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주간 동안 나는 이 드라마를 볼 수 있어 행복했다. 물론 이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다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극의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와 인간의 욕망을 이만큼 명징하게 보여주기도 드문 것 같아 주말을 참 많이 기다렸다.

특히 우리나라 드라마가 사랑이나 연애라는 주제에만 함몰되어 징징거리고, 질질거리는 게 영 마뜩지 않았는데, 그것을 탈피하고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난 좀 우리나라 드라마 작가들이 그것을 벗어나 소재뿐만 아니라 주제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하얀거탑> 이 시작되었을 때 제목이 좀 묘하다싶어 이걸 봐야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김명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적어도 1회 방영은 봐줘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첫방영을 봤을 때 범상치 않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이 순수 우리나라 작품은 아니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일본 작가의 작품이고,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된 작품이라는 것에 좀 놀랐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의학 드라마와는 달라 인간의 정치적 욕망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정치적 인간에 대한 혐오감 같은 것이 부담스러웠고, 게다가 카메라의 움직임 조차 그것을 더 극대회 시키니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묘하게도(?) 선악구도를 탈피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따뜻한 피가 흐르며 아킬레스건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중반까지는 정의를 위해 자신의 지위를 과감하게 벗어던진 최도영에게 마구 끌렸지만, 역시 후반에 장준혁이 보여준 인간적인 면들에 연민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좀 웃기지. 종영을 하루 앞둔 나는 TV를 끄고 잠자리에 들으려고 하니 왠지 이 드라마의 장준혁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면서 기적이라는 것도 있으니, 죽을 병에서 다시 살아나 고소취하 하고,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인술을 펼치는 인간으로 마무리 지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멋있는 김명인이 그렇게 죽음으로 내몬다는 건 좀 잔인한 거 아닌가?

그런데 이 드라마는 에누리가 없다. 20부작으로 했으면 딱 20부작으로 끝냈고, 장준혁이를 죽이기로 했으면 죽였다. 우리나라 드라마의 이 조금만 인기있으면 늘리기 방송하는 거 없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장준혁이 같은 인간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정말 그 인간은 매력적이다. 무작정 성공만을 쫓는 파렴치한은 아니었다. 솔직히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시 좀 화가 났는데, 권순일측에서 완강하게 나오니 나중엔, 사람의 생명도 생명이지만 정말 지나친 윤리만을 내세워 실력있는 젊은 의사 죽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실수 없는 인간이 어딨겠느냐? 장준혁이 그 실력으로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릴텐데...힘없고 무능한 사람이 똑똑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당하랴, 뭐 이런 뒤섞인 감정으로 이 드라마를 봐 왔던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 방송을 지켜본 어제 나는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멋 있는 김명인이 죽어서 울었고, 죽음을 앞두고 애인에게 마지막 전화를 하는 장준혁이 보면서 울었다. 장준혁이 팔팔하고 건강할 땐, "짜아식,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어떻게 토끼 같은 마누라 두고 너마저 그럴 수 있냐?"라고 해야하는 건데 장준혁이 그렇게 아내몰래 바람 피우는 것도 눈감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또 뭐냐? 게다가 죽는 것도 멋있어요. 시신을 기중하기 까지 않은가? 장준혁, 그렇게 멋있어서 어디다 쓸래? 그런데 그건 역시 깔끔하고 신사적인 일본적이란 느낌도 든다. 우리나라 원작을 작가가 썼더라면 나름에 신파가 있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죽음 앞에 인간은 한 없이 나약하다. 건강하게 살아 있을 땐 서로 잡아 먹지 못해 으르렁 거리더니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꼬리를 내리고 한 없는 연민을 뿜어낸다. 내가 많이도 울었던 건 바로 이 부분이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님 한참이나 오래 전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해서일까?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소식을 들으면 괜히 숙연해진다.

솔직히 어제 방영분은 너무 급하게 마무리 지어졌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과감한 생략법도 필요하긴 하지만 장준혁의 고통은 실제 말기 암환자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에 얼마 보여지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장준혁이 두 통의 편지를 쓰는 것에서, 왜 우리 드라마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무리 과정을 다룬 드라마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삶은 찰라고 죽음은 영원하다고 말은 하면서 우리 인간의 이야기는 삶 그 자체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다.

캐스팅에 있어서 김명민이나 이선균도 좋았지만, 비교적 처음 보는 조연들(장준혁의 쫄다구들)의 연기가 볼만했다. 거기서 보면 의사 가운이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일까를 심사했던 것도 나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정작 궁금했던 것은 거기에 삽입된 음악이다. 다 아는 일이지만, 이 드라마는 이미 일본에서 드라마화 됐고, 우리가 판권을 사들여 다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야기는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음악은 어떻게 했을까? 그것도 사서 입혔을까? 아니면 우리가 다시 새로 만들었을까? 음악이 하나 같이 좋았던 것으로 봐서 그 "소나무야~ 소나무야~" 부르고 연주했던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일본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아무튼 나는 이런 드라마 또는 이런 소설이 좋다.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니까 너무 욕심내서 아둥바둥 살지 말란 말야. 그러면 뭘해? 다 끝은 죽는 건데. 그냥 욕심 안네고, 남 헷고자 하지 않고 편하고 정직하게 살면 되는 거야." 뭐 이런 식의 뻔한 공식으로 마무리 짓는 거라면 그건 드라마를 너무 얕은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 이상의 뭔가가 더 있지 않은가?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저 책을 사 보고 싶어 근질근질 했다. 언젠가는 한번 읽어보고 싶다. 확실히 드라마와는 나름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달 2007-03-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었죠?
항상 런닝머신 하면서 보는데, 어젠 울면서 달렸어요. ㅋㅋ

암리타 2007-03-1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07-03-1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달님/ㅎㅎㅎ. 러닝머신을 하면서 우실 정도면 그렇게 많이 슬프셨던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흐흐.
암리타님/고맙습니다. 지금 보니 오타가 보이네요. 고쳐야 하는데...ㅜ.ㅜ

외로운 발바닥 2007-03-12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동안 정말 잼있게 봤습니다. 사랑이야기 없는 드라마는 정말 오래간 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뻔뻔하면서도 냉철했던 장준혁의 허무한 죽음을 보면서 숙연해지더라고요. 하얀거탑의 후속 드라마가 또 트렌디 드라마라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마노아 2007-03-13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럼 읽는 기분이었어요. 공감 너무 잘 가요~ 음악은 이시우씨가 담당했어요. 대장금 작곡가구요. 지난해 뮤지컬 "바람의 나라"에 사용된 음악을 고스란히 갖다 썼답니다. 그래서 저는 감정이입 엄청 방해되었어요. 금년 5월에 바람의 나라가 다시 무대 위에 오르는데 음악도 그대로 쓸 것인지 두고 볼 일이에요^^;;;

stella.K 2007-03-13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바닥님/^^
마노아님/아, 그렇군요! 전 음악이 참 좋았는데, 마노아님은 이미 아시는 것이니 그럴만도 하네요. 알려 주셔서 고맙슴다.^^

진/우맘 2007-03-13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몽도 하얀거탑도 끝나버렸구나.....드라마 매니아들은 이제 무슨 재미로 살려나.^^;

stella.K 2007-03-14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말이...! 고현정 나오는 히트가 좀 땡기긴 하는데...! 근데 진우맘, 내 말이 조금이라도 동의가 되거든 가끔 추천도 눌러주구 그러우. 내 페이퍼 쓰는 것이 예전만 같진 않지만 추천은 늘 고프다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