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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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씨는 그 명성에 비해 나에겐 오히려 생소한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난 지금껏 그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읽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아주 오래 전 그의 작품을 읽은 것도 같고, 안 읽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만큼 작가는 나의 관심 밖이였던 것이다.

내가 그를 관심 밖에 뒀던 건, 그가 한창 필봉을 휘둘렀을 때 나는 한국문학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그의 문학적 위치가 참여문학의 최선봉에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그 시절 작가들이 참여문학을 하지 않으면 달리 무슨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난 문학하면 참여문학 밖엔 할게 없었던 이 나라의 문학풍토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정말 문학을 몰랐고, 배부른 생각을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문학이 너무 개인주의화 됐고, 너무 말랑말랑해졌다. 그래서 솔직히 재미가 없어졌다. 요즘에 주목받는 작가들은, 아예 문학이 엄숙해질 필요가 있냐고 하며 스스로 탈엄숙주의를 선언하고 나오고 있으니,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그런 문학을 읽고 있을 바에야 차라리 지금이라도 참여문학을 독파해 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아니 읽고난 후 무슨 말을 써야할지 리뷰 쓰기가 좀 막막해졌다. 읽을 땐 너무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작가는 한가지 방법으로만 이야기를 풀어 나가지 않고 여러가지의 것을 혼합해서 풀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우선 주인공 바리는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이 아닌, 실제로 알고 있는 탈북의 어떤 사람을 그린 것 같이 생생하다. 게다가 바리공주의 구전설화를 완벽히 재탄생시켜 놓았다. 그리고 환상적인 요소까지 리얼하게 살리고 있어, 아, 이런 작가도 있었구나! 읽는내내 탄성을 지르게 만들었다. 게다가 작가는 참여문학의 대부(代父)답게 여전히 북한 문제와 미국의 9.11 사건, 아프가니스탄 사태 등을 바리라는 주인공을 통해 노련하게 병치시켜 놓았다. 게다가 이슬람의 내세관까지 녹여놓았으니 과연 대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과연 문학은 어때야 하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개기가 되었다. 나는 아무래도 탈이데올로기화 되고, 개인주의화된 그리고 가벼움과 재미만을 추구하는 오늘 날의 문학에 찬성할 수가 없다. 그것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역시 문학은 인생을 얘기해야 하고, 공동체적 삶을 얘기해야 하며, 그것이 옳든 그르든 작가의 인생관이 녹아져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읽는다는 건 나에게 크나큰 기쁨이었다. 이 작품을 읽고나니 작가의 이전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물론 나 개인적으론 작가의 다소 샤먼적인 색채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것을 통해 우리나라의 의식의 뿌리를 파헤칠려고 했다는 문학적 성과는 높이 사고 싶다. 또한 작가가 이전에 연극작업에 참여한 이력이 있어서일까? 작품에서 다분히 연극적 이미지가 베어있어 조만간 누군가에 의해 이 작품은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물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보게 만들었다. 그것은 운이 좋아서일까? 가제본으로 읽으면서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연극대본을 넘기는 것 같은 기분도 한몫 더 했으리라. 지금은 읽은지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잔상이 쉬 지워지지 않는다. 바리데기. 과연 추천할만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작가의 건필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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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7-07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연극적 요소를 찾아내셨나 보군요. 황석영은 이야기꾼이지요. 이 책은 아직 안
읽어봤지만 다음에 읽을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stella.K 2007-07-08 18:39   좋아요 0 | URL
그럴리야 없겠지만, 아무도 작업을 안 하면 나라도 하고 싶어요. 물론 머리 빠지는 일이지만...ㅎㅎ

mira95 2007-07-07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도 기대중인데..빨리 읽고 싶어요. 황석영은 언제나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가지요..

stella.K 2007-07-08 18: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전 기회있는데로 <심청>이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황석영의 <심청>은 어떨까 궁금해지더라구요.^^

쿠자누스 2007-08-27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와 우연케 어느 식당에서 마주쳤을 때, 9/11을 소설로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하려다가 공연히 실망만 하게 될 것 같아서 그만 둔 적이 있었는데요, 이 책에 무얼 썼을까 궁금하네요.
 

  • 10명중 5명 부끄럼 타는 ‘샤이 증후군(shy syndrome)’
    브리핑·데이트에 강해지려면…
  • 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 회사원 김태식(40)씨는 하루라도 머리를 감지 않는 날이 없다. 어쩌다 늦잠을 자 머리를 감지 못하고 출근하는 날은 종일 안절부절 일을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내 머리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제 가까이라도 왔다가 냄새를 맡고 인상을 찌푸리면 어쩌나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요.” 출판사에 다니는 이정민(28)씨는 월요일 아침이면 공포에 휩싸인다. 월요일 오전 10시면 열리는 아이디어 회의 때문이다. 준비한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니다. “제가 발표할 때 사람들 시선이 온통 저를 향해 집중되는 상황이 무서워요. 목소리가 떨려오고 얼굴이 빨개지고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하얗게 잊어버려요. 이거 병 아닌가요?”





    • ▲ 박상훈 기자 ps@chosun.com



    •  


      ◆누구나 부끄러움 탄다

      전신에 열기가 느껴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심장은 두근대고 등에는 찬물을 끼얹은 듯한 끔찍한 느낌! 바로 ‘샤이 증후군’(shy syndrome) 이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정도가 다소 심각한 정도랄까? 이는 사회적 관계를 두려워하는 ‘사회공포증(social anxiety)’으로 확대되기도 하는데, 적극적인 자기 표현과 주장을 능력과 성공의 척도로 간주하는 요즘 사람에 따라서는 상대적 고립감을 고통에 가까울 정도로 느낀다.그런데 전문가들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심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최윤식 연구원은 “두려움, 불안, 공포에서 야기되는 부끄러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고난다”면서 “남들이 지금 나만 보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 즉 ‘스포트라이트 이펙트’를 떨쳐버리기 위해 노력한다면 샤이 증후군은 서서히 사라진다”고 말한다. 김종우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한국과 일본처럼 집단의 목표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고 수치심을 유발하는 유교권 문화에서 그 강박이 더욱 크다”고 말한다.

      ‘부끄러움’(황금가지)의 저자인 버나도 카두치(Carducci) 인디애나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질적으로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은 20%에 불과하다. 수줍은 성격은 기질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일 뿐, 성격 장애도 몹쓸 병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부끄러움에 관한 오해와 진실

      정치인 앨 고어, 방송인 바버라 월터스, 가수 스팅, 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 다이애나 왕세자비 등도 심각한 부끄럼쟁이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부끄러움에 관한 선입견을 깨뜨리면 극복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카두치 교수가 제시하는 ‘부끄러움에 관한 오해와 진실’이 재미있다. 첫째,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 사람 10명 중 5명은 심하게 부끄러움을 탄다. 둘째, 유순하고 얌전한 아기가 커서도 수줍음을 탄다? 자라서 부끄러움을 타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아기는 영아기 때 자극에 매우 민감하고 시끄러운 아기다. 셋째, 부끄러움은 평생 간다? 학습된 부끄러움은 고칠 수 있다. 넷째,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들은 모두 내성적이다? 공격적이고 외향적인 사람들도 치명적인 샤이 증후군에 속을 끓인다. 다섯째,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은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기 존중감이 낮다? 부끄러움은 오히려 자기도취와 상관 있다. 최윤식 연구원은 “남들의 평가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사람은 타인의 평판 이전에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엄격한 자기 평가에 시달리기 때문에 전전긍긍한다”고 말한다.



      ◆당신의 말더듬,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치명적인 부끄러움, 어떻게 극복할까?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종우씨는 일단 “부끄러움을 오히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며 부끄러움은 사회적 안정장치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범법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 카두치 교수는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들이 관심의 초점을 자기 내면에서 밖으로 돌리면 더 넓고 합리적인 시야를 가질 수 있다”고 충고한다. 최윤식 연구원은 “극복 의지, 시행착오를 통한 훈련의 반복과 치밀한 사전 준비, 정보 수집이 샤이 증후군을 극복하게 도와준다”고 말한다. “사회인지심리학 분야에 ‘10년 법칙’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느 분야든 전문성을 얻으려면 10년 이상 노력하고 경험해야 한다는 뜻이죠. 그만큼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해질 필요도 있다. 최 연구원은 “다른 사람들은 더듬거림과 실수를 당신이 느끼는 것만큼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실제 모습과 이상적 모습의 차이를 인정하고 격차를 줄이려는 현실적 노력을 시도하라”고 충고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04/2007070400012.html

     







     

  • “수줍은 성격은 병도 장애도 아니에요”  (※‘부끄러움’(황금가지) 중에서



    • ■유형별 극복법 


      수줍음 많아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아이

      ―과보호하지 마라. 아이가 울면 안지 말고 잠시 울도록 놔두라.

      ―일관성 있는 훈육 방식을 계발하라. 벌 받을 행동과 칭찬 받을 행동에 혼동이 오면 아이의 말과 행동이 억제돼 부끄러움이 심화된다.








    • ―기질적으로 억제된 아이는 매사에 민감하므로, 혼을 낼 때 나쁜 아이와 나쁜 행동을 구분하라.자기 존중을 북돋우며 훈육하라.

      ―거친 놀이보다 책 읽기, 진흙놀이 등 비경쟁적인 놀이로 소통하라.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등 당신의 사교 활동에 아이를 참여시켜라. 당신의 물건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라



      데이트 때 여자 앞에서 얼굴 빨개지는 남자

      ―상대방의 거절에 신경 쓰지 마라. 거절은 상대방의 의견이며 정보다.

      ―가끔 대화를 중지하고 음료수나 스낵을 가져오는 등 사교적 호의를 베풀어라. 사려 깊어 보일 뿐 아니라 긴장을 풀 시간이 생긴다.

      ―모임에서 만났다면 둘만의 친밀한 대화를 나눌 기회를 마련해 보라. “좀 조용한 장소에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모임 후에 남아서 이야기 좀 나누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하라.

      ―끈기를 가져라. 단 한 차례 만남의 성패에 당신의 자기 감각을 모두 투자하지 마라.

      ―주위에 그 여성이 마음에 든다고 소문을 내라.

      ―평소 직장 내 여성 동료들과 대화하는 연습을 자주 하라.



      브리핑할 때 덜덜 떠는 소심한 직장인

      ―빈틈없이 준비한다. 당신이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안전하다.

      ―청중에게 인사하라. 청중이 강연실로 들어갈 때 그들 중 몇 사람과 사귀어라. 긴장이 빨리 풀리고 발표하는 동안 눈을 맞출 사람들이 생긴다.

      ―처음 5분이 중요하다. 일단 가벼운 화제로 시작한다. 참석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언급하라. 청중이 웃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소품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슬라이드, 오버헤드 프로젝터, 차트 등을 이용하면 청중의 시선이 화면에 쏠리게 된다. 맛보기로 재미난 동영상을 한두 컷 보여줘도 효과적. 차트 보드 뒤편에 커닝 페이퍼를 붙여놓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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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노아 2007-07-06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핑할 때 덜덜 떠는 소심한 직장인! 눈여겨 봅니다. 전 부끄럼쟁이지만 '실전에 강하다!'라는 자부심을 늘 걸고 살아요. 그게 진짜라면 좋겠어요^^

    stella.K 2007-07-07 16:06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자신이 믿는 것이 자신입니다.^^
    바람구두, 못 믿겠는데요...ㅋ
     

    [사진에 담긴 세상] 《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한영신 _ 자유기고가]



    키스 글레니-스미스, 서울 미아리 고개

    ▲ 키스 글레니-스미스, 서울 미아리 고개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2007. 5. 18. ~ 2007. 8. 18, 서울대학교박물관 2층 특별전시실)는 한국전쟁 중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두 영국인 장교 안소니 영거(Anthony Younger)와 키스 글래니-스미스(Keith Glennie-Smith)의 개인 사진 기록들을 발굴해 소개한 전시이다. 전시와 함께 사진집『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서울대학교 엮음, 눈빛, 2007) 가 발간됐다.

    전방위적 한국전쟁 기록 수집하기

    『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는『지울 수 없는 이미지』시리즈(박도 엮음, 눈빛)가* 보여주는 전쟁에 대한 기록의 규모 면에서나, 기록사진으로써 구성과 형식의 완성도에 비교할 수는 없다. 물론 상대적 평가의 측면에서 그렇다.『지울 수 없는 이미지』의 기록 사진들 역시 정확한 지명이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정체가 모호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지울 수 없는 이미지』가 보여주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 사진들은, 미국의 시각과 필요에 의한 것들이란 점을 감안하고 봐야하며, 이것이 한국전쟁의 온전한 총체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지울 수 없는 이미지 1․2․3』를 보면, 미국의 보유하고 있는 한국전쟁 관련 기록의 일부인데도, 미국의 기록, 수집, 보관에 대한 인식과 능력의 우수함과 선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주체가 된 기록 문화에서도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을 보완하기에 우리와 관련한 타인들의 기록을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특정 집단과 특정 국가의 시선은 그 자체만으로 제3자의 시선이 있지만, 그 집단과 국가의 이해관계에 편향되는 한계 역시 따른다. 때문에 다각적으로 세계 속의 시각들을 모아갈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더불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은 국가 차원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어떻게 얼마만큼 기록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이런 자료들을 비교해 본다면 국가라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전쟁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 그 안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의 접합점은 무엇인지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키스 글레니-스미스, 동대문 시장(속칭 삐삐선이라 불리던 통신선을 재활용해 만든
    장바구니들이 보인다)

    그런 면에서 대중이 관련 사진 자료들을 중심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책으로『그들이 본 한국 전쟁』시리즈(2005, 눈빛)가 있다. 그 중『그들이 본 한국 전쟁 1』은 1959년 중국 해방군화보사에서 참전기념 화보집 형식으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한 것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중공군의 실체와 한국전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중국 공산당의 목적과 그들의 시선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봐야 할 것이다.『그들이 본 한국 전쟁 2』는 미 해외참전용사협회에서 참전 기념호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 한 것이고,『그들이 본 한국 전쟁 3』은 미군 사진병과 군속 사진가가 찍은 전쟁의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이들 사진집에는 사진 자료 이외에도 국제관계, 한국현대사, 정치 등 관련 분야 전문가의 한국전쟁에 대한 글들(『지울 수 없는 이미지』시리즈)과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보고서(『그들이 본 한국 전쟁 2』), 맥아더 장군의 뒤를 이어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재임했던 리지웨이와 클라크 장군의 보고서(『그들이 본 한국 전쟁 3』)는 물론, 미국에서 수집한 북한 측의 삐라와 포스터와 서류는 물론 중공군․북한군 포로들이 가지고 있던 사진과 편지 등(『지울 수 없는 이미지3』)이 함께 실려 있어,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한 한국전쟁,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크다.  

    전체가 간과한 기억을 되짚는 특별한 통로

    다시 이번 전시로 돌아와서, 영거와 스미스는 비교적 전문적인 사진 촬영 기술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들 사진의 완성도 자체는 높이 평가할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거와 스미스의 사진 기록물들은 사진의 예술성이나 한 컷의 사진이 갖는 구성적 완결성 면에서가 아닌, 기록의 희소성으로부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의 한국전쟁과 전쟁 직후의 사진 기록들은, 종군 사진 기자들의 취재나 일종의 첩보 활동에 의한 그것들과는 다른 성격과 분위기를 전해준다. 한국의 생활상을 담은 외국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 부대 안팎에서 참전 중 군인의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을 느낄 수 있다. 그건 그들이 참전 군인이기는 했지만, 전투 외의 여가 시간에 개인 취미 생활의 측면에서 사진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중 격전 현장과 전투 상황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휴식과 휴가 중 전투 이외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휴전 직후의 상황에 대한 여유로운 기록들이다. 그 전쟁중의 여유로운 풍경은 그들이 1950, 51년의 긴박한 상황보다는, 남북은 물론 관련 국가들의 이익과 관련해 전쟁을 지지부진 끌어가던 1952, 53년 사이에 참전했기 때문에 더 도드라지는 것이다. 이들의 사진 속에는 휴전이 발표된 직후 전선에서 방금 전까지 총부리를 겨누며 사투를 벌이던 유엔군과 중공군이 인사를 나누고 기념으로 화폐에 사인을 해 주고 받는 모습마저 담겨 있다.  



    안소니 영거, 휴전 발표 후 기념품으로 유엔군의 수표에 사인을 해주는 중공군 장교


    또 사진집『영국인 사진가의 눈으로 본 한국-1953,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안에는 영거가 쓴 한국참전 경험과 전란 속의 한국에 대한 기억들이 담겨있어, 한국전쟁에 대해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서문에서 안소니 영거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순전히 개인의 시각과 기억의 착오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음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특성과 감성이 결합한 개인의 기억이란, 때로 전체의 기억이 간과하고 있는 세밀한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통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통로로 들어간 사람들 중에는 공적 기억에서 배제된 기억을 상기해내거나 그 감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고, 대화와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탄피로 만든 와인잔으로부터


    그 중 인상적인 기억의 몇 가지는 이렇다. 전쟁 중 원화 가치가 떨어져 사실상 화폐로서 쓸모가 없게 되자 시장에서 맥주병이 돈으로 사용됐다든가 탄피(탄환이나 포탄의 껍데기)나 통신선 등 그릇이나 장바구니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 썼다는 이야기다. 이런 모습들을 구체적 사진 기록들로 충분히 담겨있지는 않지만, 기억에 대한 기록과 수집 물품의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점이 이채로웠다. 전시장 중앙에는 안소니 영거가 간직하고 있던 탄피와 당시 한국의 시장에서 사서 아직도 즐겨 쓰고 있다는 탄피로 만든 와인잔이 유리관 안에 전시돼 있었다.『지울 수 없는 이미지3』에서 탄피의 다양한 재활용의 실체를 증명하는 탄피로 만든 교회의 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놋그릇과 철재들이 모아져 전쟁물자로 조달되고 난 후, 그 전쟁의 폐품들이 일상용품들로 재활용되는 전쟁의 궁핍상과 전쟁의 생산성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이런 교차는, 새삼 전쟁의 경험이 상품화되어 경제적 가치를 갖고 정치적 목적으로 끊임없이 재활용되고 있는 모습들 속에서도 계속해서 재현돼 오고 있다. 더구나 파괴적인 전쟁이 철학과 예술과 과학은 물론 경제 같이 많은 것을 잉태하고 발전시켜낸 생산적인 면모들조차 함축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그러나 '전쟁의 상품화와 재활용' 자체에 무턱 대고 나쁘다는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렵다. 그러고 보면 선만이 선을 악만이 악을 잉태하지 않으며, 선이 악을 잉태하기도 하고 악이 선을 잉태하기도 하는, 인간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안소니 영거, 적재되어 있는 포탄들

    어느 날 한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것은 나쁜 것, 저것은 좋은 것이라 가르치지 말고, 좋게 쓰면 좋은 것 나쁘게 쓰면 나쁜 것이라 가르치자는 것이다. 가령 ‘거짓말은 나쁘다. 칼은 나쁘다’는 틀렸다는 것이다. 선배의 이야기는 섣부른 가치판단으로 아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가두지 말자는 뜻에서 충분히 이해했고, 공감하고 귀담아 들었다. 하지만 모호해지는 면도 있었다. ‘전쟁은 나쁘다’, ‘살인은 나쁘다’, ‘도둑질은 나쁘다’는 틀린가 하는 것과 ‘전쟁과 도둑질과 살인도 좋게 쓰면 좋은 것이다’가 맞는 말일까 하는 것이었다. 답은, 특히 집단의 이익과 관련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도둑질인 적군․적국의 첩보 활동은 나쁜 것이다. 그러나 조국․아군의 첩보 활동에 대해서는 나쁘다는 가치판단이 들어설 틈이 없으며, 우리 집단 전체를 위한 진취적이고 긍정적이며 의롭고 사명감 있는 행위로 여겨진다. 살인 역시 그렇다. 국가를 위한 경우는, 적․악에 대한 응징으로써, 우리 집단을 위한 정의로운 희생으로 추앙되고, 감히 ‘살인’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낱말을 갖다 부치는 것이 적절치 않게 느껴진다. 전쟁 역시, 적의 전쟁 도발은 나쁜 것이고, 이 나쁜 것에 대해 우리를 지키기 위한 대응으로, 또는 우리 집단의 영역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쟁은 정의로운 힘으로 추앙된다.**** 칭기즈칸의 영토 확장이 서구에서는 폄하되고 아시아에서 미화되듯 말이다. 거짓말도 그렇다. 사람들은 선의의 거짓말이 성립할 수 있는가를 놓고 설왕설래하곤 하는데, 사람은 거짓말도 정의롭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쉬운 예로 일제로부터 독립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나쁜 것이다. 독립군 활동을 전개하는 중에 효과적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일제를 속이는 거짓말을 아주 잘해야 하고, 못하는 것이 못난 것이다. 고작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라 훌륭하고 숭고한 거짓말조차 존재하는 것이다. 독립군의 거짓말 이야기가 너무 먼 이야기일까.

    반공 교육과 ‘한국전쟁’교육의 차이

    물론 겨우 탄피 와인잔의 일화에서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게 흘러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7년은 한국전쟁 57주년을 맞은 해이다. 전쟁 발발로부터 어느새 환갑이 가까웠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전후 세대들의 집단적 경험들 중 많은 부분은 한국전쟁과 관련한 반공 교육이 차지하고 있다.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고 표어를 짓 듯, 매년 6월에는 반공 포스터 그리기, 반공 표어 짓기, 반공 글짓기 대회 같은 것을 해왔고, 돼지와 늑대의 모습을 한 북한 공산당에 대항해 불쌍한 북한 주민을 구하는 똘이 장군의 활약상을 담은 만화 영화를 보며 성장했다.

    그러면서 그들 중 많은 경우 비슷한 형태의 반공 의식과 관련한 꿈까지 공유하는 독특한 경험조차 있다.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가 가끔 가다 한 번씩 태권브이를 타고 북한 공산당을 무찌르는 꿈을 꾼다고 하자, 한 친구는 무장공비들이 침투했거나 전쟁 중이었거나 하는 상황에서 북한 공산군을 피해 마을과 산 속으로 숨어 다니는 꿈을 간혹 꾼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형태의 꿈을 꾸는 것을 보면,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삶의 형태가 사람들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듯 대한민국 전후세대들의 집단적 삶과 의식 안에도 한국전쟁은 어김없이 어떤 양상으로든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집단적인 무의식의 공포로만 작용해서, 우리를 갇혀 있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겠다. 북한과 미국도 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친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어이 없어할 만큼 어리석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안소니 영거, 통신트럭 앞의 아이들, 경기도


    그동안 우리의 역사, 정치는 물론 사회와 문화 모든 분야의 교육이 반공 교육에만 치우침으로써, 한국현대사의 가장 굵직한 사건인 한국전쟁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은 외면되어 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한 전쟁의 역사, 우리가 가진 전쟁의 상처를 우리의 미래에 좋고 이롭게 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알고 실천해 나가야 할까. 바로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 한국전쟁과 관련한 기록들을 발굴하고 공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곧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지도를 찾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들이기 때문이다.







    필자주

    *『지울 수 없는 이미지』는 한국전쟁과 관련해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 보관돼 있는 기록 사진들과 맥아더기념관(버지니아 노폭)의 자료 중 일부를 모아 엮은 것으로『지울 수 없는 이미지 1-8․15 해방에서 한국전쟁 종전까지』(2005),『지울 수 없는 이미지 2-한국전쟁에 휩싸인 사람들』(2006),『지울 수 없는 이미지 3-한국전쟁이 남긴 것들』(2007)까지 출간돼 있다.

    ** 사진 기록을 중심으로 찾다보니, 관련 주제에 대해 소개한 책들이 모두 특정 사진 전문 출판사의 책에 집중된 점이 있다.

    *** 사진 한 컷이 보여주는 구성적인 완결성이란 단지 형식적인 측면만 아니며, 사진의 예술성이란 단지 여유로운 미학적인 탐닉으로 이해될 수는 없는 일이다. 형식은 주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고, 예술성은 이런 형식과 주제가 어떻게 조화롭게 결합해 인간의 감성과 이성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로, 기록 사진 분야에서조차 쉽게 폄하될 문제는 아닐 수 있다.

    **** 여기에서 '우리', '아군', '조국', '적군', '적군', '타국'은 지구상의 누군가들이 속해 있고, 배타돼 있는 집단에 대한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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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노아 2007-07-06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 2를 인상깊게 보았어요. 3편도 나왔군요. 사진집은 너무 고가여서 주로 교보문고를 이용한답니다..;;;;
     

    어제는 특별히 <기자로 산다는 것>제목으로 그동안 1년 넘게 끌어 온 시사저널 사태를 보도했었습니다.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승주나무님이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시사저널 사태를 올려 저도 대충은 알게 되었지만 부끄럽게도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죠.

    아시는 분은 아실테지만, 시사저널 사태는 이미 인쇄에 넘어 간 시사저널을 시사저널의 회장이 강제로 3쪽을 무단 삭제케한 것이 촉발이 되어서 벌어진 사태입니다. 기자들은 자신들의 편집권을 인정해 달라고 단식까지 벌이며 시위했지만 그것이 끝끝내 묵살이 되어버렸죠. 그리고 9월이면 사시저널 전직 기자들(시위에 참가했던 22명의 기자들)이 자체적으로 시사주간지를 낸다고 합니다.

    어쨌든 어제 저는 그것을 보면서 참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충분히 협상이 가능했던 것인 것 같은데 꼭 이렇게까지 되어야만 했던 것인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놈의 밥벌이가 뭐라고, 그들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한 어버이의 딸일텐데, 몇 개월씩 아내에게 월급도 못 갔다주고, 암으로 투병하는 아버지에게 근심을 안겨드려 그 병을 악화시켰던 것일까요? 그러면서도 그들은 펜이 칼 보다 더 강함을 보여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시사저널의 투쟁은 참으로 눈물 겨운 것이었습니다. 밥 앞에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비굴해 지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하지만 그들은 기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사태를 안팎으로 알리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더군요. 어느 기자는 KBS의 일요일마다 방송되는 모 퀴즈 프로그램에 까지 출연해서 사태를 알릴려고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그 기자는 그 퀴즈 프로에서 우승을 해 적지않은 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정작 나름 준비했던 멘트가 편집되어 잘려나갔다고 합니다.

    이처럼 방송이며 우리나라의 유력 일간지들이 실제로 관심을 보이며 취재를 해갔지만 정작 신문이나 뉴스 보도엔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직도 우리나라 언론이 정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또한번 입증된거라고나 할까요? 이에 대해 전 시사저널 편집국장은, 언젠가는 우리나라 언론史에 그 책임을 물을 달이 올거라고 절규했습니다.

    또 아시는 분은 아실테지만 <시사저널>은 기사 보도 문장의 적확함으로 유명해 논술교재로도 이름이 나있습니다. 그런 <시사저널>의 저력은 그들 기자들이 그처럼 발로 뛰며 피와 땀으로 썼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겠죠. 어제 TV에 나온 어느 열혈독자는, 자신이 시사저널을 보는 것은 그 브렌드 자체 때문이 아니라 기자들의 보도 내용 때문에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22명의 기자가 빠져나간 시사저널은 여전히 결간없이 계속 찍어내지만 알멩이 없는 허울만 내세운 주간지가 되었으니 그것의 운명도 시간문제란 생각이 듭니다.

    PD 수첩의 프로듀서 겸 진행을 맡은 송일준 DP는 프로그램 말미에, 이것은 사측이나 투쟁을 했던 기자들 또 거기에 낀 삼성 어디에도 승자가 없는 싸움이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시사저널 사태를 보도하지 않았던 우리나라 유력 일간지들이, 미국의 갑부 머독이 어느 한 신문사를 사 들이려고 하자 그 신문사의 기자들이 편집권을 방해 받을거란 이유 때문에 인수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기사를 일제히 보도했다며, 우리나라 일간지의 보도행태를 꼬집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는 어쩌면 있는 것들 때문에 선진국이 안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모쪼록 22명의 시사저널의 전직기자들 아픔을 딛고 일어나 9월에 새롭게 창간하는 시사주간지의 건승을 빌어봅니다. 저도 그때가 되면 한 부 사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아, 그리고 아직 PD수첩 안 보신 분들 시간 나시면 안터넷으로라도 꼭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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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viana 2007-07-04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d수첩을 보지는 않았지만, 시사모에 가입해서 대충의 소식은 알고 있어요.그나마 피디수첩밖에 없네요.저도 그 잡지 꼭 사볼거에요.^^

    stella.K 2007-07-04 13: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그 생각했어요. 송일준 피디 멋지더라구요.^^

    프레이야 2007-07-0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티비는 못봤지만 9월에 나올 새 시사주간지는 꼭 사봐야겠어요.
    있는 것들 때문에 선진국이 안 될지도 모르겠다는 스텔라님의 예감..
    번쩍!합니다.

    stella.K 2007-07-05 11:21   좋아요 0 | URL
    ㅎㅎ 어젠 제가 말이 너무 심했나요? 그보다 중요한 건 기자들은 보도의 진정성 때문에 투쟁해야하고, 있는 사람들은 제발 노블레스오블리지 정신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아직도 저들의 부가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저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진달래 2007-07-0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침에 손석희의 시선집중인가... 거기서 얘기 좀 들었어요. 정말 새로 나오는 시사주간지, 건승도 빌고, 꼭 한부 사 봐야겠어요. ^^;;

    stella.K 2007-07-05 11:23   좋아요 0 | URL
    네. 저렇게 투쟁하는 사람들 보면서 마음이 찡하더라구요. 진달래님도 저들의 건승을 빌어주세요.^^

    이잘코군 2007-07-04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 대부분의 언론이 외면한 거 어제 피디수첩이 제대로 메꿔줬습니다. 본 사람이 많아야 할텐데...

    stella.K 2007-07-05 11:24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그다지 많은 것 같지는 않아 보여요. 하지만 저와 승주나무 글구 아프님까지 이렇게 알렸으니까 재방송 볼 사람들이 좀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ㅎㅎ

    2007-07-06 0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7-06 10:51   좋아요 0 | URL
    ㅎㅎ 정말요? 몰랐어요. 계속 수고하기를...^^
     

  • 검색어로 읽는 오늘의 문학 4.가족의 탄생
  • 전통적 가정의 와해…
    ‘이혼부부’ 같은 새 개념의 가족 탄생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 ‘내겐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여기에 없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계속 뛰고 계신다.’

      한국 소설의 ‘무서운 아이’로 불리는 신예 작가 김애란(27)의 단편 ‘달려라, 아비’는 얼굴모르는 아버지를 상상하는 딸의 이야기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새로움은 부성(父性)에 대한 그리움도 원망도 없는 쿨한 젊은 세대의 감각이다. 좌익 활동을 한 부친을 둔 아들의 시각에서 쓴 소설(김원일 이문열…등)이 한때 성행해 ‘아비는 남로당이었다’(평론가 김윤식)는 명제가 통용된 적이 있다. 그러나 ‘달려라, 아비’의 아비는 그런 거대 서사의 주인공이 아니다. ‘지난 시기의 소설에서라면 부재하는 아버지의 자리를 메우기 위한 실존의 드라마가 펼쳐졌을 대목에서 김애란은 그 부재를 상상으로 가볍게 대처한다’(평론가 손정수)는 것이다.






    •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에 아무런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 젊은 세대의 감각은 2000년대 한국사회에서 아버지의 권위와 기능 변화를 반영한다. 올해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가족의 탄생’에도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남동생보다 스무 살 많은 올케가 어느 날 나타나 한 지붕 아래 사는 노처녀, 엄마가 둘인 기묘한 환경에 놓인 딸 등이 모여 한 가족을 이루는 ‘가족의 탄생’처럼 요즘 한국 소설에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성행하고 있다.

      젊은 작가 윤성희(34)의 단편 ‘저 너머’도 전통 가족의 해체를 보여준다. 부모는 어느날 가출했고, 혼자 남은 딸은 낯선 할머니 두 명과 전국을 누빈다. ‘그러니까, 이모라고 부를까요?’라고 딸이 물어보자 할머니들은 ‘안돼! 언니라고 불러’라고 한다. 남성이 없더라도 여성들끼리 얼마든지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이 이처럼 손쉬운 것이다.

      평론가 강유정은 최근 소설의 새로운 가족 찾기에 대해 “개인이 더 중요해진 후기 자본주의사회에서 정상 가족은 과거처럼 강박적인 것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호주제를 비롯한 상속제는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는 동성 부부 및 여성 호주, 여성 상속, 법적 양육권 문제 등으로 전통 가족 개념의 와해가 좀 더 가속화될 듯 합니다.”

      새로운 가족 소설들은 아버지가 있더라도 희화적인 존재로 다룬다. 박현욱(40)의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한다는 탈(脫)전통적 가족형태를 경쾌하고 해학적으로 그린다. ‘천년 전 서라벌땅에는 남편이 셋이나 되는 여자가 있었으니, 선덕여왕이 그랬다. (…)신라가 싫다, 경주가 싫다. 옛날 여왕도 싫다. 처용만은 좀 불쌍하다.’

      2000년대 작가들의 새로운 가족 형태는 남성의 권위 상실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드물지만 ‘이혼 부부’라는 커플도 등장한다. 정이현(35)의 2004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단편 ‘타인의 고독’은 짧은 결혼생활을 마친 젊은 남녀의 이혼 이후 이야기다. 저출산 시대의 부부답게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지만 양육권 문제가 남았다. 애완견을 누가 키우느냐는 것이다. 결국 개를 키우기로 한 남자가 묻는다. ‘근데 얘 말야. 왜 안 짖는 거지?’ ‘몰랐어? 성대수술 시켰잖아.’ ‘나는 짖지 못하는 개와 단둘이 남겨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혼자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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