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 이태석 신부 이야기
우광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작년에 이태석 신부의 다큐멘터리 필름 <울지마, 톤즈>가 극장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뒤늦게 KBS 스페셜에 소개된 내용을 찾아 보았다. 어찌보면, 평소 TV를 아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 내가 이런 프로를 못 보고 지나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프로를 보고 난 직후 나는 참 많이 울면서 반성을 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이태석 신부를 내가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두움이 빛을 가리울 수 없듯이 이런 분은 훗날에라도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태석 신부의 평전이 나왔다고 했을 때 나는 또 자석에 이끌리듯 이 책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과연 이런 이타적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따로 있는 걸까? 이런 분은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상은 너무 세속화 되어있다. 누구든지 공부해서 남 주는 것이 아니라며 입신양명의 길을 쫓고 있다. 그 생각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비난하는 사람도 없다. 당연한 것이고, 무엇보다 사람 사는데 호구지책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도 공부해서 남을 주지 않는다. 인간 이태석이라면 그도 충분히 그러지 않았을까? 아무나 못하는 의학을 공부했다.10남매를 먹이고 가르치느라 허리가 휘어지도록 고생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서 빨리 졸업해서 의원이라도 열어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효자 소리는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입원비 없으면 경각에 달린 목숨도 입원할 수 없으며, 수술도 받을 수 없다. 그런 환자를 보고도 의사는 다른 일로 바쁘다. 사람은 할 수만 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한다. 그래야 나의 안위를 보장 받을 수 있으고, 대우도 받는다. 그것이 세상인 것이다.           

이렇게 세속화 된 세상에서 과연 이태석 신부 같은 사람이 가능한 것일까? 굉장히 존경스럽지만, 동시에 의아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콜라를, 이태석 신부의 임지였던 톤즈의 아이들은 맨손으로 받아들지 못하며, 힘들 게 호호거리며 마신다는 그것만큼이나 이상한 일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에서 보면 이태석 신부는 어떤면에선 신부가 되기엔 적합한 성격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그가 리더십도 강하며 호탕한 성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부가 되려면 많고도 엄격한 규율들을 지켜야 하는데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 보다 앞서는 건 역시 순명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이태석 신부는 몸소 보여준다.  

그는 의대를 졸업 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이태리 유학길까지 갔다. 그러던 중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를 여행할 기회를 얻었고, 유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이미 도시화되고 잘 사는 그곳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 부분을 읽는데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슬쩍 비집고 올라왔다. 아마도 나라면 당연히 그곳에 눌러 앉았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라고 다 피폐하고 어려운 곳이 아니다. 유럽의 식민지였던만큼 십중팔구 그곳의 정취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뜻이 있는 사람은 풍경이 주는 정취에 매료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소리에 민감하다. 이태석 신부가 찾는 것은 '아프리카의 아픔과 상처'(106p)였다.  

그러던 중 남수단에서 30여 년 동안 활동해 온 제임스 신부의 요청으로 그곳에 가게되고, 오랜 내전으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그 나라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되다시피 한데 그런 와중에도 최빈민 도시는 따로 있다. 톤즈가 바로 그렇다. 우리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특별히 그곳 사람들이 많이 걸려있는 병은 한센병이라고 한다. 이태석 신부는 그들을 볼 때 오히려 불쌍한 것이 아니라 심장이 뛰었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한센병 환자들의 삶이 처참하기 이를 때 없고 가장 버림 받은 삶이 분명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위로하며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존재를, 완전한 사랑과 감사를 느낄 수 있었다."(109p)  

그것이 그를 두번 생각하지 않고 톤즈로 이끈다. 그러니까 단순히 불쌍하다는 그것만 가지고 버림 받은 땅 톤즈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곳에 함께 하셨던 예수님을 발견하였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문명화된 나라에 살았던 사람이 과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아무리 예수님의 존재와 사랑에 감사를 느꼈다고는 하나, 그는 톤즈를 처음 시찰했을 때 말라리아로 거의 죽다 살아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은 그가 톤즈에 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톤즈로 갈 것에 대해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한국에도 어려운 곳이 많은데 왜 꼭 아프리카로 가야만 하느냐고 했을 때 그는 "그곳에는 아무도 가려는 사람이 없기에 저라도 가야 합니다."(111p)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읽을 때만해도 나는 그가 대단한 용기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그의 톤즈에서의 활약상을 읽으면서 의외로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의 처참함은 형언할 수 없고, 그야말로 형편무인지경이지만 사람들의 병이 낫는 것을 보고, 달라지는 것을 볼 때 그의 가슴은 뛰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의 병은 이렇게 문명화된 나라에선 대수롭지 않은 병이다. 하지만 약을 구할 수 없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약간의 도움만으로도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볼 때 어떻게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어린 아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상처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음악을 가르칠 때 치료 받는 것을 보고  정말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천국이 회복되는 것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이 책은 어느새 나의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동시에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천만다행으로, 그런 나라 그런 도시에 태어나지도 살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이 사실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뿐 아니라 누구도 불행한 나라에서 태어나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얼마나 행복을 느끼며 사는가? 이태석 신부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문득 오래 전 주일학교 교사를 했던 시절이 생각이 났다. 고백컨대 나는 그때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게 물론 나의 한계이기도 했지만, 주일학교 아이들은 특별히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할만큼 가난한 아이들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는 환경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인데 뭐 그리 선생님의 사랑을 필요로 했을까? 그저 나 보기에 좋은 아이들은 부모님이 잘 키웠군하며 흐뭇해 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사랑을 하찮은 것으로 알고 안일하게 주일학교 교사를 했었다. 아무래도 풍족한 환경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고 깨닫게 하기엔 방해되는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현대인의 모든 질병이 알고보면 너무 풍족해서 생기는 것이라지 않는가. 우울증, 자살, 스트레스, 비만, 편집증 등은 자기집착이 너무 강해서 생긴 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질병들이다. 며칠전에도 모 운동선수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가서 봉사하고 산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허무하게 세상을 마감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인생을 절반쯤 살고 돌아보게 되는 건 과연 내가 인생을 잘 살아왔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우리는 가난한 나라를 돕는다고 하고도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때가 너무 많다. 그런 세상속에 이태석 신부의 희생과 사랑은 너무나 커 보인다.  

그가 위대해 보이는 것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이태석 신부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도 남을 돕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내가 뭘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남을 돕는 것도 내가 힘이 있어야 도울 수 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사람이 가슴으로 하는 모든 일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법인가 보다. 나는 오래 전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사람은 영이 있어서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안다는 말. 이태석 신부는 톤즈의 아이들을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녹아 내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고 했다. 얼마나 사랑을 받지 못했으면 그랬을까?  

그는 대장암 때문에 죽었는데, 그의 마지막 생명을 담당했던 주치의는 잘만 먹어도 그병을 생기지 않을거라고 했다. 그만큼 톤즈의 열악한 환경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톤즈를 사랑했다. 사랑에 눈이 멀었다. 

지금도 그를 다뤘던 방송(KBS스페셜)분에서 이태석 신부가 우리나라 말로 톤즈의 아이들에게 가르쳐 줬던 노래가 생각이 난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노래를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정말 다르다. 이 노래를 가르쳐 주고 톤즈를 떠나왔던 이태석 신부. 다시 돌아가야 할 그곳을 돌아가지 못했을 때 그 노래는 톤즈의 아이들에겐 망자를 그리워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는 그런 중병을 얻고도 톤즈에 다시 돌아가게 될 거라고 믿었단다. 하지만 그의 영혼만이 톤즈 사람들 가슴 속에 별이 되어 남아있게 되었다.   

이제 톤즈는 이태석 신부 하나로 인해 회복의 땅이 될 것이다. 과연 한 일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이 그곳에 위대한 도움을 줬다는 것이 왠지 뿌듯하게 한다. 그의 사랑을 받은 젊은이와 아이들이 나라를 구할 것이고 먼 훗날 수단도 언젠간 남의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되겠지.  

이태석 신부가 좋아하는 노래는 '열애'라고 한다. 노래에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란 가사가 나온다. 정말 그 노래는 왠지 그가 부르면 찬송가가 될 것 같고, 어찌보면 그 자신을 노래하는 것도 같다. 그는 오래도록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은 평전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냥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정도의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고인의 좀 더 깊이있게 다른 진지한 평전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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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14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가지 않기 때문에 '나'라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진정한 소명이겠지요.
담양 카톨릭묘지에 안장돼 있다니까 가까운 시일에 가보려고요.

2011-09-14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9-14 20:29   좋아요 0 | URL
담양에 계시군요.
전 거기 한번도 못가 봤어요.
저도 한번 가 보고 싶네요.
어제 모기 한마리가 윙윙거리길래 롬매트 키고 잤어요.
신부님 살아생전 고생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잠은 잘 자고 일어났지만 혼자 약간 민망해지더군요.ㅠ

고쳤어요.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