 책으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겁니다.^^

    rancet 2007-06-0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책의 '페이퍼백' 시리즈에 대해서 저는 찬성입니다. 어서 다른 출판사에서도 좀 따라해줬음할 정도이니까요. 어제께 교보문고에 가서 문학 섹션에 갔었는데, 이제는 책의 표지가 만화책의 표지와 같아 졌더라구요.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책은 사용성을 파는게 아니라 영혼을 파는 상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담는 그릇이 넘치는 것이 좀 마뜩지않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말이에요. '초콜릿'은 그래도 아주 두꺼운 편은 아니지만, 같은 시리즈의 '새의 노래'는 600쪽이나 됩니다. 만약 이 페이퍼백 시리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드커버나 정본을 사시면 되겠지요. 출판사는 오히려 독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넓혀주고 이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의 거의 모든 책들은 하드커버와 페이퍼백이 같이 나옵니다. 물론 시간상의 선후는 있지만, 책의 내용을 보는 입장에서라면, 또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도, 열린책들 출판사의 '페이퍼백'은 좋은 기회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꾸벅~


    stella.K 2007-06-10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ancet님,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페이퍼백과 하드카바, 같이 나와야 하는 것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몰라서일까요? 열린책들의 어떤 책들은 하드카바가 안 나오는 것 같던데...그래서 불만인 거죠. 맞아요. 책은 영혼을 파는 거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이 갈수록 찾아 보기가 어려운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은 것 같아요. 흐흑~
     
     전출처 : 이잘코군 > 장준혁 현상(강준만)

    2007. 3. 14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03/h2007031319245324390.htm


    [강준만 칼럼] 장준혁 현상


    지난 11일 막을 내린 MBC 주말드라마 '하얀 거탑'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드라마의 무대는 대학종합병원이지만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모든 유형의 조직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자마다 이 드라마를 '읽는' 방식이 달랐겠지만, 이렇게 읽어보는 건 어떨까.

    이 드라마는 장준혁(김명민)과 최도영(이선균)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돼 있지만, 최도영은 장준혁의 캐릭터를 살리는 대비 효과를 위해 설정된 인물이다. 장준혁은 야망에 불타는 외과의사, 최도영은 양심에 충실한 내과의사다.

    장준혁은 후배·제자 의사들을 휘어잡아 '장준혁 마피아'를 조직한다. 장준혁은 그들을 '얘들'로 다루며 강한 '보스 기질'을 발휘하는 반면, 최도영은 서열의식을 초월해 의사를 독립된 인격체로 여긴다.

    ● 우리사회의 인맥 만들기 전쟁

    마피아는 보스에게 충성하면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보장하는 공동체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선 비리도 불사한다. 보스는 그런 전투성 배양을 위해 인간적 유대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그 주요 수단은 술과 특혜 부여다. 보스는 부하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비리를 저질러서라도 끝까지 돌봐준다.

    이 드라마는 장준혁을 악(惡)의 편에 설정하고서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반면 선(善)을 대변하는 최도영에게도 인간적 면모가 있으련만 그건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최도영은 늘 자신의 양심에 충실한 모습으로만 그려질 뿐이다. 그의 인간관계는 어려움에 처한 후배에게 위로만 줄 수 있을 뿐, '해결사' 역할엔 전혀 근접하지 못한다.

    장준혁이 암에 걸려 죽음으로써 드라마 막판은 최루성 신파가 되었지만, 그 이전 단계에서라도 장준혁·최도영을 놓고 시청자 인기투표를 했다면, 장준혁이 표를 더 많이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가? 우리의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에서건 자신을 돌봐주는 상관 하나 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는 다 나름의 마피아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마피아는 '사람 사는 인정', 남의 마피아는 '추악한 탐욕'으로 보는 이중기준이 심리적 정당화 기제다. 어느 마피아에건 가담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긴 정말 어렵다. 좋은 학벌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마피아 시스템 때문이다.

    마피아를 만들지 않고 리더가 되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순 없을망정 유능한 리더가 되긴 어렵다. 자신을 위해 헌신할 참모진을 꾸리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여하한 경우라도 '끝까지 뒤를 봐주는' 심성이 결여된 리더를 위해 충성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리더십의 딜레마다. 어떤 유형의 조직에서건 선거가 깨끗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젠 '보스 정치'가 청산됐다고 주장하지만, 마피아의 구성ㆍ운영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끼리끼리 뜯어먹으며 이익을 배타적으로 향유하는 작태는 여전하다.

    ● 보스정치의 운영 달라졌을 뿐

    장준혁 식 삶이 드라마 특유의 과장법이라는 걸 감안하고 들어간다면, 지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맥 만들기 전쟁'을 '장준혁 현상'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접대산업·특수대학원·호텔·인터넷 등이 그런 전쟁 특수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직장인의 83.8%가 '인맥은 능력'으로 여기고 있으며, 대학생의 91.5%가 인맥의 중요성을 긍정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마피아 만들기'는 시대정신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강해지는 안전의 욕구는 필연적으로 마피아라는 울타리를 갈구하게 돼 있다. 시청자들이 장준혁에게 돌을 던지기보다는 오히려 공감과 더불어 애정마저 느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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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aru 2007-03-15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슴다~
     

                                                

    지난 10주간 동안 나는 이 드라마를 볼 수 있어 행복했다. 물론 이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다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극의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와 인간의 욕망을 이만큼 명징하게 보여주기도 드문 것 같아 주말을 참 많이 기다렸다.

    특히 우리나라 드라마가 사랑이나 연애라는 주제에만 함몰되어 징징거리고, 질질거리는 게 영 마뜩지 않았는데, 그것을 탈피하고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난 좀 우리나라 드라마 작가들이 그것을 벗어나 소재뿐만 아니라 주제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하얀거탑> 이 시작되었을 때 제목이 좀 묘하다싶어 이걸 봐야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김명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적어도 1회 방영은 봐줘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첫방영을 봤을 때 범상치 않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이 순수 우리나라 작품은 아니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일본 작가의 작품이고,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된 작품이라는 것에 좀 놀랐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의학 드라마와는 달라 인간의 정치적 욕망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정치적 인간에 대한 혐오감 같은 것이 부담스러웠고, 게다가 카메라의 움직임 조차 그것을 더 극대회 시키니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묘하게도(?) 선악구도를 탈피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따뜻한 피가 흐르며 아킬레스건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중반까지는 정의를 위해 자신의 지위를 과감하게 벗어던진 최도영에게 마구 끌렸지만, 역시 후반에 장준혁이 보여준 인간적인 면들에 연민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좀 웃기지. 종영을 하루 앞둔 나는 TV를 끄고 잠자리에 들으려고 하니 왠지 이 드라마의 장준혁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면서 기적이라는 것도 있으니, 죽을 병에서 다시 살아나 고소취하 하고,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인술을 펼치는 인간으로 마무리 지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멋있는 김명인이 그렇게 죽음으로 내몬다는 건 좀 잔인한 거 아닌가?

    그런데 이 드라마는 에누리가 없다. 20부작으로 했으면 딱 20부작으로 끝냈고, 장준혁이를 죽이기로 했으면 죽였다. 우리나라 드라마의 이 조금만 인기있으면 늘리기 방송하는 거 없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장준혁이 같은 인간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정말 그 인간은 매력적이다. 무작정 성공만을 쫓는 파렴치한은 아니었다. 솔직히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시 좀 화가 났는데, 권순일측에서 완강하게 나오니 나중엔, 사람의 생명도 생명이지만 정말 지나친 윤리만을 내세워 실력있는 젊은 의사 죽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실수 없는 인간이 어딨겠느냐? 장준혁이 그 실력으로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릴텐데...힘없고 무능한 사람이 똑똑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당하랴, 뭐 이런 뒤섞인 감정으로 이 드라마를 봐 왔던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 방송을 지켜본 어제 나는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멋 있는 김명인이 죽어서 울었고, 죽음을 앞두고 애인에게 마지막 전화를 하는 장준혁이 보면서 울었다. 장준혁이 팔팔하고 건강할 땐, "짜아식,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어떻게 토끼 같은 마누라 두고 너마저 그럴 수 있냐?"라고 해야하는 건데 장준혁이 그렇게 아내몰래 바람 피우는 것도 눈감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또 뭐냐? 게다가 죽는 것도 멋있어요. 시신을 기중하기 까지 않은가? 장준혁, 그렇게 멋있어서 어디다 쓸래? 그런데 그건 역시 깔끔하고 신사적인 일본적이란 느낌도 든다. 우리나라 원작을 작가가 썼더라면 나름에 신파가 있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죽음 앞에 인간은 한 없이 나약하다. 건강하게 살아 있을 땐 서로 잡아 먹지 못해 으르렁 거리더니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꼬리를 내리고 한 없는 연민을 뿜어낸다. 내가 많이도 울었던 건 바로 이 부분이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님 한참이나 오래 전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해서일까?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소식을 들으면 괜히 숙연해진다.

    솔직히 어제 방영분은 너무 급하게 마무리 지어졌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과감한 생략법도 필요하긴 하지만 장준혁의 고통은 실제 말기 암환자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에 얼마 보여지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장준혁이 두 통의 편지를 쓰는 것에서, 왜 우리 드라마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무리 과정을 다룬 드라마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삶은 찰라고 죽음은 영원하다고 말은 하면서 우리 인간의 이야기는 삶 그 자체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다.

    캐스팅에 있어서 김명민이나 이선균도 좋았지만, 비교적 처음 보는 조연들(장준혁의 쫄다구들)의 연기가 볼만했다. 거기서 보면 의사 가운이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일까를 심사했던 것도 나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정작 궁금했던 것은 거기에 삽입된 음악이다. 다 아는 일이지만, 이 드라마는 이미 일본에서 드라마화 됐고, 우리가 판권을 사들여 다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야기는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음악은 어떻게 했을까? 그것도 사서 입혔을까? 아니면 우리가 다시 새로 만들었을까? 음악이 하나 같이 좋았던 것으로 봐서 그 "소나무야~ 소나무야~" 부르고 연주했던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일본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아무튼 나는 이런 드라마 또는 이런 소설이 좋다.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니까 너무 욕심내서 아둥바둥 살지 말란 말야. 그러면 뭘해? 다 끝은 죽는 건데. 그냥 욕심 안네고, 남 헷고자 하지 않고 편하고 정직하게 살면 되는 거야." 뭐 이런 식의 뻔한 공식으로 마무리 짓는 거라면 그건 드라마를 너무 얕은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 이상의 뭔가가 더 있지 않은가?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저 책을 사 보고 싶어 근질근질 했다. 언젠가는 한번 읽어보고 싶다. 확실히 드라마와는 나름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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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미달 2007-03-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었죠?
    항상 런닝머신 하면서 보는데, 어젠 울면서 달렸어요. ㅋㅋ

    암리타 2007-03-1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07-03-1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달님/ㅎㅎㅎ. 러닝머신을 하면서 우실 정도면 그렇게 많이 슬프셨던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흐흐.
    암리타님/고맙습니다. 지금 보니 오타가 보이네요. 고쳐야 하는데...ㅜ.ㅜ

    외로운 발바닥 2007-03-12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동안 정말 잼있게 봤습니다. 사랑이야기 없는 드라마는 정말 오래간 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뻔뻔하면서도 냉철했던 장준혁의 허무한 죽음을 보면서 숙연해지더라고요. 하얀거탑의 후속 드라마가 또 트렌디 드라마라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마노아 2007-03-13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럼 읽는 기분이었어요. 공감 너무 잘 가요~ 음악은 이시우씨가 담당했어요. 대장금 작곡가구요. 지난해 뮤지컬 "바람의 나라"에 사용된 음악을 고스란히 갖다 썼답니다. 그래서 저는 감정이입 엄청 방해되었어요. 금년 5월에 바람의 나라가 다시 무대 위에 오르는데 음악도 그대로 쓸 것인지 두고 볼 일이에요^^;;;

    stella.K 2007-03-13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바닥님/^^
    마노아님/아, 그렇군요! 전 음악이 참 좋았는데, 마노아님은 이미 아시는 것이니 그럴만도 하네요. 알려 주셔서 고맙슴다.^^

    진/우맘 2007-03-13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몽도 하얀거탑도 끝나버렸구나.....드라마 매니아들은 이제 무슨 재미로 살려나.^^;

    stella.K 2007-03-14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말이...! 고현정 나오는 히트가 좀 땡기긴 하는데...! 근데 진우맘, 내 말이 조금이라도 동의가 되거든 가끔 추천도 눌러주구 그러우. 내 페이퍼 쓰는 것이 예전만 같진 않지만 추천은 늘 고프다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