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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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연인>이 생각나는 코믹 전혹극이다.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란 프랑스 코미디 영화를 리메이크 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현재 원작은 못 봤다. 그런데 이 영화 보니 뭐 원작까지 챙겨 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난 코믹 잔혹극은 별로 안 좋아하니까. 

그래도 이 영화 킬링타임용으로는 꽤 볼만하다. 초반에 예지원이 우왕좌왕하는 게 몰입하는 데는 좀 시간이 걸리지만 보면볼수록 끌어 당기는 맛이 있다.  

무엇보다 미장센이 좋고 소품의 활용도를 높인 것이 마음에 든다. 

마침 배경도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했다. 요즘 같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심심한 사람들이 보면 나름 위로가 되지 않을까? 물론 꼭 그런 사람이 봐야한다는 건 아니고...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남자나 여자나 잘 생기거나, 어느 분야에서 대박을 내 그 능력을 입증하거나 하면 왜들 그렇게 일단 침을 흘리고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을 보는 시야가 너무 좁지 않는가? 쩝. 

 아무튼 예지원과 그녀의 매니저로 나온 임원희 억세게 운 좋은 사람으로 나온다.  

예전에 나의 은사님께서 영화는 과학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타이밍이 절묘하다. 물론 그 모든 게 설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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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선덕여왕>을 모르는 간첩이 있을까?  

아마 모르긴 해도 예전에 모 작가가 쓴 드라마가 하는 시간이면 수도사용량이 줄었다고 하는데 이 드라마도 그 효과를 누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긴 옛날엔 그 시간이 아니면 꼭 재방송할 때나 볼 수 있었던 공중파 시대였지만 지금은 아무 시간대다 볼 수 있으니 수도 사용량 어쩌고 우논하는 게 의미가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미실이 죽고나면 이것을 보는 재미도 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이 드라마는 뭐니 뭐니해도 프로타고라스인 선덕여왕과 안티고라스의 미실의 구도가 가장 볼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미실이 죽고나니 그의 아들인 비담과 선덕여왕의 이중구도가 볼만하다. 매번 볼 때마다 정말 잘 만들었다. 감탄한다. 

특히 옴므바탈이라 할 수 있는 비담을 보면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정말 옴므바탈은 저런 인물이겠구나 싶다. 여자를 지켜주고 싶어하면서도, 모성애 대한 그리움, 남자로서의 야망 등을 참 잘도 버무려 놓았다. 그러니 천하의 선덕여왕도 이 인물에 안 흔들릴 제간이 없을 것이다.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사실 역사 드라마를 만들 때마다 정사와 다른 것을 문제 삼곤하는데 그거야 언제나 있어 온 것이고 그 때문에 정사를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면 그도 윈윈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정사와는 많이 다르다는 그리고 이미 드라마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굳이 소설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이 책 만큼은 소장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것은 캐릭터가 너무 좋아서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신라만큼 화려하고 탐스러운 시대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정사가 보족하다면 이 드라마를 쓸 때 참고 했다던, 

 

 

 

 

 

 

 

 

등을 참조해서 보면 될 것도 같다.  

그나저나 선덕여왕 종영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그거 끝나고나면 뭘 보나?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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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는다고 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웬지 작가들이 자신만의 글쓰기 노하우를 밝힌 책들을 보면 일단 관심이 간다. 

오늘 하이드님 서재에 들어갔다 <헤밍웨이 글쓰기>를 발견했다. 

와우! 이 사람처럼 글쓰기와 타자기가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급관심이다. 

 

 

 

 

  

 

읽고 싶은 책은 하나 더 있다. 조정래 씨의 <황홀한 글감옥>. 

과연 조정래 씨는 글을 어떻게 쓰며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래도 내가 지금 가장 읽고 싶은 책은 이 책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 책은 읽은지가 너무 오래됐다. 

  

 

 

 

 

  

 

 

 

 이 책 역시 무지 오래전에 읽었다.

 

 

 

 

 

 

등을 읽었는데 글쓰기에 관한 책이 다 그렇고 그렇지 이런 거 사서 읽는다고 글을 더 잘 쓰는 줄 아냐고 할지 모르지만, 작가들 마다 천기를 누설(?)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 달라 이런 것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 나는 왜 이런 책에 관심이 많은 걸까? 


아는 사람이 이미지로 올려놨길래 데리고 왔다. 

지금은 노트북이 작가적 이미지를 고양시켜주겠지만 역시 옛날 타자기만한게 있을까 싶다.  

구경만하고 나는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나의 로망이었던 타자기. 요즘도 저 골동품을 쓰는 사람은 없겠지? 옛날엔 어느 기업체 비서들이나 쓰는 물건이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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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2-0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이 참 이쁘네요. 색깔도 강렬하고요. 우리 집에도 오래된 타자기가 있는데 나중에 장식용으로 쓰려고 버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장식용으로 쓸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네요.^^;;;

stella.K 2009-12-09 13:20   좋아요 0 | URL
앗,이런 안타까울 때가...
그래도 버리지 마세요. 나중에 마노아님 시집 갈 때 가져 가셔서
장식용으로 멋지게 쓰십쇼.
오래 전, 어느 레스토랑에 갔더니 장식용으로 논 걸 봤는데
꽤 멋있었어요. 지금도 그 레스토랑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야클 2009-12-0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자기라면 군대에서 힘들던 행정병시절이 생각나서 난 싫어요. -_-;

stella.K 2009-12-09 13:51   좋아요 0 | URL
앗, 이런! 저의 로망이 어느 분에겐 아픔이었군요.
그러니까 야클님은 군대 때 행정병이셨다 이거죠?
야클님에 대해서 새로운 걸 알았습니다.ㅋㅋ
근데 행정병이면 타자기 쓸 일이 많은가 보죠?
군대를 안가 봤으니 알 수가 있남요.ㅠ
요즘은 타자기 안 쓰죠?

하이드 2009-12-09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이렇게 보니 예쁘네요. 헤밍웨이 책이요. ^^
헤밍웨이 좋아해서 사고 싶긴 한데, 목차와 책소개를 보니, 이벤트성 책인지 살만한 책인지 감이 안 잡혀서, 실물 봐야할 것 같긴 하더라구요.

저도 글쓰기 책, 글 읽기 책 다 좋아해요~

위에 <작가의 신념>이나 제임스 미치너 책, 그리고 '뼛속까지 써라'던가도 글쓰기책으로 추천. 소설은 아니지만 로버트 맥기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도 나름 고전이지요.

stella.K 2009-12-09 14:50   좋아요 0 | URL
아, 하이드님 말 들어보니 정말 조심스러워지긴 하네요.
언제고 서점 나가시는 일 있으시면 요것조것 따져보시고 저한테도 좀 알려줘요.
말씀하신 <시나리오 어떻게...>는 저도 작년에 시나리오 공부할 때 추천 받은 책이어요.
그 밖에 알려주신 책도 기회되는대로 사서 보도록 하겠슴다. 고마워요.^^

hnine 2009-12-1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본인이 그야말로 파란만장,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고, 어디서 읽었는데 지금 제가 어디서 읽었는지를 기억해보려고 계속 애쓰고 있는데 생각 안나고 있네요 흑흑...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면 피아노 잘 치는 법에 대한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피아노를 한번이라도 더 쳐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방법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은 실력 자체를 높여주진 않지만 연습에 대한 동기 부여를 높여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저 위의 헤밍웨이의 책은 따끈따끈 신간이군요~

stella.K 2009-12-09 14:52   좋아요 0 | URL
오, 에이치나인님, 님의 댓글은 마치 저를 격려하는 글 같아
고마움이 느껴지네요.^^

L.SHIN 2009-12-10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타자기 좋아합니다.^^
치는 감촉도 좋고 탁탁탁 소리가 나며 글자들이 지면에 찍어 대는 것도 좋고.
어릴 때 이후로 못 만져봤지만.-_- (나중에 소장하려구요)
하지만 열심히 썼는데, 한 글자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것은 곤혹스럽지만..

stella.K 2009-12-11 11:3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열심히 쳤는데...그래도 아날로그 시대를 대표하는
몇 안되는 물건이잖아요.^^

2009-12-11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1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르헨 2009-12-1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누군가에게 받은 타자기가 있었는데....오래전에 이사하면서 버렸죠.
아쉬워요...ㅡㅡ
글쓰기 관련 책...저도 몇개 있어요. 하핫...
헤밍웨이 것은 없는데...궁금하네요.^^

stella.K 2009-12-11 14:26   좋아요 0 | URL
저도 이사할 때 버린 물건들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게 많이 있더라구요.
가져가자니 그렇고 두자니 그렇고.
애물단지 참 많아요.ㅜ
 
투야의 결혼 - Tuya's 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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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조금 보다가 말려고 했다. 조금은 낯선 영화라서 말이다. 그것은 내가 평소 몽골 영화(정확히 말하면 제작은 중국이 했고 스토리의 배경이 몽골이다)를 흔하게 접해 본 것도 아니고, 내용 역시 마치 우리나라의 6,70년대 어느 촌부의 이야기를 다룬 것 같아 나에겐 시쳇말로 먹어주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4,50년 전에 만들어져 명작의 반열에 선 영화들이 있다. 이를테면 <오발탄>이나 <마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뭐 대충 이런 영화들인데 명작은 명작인데 그거 오늘 다시 보라고 그러면 못 보지 않는가? 그런데 하물며 몽골을?! 

그런데 이 영화 그렇게 만만하게 무시해도 되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래뵈도 2007년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에 빛나는 영화다.  

영화는, 우물을 파다 하반신을 못 쓰게된 남편 바터를 대신해서 억척스럽게 사는 투야도 투야지만 몽골의 결혼과 이혼 풍속이 사뭇 우리내 그것과 많이 달랐다. 우리는 이혼을 하면 서로 남남이 되고 서로에 대한 책임이 없지만(물론 몽골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미워서 이혼한 것이 아니면 여자가 재혼할 때 전 남편을 데리고 재혼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럴 경우 새로운 남편이 그만큼의 경제적 능력과 포용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아무리 상대가 마음에 있어도 그 결혼은 성립되기 어렵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결혼의 주도권이 남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가 살다가 싫어서 이혼을 하자고 하면, 속으로는 고민하고 실의에 빠져도 여자를 대놓고 원망이나 질투 할 수가 없고 하자는 대로 해 줘야 한다. 그것은 아마도 몽골이 일처다부제의 사회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것도 현대로 넘어오면서 많이 희석됐을 것이다. 그래도 결혼에 있어서 만큼은 아직도 여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확실히 현대의 결혼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의 결혼은 겉으로는 남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 같아도 여성의 파워가 세지면서 줄다리기가 심해졌고, 그만큼 여러 가지 갖춰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이를테면 학력은 물론이고, 재력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미모도 갖춰야하며, 좋은 유전자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얼마나 외적이고 재미없는 게임의 출발 선상인가? 결혼 시장을 나가 보라. 사람이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고 상품 가치로 전락이 되고 있지 않은가?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의 결혼은 이렇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들며 몽골은 그야말로 결혼에 있어서만큼은 별천지란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네 같으면 다친 남편을 평생토록 봉양해야 한다면 자식 버리고 도망가서 산다고 해도 이젠 욕도 안한다. 그런데 남편과 이혼하면서까지 남편을 지키려고 한다는 이 모순된 상황을 영화는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몽골은 사람을 보는 가치가 우리네 그것과 참 많이 달라 보인다. 남편도 일하다 다친 몸이지만 투야도 워낙에 일을 많이 해 젊은 나이인데도 몸이 성한 곳이 없다. 나 같으면 결혼할 상대가 건강한 몸이 아니라면 결혼하기가 꺼려질 것 같다. 보통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다음에야 쉽지 않다. 그런데도 투야가 이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기 저기서 청혼이 들어온다.  그런 것으로 보아 그 민족은 참 낙천적인 것 같다.

하지만 누구도 속시원이 이혼한 전 남편을 맡아 주겠다는 사람이 없어 결혼은 성사되지 못한다. 나중에 우여곡절 끝에 썬거란 이웃집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은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전 남편 바터에게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결혼식이 거행되는 중 결혼식은 난장판이 되고, 아들은아빠가 둘이라는 또래 아이에게 놀림을 당해 싸운다. 하지만 투야는 아들의 싸움을 차마 말리지 못한다. 그리고는 아무도 모르게 헛간 같은 곳에서 속수무책 울고만 있다.  

거기서 영화가 끝난다는 것이 내내 아쉬움이 남긴 하다. 행복한 결말이든 불행한 결말이든 그렇게 결말이 있어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열린 결말이다.  그런 것으로 봐 영화는 어쩌면 몽골의 질박하고도 끝나지 않은 여인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재혼은 하지만 전 남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건 그만큼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만히 곱씹어 보면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 밑에는 바터에 대한 지극한 동정심이 있으며 그것은 또 어찌보면 모성애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만든다. 사실 오히려 이성적인 사랑이 가능한 쪽은 썬거다. 하지만 이쯤되면 여자의 모성애가 여자로써 누릴 수 있는 이성적 사랑을 뛰어 넘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여기까지 이해가 가능하다고 해서 무조건 모성애 만세!를 외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알다시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란 소설 속에서 모성애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물론 모성애란 사회를 이루고 그것의 강성함을 가능케 하는데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성애를 쏟아 부어야 하는 어머니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뼈골까지 파 먹도록 내어줘야 하는 아픈 여성의 힘이다. 그것을 알기에 모성애를 무작정 찬양하기에도 우린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이건 또 숙명이 아니던가? 어머니가 죽어야 내가 살고 나라가 사는 원리.  

우리가 알지만 몽골은 우리나라 보다 낙후된 나라다. 그러나 그 나라를 쉽게 넘볼 수 없는 건 그 나라가 칭기스칸의 후예고, 기마 민족이며, 땅 덩어리가 넓어서가 아니라는 걸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우리가 그 나라를 쉽게 넘 볼 수 없는 건 그 나라는 아직 모성이 살아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모성은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나라는 모성이 많이 죽어져 버렸다. 영화를 보면 몽골이 우리나라와 같은 어족이고 비슷한 용모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서구화 되고 여성의 인력을 자본주의의 생산력으로 전환시키면서 상대적으로 모성을 하락시켰다. 몽골도 산업화 하면서 많은 개발도상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모성이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타민족의 어떤 여자의 결혼을 무작정 얘기하려 든다기 보다 그 이면에 숨은 모성애를 드러내주기 위함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화가 열린 결말이긴 하지만, 투야 헛간 같은 곳에서 울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나머지의 삶이 그리 좋지마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도 하다. 

사실 결혼이란 게 행복을 위한 것이 전제가 되긴 하지만 그 행복은 처음부터 크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소소한 행복은 있겠지. 하지만 여전히 삶은 모험이고, 고난이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투야의 앞으로의 삶도 녹녹치는 않겠지만 추운 겨울 날 모닥불을 쬐는 마음으로 순간 순간 다가서는 소소한 행복이나마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몽골의 결혼제도도 흥미롭지만 엔딩 부분에서 그 나라의 결혼식 장면도 이색적인게 볼만 하다.

나 개인적으로 베를린 영화제가 이 영화에 상을 준 것은 영화 자체가 좋아서라기 보단 몽골의 결혼과 이혼 풍습을 보면서 문화인류학적 가치까지도 포함하고 있어서는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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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2-08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다 보니 영화에도 관심이 가요. 한 동안 몽골 소리만 들리면 눈이 반짝였는데 그때 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했어요.^^

stella.K 2009-12-09 10:34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마노아님 몽골에 관심 많으시죠?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꼭 한번 보세요. 몽골 대평원도 볼거리랍니다.^^
 
티벳에서의 7년 - Seven Years in Ti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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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이제야 보다니... 

하긴 별로 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보려고 하니 봐줄만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확실히 서양인이 본 티벳. 서양인이 만든 티벳에 관한 영화는 뭔가 모르게 한계가 있어 보인다.  

영화내내 백인우월주의가 곳곳에서 감지가 되던데 나만 괜히 예민하게 보는 걸까? 

티벳 사람들이라고 해서 나온 사람들 그들이 영어 쓰는 것도 왠지 진짜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백인들은 어떻게든 자기식으로 동양을 보고 교화시키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오래 전 율 브린너가 주연했던 <왕과 나>로부터 줄창 이어져 온 것이라 감히 건드릴 수도 없어 보인다.  

그래도 뭐 이런 식으로 나마 티벳을 전 세계에 알리고 그곳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에 이 영화의 의의를 삼아야겠지. 

소년 달라이 라마의 조용하고도 거침없는 말솜씨가 인상적이다. 브래드 피트도 고생 꽤나 했을 것 같고. 

그래도 감독이 나와는 좀 안 맞아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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