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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 War of the Arrow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 감독 : 김한민 |
| 주연 : 박해일, 류승룡(2011,8) |
영화에서 박해일은 멋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출현한 영화중에 이 영화만큼 멋있게 나온 영화가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내내 느낀 것은, 역시 사람은 신출귀몰한 뭔가의 재주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야 멋있게 보일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난 개인적으로 이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확실히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좋은 무기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영화에선 역적의 자식이란 오명과 여동생을 지켜줘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을 부여 받았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나름의 아우라가 있다.
류승룡.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여자들은 말만은 남자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가 아무말도 안하고 폼 잡고 서 있는 것만으로 깜빡 넘어갈 것 같다.
영화 초반에 자인을 자기 색시로 달라고 땡깡 부리던 서군 역의 김무열이 영화에서 뭘할까? 그냥 귀여운 양념 아닐까 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의 존재감이 부풀어 오른다. 그렇지. 남아일언중천금이랬다고, 자인을 자켜주겠다는 그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이한위를 비롯한 조연들도 멋지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던 이순신 장군의 장렬한 죽음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조연에게로 가면 그 느낌이 짠하다. 내 비록 조연이긴 하지만 칼자루 뽑아 들면 나도 남자다운 비장미가 있는 사람이여! 라고 큰 소리 한 번 내고 죽는다. 그뿐인가? 오랑캐들들 조차 이 영화에선 너무 멋있게 나온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남성적 이미지가 뚝뚝 떨어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몇번씩 같이 본 지인 엄지 손가락을 높이들며 "멋있다!"를 작렬했었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명백히 마초적이다. 그런데 이 마초 영화에 환호하는 쪽은 남성 관객 보단 여성 관객쪽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류승룡이 말이 없어도 멋있다고 했는데, 전체적으로도 배역들의 대사가 그다지 않지 않다. 설혹 대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상황을 위한 대사일뿐, 누구를 울려야 하는 것도 없고, 설득해야 하는 것도 없다. 남자는 역시 말 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다. 한마디로 난 감독이 어떻게 해야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영화가 될 수 있는가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도입 부분도 보라. 피가 낭자한 남자들의 칼싸움도 그렇지만, 소년과 늑대 같은 개의 대결씬도 아직 피기도 전인 소년에게 남성다움을 부여하려는 감독의 의지의 소산처럼 느껴진다. 오직 여성다움을 잠시 느낄 수 있는 건 지인이 커서 시집가는 장면이지만 그것도 오랑캐의 난데없는 침입으로 묻혀지고 만다. 왜 하필 지인의 시집가는 날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오빠의 선물인 꽃신이 벗겨져 나뒹구는 장면이 짠하다.

더구나 영화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쫓고 쫓는, 그러니까 스피드를 요하는 영화다. 그런 영화는 대사 보단 볼거리가 풍부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동시에 찰나의 미학이다. 순간적으로 빨리 지나가버리는 일상에서의 찰나를 영화에서는 미적 감각을 부여해 영원처럼 간직하려 한다. 그만큼 영상이 탁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묘한 건, 남의 집 오빠들은 하나 같이 잘 났는데 우리 집 아들들(아버지, 오빠, 남동생, 남편을 통칭해서)은 왜 그렇게 코찔찔이들이 많냐는 거다. 원래 남의 집 떡이 커 보이는 건 인지상정이라고 하더라도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해 보인다. 남의 집 오빠들은 여자도 잘 지켜주더만, 우리집 아들들은 왠지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것도 아니면서 여자들 지켜줘야 하는 의무를 타고난 것만 같다.
남성의 이미지는 주기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어느 때는 마초였다가, 어느 때는 캔디에 나오는 테리우스 같다가, 어느 때는 이웃집 아저씨 같다가 등등. 이번엔 당연히 마초가 대세인듯 싶다. 일부러 여성성을 강조한 남자 배우들은 한동안 한쪽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것과 더불어 또 한번 묘하게도 겹쳐드는 생각은 영화에 절대 나오지 않은 병자호란 때의 임금은 밉상이란 것이다. 그래서 이미 압록강을 건넜다 다시 돌아오면 역적으로 몰린다는 불안감 떨쳐버리지 못한 한 민초에게 어느 오빠가 그러지 않는가, 나라를 버린 임금에게 역적은 가당치 않다고. 그렇다면 나랏님과 우리집 아들들은 같은 족속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전에 읽은 김영하의 <검은꽃>을 읽었을 때도 그렇고, 영화를 보면서도 그렇고, 우리나라는 대대로 내려오는 병이 있는 것 같다. 이름하여 나라를 믿지 못하는 병. 병자호란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몇 안되는 백성인데도 나라에선 나몰라라 했다. 그것이 병자호란 때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대대로 이어왔다. 그래서 민초는 잡초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뿌리가 깊어 지금도 여전하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신뢰받는 정부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라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영화 하나에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자인역의 문채원은 행운의 여배우란 생각이 든다. 공주의 남자에서의 세령이 어디서 온 캐릭턴가 했더니 바로 이 영화에서다. 난 이 배우를 바람의 화원에서 처음 봤다. 그때 나름 괜찮게 봤지만 현대극에서는 딱히 이렇다할 빛을 바라지 않는다. 그나마 사극에서는 나름의 아우라가 있다. 아무래도 사극에서 그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나을성 싶다.
이 영화 보고 우리집 아들들 보면 너무 나이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영화 두 번 봐도 좋을 영화 같다. 대체로 남자들이 집안에서는 코찔찔이어도 나가서는 멋진 오빠하는 사람있거든. 우리집 아들들도 그랬으면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