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스토리
임경선 지음 / 뜨인돌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하루키를 한 마리 외로운 늑대로 표현했던 사람은, 작가 필립 말로우다. 사실 이 책에 묘사 된 작가 하루키는 친구도 그리 많지 않고, 사람이 많은 것은 질색이며(그랬던 그가 재즈바를 운영 했었다는 사실은 다소 아이러니 하다. 물론 호구지책이었겠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 한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이사를 광적으로 좋아해서 어디든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2, 3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하는 별난 취미의 사내로 나와있다. 그리고 인스턴트 식품은 극히 안 좋아해서 웰빙으로만 먹는단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이기지 못하는 유혹이 딱 하나 있으니, 미국산 도너츠를 무척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재미있는 아저씨다!

90년 대, 언젠가 모르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주요한 문학의 코드였다. 그 시절 하루키의 소설 한 두 권쯤 안 읽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었고,  그 시절 나 역시도 하루키의 소설을 3권쯤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니 한동안 잊혀졌던 그의 소설 한 두권은 더 읽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무엇이 이토록 하루키에 열광하도록 만들었을까? 하루키는 이 책의 저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마도 자신의 소설이 한국에서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것은, 이념 논쟁이 한창이던 80년 대를 지나 90년 대는 '나'라고 하는 것이 화두가 되면서 인기를 모았던 것 같다고 조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소설의 하나 같은 주제는 진정한 '나 다운 것'이 무엇이냐 였다. 이런 개인주의가 하루키 문학과  함께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것.  

하지만 난 80년 대나 90년 대나 변함없이 개인주의자였고, 앞으로 내 삶이 특별히 변화되지 않는 이상 개인주의자적인 삶은 계속 될 것 같다. 그렇다면 90년 대를 거쳐 오면서 내가 '하루키'를 읽었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당연 시류에 영합한 소행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하루키가 뭔데 난리야? 나도 한번 읽어 봐야 뭔가 이야기 상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안 읽으면 이야기 상대에서  '소외'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보단, 호기심이 그의 소설을 읽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래도 명색이 책 좀 읽을 줄 안다는 인간이 '하루키'를 모른대서야 말이 안되지 않는가? 그래서 그럴까? 앞에서도 밝혔듯이 언제나  나는 '개인주의'자 였기 때문에 하루키의 소설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개인주의자가 늘 그렇듯, 그들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편견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내 생각이 잘못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상대의 생각도 틀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 줘야하지 않은가?가 개인주의자들의 사고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말인데, 난 그 시절(하루키가 한창 문명을 떨치던 시절) 일본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그 편견이 얉아지고 있긴 하지만). 그때 내 친구랑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무슨 말 끝에 "일본 소설은 백치미적인 것 같아."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나와는 달리 일본 소설에 호의적이었던 것 같은데  나의 '백치미'란 표현을 상당히 인상적으로 받아 들였던 것 같다. 내가 '백치미'라고 표현했던 것은 수식은 좋은데 사람의 영혼이나 삶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우리 문학은 소위 말하는 '한'이라는 정서가 있고, 수 많은 질곡으로 점철되어 퍼올릴만한 질펀한 삶이 표출되어  있는데, 내가 읽은 일본 소설이란 수동적 삶에서 느껴지는 세미한 파장을 쫓는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와는 좀 맞지 않게 느껴졌다. 어쨌거나 이것은 하나의 개인적 취향이고, 스스로 갖는 느낌을 표현했을 뿐이니 그 친구는 반박이나 논쟁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랬다면 피했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어쩌면 개인주의는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키의 단편엔 꽤나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하루키'의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은 장사가 좀 되기 때문에, 여기 저기서 그의 단편을 편집할 때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엔 이런 단편들이 없고, 저 출판사에서 나온 책엔 저런 단편들이 없었기다. 그래서 나는 그의 단편집만 두권을 읽었던 것이다. 중복되는 것과 중복되지 않는 것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노르웨이 숲>을 읽었다. 지금은 하도 오래 전에 읽어 기억하는 바는 없지만, 하루키 소설은 일본적인 것에서 상당히 많은 거리감을 두고 있고, 미국풍에 가까운 묘사를 했다는 것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미국 소설 역시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하루키의 소설엔 그 어떤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작가는 미국에 상당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라고 생각했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 책에서 미국 소설을 즐겨 읽었으며 특히 트루먼 카포티에게 경의를 표했으며, 레이몬드 카버와 스티븐 킹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내가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그러면 그렇지!' 하며 난 혼자 퀴즈라도 맞힌 것처럼 쾌재를 올렸다.   

처음에 내가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 '평전'인가 했다. 사실 웬만해서 살아있는 사람을 주제 삼아 평전을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움베르토 에코의 평전이 나온만큼 이것도 그런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역시 평전이라고 보기엔 가볍다. 그냥 어느 묘령의 작가가 하루키를 너무 좋아해서 그에 대한 자료를 모두 모아놓고, 자기 좋은대로 편집한 것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읽는데 부담이 없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읽으면서 하루키의 인간적인 면들을 접할 수가 있어서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나의 경우 여느 작가들의 삶이나 글쓰기에 관한 기사나 저작물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 책 역시 개인적으론 만족감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특이한 점이라면, 하루키에 대한 글을 쓰면서 저자 자신의 체험이나 어린 시절의 느낌들을 간간히 써 놓고 있다는 것인데, 나 개인적으론 하루키만 알고 싶지 저자에 대해선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아 오히려 방해물처럼 느껴졌다. 작가는 왜 무모(?)하게 이런 시도를 했을까? 아마도 이것을 일컬어 '개인주의 글쓰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테면 하루키란 작가가 저자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가를 말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독자를 생각한다면 절제의 미도 보여줘야 했던 것 아닌가? 아니면 그렇게 개인적인 얘기를 하고 싶었다면 좀 더 세련된 뭔가의 기술적 장치를 써서 독자에게도 공감을 줬던가. 그만큼 하루키란 작가가 저자에게 상당한 영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난 이 점이 별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중에 하루키 사후에(아직 인생을 더 살아야할 사람이지만) 누군가는 본격적인 평전을 내지 않을까? 기대 반, 아쉬움 반으로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3-2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오랜만에 반가운 리뷰 추천합니다.^^ 보관함에도 담아가요^^

2007-03-25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3-25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다시 리뷰를 고칠까 하는 생각에 들어왔는데, 벌써 읽으셨네요. 근데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막상 고칠려니 번거롭네요. 리뷰는 쓰면 쓸수록 아쉬움이 남아요. 추천 고맙슴다.^^
숨어계신 님/그랬다면 더 솔직하고, 더 개인적이어야하고, 더 세련되야 할 것은데 그러지 못한 것 같더라구요. 리뷰를 쓰면 쓸수록 그냥 안 넘어가는 꼬장스러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막상 저의 리뷰 다시 보면 부끄러워 못 보겠으면서 말이어요. 흐흐.
암튼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2007-03-25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3-2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나의 이웃님/지적 고맙슴다. 솔직히 내 글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게 참 어렵더라구요. 이렇게 지적해 주면 나야 고맙죠. 아, 그러고 보니 이 댓글에도 님이 지적한 게 또 나오는군요. 흐흐. 예전에 나의 은사님은 '왜냐하면'을 지적하셨고, 오래 전나의 '나름대로'란 말을 너무 많이 쓴다고 지적을 받았더랬죠. 이젠 님이 지적한 것과 한판 승부를 버릴 차례군요. 하하. 거미줄에도 걸려 넘어지는 게 저랍니다. 지적해 준 것 늘 상고하고 있겠슴다. 진지하고 성깔 있다는 말 내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