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청년 비이님과 100일 동안 글을 쓰자고 해 놓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동안 나는 한번도 빠진 적이 없지만, 비이님은 한번 빠진 적이 있어 나는 덕분에 책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내가 고른 책이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선택했이었다. 막상 읽어보니 내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선물한 비이님께 좀 민망해 하는 중이다. 물론 그는 아직까지 이렇다 말이없지만.  이왕 고른 책이 감명 깊었더라면 선물한 상대도 뿌듯하지 않았을까?  

그 빠지던 날 왜 빠졌는지 나는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내 짐작엔 비이님은 글을 쓸 수도 있었는데 그냥 겸사겸사해서 빠지고, 나에게 책선물 하기로 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난 벌칙으로 책을 선물 받게 됐다고 마냥 좋아하지는 않았다. 비이님이야 어떤 사정에 의해서 빠지셨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무 마음이 차칸 것 같다. 큭! 받고도 미안해 했으니. 읽고는 더 미안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사람이 이신전심이라고 내 마음이 그런데 하루쯤 빠져서 벌칙으로 비이님한테 책선물한다고 좋아라 할 것 같지 않으니, 빠지지 말고 쓰자.   

그런데 사실은 이 마음도 갖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약한 마음을 갖는데 밀미를 갖게 되니 말이다. 비이님과 좀 더 친해진 다음에 하면 좋을 걸 그랬단 생각이 든다. 왜 친구끼리 딱밤 먹이기 게임을 할 때도 친한 친구일수록 더 독하게 하는 법이 아닌가? 더구나 비이님이나 나나 너무 성실하다. 게임이 안 된다.ㅜ 

하지만 솔직히, 매일 쓴다는 거 쉽지 않다는 거 요즘들어 절감한다(아,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나는 발을 뺄 목적으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니). 나만이 알아보는 비밀 일기를 쓴다면, 하루쯤 빠져도 상관없고, 괴발세발 맞춤법, 어미가 틀려도 상관없겠지만,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건 확실히 신경이 쓰이는 글쓰기다. 

나는 지금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는 중이다. 이쯤되니 지친다. 100일? 까짓 것. 그랬는데 지금이 반환점쯤 되는 지점이니 지칠만도 하다. 왜 하지? 안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있다.  못하겠다고 기권하고, 그 시간에 책 한 장이라도 더 읽고, 습작 한 자라도 더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오늘은 이걸 썼다. 내일은 뭘 쓰지? 오늘의 페이퍼를 올리기 위해 나는 또 더 열심히 여기 저기 인터넷을 뒤지고 다닌다. 그런다고 뭘 얻으려는 것도, 무슨 영감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러면서 써야할 글을 머리속에서 굴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고민할 것도 없이 쓰는 날도 있다. 이를테면 리뷰 같은 건 재 보지 말고 재깍재깍 써야한다. 그게 없으면 허접한 글이라고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추천이 없거나, 댓글이 없는 날엔 망연자실이 되기도 한다. 그래. 난 역시 글을 못 써. 나 같은 애는 죽어야 해. 꼭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아니지만, 이 비스무레한 자책감도 만만찮다(이건 정말 병이다. 직업병 같은 거. 블로그병). 

내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땐, 물론 비이님이 그런 제안을 한 적도 있지만, 이건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할 즈음엔 모 잡지에서 파올로 코엘로의 글쓰기에 관한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글을 쓸 때면 수시로 자기 블로그에 짤막한 글이라도 올리며 전세계 블로거들과 대화를 한다고 했다. 가끔은 인터넷에 글을 너무 부지런히 올려도 별로 좋은 이미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편견이겠지만. 그런데 그 할배도 그렇게 하는데, 까짓 것 나라고 못할까 싶어 한 것이다.  

어떤 사람 보기엔 미련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중간에 결론을 내린다는 건 말이 안된다. 결론은 늘 마지막에 내리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이 100일을 채워 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다. 단지 오늘은 정말 글쓰기 싫은 날이다. 솜이 물이 젖은 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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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3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3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3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7-13 19:3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면서 또 쓰는 거죠.
저도 손글씨 쓸 때도 있는데 결국 컴으로 돌아오곤 하더라구요.ㅠ

자하(紫霞) 2011-07-14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멈출 생각을 안 하네요~
모두 볼 수 있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무엇인가를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남는 것이 있을거라 생각해요~ㅋ
비가 오면 기분이 축 쳐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으니...
저는 빠삭 말린 빨래에서 햇빛 냄새를 맡고 싶어요.흐~

stella.K 2011-07-14 12:20   좋아요 0 | URL
말린 빨래에서 햇볕 냄새라!
와, 정말 절묘한 표현이네요.
저도 그리운 냄새예요.ㅜㅜ

cyrus 2011-07-14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처음으로 예비군 훈련을 해봤는데,,
어제 날씨는 최악이었어요, 비가 오면 끝까지 시원하게 내리면 좋은데
비가 오다가 그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 날씨였어요,
그리고 날씨도 습해서 덥더라구요. 훈련 때 머 한 것도 없는데
오늘따라 피곤하네요. 초복에 닭 한마리 잡으면 참 좋을텐데,,
점심 때 삼계탕 먹으려고했는데 가격이 좀 세길래 입맛만 다시고 왔어요.
역시 금계탕이라고 불릴만해요 ^^;;

stella.K 2011-07-15 11:2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랬군요. 첫 훈련치곤 그 시작이 만만치 않았네요.
저도 집이 예비군 훈련장 가까운 곳에 있어
가끔 마을버스 타면 예비군들과 마주치곤 하죠.
그들의 후끈한 마초 냄새란...!ㅋㅋ

어제는 대목이라 삼계탕이 좀 비쌌을 거예요.
오늘부터 좀 싸지지 않았을까요?
대목이라고 비싸게 받는 거 맘에 안 드는데.
대목이 아니어도 그다지 싼 것 같지는 않네요.
그냥 집에서 해 먹는 게 그나마 싸면서도 오붓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시루스님 서재에 "어머니와 삼계탕" 뭐 그런 글 좀 볼 수 있으려나요?ㅋㅋ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섞연치 않음이 남아 있다.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지그시 관찰해 본다.   이 책은 명백히 사람을 기만하는 게 있다.  

작가가 조로에 관해서 나름 자료조사를 한 것 같긴하다. 충분히 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캐릭터를 부여할만큼은 했다고 치자.하지만 작가는 자료조사만 했을 뿐 결정적인 것을 간과했다. 그것은 그사람의 내면에 관해선 채 건드리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슬픔의 아름다움',  '슬픔의 기쁨' 문장의 뛰어남 뭐 이런 것으로 적당히 이 문학의 성과를 포장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책 중간쯤 보면, 한아름이 도네이션 TV 프로그램에 나가려고 한다. 사전 조사차 PD와 작가가 한아름의 집을 방문한다. 여러 가지 사전 인터뷰를 하다 잠시 쉬는 시간 때, 작가와 PD가 나누는 대화를 한아름이 우연히 엿듣게 된다. 그 둘이 나누는 대화는, 한아름이 저 아이에게도 과연 성욕이 있느냐 하는 것이였다. 작가(작품속의 작가나 원작자나)는 단지 이것에 대해 물음만 할 뿐 긍정도 반박도 못하고 그냥 눙치고 지나간다.  나는 여기서부터 작품의 심각한 결함을 보이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 부분은 눙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긍정이든 부정이든 뭔가의 반응을 했어야 했다고 본다. 아닌 것 같으면 시작부터도 하지 말고.  

사실 조로는 불치병 이전에 장애이기도 하다. 그 말을 자의로 들었건, 우연히 들었건 이건 심히 인격을 저해하는 말이다. 사람이 몸이 장애라고 그 사람의 인격도 장애일 수는 없지 않은가? 몸은 그래도 17세 소년은 이렇게 살아 있다. 거기에 대한 저항이 없다. 그리고 이 부분은 작가도 독자도 별스럽지 않은 양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잔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이란 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 질병에 관해 예를 들면, 암이나 에이즈 같은 질병을 통해 낙인을 찍으며,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그들의 집단적 상상력을 부추겨왔다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를 폭로함으로써 질병은 질병일 뿐이며, 질병은 치료해야 할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다. 여기에 추가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장애자다. 우리는 장애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너무 몰이해적이다. 김애란의 작품이 그만한 결말을 내고 있는 것엔 장애자에 대한 기존에 막연히 느끼고 있는 편견(그것이 나쁜 것이건, 좋은 것이건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가 그걸 의식했을까? 못하고 썼을까? 어쨌든 그것은 편견은 편견인데, '순백의 편견'이다.  

사실, 은유로서의 장애자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문제다. 오래 전 어느 잡지에선가 이것을 지적한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다. 즉 사람들은 막연히 장애자는 '순백의 영혼'을 지녔을 거라는 것이다. 가끔 방송국 같은데서 연예인이나 MC가 장애시설 가서 그들과 함께 놀아 주고, 밥도 같이 먹는 프로를 보여주곤  하는데, 그들은 너무 고상한 척을 한다는 것이다. 마치 몸은 장애가 있어도, 그들의 해맑음, 구김없음, 등을 말하며 천사니, 순백의 영혼이란 말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그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그렇다면 반대로 순백의 영혼대신 더럽고, 추악한 영혼을 지녔다는 말이라도 하란 말인가? 아니다. 그들도 비장애인과 같다는 말이다. 그들이 몸이 불편한데 어떻게 해맑을 수만 있는가?  단 1초라도 그들의 몸이 되어본다면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부모, 형제를 떠나거나 버림 받아 시설에서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데, 그속에서 마냥 행복만 하다면 그걸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원래부터 그런 운명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도 똑같이 질투하며, 욕심을 부릴 수 있고, 그리움을 알며, 단 1분만이라도 온전한 몸이 되어서 자신이 가려운데를 손으로 박박 긁어보고 싶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그들을 단순히 천사로 떠받들고, 순백의 영혼으로만 본다는 것은 백치로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도 수잔 손택이 말한 은유의 함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몇 년 전, MBC 스페셜에서 장애자의 성에 대해 다룬 것을 기억한다. 장애자 몇명이 나와서 첫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중 어떤 사람은 실제로 누드 모델이기도 했다. 그들이 이렇게 TV에 나와 이야기를 하는 건 당연 사회와 비장애인 몰이해에 항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애인이 인권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왔구나, 나름 신선했고 보기는 좋았는데, 그 뒷맛은 씁쓸했다. 장애자와 비장애자의 이해가 원래부터 이루어졌다면 저렇게 TV에 나와서까지 저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뭐든지 인식을 바꾸려면 선구자, 희생양이 필요하듯 저들은 그것을 자처했구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이해 못하는 건, 그 프로에 여자들만 나왔지 남자들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튼, 이 은유로서의 장애인의 문제는 문학이나 영화를 포함한 드라마에서 좀 더 심각하게 다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도 급수가 있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잘 다루지 않거나, 장애를 가진 등장인물이 나온다고 해도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들조차 심각하게 다루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럴 것 같으면 아예 빼버리던가. 문학적 완성을 위해 슬쩍 차용하는 정도라면 그 정도의 진실성을 알아보는 건 누구보다도 작품을 볼 줄 독자일 것이다. 내가 김애란의 작품에 섞연치 않은 분노를 풀어버리지 못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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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3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람을 흔드는 손 - The Hands that Rocks the Cradl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커티스 핸슨
주연 : 레베카 드 모네이, 아나벨라 시오라

조금 오래된 영화다. 몇년도 작인가 했더니 1992년도 작이다. 

원래 무서운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관계로, 이 영화 역시 끝까지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는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생갔났을 때 봐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런 영화 중엔 의외로 생각했던 것보다 무섭지는 않았다. 이 영화 역시 내겐 그랬다. 

이런 영화의 묘미는 어떤 등장인물이 언제 어떻게 죽거나 카메라 밖으로 나가느냐, 추측하게 만들고, 가슴 조이게 만드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 영화, 재미는 있는데(무서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낮설지가 않다. 언젠가 이와 비슷한 영화를 본 것도 같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 영화 이후 많은 감독이 원전 삼아 스릴러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난 이 영화를 나중에 본 것이고. 그렇다면 이 영화는 내겐 너무 늦게 봐버린 영화다. 

이 영화는, 신뢰해야 할 의사가 환자를 검진한다는 빌미로 성희롱을 하면서 시작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그런 경우가 실제로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오래 전, 나의 후배도 유방을 검사할 일이 있어 의사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야했을 때 느낌을 말한 적이 있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의사라고 생각하니까 그럴수 있지, 맨정신으론 도저히 그러지 못할 거라고 했다.  

뭐 남자도 여의사 앞에 비슷한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여자가 병원에 가지 싫은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남자 의사 앞에서 자신의 맨살을 드러내는 것도 수치라고 느끼는 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후배 말대로 자신은 여자가 아니라 환자니까 그럴 수 있는 거겠지. 그럴 때 의사는 철저하게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의사도 사람이고 보면 여자 환자를 대할 때 갖는 마음이 한결같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영화는 그런 가정을 잘 끌어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일종의 복수극이라고도 볼 수가 있는데, 아무래도 정의를 위한 복수극이라기 보단, 역복수란 생각도 든다. 처음부터 복수를 해야한다면 성희롱을 당한 당사자가 해야하는 거 아닌가? 하긴, 여자가 무슨 죄인가? 누굴 원망하려거든, 남편이나 원망을 해야하는데 남편은 이미 자살해서 없지, 그로인한 충격으로 뱃속의 아이는 사산되고, 설상가상으로 재산도 잃어버린 마당에 자신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그 사람과 그 가족을 응징하는 것 밖엔 없을 것이다. 

사람이 불행해지면 똑똑해지는가 보다.  유모로 가장해 원수의 집에 들어가  적을 고립시키고, 주변 사람을 어떻게 내 사람으로 만들며, 해가 될 사람은 어떻게 제거하는지 보면 감탄할 정도다. 어떻게 그렇게 두 얼굴이 가능할까? 물론 듬성듬성 작위적인 부분도 없지 않지만 크게 흠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 정형을 또 한 번 보여주는 영화는 아닐까 싶다. 레베카 드 모네이의 이중연기도 볼만하고, 말미에서 광기 어린 표정으로 싸우는 몸싸움도 볼만하다. 사실 여자 의 적은 여자라는 말은 다시말하면 내부의 적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엔딩 바로 전, 이들의 대결이 가장 가슴 졸이고 볼만한 시퀸스가 아닌가 하다.  

아무리 무서운 영화 싫어해도 이런 여름 날 스릴러 영화 한 편쯤 봤다고 이름 짓고 싶다면 이 영화를 강추한다. 적당히 긴장시키고, 깔끔한 마무리 하는 영화로 이만한 영화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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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7-11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초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이 영화내용을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참으로 오래된 기억인데,, 제목 보니 생각이 나네요 ^^;;
그 때 선생님의 이야기 실력이 좋았지만 직접 영화로 보면 재미있을거 같아요.

stella.K 2011-07-12 12:51   좋아요 0 | URL
이거 오랫동안 못 보고 있던 영화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샤이닝이나 히치콕의 사이코도 생각이 나요.
재밌어요. 시간 되면 함 보세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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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손철주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는데, 부끄럽게도 난 이제야 그의 글맛을 보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책날개에 저자 소개가 재밌다. '한시와 꽃. 그림과 붓 글씨, 한 잔 술이 있으면 썩 잘 노는 사람'이라 한다. 그래서 그럴까? 이 책을 펼쳐들면 몇 가지 사실에 놀란다. 우선, 한 잔 술이 있으면 잘 논다라고 했는데, 그럼 저자는 꽤 달변일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일단 술김을 빌어 한 가지에 대해 1박2일도 풀어놓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런 달변이라면 글도 온갖 미사여구와 질펀한 문장력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기획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글은 의외로 압축적이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그는 한시에 조예가 깊다는 것이다. 우리 옛 그림 어떤 것이 나와도 그것을 한시와 잘 조화시켜 그럴 듯한 설명을 곁들인다.  그러고 보면 우리 그림을 이해하려면 한시에도 능통해야 하는가 보다. 그래서일까? 그의 어휘력에 또 한 번 놀란다. 이런 숨은 어휘가 있었구나. 그것에 대한 꼼꼼한 각주가 돋보이는 것이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되어 있는데, 1년 사계절을 의미해 그에 따른 우리 옛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사계절이 1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네 인생과도 흡사해 보면 볼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나 역시도 나이들수록 똑같은 느낌으로 한 계절, 한 계절을 보내고 맞이할 수 없음을 절감한다. 

 

꽃몸살이라는 것이 있단다. 이건 또 이 책에서 처음 안 사실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몸살 끝에 꽃이 핀다는 뜻이 숨어 있단다. 봄이 오면 노인이 앓는다하여, 이것을 춘수라고 한단다. 춘수에는 약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노년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나는, 엄마가 몇년 전부터 한 해 걸러 한번씩 이 계절에 꼭 호되게 앓는 것을 지켜볼 수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춘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왜 다른 계절 다 놔두고 봄만되면 그러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그땐 약도 안 받는다. 속이 쓰려 더 이상 못 먹겠다며 생으로 앓고 일어 나시는 것이다. 만물이 생각하는 계절이라는 건 정말 듣기 좋은 말 같다. 그럴 때면 엄마는 늙느라고 그런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난 그저 그 곁에서 이번에도 잘 견뎌내길 마음 속으로 고대할 뿐이다. 아무튼 이것을, 저자는 18세기 화가 정선의 <꽃 아래서 취해>란 그림과 함께 늙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한미디로, 술에 취해 널부러져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것은 짝이 없어 꽃과 더불어 대작을 했다(21p)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인지, 핑곈지 모르겠다.

예전에 나는 여름이 되는 것을 봄이 되는 것보다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차라리 봄이 낫다 싶다. 지내기도 여름보다 한결 좋을 뿐만 아니라, 여름은 더위도 더위지만 어느 정점에서면 곧 가을이 올 것을 생각해야 하고, 한 해의 스러짐을 지켜볼 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봄이 더 좋은 것이다. 그러나 같이 사는 노인네의 춘수를 지켜봐야 한다는 이 복병이 숨어 있는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이들면 들수록 그리움이 많아진다는 것을 아는 나이니, 나는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젊다고 우쭐댈 나이는 이미 지났다. 하지만 엄마가 봄이면 앓고 나는 그 춘수속에 젊을 때의 그리움이 뼈에 사무쳐 있을 지 누가 알겠는가?  

사실 봄엔 꼭 춘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역시 같은 세기의 또 다른 화가 심사정의 <양귀비와 별 나비>를 들어 봄의 황홀함을 말하고 있다. 정말 양귀비꽃에 살포시 내려와 앉을 것만 같은 그림이 사실적이다. 사실 연애를 봄에 비유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 그림이 그것을 연상케도 한다. 하지만 아뿔사! 양귀비의 꽃말은 '덧없는 사랑'이란다. 그러면서 이규보의 시를 한 수 읊는다. 

꽃 심을 때 안 필까 걱정하고
꽃 필 때 질까 또 맘 졸이네
피고 짐이 다 시름겨우니
꽃 심은 즐거움 알 수 없어라  

                                                  - 꽃 심기- 

인간의 사랑이 이런 마음일까? 하지만 인생을 이 시에 비유해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사랑할 땐 사랑을 모른다고 했던 얼추 이상은의 노래도 생각이 난다. 사랑할 땐 사랑만하면 좋겠다. 덧없을 것을 미리부터 걱정하지 말고. 하긴, 문학이 어느 만큼은 허무주의를 내포하고 있느니만큼, 사랑에도 독이 있다고 사랑을 못할까? 

여름  

요즘의 여름은 예전의 여름과 조금 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비단 내가 나이를 먹어서마는 아닐 것이다. 정말 지구 온난화의 값을 톡톡히 한다싶으리만치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요즘의 장마를 들어 차라리 우기라고 표현해도 되리만큼 비가 많이 오고 있다. 옛날의 여름도 이랬을까 싶기도 하다.  

저자가 길어 올린 여름 그림 몇 점은 시원하다기 보단 풍유스럽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신윤복이 그렸다던 <연못가의 여인>은 아무리 사람을 유혹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기녀도 더위 앞에는 체면이고, 고혹적인 자태도 필요없는지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폼이 우습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 역시도 그림 속 기녀를 가리켜 조선판 '쩍벌녀'라고 쓰고 있다. 더위를 이길 미녀도 장사도 없을 듯하다. 또한 17세기 홍진구의 작품 <오이를 진 고슴도치>는 마치 고슴도치가 오이를 서리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것을 등에 지고 제 집으로 돌아가 새끼와 함께 나눠 먹을까?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위할 줄 안다는 말이 여기서도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김홍도의 <포의풍류도>는 선비집의 인테리어를 설명하기 위해 쓰이기도 했는데, 어쩐지 약간의 유머스러움이 베어 있다는 느낌이고, 더우면 무조건 에어컨부터 틀어대 냉방병을 키우는 현대인을 생각하면 반성해야 할 것도 같다. 이 냉방병이란 현대의 듣도 보도 못한 병을 김홍도나 비파를 들고 있는 그림속 저 선비는 뭐라고 꼬집을까? 더우면 차라리 악기를 타는 것으로 잊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 같기도 하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이 쳅터에서의 압권은 김두량(18세기)이 그렸다던 <긁는 개>가 아닐까 싶다. 여름을 견디기 힘든 건 사람만은 아니다. 인간과 가장 가깝게 생활하는 개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여름은 견공들의 수난의 계절이기도 하지 않는가? 올해는 또 몇 마리의 개가 수난을 당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저 그림 정말 잘 그리지 않았는가? 보는 순간 킥킥 웃음도 났다. 이런 사랑스러운 개와 함께 이심전심으로 남은 여름도 잘 견뎠으면 좋겠다. 잡아 잡수실 생각만 하지 말고. 

가을 

가을을 상징하는 사물들은 의외로 많을 것이다. 정조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군주라는 건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가 그린 <들국화> 수묵 한 점은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흔히하는 시쳇말로 이 분이 못하시는 게 뭘까? 다시 한 번 경외감이 든다. 김두량은 '긁는 개'를 그렸지만, 김득신은 <짖는 개>를 그렸는데 풍경화 속의 하나로 그려냈다. 난 그저 개만 보면 좋다.  

  

봄과 가을은 역시 사랑의 계절인가 보다. 봄은 남자가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인가? 가을은 여자가 사랑하고픈 계절이라고 생각했는지, 저자는 위의 그림을 가을에 배치해 놨다. 이 그림은 작자 미상의 <서생과 처녀>다. 이 그림을 보니 베시시 웃음이 나온다. 그림 자체도 그렇지만 나의 지난 날 이루지 못한 사랑이 생각나 마음을 사알짝 들킨 것도 같아서.  저 그림을 보니 서생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처녀의 심경을 드러낸 것 같다. 그렇다면 '처녀와 서생'이라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여자가 어떤 사랑을 퍼부어대도 왠지 남자는 조금도 마음을 줄 것 같지 않다. 이럴 때 여자의 마음은 그야말로 애간장이 탄다. 그것을 저자는, '연기 없는 타는 가슴'이란 제목으로 설명했는데, (아무리 조선사회가 보수적 신분사회라고는 하지만) 왜 여자가 먼저 사랑하면 안 되는 것일까? 저 시대를 돌아가 일방적으로 목매달지만 말고 방법을 써 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진다. 물론 사랑에 대해 뭣도 모르면서.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 개츠비가 왜 위대한가를 새삼 알았다. "사랑에 실패해도 다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즉 이것을 고 장영희 교수는, 언제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낭만적 준비성'이라고 했다.(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64p) 비록 사랑에 실패하더라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그것이 다른 상대가 되어도) 거절 당할까봐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 보다 훨씬 낫다고 말하고 싶다. 그대여, 꼭 사랑을 이루시기를! 

겨울           

겨울은 여름 못지 않게 사나운 계절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의 겨울편을 보면, 겨울은 또 겨울 나름의 상징과 낭만이 있는 거구나,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추워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얼어 죽을 것 같아도, 분명 언 땅속에 생명이 잠을 자고 있고, 눈 내린 잔가지에도 봄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워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저자는 겨울에, 정선이 그림 <솟구치는 물고기>란 그림을 배치했는데,  글쎄, 왜 잉어일까? 진짜 기운이 좋아 수면을 폴짝 뛰어 오를 것만 같다.  이게 또 어찌보면 맞는 배치 일까 싶기도 한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원래 우리 민화를 보면, 용으로 변신하는 잉어그림이 많다고 한다. 그것은 또 높은 벼슬길에 오르기를 바라는 길상도라고 한다.  

물고기 어(漁)에는 나머지 여(餘)와 중국어 발음이 같다고 한다. 물고기는 여유를 상징한다고 한다. 세 마리를 그리면 '삼여(三餘)'를 뜻한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다. 세 가지 여유만 있으면 충분하다. 곧 하루의 나머지인 밤, 일년의 나머지인 겨울, 맑은 날의 나머지인 흐린 날, 이 삼여는 독서하기에 알맞다고 했다.(262p~263p) 이 글을 읽으니 마음이 찔린다. 그렇게 해서 벼슬에 오른 사람도 없지 안겠건만 나는 너무 안일하게 독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겨울은 뭐니 뭐니해도 농한기 때도 방안에서 물래돌리고, 길쌈하고, 책도 읽은 김홍도의 <자리 짜기>같은 부지런함이 베어있는 우리 민족의 부지런함의 풍경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것을 저자는 '다복함이 깃드는 집안'이라고 했다.  

겨울은 아무리 추워도 약속의 계절이다. 명년엔 다 나아지기를 바라고 다짐하고, 복을 비는 계절. 봄에 꼭 꽃을 피워낼 거라고 약속하는 계절. 그래서 우리는 또 겨울을 살아내고, 1년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새삼 우리 그림에 담긴 깊은 뜻과 해학이 보여 즐거웠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리 그림만이 갖는 필치가 친근감을 더한다. 다시 말하지만, 저자 손철주의 해설도 좋고. 추천해도 좋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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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7-1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그림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좋은 책을
못 찾는데다가 아직 동양화에 대해서 모르는게 많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 그림에
대한 글이라면 그 중에 오주석 선생의 글을 좋아했어요. 스텔라님의 글을 읽고나니
이 책 읽고 싶어지네요. ^^
 
<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나가수'를 보다 보니, 간만에 cd를 샀다. 그렇지 않아도 이 프로에 매료되면서 음반이 나오면 꼭 사야지 벼르고 있었던 거다.  CD를 산 건 정말 전에 없던 일이다. 나이가 들으면서 요즘 인기있는 가수가 누군지 관심을 끊은지 오래다. 그런 내가 '나가수'에 목을 빼고, '불후의 명곡2'를 보며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선입견을 깬 건 정말 방송의 위력이란 생각이 새삼 든다. 또 나아가선 일부러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찾아 보기도 하니 참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오랜 기다림 끝에 저 음반을 들었는데 잠깐 소회를 밝혀보자면, 글쎄 막상 받고보니 생각보다 큰 감동은 없었다. 저 씨디는 임재범이 '여러분'을 불렀던 바로 그 음반인데, 2장으로 되어있다. 내가 원했던 건 순수 노래만 수록되어 있는 거였는데, 한 장은 그렇게 되어 있지만, 정작 내가 원했던 1라운드 경연 최종, 즉 임재범이 '여러분'을 불렀던 음반 한장은 방송녹화를 그대로 수록한 것이라 좀 실망했다. 그건 나도 이미 다운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사는 건데 하는 후회가 밀려 들었다. '나가수'는 다른 건 다 좋은데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지난 주 같은 경우엔 정말 짜증 왕대박이었다). 이걸 음반에 그대로 수록했다고 생각해 보아라. 짜증 안나나.    

                                                         

 어쨌든 그러다 보니 자연 우리나라 가요사에 관한 책에도 관심이 간다. 쎄시봉이 최근 다시 조명을 받았다. 그 시대를 이끌었던 사람인 조영남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원래 입담 좋은 양반이란 건 알겠는데, 한동안 TV에 안 나오다가 다시 나오니 왠지 그의 재담도 좀 퇴락했다는 느낌도 들지 않지만, 그래도 쎄시봉 시대를 증언하기론 또 이만한 사람도 없지 싶다.  

쎄시봉이 풍미했던 시절, 난 워낙 어렸기 때문에 왜 쎄시봉인지 잘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지금은 그냥 편한 마음으로 그 시대를 시간여행 해 보고 싶다. 

몇년 전, <작가의 집>이란 책이 나왔었다. 그 책을 아직도 못 읽고 있는데, 이 책은 화가의 집을 조명했다. 그러고 보니 난 화가의 집을 구경해 본적이 없다. 궁금하긴 한데, 이 책의 단점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화가는 눈을 씼고 봐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뭐 이 책은 집을 조명한거니까, 집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로선 눈길이 머물 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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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7-0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나가수 본선 경연 결과 발표할 때 왜이리 뜸들이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쎄시봉,, 좋죠 ^^ 쎄시봉 특집도 챙겨봤는데,, 쎄시봉이
불어로 아주 멋지다라는 뜻이래요, 그리고 조영남, 윤형주 등 통기타 가수들이
모여서 만든 음악감상실 이름으로 남게 되었어요.

stella.K 2011-07-07 11:41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나가수는 다른 건 다 좋은데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많아요.
결과발표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것만 빼면 정말 괜찮은 프론데...
그래서 요즘엔 '불후의 명곡2'가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그렇게 시간 끌고 하지 않거든요.
거기 나오는 애들도 나름 사랑스럽고.ㅋㅋ

쎄시봉을 아시는군요. 시루스님 세대엔 모를 사람도 많을텐데...
하긴, 공연 때 부모와 자식이 함께 와서 감동 받는 거 보면
참 좋아보였어요. 70년대 낭만의 대명사였죠.^^

stella.K 2011-07-07 12:16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그 잔머리가 어디까지 가겠냐구요?
옛날에 개그콘서트, 임혁필이 봉숭아 학당에 나올 때
자기가 귀족 가문 출신이라던 윌리엄 주니어 2세라고 했나?
뭐 그러면서 "천박해!"를 외쳤잖아요.
요즘 저도 그걸 외치고 싶어졌는데,
생각해 보니 제가 요즘 본의 아니게 쇼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있었더라구요. 다음은 말 안해도 알겠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