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TV에서 내일 새벽 벨기에와의 결전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팀의 표정을 보여주었다. 자못 진지하고 심각하기까지 하다. 그럴만도 하겠지 

그런데 그들의 숙소 앞에서 대표팀을 응원하겠다고 나온 교민들의 응원이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응원이라고 해도 호들갑떠는 응원 하나 밖엔 할 수 없으니 그도 그렇지 않을까?

그저 무조건 기를 불어 넣어 주겠다고 그 앞에서 호들갑 떠는 것 보다(물론 그런 것을 좋아할 선수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 그들이 새로운 기를 받을 수 있을까? 좀 응원에도 표정이 있고, 색깔이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든다.

좀 차분해도 좋지 않을까? 그냥 무한 신뢰와 용기를 보내줘도 되지 않을까?

마음 같아선 그들의 손이라도 잡아주고, 어깨라도 두들겨 주고 그러면 좋겠는데 어느 선 이상으로는 접근이 불가하니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응원진으로선 그게 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쉽다. 그런 호들갑 떠는 응원 보단, 그들의 마음을 소용돌이 치게 만드는 뭔가의 감동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게 뭐가 있을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우리 응원문화는 좀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거다. 겉으론 화려하고 힘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은 공허하다.  

하긴, 월드컵이 지구촌 축제인 건 사실이지만 그도 상업주의고 보면 공허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거다.

12번째 선수라면서 사람의 마음 하나 헤아리지 못하고, 감동시킬 수 없다면 그게  무슨응원이랴? 내일 우리의 응원이 선수들에겐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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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기침 2014-06-26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잠을 자며 꿈에서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하루요 ^^

stella.K 2014-06-26 15:25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아마 그러지 싶습니다.
님도 좋은 하루되시길.^^
 
겪어야 진짜 - 어른의 어른 후지와라 신야가 체득한 인생배짱
후지와라 신야.김윤덕 지음 / 푸른숲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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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엮은이 김윤덕 기자는 후지와라 신야를 기꺼이 "싸부"라 칭했다. 현재 신야는 일본내에선 무라카미 하루키나 시오노 나나미 보다 더 유명하고 사랑받는 작가라고 한다. 하지만 역시 우리에겐 좀 낮선 사람은 아닌가 싶다. 그래도 그는 그전에 <인도방랑>이나 <티베트 방랑>, <아메리카기행> 같은 책을 내놨다고 하니 매니아층이 나름 있긴 있는가 보다. 김윤덕 기자도 처음엔 그를 잘 몰랐다가 이런 일련의 책을 읽고 그를 싸부로 까지 모시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야 자신은 김윤덕 기자뿐 아니라 아니 다른 누구의 "싸부"가 되길 기꺼워 할까 싶다. 내가 이 책을 읽어본 바에 의하면 그는 딱히 누군가의 싸부가 되길 원하진 않는 것 같은 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싸부로 부를테면 불러라. 그거야 그쪽 사정이지 내 알 바 아니다. 뭐 이런 태도다. 그만큼 그는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김윤덕 기자도 말했지만, 니코스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를 닮아있었다. 

 

이에 대해 김윤덕 기자는, 그에겐 치명적인 마력이 있다.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안목, 그것을 거침없이 내뿜는 용기, 그리고 오랜 여행을 한 사람의 갖춘 현자의 풍모다. 무엇보다 나는 신야가 나이 든 체하지 않아서 좋다(90쪽)고 전하고 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어느 날 본업인 기자를 접고, 잘 찍지도 못하는 카메라를 달랑 매고 인도를 여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생수와 야채를 가득 싣고 방사능 피폭 현장을 달려 갔고, 시부야 밤거리를 떠도는 10대들을 만나고, 창부과 기꺼이 어울리고 그들의 친구가 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한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말이다. 책띠 귀퉁이에 그의 사진이 조그맣게 찍혔는데 조금은 까칠한 더벅머리를 하고 있다. 그것이 영락없는 조르바 빙의다. 

 

과연 그를 김윤덕 기자가 "싸부"라 할만도 하겠다 싶다. 그러고 보니 나도 20대 말 그런 "싸부"를 만날 뻔 했던 적이 있다. 나의 글 쓰기 선생님이었다. 이 선생님을 직업으로서의 선생이 아닌 정말 마음을 다해 부를 수 있는 싸부가 아닐까 했던 것이다. 그 선생님도 더벅머리였고, 체 게바라를 좋아했으며, 정기적으로 히말라야를 오르내리는 산사나이였다. 그리고 선생님에게서 뿜어내는 탐욕스러우리만치 강한 지적 욕구와 카리스마. 이만하면 나의 싸부가 되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선생님은 나의 선생님인 건 사실이지만 "싸부"로 모시기엔 어딘가 결정적으로 어긋나 있었다.

 

그것은 이 책에서 신야도 지적한 사항이지만, 결정적으로 나의 선생님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좌중을 압도하는 끊이지 않는 입담이 선생님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어 나를 '치명적 마력'으로까지는 이끌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선생님도 늙어가는 평범한 남자란 생각을 했다. 그렇다. 잘 듣는 사람. 나의 선생님에겐 없는 그걸 신야는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10대 아이들과도 어울리는 것이겠지.

 

이 책은 후지와라 신야와 김윤덕 기자가 나눈 대담집이다. 대담집의 매력은 아무래도 그 사람에 대해 다이제스트로 알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자서전이나 고백록처럼 혼자 떠들지 않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교감할 수 있어 좋고, 누군가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써 줄 인터뷰어가 있다는 게 고맙기도 할 것이다.

 

내게 있어 가장 부러운 건, 후지와라 신야가 (훌륭한)방랑자라는 점일 것이다. 자유인에게 있어 여행 곧 방랑은 특권이자 전부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는 여행을 앞두고 정보를 수집하려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패키지 여행은 더 더욱 권하지 않는다. 불안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 것인데 그러지 말란다. 길을 잃어버리면 좀 어떤가? 거기서 맞닥트리는 것에 온전히 나를 맡겨 보란다.

 

여행을 언제 해 봤는지 모르겠다. 내가 항상 여행을 주저하는 것도 그 이유도 그 이유가 크다. 길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세상이 험하다는 것. 그래서 늘 여럿이 하는 걸 원하고 가서도 가급적 고생을 덜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계산하고. 그래서 난 갈수록 돈 많은 사람,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어디 어디를 여행해 봤다는 사람이 부러워지고 있다. 

 

그는 독특하게도 음식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면 여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좀 우스웠지만 공감이 간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도 호색한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가 누구든 일생에서 많은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것이 용케도 인간으로 태어난 특권이 아니겠냐며(175쪽). 나도 그 말에 동감이다. 배우자를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면 약간의 설렘을 갖게 하는 만남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것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되어지는 여러 가지 징후 중 하나가 사람을 상대한다는 게 귀찮아 진다는 것인데 사람이 혼자 있으면 그만큼 노쇠해질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담에서 눈에 들어 온 건 신야의 세상 살아는 이야기다. 특히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갈수록 늘어나는 운둔형 외톨이의 문제라든지, 고독사의 문제는 우리나라도 심각하다. 단지 일본과 우리나라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의 젊은이는 여간해서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도전하는 정신이 아직 있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긴 한다.

 

특히 신야는 일본의 대지진이나 쓰나미 등 국가적 재난에 대해 아주 나쁘게 마는 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분명 일어나지 않으면 좋았겠지만 그로인해 운둔형외톨이들이 자신의 방을 박차고 나와 함께 봉사의 손길을 보태고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도 불행하게만 볼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희생자들에겐 불행한 일이고, 그런 사고가 애초에 안 일어나면 좋았겠지만, 우린 그 때문에 함께 울었고, 힘을 보탰으며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도 어떤 운둔형 외톨이가 봉사에 힘을 보탰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중요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극단적이고 불행한 방법으로만이 개인주의의 폐해가 줄어든다면 그건 확실히 비극적이고 권할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이제 그 나라나 우리나라나 개인주의와 그로인한 폐해를 어떻게 치료해 나갈 것이냐가 관건일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공동체적 삶과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며 함께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 봐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는 별로 후회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지식인이라면 강박적으로 할 수만 있으면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런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나도 좀 그런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야겠다고 생각한다. 난 왜 이렇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생에 있어 별로 후회를 하지 않는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만이 죽음의 흔적을 남긴다. 야생동물은 죽을 때가 되면 어디론가 숨는다. 하다못해 그 큰 코끼리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죽음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신야는 오래 전 그랜드 캐니언을 여행하다 자동차가 추락한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것도 비교적 최근이 아니고, 몇 년된 것처럼 보이는데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런데 그는 그곳을 내려오면서 경찰에 알렸는데 그것이 잘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것은 무신론자인 그가 죽으면 무로 돌아간다고 믿는 평소 그의 죽음관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도 최근 가족과 사별을 겪으면서 또한 예전만큼 젊지 않다는 것에서 어떻게 살까, 어떻게 죽게 될까를 자주 생각해 보곤 한다. 삶에 미련을 갖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는 일이 전보다 많아졌다. 그만큼 생에 미련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죽을 땐 나도 야생동물처럼 아니면 그랜드 캐니언에 쳐박혔다던 그 자동차의 주인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하지만 아마 가능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나의 죽음에 염을 해 주고, 누군가는 화장(火葬)을 해 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려주겠지. 그것을 고스란히 산 사람에게 맡긴다는 게 왠지 미안하고 안쓰럽다. 하지만 아직도 구조되지 못한 바다밑의 주검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장례라도 치룬 것에 위안을 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의 장례도 누구에겐 위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신야를 그전부터 알고 잘 있었다면 좀 더 많이 공감하며 읽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김윤덕 기자가 산야를 너무 많이 애정했던 탓일까? 끝에 가선 사족 같이 느껴져 좀 지루한 감이 느껴졌고, 의욕이 과한 것인지 약간은 산만하게도 느껴졌다. 뭐 그만큼 독자로 하여금 산야가 더 많이 알려지길 바랬던 것도 같다. 기행문을 철학서적처럼 썼다니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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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9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 - 그리움 많은 아들과 소박한 아버지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박동규.박목월 지음 / 강이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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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처음엔 잊혀진 옛 시인의 삶의 궤적을 알아 보자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또 이런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더구나 박목월이다. 박목월이 누구인가?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학창시절 이 이름 한 번 듣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땐 그런 말이 없어서 그렇지 박목월이야 말로 '국민 시인'이라고 해도 그 말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는 유명한 시인이었다.

 

박동규 교수가 박목월 시인의 아드님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아버지 박목월의 일기와 산문 등과 함께 아버지를 기억하는 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 책을 펼쳐 들기도 전에 필경 나에겐 박목월 시인을 아는 것과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건드리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읽는 내내 속으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뭐라 말할 수 없는 아련함과 애틋함이 느껴졌다. 

 

아, 옛 시인은 어디가고 우린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이 시인을 기억해야 한단 말인가? 그게 참 뭐라 말할 수 없이 아련하고, 가슴이 뭉클하다. 그가 살아 있을 땐 생존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존경과 애정을 보낸 시 애호가들도 많았으리라. 그러나 그는 생각 보다 그리 긴 세월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통해 이렇게 그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시인의 인품

 

읽고 있으려니 새삼 박목월 시인 보다는 박동규 교수가 더 많이 보인다. 지금은 좀 뜸한 편이긴 하지만 한때 박동규 교수를 TV에서 자주 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교수니 나름의 권위와 카리스마 느껴질 수도 있건만, 노교수는 그런 것이 전혀 없이 항상 겸손하고 인자한 인상만 풍겼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평소 의문을 품곤 했는데 이 책을 읽고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교수의 그런 인품은 필시 아버지 박목월의 영향이었겠구나 싶었다.  

 

박목월 시인은 정말 인자한 인품을 가졌다. 아버지로서 정말 자녀를 많이 사랑했구나 느껴진다. 여느 아버지 같으면 자녀의 크고 작은 실수에도 화를 내거나 엄하게 꾸짖을 수도 있을 텐데 시인은 무슨 사랑이 그리도 많은 걸까, 모든 자녀를 가슴으로 끌어 안는다. 예를 들면, 아들 동규가 남의 자전거를 처음 타고 중심을 못 잡아 어느 가게로 돌진해 사고를 냈을 때도 아버지는 아들을 야단치지 않고 오히려 품에 끌어 안아 줬다고 기술하고 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시인다운 기품과 온유함이 묻어 있어 오히려 과연 이런 아버지가 있을 수 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다. 모르긴 해도 박목월 시인은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의 가문의 자제는 아니었을까 의문을 가져 보기도 한다. 그만큼 흐트러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동규)은 아버지 살아생전 시를 쓰기 위해 연필을 깎는 모습을 자주 뵙곤 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아들은 이렇게 기억한다.

한밤 아버지 방 앞을 지날 때면 연필심을 깎는 삭삭 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왜 꼭 연필로 시를 쓰시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연필을 깎으며 마음을 가다듬게 되지. 어떻게 마음가짐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길이 열리는 거야." 하셨다.(66p)

이 구절을 대하고 보니 나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했으며 그것에 대해 얼마나 믿고 행하였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의 행동은 10대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뭐든 하게 되면 하는 거고, 못하게 되면 못하는 거지 그다지 욕심이 없고 의욕이 없다. 그래서 옛말이 그른 게 없는가 보다. 될성 부른 나무 떡닢부터 알아 본다고 하지 않던가. 언제부턴가 나에게 습관으로 남은 몸짓 하나, 행동 하나가 나의 인생의 길을 열수도 있고, 닫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나의 몸사위를 돌아보게 된다.

 

 

시인의 마음

 

잊고 있었다. 나도 사춘기 시절 아주 잠깐 동안 시를 좋아했고 그래서 시인이 되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를 잊고 살았다. 왜 그랬을까? 그 시를 썼던 시인의 생각을 유추하는 게 귀찮아서인지도 모른다. 내 마음도 내가 모를 때가 많은데 언제 또 남의 마음까지 유추한단 말인가? 

 

또한 시인은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돈 안 되는 시를 백 날 써서 뭐하겠는가,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느샌가 모르게 시가 멀어졌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서야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목월 시인의 중학 시절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다.

 

목월 시인이 돈이 없어 그때까지 지내고 있던 자취방을 나와야 했을 때 담임 선생님 배려로 학교 온실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가마니떼기를 깔고 누워보니 유리창 위로 별들이 보였다고 한다. 그때를 아버지 목월 시인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놈아, 내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별을 보며 내 신세가 가련하구나, 했으면 지붕이 있는 집에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겠지. 그러나 나는 별들이 속삭이고 가는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했으니 시인이 되었지.(91p)" 한다. 또한 아들은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시인은 무한 상상력의 소유자다. 아버지 대나 아들의 대나 못 먹고, 못 살았던 시대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절을 기꺼이 온몸으로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시인의 정신이 있었기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시인의 마음, 시인의 정신이 없다면 이런 척박한 세상을 어찌 헤쳐 나갈까? 사람이 빵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다 잘 사는 게 아닌데 말이다. 시인의 마음 속에 상상력이 없다면, 생명을 잉태하는 씨앗(시어) 하나 제대로 품고 있지 못하고서야 어찌 시인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생활인으로써의 박목월

 

읽다보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얼마나 피곤하고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 왔을까가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박봉에 한 아내의 남편이요, 슬하의 다섯 남매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었다. 거기엔 남자 박목월은 없다. 그래서 그것은 요즘 흔히 회자되는 남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아 탐색은 같은 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게 나에겐 박목월 시인이 하나도 쓸쓸하다거나 측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자아 탐색이란 것도 요즘 같이 어느 정도 살기 좋아졌을 때 묻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시인에게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과 시인으로서 시를 쓰는 삶을 계속 영위해 나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그런 질문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자신 보다 대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더 가치있고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세상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서 내가 더 중시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자꾸만 자신이 중요하다고,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라고 말한다. 물론 그 말이 틀리지 않다. 이 사막 같은 세상에서 내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겠는가? 하지만 그러므로 해서 남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어떻게 역할을 할 것인가가 약화된 건 아닐까? 그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그런 현대의 자아 사랑이 더불어 사는 책임을 회피하고 약화시키는 밀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오늘 날 짐승남이니 품절남이니 하는 것도 남자의 상품화에서 나온 신조어라고 생각하는데, 가끔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묻고 싶다. 그런 것들은 보기에만 좋은 것일뿐 사람의 본질을 못 보고거나 왜곡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 평생 시와 가정만 생각했던 박목월 시인이 요즘의 짐승남이나 품절남이란 용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우리가 박목월 시인을 존경하는 건 이런 건조하고 척박한 세상에 별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시인이고, 돈 때문에 병 걸린 아내를 선뜻 입원시킬 수 없는 남편 때문이고, 어쩔 수 없이 학업과 힘든 세상으로 내몰아야 하는 자식을 지켜 볼 수 밖에 없는 아버지기 때문에 존경하는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면 남성의 남성다움도, 여성의 여성다움도 없어지거나 약화된다. 그런 사람에게 늙어도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잃지 말라고 일깨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 보다 존경 받는 노인이 되는 것을 아는 것이 더 값지고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이렇게 이 책은 한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거기서 잊혀졌던 옛 가치를 음미해 보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죽을지도 모르고 아내 건강을 걱정한 박 시인을 보며 23년 전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생각이 났다. 아무리 자식 키우는 게 힘든다고 해도 역설적으로 그때만큼 보람있고, 근면하게 살았던 때가 또 있을까?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했다. 그동안 몰랐던 박 시인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메마른 세상에 정말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귀한 책을 엮어 낸 박동규 교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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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6-12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 박동규 교수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많은 긍정적 면이 있겠지만, 아버지의 후광과 학벌에 의한 권력, 사회에 대한 인식의 편협함 등.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 너무 부정적이었습니다.

박동규 교수님이 이야기하신 아버지 박목월은 Stella.K 님의 윗글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훌륭한 아버지 밑에 반드시 훌륭한 아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되었죠.

stella.K 2014-06-12 14:20   좋아요 0 | URL
헉, 박 교수에게 그런 이면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인상만 보면 정말 선한 인상인데 말입니다.
저야 박 교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그저 인상만 가지고 쓴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면 박 교수도 문제는 문젭니다만,
너무 엘리트만을 좋아하는 언론이나 사회가 더 문제란 생각도 듭니다.
가끔 방송을 생각할 때 똑똑한 사람 선별할 생각 말고 진정성에 촛점을
맞혀줬으면 좋겠는데.. 뭐 그런 생각도 많이 했거든요.
마립간님 댓글 보니 아무래도 어제 썼던 저 리뷰는 뭔가 잘못 쓴 건 아닌가
괜히 민망해지는군요. 제가 워낙 팔랑귀라...ㅠㅋ

마립간 2014-06-12 14:08   좋아요 0 | URL
아니지요. 제가 단 한번의 만남(강연)으로 속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분은 그 강연을 그렇게 안 들었을 수도 있고. 일단 제가 그렇게 느꼈고, 함께 강연을 들었던 저의 지인들은 저의 생각에 동조를 했다는 정도입니다.

페크pek0501 2014-06-1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좋아해서(호감 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다음에 태어나면 교수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지, 했을 정도입니다만(내가 교수가 되는 건 싫고요ㅋ), 뒤에 알게 되었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성격이 좋기 힘들고 인격이 훌륭하기 힘든 사람들이구나, 하고요. 아마 자기가 한 분야에서 최고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 것도 같고 사회에서 높게 대우해 주는 경향 때문인 것도 같고 또 학생들로부터 대접 받는 게 익숙하기 때문인 것도 같아요. (대접 받을 줄만 알고 남을 대접할 줄 몰라요.)
자존심 세고 속 좁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몰라요. 제가 알기론 교수들의 80퍼센트 가량이 그럴 것 같아요. (마~아무개 교수님은 뺄게요.ㅋ)

겉으로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건 쉽지요. 하지만 어떤 일로 자존심 상하면 그 본성이 드러나고 말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결론을 내렸죠. 사윗감으론 대학교수가 노우.... 라는 것.

글 잘 읽고 엉뚱한 소리만 하고 갑니다요...


stella.K 2014-06-14 17:52   좋아요 0 | URL
ㅎㅎ 언니! 넘 웃겨요.
예전엔 엘리트가 인격적으로도 완벽하고 좋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꼭 그렇지 만도 않더군요. 특히 열등감이 좀 심한 것 같더라구요.
정말 나이들면서 중요한 건 인간성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책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예요.
요즘엔 나름 열심히 리뷰를 쓰는데도 공감 받기가 쉽지 않네요.
또 땅 파야하나 했는데 언니가 구해줬어요. 고마워요.
아무래도 요즘 유행하는 남성상을 박목월 시인과 대비시킨 게
좀 그랬나 봐요.
아직도 꽃미남이나 짐승남이 더 좋은가 싶기도 하구요.ㅋㅋ

 

별점: ★★★★

 

전쟁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영화가 지닌 미덕은 아무래도 전장에서 피어나는 진한 인간애 때문에 보게되는 것 같다.

러닝타임이 다소 길다는 느낌이 들긴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영화에 감탄하게 만든다. 

감독의 우아하고도 장중한 느낌이 역시 이름값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한껏 중국 여인들의 매력을 잘 살렸다. 아무리 외국인 선교사가 지은 성당을 배경으로 했다지만 없는 게 없어 보인다. 어디서 그렇게 도구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없는 거 빼고 다 있어 보인다. 그게 흠이라면 흠일까?ㅋ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난징을 소재로 했는데 역시 일본을 쉽게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별점: ★★☆

영화가 겉보기엔 참 그럴 듯 한데 가만히 뜯어 보면 참 별볼 일 없어보인다. 보면서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 허리우드 영화가 다 그렇지 싶다.

가끔 작가가 등장하는 영화들이 있던데 난 그게 그다지 탐탁치가 않다. 이 영화도 그렇다. 물론 때로 작가의 글이 사람의 인식을 변하게도 하지만 그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글 읽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아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영화에선 작가가 뭐 대단한 일을 할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좀 오버란 생각이 든다.

영화는 1960년 대를 배경으로 했는데 노예해방 되고도 거의 1세기가 흘렀는데도 인종차별은 여전하다.

당시 백인 아이들은 거의 흑인 가정부에 의해 자라났다고 한다면 그 상황을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의식 있는 흑인 가정부라면 백인 어린 아기를 돌보면서 알게 모르게 평등사상을 심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그들에 의해 백인들을 고발하는 정도로만 보여진다. 뭐 대체적인 그 시대 상황을 그린 거겠지만 책도 난 영 신통치가 않았는데 영화도 별로였다. 그래도 책과 영화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영화가 훨씬 낫다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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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7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08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춘기 시절 나는 꼭 한 번 선생님을 사랑한 적이 있다. 그것은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었다.

 

아마 중학교도 초등학교처럼 남녀공학이었다면 내가 국어 선생님을 좋아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도 모를 일이다. 그때 나의 몸은 14살이었어도 생각은 그 보다 훨씬 앞섰으니 남녀공학을 다녔어도 또래 남자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고 쳐다보지도 않았을지도.

 

어쨌거나 여학교였으니 이성의 선생님을 좋아했던 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간 해서 첫 눈에 반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국어 선생님은 거의 첫눈에 반하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아주 멋지고 잘 생겼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저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가 완성했다던 다비드 상을 닮았다고나 할까? 그러면 잘 생긴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글쎄 내가 동양 사람이어서 그런지 서양인의 기준에선 다비드 상이 아름답다고 할지 모르지만 난 한 번도 그게 감동하리만치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냥 아름답다고 얘기하니까 그런가 보다 할 뿐.

 

특히 파마를 했다고 보기엔 너무 천연덕스러운 고수머리가 다비드의 머리를 연상케 했고, 갸름한 턱 선도 어딘가 모르게 닮아 보였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검은 뿔 테 안경을 쓴 것이 지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다소 엉성해 보이기도 했는데 나는 그게 상당히 매력적이면서도 순수해 보였던 것이다[1]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으니 국어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건 당연했다. 하긴 뭐, 초등학교 1학년 때 를 맞은 것만 제외하면 나는 어느 때고 국어 성적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국어 선생님이 좋았던 건,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내가 눈에 띄면 달려와 물어보라고 했다. 그 말이 어찌 그리도 내 마음에 들어와 박혔는지 나는 선생님의 그런 순수한 면이 좋았고 마치 성당의 신부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난 선생님 눈에 띄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지금 생각하면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수업 중에는 불쑥불쑥하곤 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점심시간을 공약했던 게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 무엇을 질문할 것인지는 며칠 아니 몇 주전부터 준비를 했고, 선생님을 어떻게 만나 질문을 할 건지 머리 속으로 시뮬이레션을 그려보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점심을 빨리 먹고 국어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찾았다. 마침 이층 복도 창문에서 아래를 살피고 있으려니 선생님은 학교 건물 현관에 계신 것이 발견이 됐다.

 

나는 혹시 입에서 반찬 냄새가 날까 봐 동그란 빨아 먹는 비타민 씨를 우물우물 급히 삼키고(그래도 입에서 반찬 냄새는 낫을 것이다. 그럴 땐 양치를 했던가 적어도 박하사탕 정도는 물어 줘야하는 건데), 선생님께 다가가 준비한 질문들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그것도 의자가 없어 계단 난간에 걸터앉아.

 

나는 무엇보다 질문을 핑계 삼아 선생님을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었다. 국어 시간 먼 발치서 선생님을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솔직히 그때 난 질문이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데 약간 휘청거릴 뻔했다. 내가 지금 뭘 한 건가? 정말 국어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 내가 아무리 국어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어떻게 이러기까지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내가 좀 놀라긴 했지만 그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얼마 안 있어서 국어 시험에서 내 생애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그것도 선생님이 고읜지 아니면 하다 보니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까지 시험 중 가장 까다롭고 난해해서 한 반에 90점 넘는 아이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내가 바로 그 손에 꼽을 아이들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그것도 문제 하나를 고치지만 않았어도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무슨 부화뇌동이었는지 마지막에 답을 고쳐 쓰는 바람에 아쉽게도 하나를 더 틀리긴 했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자랑스러운 얼굴들을 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난 정작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우연히 서점에 갔다 세계의 여러 유명 시인들의 시를 모아 놓은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 중 영국의 시인 예이츠[2]를 좋아했는데 그의 시 하늘의 융단이란 시를 읽고 있노라면 어쩌면 시어가 그처럼 영롱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외워버릴 정도였다.

                    

                                          하늘의 융단

                                     

                                             금빛 은빛

                                    하늘을 수 놓은 융단이

                               밤과 낮 어스름의 검푸른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 발 밑에 갈아 드리련만

                                   나 가난하여 꿈만 가졌기에

                                    그대 발 밑에 깔았으니

                                    사뿐히 밟으소서

                                    내꿈 밟고 가시는 이여

 

하늘

그대그렇게 읽기 시작한 시집이 몇 권 된다. 그리고 나도 이런 시를 써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습작 삼아 몇 편 써 보기도 했다그런데 2학기에 접어드니 국어 선생님은 교지(校紙)에 실을 글을 모집한다는 광고하고 다니셨다. 그러면서 원고를 반장에게 내든가 나에게 직접 내도 된 다고.

 

마침 써놓은 시도 있겠다 난 나의 시들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그 원고를 반장에게 낼 수도 있었지만 교무실로 들어가는 국어 선생님 뒤를 밟아 직접 드렸다. 원고는 가을 어느 날 냈던 것 같은데 교지는 2월 종업식에 맞춰 나눠준다고 하니 그 안에 내가 원고를 냈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거의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후에 일어났던 일들이 그것을 생각 못할 만큼 급박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불패의 화신 같았던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믿을만한 최 측근에게 권총을 맞았단다. 그건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 전날만해도 그런 징후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정말 울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그저 멍한 느낌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분위기가 먹구름이 낀 듯 침통했다. 몇몇 아이는 훌쩍훌쩍 울기도 했다. 이런 아이들 틈으로 꼭 그런 아이가 있다. 슬픔은 둘째치고 누가 울고 누가 울지 않는가 세고 있는 아이 말이다.

 

나는 침통은 한데 아직 눈물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도무지 뭐가 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날씨는 왜 또 그리 우중충한 건지. 반에 들어서자마자 그 아이는 너도 안 우는구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 말고도 울지 않는 아이가 있다는 말인데 난 그것을 헤아려 볼 사이도 없이 신경질적으로 안 울긴 누가 안 울어!”했다.

 

그렇게 말하고나니 약간 미안한 생각이 들긴 했다. 그렇게 화 낼 생각이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주워 남을 수도 없고, 일부러 심각한 척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자리에 가 앉았다. 그리고 이후에 우리나라에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는 지면상 말하지 않겠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국어 선생님의 결혼 소식이 나에겐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 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그토록 사모했던 선생님인데 대통령이야 또 뽑으면 되는 것이지만, 국어 선생님은 누구와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선생님은 내가 당신을 좋아한 것을 알았을까?

 

갑자기 선생님을 가까이서 느껴보겠다고 했던 나의 지난 날의 노력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하게 느껴졌고, 꽤 오랫동안 내가 그 선생님을 좋아했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또 의외로 충격에 강한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순간 침착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분명 선생님의 결혼 소식은 슬프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선생님을 좋아해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 보겠는가? 설혹 그런다고 해서 선생님과 데이트를 해 보겠는가? 나이가 어려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좋아하면 뭘 꼭 바래야 하는 것인가? 내 마음 아주 잠깐이지만 선생님을 좋아했던 그것 자체만으로도 좋은 것 아니겠는가? 그거면 됐다고 나는 어느새 나 자신을 다독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자상하고 좋은 분이셨다. 어느 비 오는 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우산도 쓰지 못하고 가는 나를 불러 버스 정류장까지만이라도 같이 쓰고 가자고 나를 부르셨었다. 하지만 나는 한사코 괜찮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결국 선생님도 나를 포기하고 다른 아이와 함께 우산을 쓰고 빗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때 마음 한 켠에 후회가 이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못 이기는 척 하고 선생님 우산 안으로 들어설 걸 그랬나? 하지만 그때 그러지 않기를 역시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날 선생님은 퇴근 시간도 아니었는데 비교적 일찍 교문을 나섰었다. 그런 걸 보면 결혼할 여자와 함께 살 집을 보러 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남의 남자가 될 걸 욕심 내 뭐 하겠는가?

난 그때 이후로 다시는 그 어떠한 선생님도 좋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어느덧 긴 겨울 방학도 끝나고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1학년의 마지막 날이 왔다. 그 동안 거의 잊고 지내다시피 한 교지가 드디어 나왔다. 상급 학교엘 진학하니 이런 것도 받아보고 어지간히 감격스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글이 실렸을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교지를 펼쳐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내 글은 단 한 글자도 보이지 않았다. 난 그제서야 그 가을 날 교지에 대한 국어 선생님의 세부 공지사항이 생각났다. 즉 선생님은 원고를 낸다고 해서 다 실리는 것이 아니라고 했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께 원고를 드리는 순간 그 말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설마 아버지도 감동해 눈물을 흘리셨다는 필력의 소유자의 글이 교지에 실리지 않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좀 씁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았다. 나는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몰라도 포기가 빠르고 금방 잘 잊어버린다. 단 학교 교지의 수준이 생각 보다 높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때 교무실로 들어가시던 국어 선생님의 뒤를 밟아 일부러 직접 전달한 나의 모습이 새삼 창피해 죽을 건만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반장한테 낼 걸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국어 선생님 손에 직접 쥐어드릴 생각을 했던 걸까?

 

그나마 다행인 건 선생님은 이제 결혼을 했고, 2학년 땐 다른 선생님이 국어를 가르칠 것이니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교지 역시 다시는 건 응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1] 나는 그 무렵 안경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적이면서도 선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난 아직도 안경을 쓰지 못하고 있고, 그런 생각도 크면서 점차 바뀌었다.  

[2] 윌리엄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아일랜드 시인 겸 극작가. 환상적이며 시적인《캐서린 백작부인》을 비롯하여 몇 편의 뛰어난 극작품을 발표했으며 1923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독자적 신화로써 자연(자아)의 세계와 자연 부정(예술)의 세계의 상극을 극복하려 노력했다.(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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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기침 2014-06-26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예이츠의 시를 보게 되네요. 좋은 밤요. 꾸벅^^

stella.K 2014-06-26 11:56   좋아요 0 | URL
푸른기침님, 반갑습니다.
예이츠를 아시는군요. 그러니까 더 반갑네요.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아 모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저 시를 중학교 때 외우고 잊고 있었는데
최근 이 글을 쓰려고 하다보니 얼추 생각이 나더라구요.
신기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