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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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리안치. 조선시대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 가운데 하나로, 유배를 보내 죄인이 살던 집을 가시엉겅퀴로 둘러치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것을 형벌이라고 한다. 그의 집엔 조그만 개구멍이 있어 그 구멍으로 먹을 것을 넣어준다고 한다. 지금도 교도소에선 가끔 문제를 일으킨 죄수들을 독방에서 지내도록 한다는데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인위적으로 사람과의 접촉을 막는다. 말이 쉽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긴 했다. 지금은 없어진 형벌이긴 하지만, 죄인이 유배되고나면 어떤 삶을 살았던걸까 궁금했다. 특히 조선시대 걸출한 정치가, 세도가들이 당쟁의 소용돌이속에 유배를 떠났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사극을 보면 그렇게도 깔끔하고 준엄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던 사람이 머리를 산발을 하고 백의를 입고 소가 끄는 목창에 갇혀 유배를 떠나는 것을 보면 그의 앞으로의 삶이 어떨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책은 그들의 삶을 그렇게 불행하만 다루지 않고 있다. 비록 그들이 유배되기 이전엔 나름 안락한 삶을 누렸겠지만, 유배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형편없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물론 옹색하긴 했겠지. 하지만 역시 사람은 어디든 적응하기 마련이란 걸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읽은 빅터 프랑클의 <죽음의 소용소>에서를 떠올렸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책은 사람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위대하게 묘파해 낸 책이다. 그리고 이책에 소개된 우리 선조들은 이것을 아주 오래 전에 가볍게 증명해 낸 것은 아닐까 싶었다.  

특히 이 책을 꾸민 두 명의 저자들은 우리 나라 대표적인 섬들을 조명하고 있다. 제주도는 물론이고, 위도와 흑산도, 진도나 백령도 등. 물론 그 섬들은 오늘날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꼽혀 관광자원으로 그 몫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그 옛날은 말그대로 절해고도 였다. 과연 우리나라 한양의 양반님네들 그런 곳에 사람이 살았을까를 한번쯤 생각하고 살았을까? 아마도 공무가 바빠 그렇게 많이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세상은 좁고 또 좁게 보이기 마련이다. 누구도 모함을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유배(혹은 좌천)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사람은 나락으로 떨어진 바로 그곳에서 더 넓은 세상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비근한 예로, 조선중기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진도에 유배되었던 노수신은 귀양을 와서도 침울하게 지내지 않고 계획적으로 일과를 짜서 공부하고 산책도 하며 즐겁게 지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살면서 <귀양지의 네 가지 맛>이라는 시를 썼는데 그 내용은, '맑은 새벽에 머리를 빗는 맛, 늦게 아침을 먹고 천천히 산보하는 맛, 환한 창가에 앉아 햇볕을 쪼이는 맛,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맛'이 귀양지의 네 가지 맛이라며 유배지의 한가로움을 노래하기도 했다(154p)고 한다.  

더구나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우리나라의 천혜의 자연 경관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그것은 상처 받았던 심신을 치료하는데 더 없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이것을 유배 당하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비록 책에 언급되어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유배된 죄인의 신분이니 그곳에 사는 사람의 업신여김을 어느만큼은 감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보면 그런 보이지 않은 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없어지지 않았을까?  

물론 유배를 떠난 사람이 하나 같이 성공적으로 유배의 기간을 보내고 복귀해 한층 성숙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유배란 특별한 기간을 보내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선별해 내 책을 꾸몄을 것이다. 교동도에서 유배의 기간을 보냈던 연산이나 광해군의 삶은 불행했다. 예술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이란 역작을 낼 수 있었고, 김만중은 유배기간 중 <사시남정기>,<구운몽>, <서포만필>을 탄생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고통의 기간을 감내하지 않은 인간은 없으며, 그것을 통과하지 않고는 성숙할 수 없다는 건 만고불변의 법칙 같다. 지금 내가 고통중에 있는가? 누군가의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좌천을 당했다고 생각하는가? 작으나마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런 책도 있는데 요즘 소설이나 영화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복수하라고 부추기고 있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더구나 고통을 인내하지 못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이 조금이나마 그런 우리의 삶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매번 승자의 역사만을 전해주고자 하는 우리나라 역사 저술 속에 이 책은 유난히 돋보인다.  중간중간 펼쳐지는 풍경 사진도 좋고, 장을 마칠 때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유배지에 대한 소개와 거기에 얽혀진 역사적 인물에 대한 소개로 정리해 놓은 것도 나름 좋아보인다.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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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1 18: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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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2 1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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