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어로 읽는 오늘의 문학 4.가족의 탄생
  • 전통적 가정의 와해…
    ‘이혼부부’ 같은 새 개념의 가족 탄생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 ‘내겐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여기에 없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계속 뛰고 계신다.’

      한국 소설의 ‘무서운 아이’로 불리는 신예 작가 김애란(27)의 단편 ‘달려라, 아비’는 얼굴모르는 아버지를 상상하는 딸의 이야기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새로움은 부성(父性)에 대한 그리움도 원망도 없는 쿨한 젊은 세대의 감각이다. 좌익 활동을 한 부친을 둔 아들의 시각에서 쓴 소설(김원일 이문열…등)이 한때 성행해 ‘아비는 남로당이었다’(평론가 김윤식)는 명제가 통용된 적이 있다. 그러나 ‘달려라, 아비’의 아비는 그런 거대 서사의 주인공이 아니다. ‘지난 시기의 소설에서라면 부재하는 아버지의 자리를 메우기 위한 실존의 드라마가 펼쳐졌을 대목에서 김애란은 그 부재를 상상으로 가볍게 대처한다’(평론가 손정수)는 것이다.






    •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에 아무런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 젊은 세대의 감각은 2000년대 한국사회에서 아버지의 권위와 기능 변화를 반영한다. 올해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가족의 탄생’에도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남동생보다 스무 살 많은 올케가 어느 날 나타나 한 지붕 아래 사는 노처녀, 엄마가 둘인 기묘한 환경에 놓인 딸 등이 모여 한 가족을 이루는 ‘가족의 탄생’처럼 요즘 한국 소설에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성행하고 있다.

      젊은 작가 윤성희(34)의 단편 ‘저 너머’도 전통 가족의 해체를 보여준다. 부모는 어느날 가출했고, 혼자 남은 딸은 낯선 할머니 두 명과 전국을 누빈다. ‘그러니까, 이모라고 부를까요?’라고 딸이 물어보자 할머니들은 ‘안돼! 언니라고 불러’라고 한다. 남성이 없더라도 여성들끼리 얼마든지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이 이처럼 손쉬운 것이다.

      평론가 강유정은 최근 소설의 새로운 가족 찾기에 대해 “개인이 더 중요해진 후기 자본주의사회에서 정상 가족은 과거처럼 강박적인 것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호주제를 비롯한 상속제는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는 동성 부부 및 여성 호주, 여성 상속, 법적 양육권 문제 등으로 전통 가족 개념의 와해가 좀 더 가속화될 듯 합니다.”

      새로운 가족 소설들은 아버지가 있더라도 희화적인 존재로 다룬다. 박현욱(40)의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한다는 탈(脫)전통적 가족형태를 경쾌하고 해학적으로 그린다. ‘천년 전 서라벌땅에는 남편이 셋이나 되는 여자가 있었으니, 선덕여왕이 그랬다. (…)신라가 싫다, 경주가 싫다. 옛날 여왕도 싫다. 처용만은 좀 불쌍하다.’

      2000년대 작가들의 새로운 가족 형태는 남성의 권위 상실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드물지만 ‘이혼 부부’라는 커플도 등장한다. 정이현(35)의 2004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단편 ‘타인의 고독’은 짧은 결혼생활을 마친 젊은 남녀의 이혼 이후 이야기다. 저출산 시대의 부부답게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지만 양육권 문제가 남았다. 애완견을 누가 키우느냐는 것이다. 결국 개를 키우기로 한 남자가 묻는다. ‘근데 얘 말야. 왜 안 짖는 거지?’ ‘몰랐어? 성대수술 시켰잖아.’ ‘나는 짖지 못하는 개와 단둘이 남겨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혼자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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