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의 <음식남녀>

얼마만에 다시 본 영화인지 모르겠다. 10년됐나? 15년 됐나? 처음 봤을 땐 지루했는데, 다시 보니 그도 괜찮다 싶다.

요즘 음식 잘 만드는 남자가 대센데, 그렇게 음식을 잘 만드는 아버지가 있다면 난 업고 다닐 텐데 영화에 나오는 세 자매는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어쩌면 그리도 날씬할까? 아버지가 그렇게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주면 적어도 세 자매 중 하나 정도는 통통하게 살아 올라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영화가 연극 같기도 하고 코미디 같기도 하다. 거의 말미에 가서 손녀 같은 아이에게 음식을 만들어 준게 인연이 돼서 딸 같은 그것도 세 자매와 언니 동생하고 지내던 여자와 결혼하는 아버지가 무슨 영국식 코미디 같다. 둘은 연애하는 장면도 없다. 더구나 여자의 엄마와 연결되나 보다 했는데 그렇게 치고 나올 건 뭐란 말인가?

그래도 영화 전반은 공감은 간다. 울엄니도 점점 미맹이 되어 당신이 하신 음식은 자꾸 짜다고 불평한다. 어떤 땐 간이 맞는데 싱겁다고도 하고.  그리고 어느 날 남이 하는 음식을 맛이 있다고 하고. 이런 게 다 인생 아니겠어?

엔딩도 꼭 연극처럼 끝난다. 별 세 개 반.

 

이준익 감독의 <소원>

이 영화는 사회 고발적 영화라기 보단 내 아이가 뜻하지 않은 성폭행을 당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그 아이를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가 실례를 보여주는 영화는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름 설득력을 지녔다.

그런데 피의자가 술 쳐먹고 난 내가 한짓을 모르겠다고 하면 12년으로 구형하는 거 좀 웃기지 않나? 아이의 평생을 망가뜨려 놓고 12년이라니. 그래서 아줌마들이 과격해지는 것이다. 저런 새끼 서울 광장에 매달아 놓고 거세시켜야 한다고. 우리나라 법은 정말 너무 무르다. 누구를 위한 법인지도 모르겠고.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모나지 않게 만들기는 하는데 분출하는 뭔가의 힘이 약하다는 느낌이다. 별 세 개다.

 

다시 보니 활 쏘는 남자의 근육질 자랑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역사를 적당히 얍삽하게 가미했다. 개봉 당시 말이 많았지만 지금 다시 봐도 그냥 볼만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오랑캐 조차 우리나라 배우를 쓸 거면서 오랑캐 말 쓰고 자막 다는 건 뭔가 웃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해외에 팔릴 걸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거겠지만.

어제 모 영화감독을 만났는데 요즘은 남의 나라 말에 자막을 쓰기도 하지만 굳이 안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관객들은 가슴으로 알아 듣고 웃는 단다. 번역도 잘 하면 모르겠는데 어떤 경우 안 쓰느니만 못한 경우도 있어 그렇게도 한다는 것. 나름 일리는 있어 보이긴 한데 난 외국어 알레르기가 있어 거지 같은 번역이라도 대충의 내용이라도 알아 듣는 것이 낫지 않나 싶다. 아무튼 언제부턴가 영화에서의 이 외국어 사용이 귀를 자극하긴 한다.  별 세 개.

 

사이코패스와 무식하고 바본데 집념 하나로만 똘똘뭉친 사람이 싸우면 어떻게 될까? 영화는 후자에 손을 들어준다. 

영화가 디테일이 약간은 부족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이민기도 사이코패스 역으로 결코 뒤지지 않는 연기를 펼쳐 보인 것 같긴한데 역시 이 영화는 김고은의 한판승이다. 김고은은 또 어디서 이 바보같고 순박하며 고집불통, 천방지축의 캐릭터를 연구해 냈던 걸까? 마치 그녀 안에 그런 영혼이 숨어 있기나 한 것처럼 연기를 잘 한다. 지켜볼만한 배우고, 이 배우가 영화를 살렸다. 

 

재밌는 건 초반에 이민기를 제거해 달라고 부탁 받은 어느 청부살인업자 처음엔 먹기만 하고 다소 모자라게 나와 진짜 이민기와 맞짱 뜨는 장면이 나올까 싶은데 제대로 맞짱 뜬다. 이렇게 짧은 장면이지만 관객에게 의문을 갖게 하고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좋은 영환 것 같다. 관객이 예상한대로의 영화는 별로다. 그건 소설도 마찬가지고,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영화를 보면 개봉관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tv에서 하면 육두문자는 음소거하고 보여준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또 어제 만난 영화 감독 얘기를 하자면, 영화는 1%의 교양인을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때로 욕이 난무하고 인간의 날것 그대로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우리나라 tv의 문제는 육두문자 발음 하나 제거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심각한 건 자막의 공해다. 특히 예능 프로에서 자막을 남발하는데다 그나마 철자 무시하고 소리나는대로 쓰고, 비문에 비속어까지 난리도 아니다. 그 문제는 해결할 기미도 보이지 않으면서 그까짓 영화에서 육두문자 음소거했다고 집나간 우리의 바른 말, 고은 말이 돌아오겠는가? 

특히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스릴러 영화면서 해피 엔딩인데 김고은이 마지막에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그야말로 비속어로 이루어졌다. 영화 제작진은 또 어디서 이런 비속어적 노래를 발굴해서 김고은으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했을까? 음제거를 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 보고 싶었는데 무슨 내용의 노랜지 알 수가 없어 아쉬웠다. 

이 영화 김고은 때문에 별 세 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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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4-0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들을 다 보신 거예요?
부지런하신 걸요...

첫 번째 영화가 가장 높은 점수네요.
저는 예전에 <밀양>을 참 흥미롭게 봤어요.
머리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죠.
인간의 심리를 잘 묘파했다고 봤어요. 그런 게 좋더라고요.

stella.K 2015-04-09 10:46   좋아요 0 | URL
음식남녀는 좀 오래된 영화긴 하지만
인생이 담겨있잖아요.
저도 이젠 나이가 드는지 인생을 반추하는 영화가 좋더라구요.
잔잔해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는 게 흠일 수도 있지만...^^

[그장소] 2015-04-08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몬스터 영화 좋았는데..이민기가 그동안 만들어 구워 놓은 자기들 보면..
저것들이 다 청부살인이란 건데..
그리고 살인이 일어나는 곳 도 일반 음식점.
이란 특성을 볼때..몬스터는 만들어진 이민기가 아닌 저런일이 일어나도 아무 반응없이 이웃들이 태평한 이 사회가 몬스터..라는 고발과 같다고 봤어요.
이민기는 잘못 길들여진 청부살인마.와 모자란 바보.들의 싸움인거지..그가 처음부터 몬스터는 아녔고..가족들 이..되려 몬스터스럽다고...느낀...제가 이상한지..ㅎㅎㅎ

stella.K 2015-04-09 10:54   좋아요 1 | URL
오, 그장소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정리가 되네요.
그렇지 않아도 이게 뭔 영환지 정리가 좀 안 되더라구요.
생각해 보니 제가 처음부터 보질 않았어요.
그냥 또 사이코패스 영환가 보다 했죠.
그런데 바보와의 대결이란 게 좀 흥미롭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 나중에 두 아들과 엄마와 식당에서 같이 술 마시다가
이민기 피 바가지 쓰고도 엄마가 넌 웃는 게 좋다라고 말할 때
섬짓한 광기가 느껴지긴 했어요.
저는 마지막에 김고은이 불렀던 노래가 궁금하더라구요.ㅋ

[그장소] 2015-04-0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가 알려준 욕섞인 노래..재미있더라고요..들으며 어디 구전민요인가?했어요.
가족들이 더 섬뜩해요.
이민기는 자신이 하나씩 죽이고나면 자기몸에 자해처럼 자국을 남겨요.
가족들의 냉정함도 이해하려고 끝끝내 참다
슬퍼하는게 보여요.반면 가족들은 얼굴을 자주 필요에의해 바꾸고요..ㅎㅎㅎ
살인마편에서서 변명해주는 제가 된거 같아서 어째 좀 그렇긴한데..ㅎㅎㅎ

stella.K 2015-04-09 14:58   좋아요 0 | URL
ㅎㅎ 아니어요. 님이 보는 게 맞을 거예요.
어찌보면 이건 현대 가족의 슬픈 자화상을 그렇게 표현한 것일 거예요.
공부해라. 돈 벌어라. 사람의 가치는 실종되고
결국 나중에 몬스터뿐이 더 되겠어요?
근데 저 같이 둔한 사람은 그걸 좀 이해 못하겠더라구요.ㅋ

[그장소] 2015-04-09 14:56   좋아요 0 | URL
둔하시긴요..그런식으로 현대가족상~일반적으로 보니 그렇구나..특수성 ㅡ살인 ㅡ이 끼지않아도 우리 현재의모습이 그렇다는걸.

바로 짚어주시잖아요.^^
전 좀..멀리놓고 봤는데..
줌업을 시켜주시네요.^^또한번 놀랍니다.^^

stella.K 2015-04-09 14:59   좋아요 1 | URL
아니어요. 이런 이해도 님께서 가르쳐 주시니까 가능했죠.
전 오히려 님께 놀라답니다.^^
 
스탠리의 도시락
아몰 굽트 감독, 파르토 A. 굽트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전 세계적으로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가 미국일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을 능가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인도다. 인도하면 못 살고, 못 먹는 나라라서 영화도 못 만들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영화를 그렇게 많이 만드는 나라니 만드는 영화마다 잘 만드는 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인도 영화를 나름 여러 편 본 것 같은데 보고 실망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훌륭했다는 말은 또 아니다.

 

어찌보면 내가 본 영화들은 인도의 수백 또는 수천 편의 영화 중 외국 자본 즉 허리우드 자본이 투입된 성공작만을 엄선해서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영화를 인도를 뜻하는 발리와 허리우드의 합성어 발리우드 영화라고 하지 않는가? 어쨌거나 내가 본 발리우드 영화들은 특징이 있고 그 특징을 발견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우선 결코 비극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절대 긍정으로 어려운 난관을 헤쳐 나간다. 어떻게 그렇게 절대 긍정일 수 있을까 비판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하도 보니(몇편 안되지만) 어쩌면 그것이 인도인의 밝은 국민성을 대변하는 것이겠구나 싶다. 

 

또 하나의 특징을 말하라면 그건 음악이다. 음악 역시 비장하거나 엄숙하거나 슬프지 않다. 밝고 경쾌하고 가사까지 붙어 있어 보고 있으면 꼭 뮤지컬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영화는 끝나고 군무까지 춘다. 무슨 영환지 기억에 없는데, 기차역에서 친절하게 군무까지 추고 있으니 그 영화의 여운을 당분간 간직하고 싶은데  '메롱, 영화 끝났지. 늬들은 지금까지 한편의 잘 생긴 영화를 보고난 거야. 자, 이제 깨어나라구.' 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군무는 군무대로 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인도 영화  우습게 보면 큰코 다친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굳이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그리 폭력적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를 보라. 사실감의 극대화를 위에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피가 뚝뚝 떨어지는지. 그런데 비하면 본 영화는 한편의 잘 만든 동화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한편의 순수한 동화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도의 어린 아이의 값싼 노동력과 굶주림을 알리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 치고는 영화가 너무 귀엽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영화는 2009년도에서 2010년도를 넘어가는 싯점이다. 내 기억으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던 것 같은데 영화 속 어린 아이들이 그 보다 어려 보인다. 모르긴 해도 초등학교 2, 3학년 아이들로 보이는데, 과연 인도는 몇살 때부터 도시락을 싸 가지고 학교를 다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영화를 보고 있자니 옛날  나 학교 때 도시락 싸 가지고 다녔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눈물 젖은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녀 본 사람이 아니라면 도시락에 대해 논하지 말라. 하지만 나의 도시락은 여느 눈물 젖은 도시락과는 사뭇 다른 것이긴 하다. 그날의 도시락 반찬이 무엇이냐에 따라 나를 포함한 우리 4남매는 도시락을 가져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시절 도시락 반찬의 대표 메뉴는 쏘세지, 계란 반찬, 장조림이면 특급이었다. 그리고 콩자만, 어묵조림, 감자조림, 소금 김이 그 뒤를 이었고, 제일 없어보이는 반찬이 김치였다. 그건 못 사는 아이들이나 싸 가져가는 반찬인 줄 알았다. 물론 우리가 아주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후진 반찬을 싸 가져가야 하나? 그럴 바엔 굶거나 빵을 사 먹는 것ㅇ이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우리가 엄마도 야속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쏟아지는 엄마의 서릿발이 성성한 푸념이 아직도 귀에 맺혀 있는 듯하다. "야, 이것들아, 늬들이 부모 공경을 할 줄 알아? 이담에 효도를 할 거야? 공부를 잘 하기를 해? 도시락 반찬 아무거나 싸 주면 가져갈 일이지, 왜 김치라고 안 가져가? 아주 침치 싸 주면 독약든 줄 알아. 못 된 것들!" 물론 우린 우리대로 그 성성한 서릿발을 견디느라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뭐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나 싸 가져 가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엄마랑 아버지랑 서로 좋아서 나놓고 이제 와 김치나 싸 가지고 가라는 게 말이나 되는가? 어떤 집 자식은 날 때부터 금수저도 해 준다더만 그러지 못할 망정 구박을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엄마는 그런 도시락이라도 새벽부터 싸 놨는데 안 가져가니 속상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공로가 없지 않은가? 그러제 누가 싸 놓으라나? 밥 한끼 굶는다고 죽거나 쓰러지는 것도 아닌데. 별 걱정을 사서 한다. 물론 난 나의 도시락 거의 말년에 가끔은 김치찌개도 싸 가지고 갔다. 그 시절 내가 김치찌개를 너무도 좋아하는 까닭에. 이만하면 도시락으로 효도한 사람은 나뿐이 없을 걸? 물론 엄마가 그걸 알아 줄리 없지만. 엄마들의 레파터리는 다 똑같지 않나? "늬들은 다 똑같애!"

 

그런데 이 영화 옛날 우리 드리마에서 봄직한 장면을 똑같이 재현한다. 자존심 때문에 점심을 못 싸 온 우리의 스탠리, 아이들에겐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겠다고 하곤 허기진 배를 수돗물로 채운다. 수돗물로 주린 배 채우기. 그건 세계 어디를 가니 공통인가 보다. 그래도 나를 포함한 우리 4 남매는 도시락을 안 싸 왔다고 해서 학교에서 수돗물로 주린 배를 채우진 않는다. 그건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가난하고 헐벗었다는 걸 나타내기 위한 방편이고 우린 그 정도는 아니다. 배고픈 배 물로 채워봤자 귀찮게 화장실만 다닌다. 

 

그래도 영화속 아이들 꽤 으리있다. 스탠리가 자꾸 도시락을 안 싸오고 점심시간이면 겉돌로 있으니 그 이유를 묻는다. 스탠리는 아버지가 돈 벌러 타지에 나가 계시는데 엄마가 얼마 전 따라 가서 밥 해 줄 사람이 없단다. 그러자 반 아이들은 흔쾌히 그럼 엄마가 돌아오실 때까지 우리 도시락을 나눠 먹자고 한다. 반아이들의 그런 예쁜 생각은 언제부터 가졌던 걸까? 하지만 우리의 스탠리가 친구들의 도시락을 함께 먹는 여정은 순탄치마는 않다. 식탐대마왕이란 별명을 가진 베르마 선생의 방해와 구박이 장난이 아니다.

 

 

 이 베르마 선생 벼룩의 간을 내먹지 어디 먹을 게 없어서 학생들의 도시락을 대놓고 탐을 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일견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맛 있는 음식 앞에 구미가 당기는 건 다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너 때문에 내가 먹을 수 없다는 걸 지나치게 드러내는 건 확실히 탐욕이고 졸렬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것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을 아이들이 아니다. 매번 이 탐식대마왕 선생을 따돌리고 스탠리와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는 건 쾌감이고 특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중에 아이들의 잔꾀에 속은 줄 알고 분해하는 베르마 선생은 급기야 스탠리의 따귀까지 때리고 모욕당했다고까지 한다. 그런데 잔꾀는  부릴 줄 알아도 아이들이 진짜 순박하다. 선생님의 그런 탐식에 대해 반항하거나 비난하는 아이들이 없으니. 심지어 스탠리는 이 선생님뿐만 아니라 학교 모든 선생님께 점심도시락을 대접하는 기염까지 보인다. 결국 그 때문에 베르마 선생은 선생직을 물러나기까지 했다. 스탠리의 완벽한 승리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사뭇 우리와 다른 세계를 엿본 느낌이다. 가난하고 없는 것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없어도 함께 나눌 수 있는가 없는가가 빈부를 가를뿐이다. 그리고 인도가 가난하면 얼마나 가난한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의 점심 도시락을 보면 천차만별이긴 하다.  하지만 정말 좀 있는 집안의 아이들은 찬합을 몇층으로 싸 온다. 한 사람 앞에 하나씩만 펼쳐 보아도 한 상 가득하다. 그것을 나눠먹는 맛이란 나눠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옛부터 광에서 인심난다고 영혼을 나눠먹는 맛이랄까?

 

요즘엔 아이들에게 그런 기쁨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나 같이 급식(그것이 무상이든 유상이든)을 하는 터라 밥도 반찬도 똑같다. 다름의 맛과 어우러짐으로 하나 되는 즐거움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 같다. 특히 요즘 아이들의 무상 급식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건 끼니를 거르는 건강이나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고 아이들의 입맛을 국가가 관장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처럼 보여진다. 그것 때문에 우리나라의 엄마들 시위하는 걸 보면 글쎄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도시락 세대라 그런지 그냥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든다. 하긴, 나 때만해도 정말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급식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럼 매번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는 번거로움은 없을 것이며, 내 이웃의 도시락 반찬을 탐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그랬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어떤 것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나의 옛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도시락을 못 싸 갈 형편도 아니었다. 구내식당도 있으니 점심 한끼 해결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지은 죄가 있고, 성인이 됐으니 도시락 정도는 내 손으로 쌀 수도 있을 텐데 귀찮아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그러자 친구들이 이를 불쌍히 여겨 나 더러 그냥 수저만 준비해 오란다. 그래서 그 황막한 대학시절을 무사히 넘긴 적이 있었다. 스탠리가 그런 나의 과거를 알았더라면 숟깔로 내 머리통을 한대 갈려줬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밥 투정이냐고. 그래도 어쨌든 밥 나눠줄 친구가 있다는 건 스탠리나 나나 똑같지 않나? 확실히 밥은 서로 나눠야 맛이다.

 

요즘 요리 프로, 요리 음식이 대센데 이 영화도 못 먹는 아이들을 위한 계몽 영화라면서 지글지글, 보글보글 요리의 향연이 펼쳐지는 건 어쩐지 묘한 아이러니다. 계몽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자체는 좋다. 인도 사람들의 낙천성이 느껴지고, 보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게 하는 마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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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4-0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도 영화 참 재밌게 본 적 있어요. 극장에서.(제목이 길어 정확한 제목을 모르겠어요.)

대학시절에 도시락을 싸 온 학생들이 많았나요?
저희 때는 거의 도시락을 싸 오지 않고 사 먹었어요.
구내식당이 쌌지요.

두 시간쯤 보는 영화 한 편에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게 신기해요...^^

stella.K 2015-04-09 10:58   좋아요 0 | URL
그때 사겼던 친구들이 다 밥을 싸오더라구요.
혼자 사 먹기도 뻘쭘하고.
그랬더니 숟깔만 챙겨 오라고 해서...
그 친구들 지금 생각하면 새삼 고맙긴 하더라구요.

인도가 나름 영화는 잘 만드는 것 같더라구요.
그냥 즐겁고 활기찬 영화가 필요하면 인도 영화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자칫 무플이 될지도 모르는 글에 댓글 달아 주셔서 고마워요.ㅋㅋ
 

앞으로 서재에 댓글 남기시려거든

 

신중하게 남겨 주십시오.

 

   썼다 지워도 그 흔적은 알라딘 메인 화면 상단의

 

<알림센터>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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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6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4-06 12:24   좋아요 0 | URL
아,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어떤 사람이 저의 페이퍼에
댓글을 달았다가 지웠더라구요.
예전엔 지워도 흔적이 남지 않았는데 지금은 알림센터에 남아 있더라구요.
거 알면 얼마나 민망하겠어요?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구, 저도 불쾌한 건 아니지만 별로 유쾌한 일도 아니죠.
그래서요.^^

마립간 2015-04-06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좋은 댓글이라고 생각되는 글을 남기셨다 지우는 분들이 가끔 계셔요. 알림센타와 메일에 부분적으로 남은 글을 보고 전체 내용을 추정하기도 하죠.

stella.K 2015-04-06 15:56   좋아요 0 | URL
이런... 거 누군지 모르지만 소심한 성격이신가 봅니다.
좋으면 좋다고 하면 더 좋을텐데 그걸 지우다니. ㅎㅎ
 
끌로끌로
플로렁 에밀리오 시리 감독, 브누아 마지멜 외 출연 / 에스와이코마드 / 201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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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영화는 만들어 봤자 반 타작이란 말이 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잘 만들어 봤자 중간 정도 밖엔 못한다는 말이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그럴까? 내가 본 몇 편 안되는 전기 영화도 대체적인 평점이 별 3개를 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영화 그 높지 않은 전기 영화치곤 꽤 괜찮게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의 유명한 뮤지션 클로드 프랑소와의 생애를 다뤘다. 뮤지션의 생애를 다루었으니 음악이 깔리는 건 당연지사. 그 음악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루하지가 않다. 게다가 프랑스 영화를 좋아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클로드 프랑소와가 누구냐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당대 유명한 뮤지션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음악이 아니면 나머지 나라의 음악을 제 3세계 음악으로 가르는 우리나라 풍토에선 알 수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귀에도 익숙한 그 유명한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를 이 사람이 처음 불렀다는 것을 알면 그나마 조금 친근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My Way>가 프랭크 시나트라가 원곡자가 아니고 프랑스 가수의 노래라는 건 생뚱맞다 못해 속고 있었다는 느낌마져 든다. 난 한 10여 년전부터 <세상의 모든 음악>을 자주 듣고 있는데 알다시피 그 음악 프로는 세계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방송이다. 거기서 가끔 바로 이 <My Way>의 불어 버전을 듣곤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이 곡이 너무 유명하니까 프랑스의 어느 뮤지션이 불어로 불었나 보다 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봤던 며칠 전에야 내가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다시 정리를 하건데, 그 유명한  <My Way>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처음 부른 것이 아니고 프랑스의 뮤지션 클로드 프랑소와가 불렀다.

 

그건 또 차치하더라도 난 언제부턴가 영어 버전 보단 불어 버전을 더 좋아하게 됐다. 프랭크를 비롯한 미국 가수가 부른 건 안정감은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너무 미끈하다. 하지만 프랑스 버전은 다소 거친 듯해도 절절함이 베어 있다. 그래서 난 프랑스 버전을 더 좋아한다. 

 

그렇다면 이 클로드 프랑소와란 뮤지션은 프랑스에선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일까?  그의 생년을 보면 1939년생이다. 생각해 보면 너무 오래된 가수라 우리가 모를 것도 당연하다 싶다. 생년으로쳐서 활동 년대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에선 당대 김정구나 현인을 떠올리지 싶다. 하지만 또 요즘 사람들에게 김정구나 현인을 얼마나 낮선 흘러간 시대의 가수인가? 그냥 존재감만으로 말하자면 글쎄, 엘비스 프래슬리나 요즘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에서 80년 대초 유명했던 레이프 가렛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던데 뭐 프랑스 내에선 그 정도의 존재감은 아니었을까?  

 

그의 음악을 들은 여자들은 그야말로 전기에 감전되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열광하는 것을 보면 예전에 클리프 리챠드나 레이프 가렛 같은 가수가 내한 하면 우리 나라 여자 팬들 속옷 벗어 던져 주고, 패닉 상태에 빠져 병원에 실려가고 그것도 모자라 오줌까지 싼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과연 프랑스의 여자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당시 6700만장의 음반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건 모르긴 해도 엘비스 프래슬리를 능가했을 법도 하다.

 

 

 

그런데 클로드를 연기했던 브누아 마지멜이란 이름도 생소한 이 배우 보면 볼수록 어딘가 모르게 누군가를 닮았던 생각이 든다. 그건 다름아닌 <백 투 더 퓨처>에 나왔던 마이클 J 폭스다. 이미지도 비슷할 뿐만 아니라 체구도 닮았다. 물론 분명 그는 클로드 프랑소와를 많이 닮아 캐스팅 되었을 것이다. 대사에도 자신은 체구도 그리 크지 않다는 뭐 그런 뜻의 대사를 한 번 치던데, 이럴 때 우리는 당대 유명했던 프랑스 가수를 기억해 주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마이클 J 폭스나 기억해 주고 앉았으니 프랑스로선 아쉬울 법도 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달리 문화 제국주읜가? 그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란 말이다.

 

영화 스토리는 다소 뻔한데가 있긴 하다. 타고난 황태자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물고 타고 난다던데, 클로드는 타고난 뮤즈다. 클로드를 연기했던 브누아도 브누아지만, 클로드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아역 배우가 잠시 나오는데 봉고라고 그러나? 손바닥으로 치는 작은 타악기에 맞춰 현란한 발놀림을 선사하는데 저게 진짜 자기 춤인 건지 아님 동영상에 무슨 짓을 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정말 깜빡 빠져들게 만든다. 그것으로 클로드가 타고난 꾼임을 영화는 자랑한다. 그 밖에 음악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여성 편력은 뮤즈라면 전매 특허 아닌가? 

 

그런데 역시 재인박명이라고 했던가? 클로드가 나중에 목욕탕에서 샤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유난히 카메라가 뭔가 시간을 끌며 천천히 보여준다. 여기서 뭔가 있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뭔가 있다. 그 뒤에 보여지는 팬들의 오열은 흡사 또 엘비스 프래슬리나 몇년 전 유명을 달리한 마이클 잭슨이 죽었을 때를 연상케 한다. 

 

거의 엔딩에서 클로드가 부르는 '마이 웨이'가 참 인상적이다. 모르긴 해도 영화는 이 한곡을 부르게 하기 위해 2시간 넘는 시간을 달려 온 것 같고, 프랭크 시나트라에게서 이 곡의 명예를 다시 찾기 위해 영화를 만든 건 아닌가 싶다. 

 

프랑스 노래를 몰라도 노래 자체는 미국의 팝송을 연상케 해 흥겹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열연이 돋보여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제목 '끌로끌로'는 그의 팬들이 공연 때 연호했던 그의 애칭이다. 이 영화 강추다!  

 

부언하자면, 별 네 개는 솔직히 많고 세 개 반이 적당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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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4-0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능력자시네요. 영화 한 편으로 이렇게 길게 쓰는 것도 쉽지 않지요.
요즘 종횡무진으로 활동 중이시네요. 그래선지 와우! 방문자가 많아지셨고요.
사람마다 능력이란 게 다 다른 것 같아요.
저는 기어가고 있어요.
그래도 님께 축하드리고 싶어요. 기분 좋게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stella.K 2015-04-03 14:57   좋아요 0 | URL
아이고, 무슨 말씀을...ㅠ
그냥 영화가 괜찮더라구요.
언니도 기회되시면 한 번 보세요. 후회 안 하실 것 같아요.

방문자 수 높은 건 일시적인 걸 거예요.^^
 
팔월의 일요일들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괜히 호기를 부렸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 프랑스 문학을 좋아한다는 것 하나를 믿고 이 책에 도전했던 나는 노벨상 수장작은 여전히 넘지 못할 사차원의 벽이라는 걸 확인하는 것에 그쳤다고나 할까? 

 

그렇지 않아도 노벨문학상은 항상 나에겐 넘사벽이었기에 해마다 누가 노벨문학상을 받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소리겠지만, 문학이 아무리 훌륭해도 독자가 이해할 수 있고,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건 그저 선택되길 기다리는 문화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해마다 누가 노벨 문학상을 받건 그건 개인의 영광일 뿐 나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거라고 못 박고 살아왔다. 그런데 프랑스 문학을 선호하는 내가 이 작품에서 나의 이런 생각에 스스로 발목잡힌 느낌이다. 왜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면서 노벨 문학상은 읽어 줄 수 없는 것인가? 좌절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너무 모호하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평하는 사람들은 안개속을 헤메는 것 같다고 했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과연 이 안개속을 헤메는 듯한 모호함이 과연 문학적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원래 노벨 문학상의 오만함을 감안하더라도 독자와 소통할 수 없는 문학에 나는 가치를 두지 않았다. 하긴 그렇더라도 오만한 작가에 오만한 독자는 있게 마련. 오만한 독자가 보기에 나를 또 얼마나 하찮게 볼 것인가?

 

하지만 분명한 건 파트릭 모디아노는 매력적인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를 가리켜 기억과 시간의 작가라고 하지 않는가? 원래 기억은 모호한 법이다. 같은 사건이라고 해도 사람들 저마다 기억하는 것이 다르고 의미 부여가 다르다. 이것을 그만의 언어로 육화시킨다는 건 확실히 매력적이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만해도 얼마 전 좀 우스운 일이 있었다. 예전에 연극을 할 때 함께 일했던 연출가 N과 새롭게 뭔가를 해 보려고 했었다. 세월이 약이라고 함께 할 때는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할 정도였는데 지나놓고나니 좋은 기억만 남는 것을 보면 분명 N은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하지 않은 세월이 10년이고 보면 그동안 그도 많이 다듬어졌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실제로 나를 대하는 태도도 예전만 같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이 중요한 '일'을 대하는 태도가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달라져야 우린 옛날로 돌아가지 않고 보다 즐겁고, 의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순간 툭하고 비어져 나와 나의 감정을 자극했고, 내가 그와 함께 다시 일하려고 했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또한 그것은 그 안에 잠자고 있는 야생마 같은 기질을 건드린 거란 걸 알았을 때 난 시간을 되돌려 옛 기억의 블랙홀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온갖 잡다한 감정들이 꿈틀대며 튀어 나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문득 헤어졌던 연인이 서로를 그리워 하면서도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도 더불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 것처럼 일에서 만나고 알게된 관계도 세월 지나면 잊혀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았던 것이다.

 

나의 그 기억은 분명 또렷하고 유쾌한 것만은 아닌데 그래도 훗날 N과 같이 다시 일 해 볼 생각을 했던 것을 보면 내가 그를 아주 싫어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그가 확실한 그인 건 맞는 것일까? 지금의 N은 뭐고 과거의 그는 또 뭐란 말인가? 뭐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나 역시 파트릭 모디아노는 아니어도 기억의 작가란 타이틀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좀 우스운 얘기긴 하다. 

 

아무튼 파트릭 모디아노는 분명 나에겐 어려운 어려운 작가지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자기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한 작가임은 틀림없다. 그런 작가를 나는 언제쯤이면 '아, 이런 작가였어?! 하며 놀람과 환영의 마음으로 내 안에 모셔들이게 될지 모르겠다. 훗날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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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01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소설은 전체적으로 문체가 관념적인데다가 문장이 길어서 읽기가 참 힘들어요.

stella.K 2015-04-02 11:16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야.ㅋ
그래도 어떤 프랑스 문학은 읽히는 게 있거든.
이 책 읽으면서 만만히 볼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겠더군.
그래서 난 노벨문학상이 싫기도 해. 순전히 개인적 취향이겠지만
너무 어렵거든. 펄벅이 문학상을 받을 때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은데...
아무튼 이 책은 제목은 매혹적이긴 한데 함부로 권할 순 없을 것 같더군.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