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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글.사진 / 문예중앙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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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새로운 것은 단지 망각일 뿐, 카메라는 잊기 위해 기억된다." 이 말은 존버거가 한 말이라고 한다. 꽤 그럴 듯한 말이고, 과연 그렇구나 싶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사진을 찍는 것일까?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찍는 것은 아닐까?  

난 사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사진을 감상하는 것은 좋아하는데, 찍히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찍혀나온 나는 왠지 나 같지가 않고 낮설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게 나였어? 놀라고,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그나마 아무리 사진 찍기를 싫어해도 반 강제적으로 찍힌 나의 젊은 날의 사진이 몇장있다. 또 어느 날 그 몇 장 안되는 사진을 보면 왜 그리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걸까? 어느 틈엔가 날아가버린 내 삶의 시간들이 아쉽고, 그리워 뭉클해지는 것 같다. 그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자 나는 그처럼 사진 찍히기를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나의 이런 생각에 반하여, 지나가버리고 흔적도 남지 않을지도 모르는 순간을  사진에 복원시키는 것. 이것이 사진의 운명이고, 사명은 아닐까?  

솔직히 이 책은 좀 어려웠다. 예술에 철학을 접목시켜 미학이란 학문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사진에 철학을 접목시키는 줄은 몰랐다. 책은 사진에 철학을 접목시켜, 인신의 문제, 사유의 문제, 표현(또는 조형)의 문제, 감상의 문제 등을 요목조목 집어냈다. 한마디로 사진의 풍부한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책이다. 이 한 분야를 이해하기 위해 철학은 물론이고, 문학, 심리학, 미학까지 저자는 두루 섭렵한 흔적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이런 심오한 사진 철학을 독자는 미거하여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사진을 학문적으로 전공하는 사람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겐 나름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부분은 '다이안 아버스와 사진의 폭력'(251p~)은 아니었나 싶다. 1970년대 사진계를 풍미했던 다이안 아버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일까? 그녀는 한마디로 사진계의 이단아였고, 그런 그녀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세상을 뒤로하고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의 죽음을 두고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수잔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란 책에서 사진의 윤리에 대해 묻는다.  

그녀는 첫 번째로 '바라본다는 것의 근본 윤리'를 묻는다. 요절한 사진가(다이안 아버스)를 향한 윤리문제다. 그녀가 찍은 사진의 윤리이면서 사진가를 향한 윤리이다.
두 번째로는 '만족할 줄 모르는 카메라의 시선'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진의 시선이기도 하다. 왜 그토록 카메라만 쥐면 이미지 사냥꾼이 되어버리는가? 왜 그토록 먹이를 사냥하는 약탈자가 되는가? ...... (중략) 다이안 아버스의 자기고백처럼 성찰, 반성,자각을 희망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못된 짓이지요."(255p) 

과연 모든 사진은 근원적으로 폭력적인가. 모든 사진은 포획과 탈취의 결과물인가(255p) 

다이안 아버스의 죽음 앞에서 수전 손택이 제기한 마지막 한 가지는 '시각의 영웅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돋보이고 싶어 하는 극단적인 시각적 공명심에 대한 경각이기도 하다.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했다. "사진을 통해서 추한 것을 찾으려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은 사진을 통해서 아름다운 것을 찾아왔다. (...) 카메라가 이 세계를 미화하는 본연의 역할을 매우 성공적으로 완수한 탓에, 이제 세계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사진이 아름다운 것의 기준이 되어버렸다.(256p)

다이안 아버스라면 누군지 알 것도 같다. 언젠가 나도 본적이 있는 피카소가 짖궃게도 식탁위에 크루아상으로 8개의 손가락을 만들고 힐끔 다른 곳을 응시한 사진이 바로 그녀의 작품이란다. 결국 인간은 카메라 앞에 정직할 수 있는가를 수잔 손택은 묻고 있는 것일게다. 

사실 수잔 손택의 말이 꼭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 같지는 않다.작가, 정치가, 영화 감독, 화가 등 이 세상에 자신의 명예와 목숨을 걸고 하는 모든 일에도 적용될 법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 선을 넘게되면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사람은 자신의 일을 조정할 수 있고, 다스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르면 그 일이 사람을 조정한다. 사람이 카메라를 조작하는 것 같지만, 실은 카메라에 의해 사람이 조작을 당한다. 무서운 일이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다이안 아버스는 처음엔 카메라를 사랑했고 자신의 일을 사랑했겠지만, 결국 카메라란 괴물에 자신이 잡아먹힌 건 아닐까? 섬짓하면서도 뭔가 경종을 울리는 말같아 곱씹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무런 생각없이 사진을 찍지 않기 위한 책 같다. 충분한 생각할거리를 제공해 주고 사진을 보라고 주문하는 책 같다. 그리고 여기서도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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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9-18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인문 분야에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요? 사진철학이라,, 내용이 뭔가
어렵게 보여요. 사진에 철학을 접목한다는게 아직 어렵게 느껴지지만
디카로 사진 찍는 건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도 사진을 찍히는 걸 싫어하는 편이에요 ^^;;

stella.K 2011-09-19 11:37   좋아요 0 | URL
나랑 똑같구나.ㅎㅎ
글게 말이야, 인문이랑 예술이랑 워낙에 밀접한 분야라
따로 나누기가 뭐 할텐데 이러네.
전엔 예술분야인 것 같은데 인문으로 간 서평도서가 있었지.
그래도 이 책 사진도 많아서 예술이론쯤은 될 것도 같아.
철학자 붙으면 진짜 머리 아프더라.
이책은 그래도 좀 나.
진중권 책은 많이 난감하다.ㅠ
암튼 그래서 난 예술분야 평가단은 9기로 종 칠려고 해.
막달 선정도서 별로 기대가 안된다.
또 어려운 책이겠지 싶어...ㅠㅠ

페크pek0501 2011-09-19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잔 손택, 저는 그의 저작 <문학은 자유다>에서 '사진에 관한 짧은 요약'이란 글을 읽었어요.

저도 사진 찍기를 싫어해서 카메라를 피해 도망다녀요. 왜 그리 후지게 나오는지...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그러더군요. 제가 사진과 똑같이 생겼다고...ㅋ

이 책, 좀 어려운 것 같네요. 그래서 읽어야 하는 책인가요?

"카메라가 이 세계를 미화하는 본연의 역할을 매우 성공적으로 완수한 탓에, 이제 세계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사진이 아름다운 것의 기준이 되어버렸다.(256p)" - 인상적인 글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일을 조정할 수 있고, 다스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르면 그 일이 사람을 조정한다." - 기억해 두고 싶은 좋은 글입니다. 그래서 추천 꾸욱~ 하고 갑니다.

아, 리뷰를 쉽게 잘 쓰십니다. 저는 요즘 리뷰 쓰기가 어려워서 다른 글만 쓰게 돼요. 저도 앞으론 도전좀 해야겠어요.



stella.K 2011-09-20 13:12   좋아요 0 | URL
헉, 제가 책을 인용한 건 기억이 나는데,
그런 멋진 말도 썼단 말입니까?ㅋㅋㅋ
이 책 넘 어려웠어요.
그냥 읽는데 뜻을 뒀을 뿐입니다.
뭐라도 남겠지 하는 마음만...ㅠ
리뷰는 자꾸 쓰면 늘어요.
지금도 잘 쓰시는데요 뭘.^^

맞아요. 난 내 사진 되게 이상한데 다른 사람은 똑같데요.ㅎㅎ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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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을 위한,김명민에의한,김명민의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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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 War of the Arr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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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김한민
주연 : 박해일, 류승룡(2011,8)

영화에서 박해일은 멋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출현한 영화중에 이 영화만큼 멋있게 나온 영화가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내내 느낀 것은, 역시 사람은 신출귀몰한 뭔가의 재주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야 멋있게 보일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난 개인적으로  이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확실히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좋은 무기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영화에선 역적의 자식이란 오명과 여동생을 지켜줘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을 부여 받았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나름의 아우라가 있다.    

류승룡.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여자들은 말만은 남자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가 아무말도 안하고 폼 잡고 서 있는 것만으로 깜빡 넘어갈 것 같다.  

영화 초반에 자인을 자기 색시로 달라고 땡깡 부리던 서군 역의 김무열이 영화에서 뭘할까? 그냥 귀여운 양념 아닐까 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의 존재감이 부풀어 오른다. 그렇지. 남아일언중천금이랬다고, 자인을 자켜주겠다는 그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이한위를 비롯한 조연들도 멋지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던 이순신 장군의 장렬한 죽음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조연에게로 가면 그 느낌이 짠하다. 내 비록 조연이긴 하지만 칼자루 뽑아 들면 나도 남자다운 비장미가 있는 사람이여! 라고 큰 소리 한 번 내고 죽는다. 그뿐인가? 오랑캐들들 조차 이 영화에선 너무 멋있게 나온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남성적 이미지가 뚝뚝 떨어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몇번씩 같이 본 지인 엄지 손가락을 높이들며 "멋있다!"를 작렬했었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명백히 마초적이다.  그런데 이 마초 영화에 환호하는 쪽은 남성 관객 보단 여성 관객쪽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류승룡이 말이 없어도 멋있다고 했는데, 전체적으로도 배역들의 대사가 그다지 않지 않다. 설혹 대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상황을 위한 대사일뿐, 누구를 울려야 하는 것도 없고, 설득해야 하는 것도 없다.  남자는 역시 말 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다. 한마디로 난 감독이 어떻게 해야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영화가 될 수 있는가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도입 부분도 보라. 피가 낭자한 남자들의 칼싸움도 그렇지만, 소년과 늑대 같은 개의 대결씬도 아직 피기도 전인 소년에게 남성다움을 부여하려는 감독의 의지의 소산처럼 느껴진다. 오직 여성다움을 잠시 느낄 수 있는 건 지인이 커서 시집가는 장면이지만 그것도 오랑캐의 난데없는 침입으로 묻혀지고 만다. 왜 하필 지인의 시집가는 날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오빠의 선물인 꽃신이 벗겨져 나뒹구는 장면이 짠하다. 

더구나 영화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쫓고 쫓는, 그러니까 스피드를 요하는 영화다. 그런 영화는 대사 보단 볼거리가 풍부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동시에 찰나의 미학이다. 순간적으로 빨리 지나가버리는 일상에서의 찰나를 영화에서는 미적 감각을 부여해 영원처럼 간직하려 한다. 그만큼 영상이 탁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묘한 건, 남의 집 오빠들은 하나 같이 잘 났는데 우리 집 아들들(아버지, 오빠, 남동생, 남편을 통칭해서)은 왜 그렇게 코찔찔이들이 많냐는 거다. 원래 남의 집 떡이 커 보이는 건 인지상정이라고 하더라도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해 보인다. 남의 집 오빠들은 여자도 잘 지켜주더만, 우리집 아들들은 왠지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것도 아니면서 여자들 지켜줘야 하는 의무를 타고난 것만 같다.  

남성의 이미지는 주기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어느 때는 마초였다가, 어느 때는 캔디에 나오는 테리우스 같다가, 어느 때는 이웃집 아저씨 같다가 등등. 이번엔 당연히 마초가 대세인듯 싶다. 일부러 여성성을 강조한 남자 배우들은 한동안 한쪽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것과 더불어 또 한번 묘하게도 겹쳐드는 생각은 영화에 절대 나오지 않은 병자호란 때의 임금은 밉상이란 것이다. 그래서 이미 압록강을 건넜다 다시 돌아오면 역적으로 몰린다는 불안감 떨쳐버리지 못한 한 민초에게 어느 오빠가 그러지 않는가, 나라를 버린 임금에게 역적은 가당치 않다고. 그렇다면 나랏님과 우리집 아들들은 같은 족속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전에 읽은 김영하의 <검은꽃>을 읽었을 때도 그렇고, 영화를 보면서도 그렇고, 우리나라는 대대로 내려오는 병이 있는 것 같다. 이름하여 나라를 믿지 못하는 병. 병자호란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몇 안되는 백성인데도 나라에선 나몰라라 했다. 그것이 병자호란 때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대대로 이어왔다. 그래서 민초는 잡초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뿌리가 깊어 지금도 여전하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신뢰받는 정부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라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영화 하나에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자인역의 문채원은 행운의 여배우란 생각이 든다. 공주의 남자에서의 세령이 어디서 온 캐릭턴가 했더니 바로 이 영화에서다.  난 이 배우를 바람의 화원에서 처음 봤다.  그때 나름 괜찮게 봤지만 현대극에서는 딱히 이렇다할 빛을 바라지 않는다. 그나마 사극에서는 나름의 아우라가 있다.  아무래도 사극에서 그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나을성 싶다.

이 영화 보고 우리집 아들들 보면 너무 나이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영화 두 번 봐도 좋을 영화 같다. 대체로 남자들이 집안에서는 코찔찔이어도 나가서는 멋진 오빠하는 사람있거든. 우리집 아들들도 그랬으면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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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9-15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집 오빠들은 하나 같이 잘 났는데 우리 집 아들들(아버지, 오빠, 남동생을 통칭해서)은 왜 그렇게 코찔찔이들이 많냐는 거다...
옆집아저씨가 원빈이길 바라지는 않지만, 안타까운 유전자~ 여기서 저도 무릎을 칩니다! ㅋㅋㅋ

stella.K 2011-09-15 18:21   좋아요 0 | URL
그렇죠? 왜 울집 남자들은 하나 같이 다 그럴까요?
그래도 집에서 잘 못하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 잘하는 경우도
있어요. 우리집 아들들도 그러겠지. 그냥 믿어주자구요.ㅋㅋ

메르헨 2011-09-1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아들들...남의 집 오빠들....아하하하하하
표현 대박입니다.
우리집...큰 아들(?)과 작은 아들 아직은 좀 괜찮은데...
내 눈에 콩깍지...겠죠? 하핫...

stella.K 2011-09-16 12:59   좋아요 0 | URL
이 영화 보셨습니까?
안 보셨다면 말을하지 마세요.
보면 그런 생각납니다.ㅋㅋ

메르헨 2011-09-1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글을 우리 신랑이 못보도록 해야겠군요. ㅋㅋㅋ
비교 당하기 싫어할테죠. ㅋㅋㅋㅋ

stella.K 2011-09-16 14:1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잖아도 이 영화 애인하고 같이 보러 온 남정네들
많이 빈정 상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자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남성미 저렇게 발산할 수 없거든요.
근데 옆에서 오, 죽인다! 감탄 연발하면 그것도...ㅋㅋ
영화 끝나고 어떤 젊은 남녀 엘리베이터 함께 타고 내려왔는데
남자애가 잘 생기긴 했지만 너무 홀쪽해서 속으로,
넌 내 타입 아냐. 했다능.ㅋㅋ

메르헨 2011-09-1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스텔라님, 댓글 보고 진짜 많이 웃었습니다.
막...상상되고...저...이 영화 꼭 봐야겠어요.ㅋ

stella.K 2011-09-17 13:48   좋아요 0 | URL
ㅎㅎ 근데 메르헨님, 오히려 남편님하고 같이 가셔서
멋있다는 말 일부러 많이 해 보세요.
질투와 자극받고 메르헨님께 더 멋지게 보이려고 하시지 않을까요?ㅋ

cyrus 2011-09-16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위에도 이 영화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추석 연휴 때 뉴스에서 봤는데
영화에서 사용된 수많은 화살들이 단순 영화 소품이 아니라 실제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화살 제작 장인이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지금 전통 화살을
제작하는 장인이 4명인가..? 전통의 명맥을 유지하는 분들이 많이 남아 있지도 않더라고요.

stella.K 2011-09-17 14:37   좋아요 0 | URL
와, 정말?
역시 영화는 CG로만 만드는 게 아니군.
영화에서 개, 호랑이, 말등이 죽어 나가던데
걔네들 진짜 죽이는 걸까, 아니면 CG로 하는 걸까 궁금해.
위험한 상견례에서 주인공이 잡채 속 파리도 직접 먹는다는
말을 들어서 말야.
시루스도 안 봤으면 꼭 봐. 진짜 잘 만들었어.^^

자하(紫霞) 2011-09-1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못 봤는데 낼 조조로 봐야겠어요~
이 영화 보고나면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혼자 화살 다 쏜 것 처럼...^^

stella.K 2011-09-17 19:47   좋아요 0 | URL
ㅎㅎ 힘든 건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롤러코스터를 타고 난 기분이라고나 할까?
적당히 달려주고, 적당히 안타깝고.
그냥 괜찮은 영화 보고난 느낌이라 돈이 아깝지 않은 느낌이어요.
아, 지금쯤 영화 다 보셨을라나?히히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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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리안치. 조선시대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 가운데 하나로, 유배를 보내 죄인이 살던 집을 가시엉겅퀴로 둘러치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것을 형벌이라고 한다. 그의 집엔 조그만 개구멍이 있어 그 구멍으로 먹을 것을 넣어준다고 한다. 지금도 교도소에선 가끔 문제를 일으킨 죄수들을 독방에서 지내도록 한다는데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인위적으로 사람과의 접촉을 막는다. 말이 쉽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긴 했다. 지금은 없어진 형벌이긴 하지만, 죄인이 유배되고나면 어떤 삶을 살았던걸까 궁금했다. 특히 조선시대 걸출한 정치가, 세도가들이 당쟁의 소용돌이속에 유배를 떠났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사극을 보면 그렇게도 깔끔하고 준엄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던 사람이 머리를 산발을 하고 백의를 입고 소가 끄는 목창에 갇혀 유배를 떠나는 것을 보면 그의 앞으로의 삶이 어떨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책은 그들의 삶을 그렇게 불행하만 다루지 않고 있다. 비록 그들이 유배되기 이전엔 나름 안락한 삶을 누렸겠지만, 유배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형편없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물론 옹색하긴 했겠지. 하지만 역시 사람은 어디든 적응하기 마련이란 걸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읽은 빅터 프랑클의 <죽음의 소용소>에서를 떠올렸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책은 사람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위대하게 묘파해 낸 책이다. 그리고 이책에 소개된 우리 선조들은 이것을 아주 오래 전에 가볍게 증명해 낸 것은 아닐까 싶었다.  

특히 이 책을 꾸민 두 명의 저자들은 우리 나라 대표적인 섬들을 조명하고 있다. 제주도는 물론이고, 위도와 흑산도, 진도나 백령도 등. 물론 그 섬들은 오늘날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꼽혀 관광자원으로 그 몫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그 옛날은 말그대로 절해고도 였다. 과연 우리나라 한양의 양반님네들 그런 곳에 사람이 살았을까를 한번쯤 생각하고 살았을까? 아마도 공무가 바빠 그렇게 많이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세상은 좁고 또 좁게 보이기 마련이다. 누구도 모함을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유배(혹은 좌천)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사람은 나락으로 떨어진 바로 그곳에서 더 넓은 세상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비근한 예로, 조선중기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진도에 유배되었던 노수신은 귀양을 와서도 침울하게 지내지 않고 계획적으로 일과를 짜서 공부하고 산책도 하며 즐겁게 지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살면서 <귀양지의 네 가지 맛>이라는 시를 썼는데 그 내용은, '맑은 새벽에 머리를 빗는 맛, 늦게 아침을 먹고 천천히 산보하는 맛, 환한 창가에 앉아 햇볕을 쪼이는 맛,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맛'이 귀양지의 네 가지 맛이라며 유배지의 한가로움을 노래하기도 했다(154p)고 한다.  

더구나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우리나라의 천혜의 자연 경관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것은 상처 받았던 심신을 치료하는데 더 없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이것을 유배 당하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비록 책에 언급되어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유배된 죄인의 신분이니 그곳에 사는 사람의 업신여김을 어느만큼은 감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보면 그런 보이지 않은 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없어지지 않았을까?  

물론 유배를 떠난 사람이 하나 같이 성공적으로 유배의 기간을 보내고 복귀해 한층 성숙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유배란 특별한 기간을 보내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선별해 내 책을 꾸몄을 것이다. 교동도에서 유배의 기간을 보냈던 연산이나 광해군의 삶은 불행했다. 예술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이란 역작을 낼 수 있었고, 김만중은 유배기간 중 <사시남정기>,<구운몽>, <서포만필>을 탄생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고통의 기간을 감내하지 않은 인간은 없으며, 그것을 통과하지 않고는 성숙할 수 없다는 건 만고불변의 법칙 같다. 지금 내가 고통중에 있는가? 누군가의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좌천을 당했다고 생각하는가? 작으나마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런 책도 있는데 요즘 소설이나 영화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복수하라고 부추기고 있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더구나 고통을 인내하지 못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이 조금이나마 그런 우리의 삶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매번 승자의 역사만을 전해주고자 하는 우리나라 역사 저술 속에 이 책은 유난히 돋보인다.  중간중간 펼쳐지는 풍경 사진도 좋고, 장을 마칠 때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유배지에 대한 소개와 거기에 얽혀진 역사적 인물에 대한 소개로 정리해 놓은 것도 나름 좋아보인다.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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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1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2 1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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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 이태석 신부 이야기
우광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작년에 이태석 신부의 다큐멘터리 필름 <울지마, 톤즈>가 극장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뒤늦게 KBS 스페셜에 소개된 내용을 찾아 보았다. 어찌보면, 평소 TV를 아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 내가 이런 프로를 못 보고 지나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프로를 보고 난 직후 나는 참 많이 울면서 반성을 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이태석 신부를 내가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두움이 빛을 가리울 수 없듯이 이런 분은 훗날에라도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태석 신부의 평전이 나왔다고 했을 때 나는 또 자석에 이끌리듯 이 책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과연 이런 이타적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따로 있는 걸까? 이런 분은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상은 너무 세속화 되어있다. 누구든지 공부해서 남 주는 것이 아니라며 입신양명의 길을 쫓고 있다. 그 생각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비난하는 사람도 없다. 당연한 것이고, 무엇보다 사람 사는데 호구지책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도 공부해서 남을 주지 않는다. 인간 이태석이라면 그도 충분히 그러지 않았을까? 아무나 못하는 의학을 공부했다.10남매를 먹이고 가르치느라 허리가 휘어지도록 고생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서 빨리 졸업해서 의원이라도 열어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효자 소리는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입원비 없으면 경각에 달린 목숨도 입원할 수 없으며, 수술도 받을 수 없다. 그런 환자를 보고도 의사는 다른 일로 바쁘다. 사람은 할 수만 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한다. 그래야 나의 안위를 보장 받을 수 있으고, 대우도 받는다. 그것이 세상인 것이다.           

이렇게 세속화 된 세상에서 과연 이태석 신부 같은 사람이 가능한 것일까? 굉장히 존경스럽지만, 동시에 의아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콜라를, 이태석 신부의 임지였던 톤즈의 아이들은 맨손으로 받아들지 못하며, 힘들 게 호호거리며 마신다는 그것만큼이나 이상한 일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에서 보면 이태석 신부는 어떤면에선 신부가 되기엔 적합한 성격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그가 리더십도 강하며 호탕한 성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부가 되려면 많고도 엄격한 규율들을 지켜야 하는데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 보다 앞서는 건 역시 순명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이태석 신부는 몸소 보여준다.  

그는 의대를 졸업 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이태리 유학길까지 갔다. 그러던 중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를 여행할 기회를 얻었고, 유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이미 도시화되고 잘 사는 그곳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 부분을 읽는데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슬쩍 비집고 올라왔다. 아마도 나라면 당연히 그곳에 눌러 앉았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라고 다 피폐하고 어려운 곳이 아니다. 유럽의 식민지였던만큼 십중팔구 그곳의 정취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뜻이 있는 사람은 풍경이 주는 정취에 매료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소리에 민감하다. 이태석 신부가 찾는 것은 '아프리카의 아픔과 상처'(106p)였다.  

그러던 중 남수단에서 30여 년 동안 활동해 온 제임스 신부의 요청으로 그곳에 가게되고, 오랜 내전으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그 나라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되다시피 한데 그런 와중에도 최빈민 도시는 따로 있다. 톤즈가 바로 그렇다. 우리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특별히 그곳 사람들이 많이 걸려있는 병은 한센병이라고 한다. 이태석 신부는 그들을 볼 때 오히려 불쌍한 것이 아니라 심장이 뛰었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한센병 환자들의 삶이 처참하기 이를 때 없고 가장 버림 받은 삶이 분명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위로하며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존재를, 완전한 사랑과 감사를 느낄 수 있었다."(109p)  

그것이 그를 두번 생각하지 않고 톤즈로 이끈다. 그러니까 단순히 불쌍하다는 그것만 가지고 버림 받은 땅 톤즈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곳에 함께 하셨던 예수님을 발견하였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문명화된 나라에 살았던 사람이 과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아무리 예수님의 존재와 사랑에 감사를 느꼈다고는 하나, 그는 톤즈를 처음 시찰했을 때 말라리아로 거의 죽다 살아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은 그가 톤즈에 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톤즈로 갈 것에 대해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한국에도 어려운 곳이 많은데 왜 꼭 아프리카로 가야만 하느냐고 했을 때 그는 "그곳에는 아무도 가려는 사람이 없기에 저라도 가야 합니다."(111p)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읽을 때만해도 나는 그가 대단한 용기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그의 톤즈에서의 활약상을 읽으면서 의외로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의 처참함은 형언할 수 없고, 그야말로 형편무인지경이지만 사람들의 병이 낫는 것을 보고, 달라지는 것을 볼 때 그의 가슴은 뛰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의 병은 이렇게 문명화된 나라에선 대수롭지 않은 병이다. 하지만 약을 구할 수 없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약간의 도움만으로도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볼 때 어떻게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어린 아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상처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음악을 가르칠 때 치료 받는 것을 보고  정말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천국이 회복되는 것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이 책은 어느새 나의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동시에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천만다행으로, 그런 나라 그런 도시에 태어나지도 살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이 사실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뿐 아니라 누구도 불행한 나라에서 태어나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얼마나 행복을 느끼며 사는가? 이태석 신부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문득 오래 전 주일학교 교사를 했던 시절이 생각이 났다. 고백컨대 나는 그때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게 물론 나의 한계이기도 했지만, 주일학교 아이들은 특별히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할만큼 가난한 아이들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는 환경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인데 뭐 그리 선생님의 사랑을 필요로 했을까? 그저 나 보기에 좋은 아이들은 부모님이 잘 키웠군하며 흐뭇해 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사랑을 하찮은 것으로 알고 안일하게 주일학교 교사를 했었다. 아무래도 풍족한 환경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고 깨닫게 하기엔 방해되는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현대인의 모든 질병이 알고보면 너무 풍족해서 생기는 것이라지 않는가. 우울증, 자살, 스트레스, 비만, 편집증 등은 자기집착이 너무 강해서 생긴 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질병들이다. 며칠전에도 모 운동선수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가서 봉사하고 산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허무하게 세상을 마감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인생을 절반쯤 살고 돌아보게 되는 건 과연 내가 인생을 잘 살아왔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우리는 가난한 나라를 돕는다고 하고도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때가 너무 많다. 그런 세상속에 이태석 신부의 희생과 사랑은 너무나 커 보인다.  

그가 위대해 보이는 것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이태석 신부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도 남을 돕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내가 뭘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남을 돕는 것도 내가 힘이 있어야 도울 수 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사람이 가슴으로 하는 모든 일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법인가 보다. 나는 오래 전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사람은 영이 있어서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안다는 말. 이태석 신부는 톤즈의 아이들을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녹아 내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고 했다. 얼마나 사랑을 받지 못했으면 그랬을까?  

그는 대장암 때문에 죽었는데, 그의 마지막 생명을 담당했던 주치의는 잘만 먹어도 그병을 생기지 않을거라고 했다. 그만큼 톤즈의 열악한 환경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톤즈를 사랑했다. 사랑에 눈이 멀었다. 

지금도 그를 다뤘던 방송(KBS스페셜)분에서 이태석 신부가 우리나라 말로 톤즈의 아이들에게 가르쳐 줬던 노래가 생각이 난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노래를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정말 다르다. 이 노래를 가르쳐 주고 톤즈를 떠나왔던 이태석 신부. 다시 돌아가야 할 그곳을 돌아가지 못했을 때 그 노래는 톤즈의 아이들에겐 망자를 그리워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는 그런 중병을 얻고도 톤즈에 다시 돌아가게 될 거라고 믿었단다. 하지만 그의 영혼만이 톤즈 사람들 가슴 속에 별이 되어 남아있게 되었다.   

이제 톤즈는 이태석 신부 하나로 인해 회복의 땅이 될 것이다. 과연 한 일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이 그곳에 위대한 도움을 줬다는 것이 왠지 뿌듯하게 한다. 그의 사랑을 받은 젊은이와 아이들이 나라를 구할 것이고 먼 훗날 수단도 언젠간 남의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되겠지.  

이태석 신부가 좋아하는 노래는 '열애'라고 한다. 노래에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란 가사가 나온다. 정말 그 노래는 왠지 그가 부르면 찬송가가 될 것 같고, 어찌보면 그 자신을 노래하는 것도 같다. 그는 오래도록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평전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냥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정도의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고인의 좀 더 깊이있게 다른 진지한 평전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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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14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가지 않기 때문에 '나'라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진정한 소명이겠지요.
담양 카톨릭묘지에 안장돼 있다니까 가까운 시일에 가보려고요.

2011-09-14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9-14 20:29   좋아요 0 | URL
담양에 계시군요.
전 거기 한번도 못가 봤어요.
저도 한번 가 보고 싶네요.
어제 모기 한마리가 윙윙거리길래 롬매트 키고 잤어요.
신부님 살아생전 고생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잠은 잘 자고 일어났지만 혼자 약간 민망해지더군요.ㅠ

고쳤어요.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