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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일요일들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괜히 호기를 부렸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 프랑스 문학을 좋아한다는 것 하나를 믿고 이 책에 도전했던 나는 노벨상 수장작은 여전히 넘지 못할 사차원의 벽이라는 걸 확인하는 것에 그쳤다고나 할까?
그렇지 않아도 노벨문학상은 항상 나에겐 넘사벽이었기에 해마다 누가 노벨문학상을 받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소리겠지만, 문학이 아무리 훌륭해도 독자가 이해할 수 있고,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건 그저 선택되길 기다리는 문화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해마다 누가 노벨 문학상을 받건 그건 개인의 영광일 뿐 나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거라고 못 박고 살아왔다. 그런데 프랑스 문학을 선호하는 내가 이 작품에서 나의 이런 생각에 스스로 발목잡힌 느낌이다. 왜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면서 노벨 문학상은 읽어 줄 수 없는 것인가? 좌절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너무 모호하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평하는 사람들은 안개속을 헤메는 것 같다고 했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과연 이 안개속을 헤메는 듯한 모호함이 과연 문학적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원래 노벨 문학상의 오만함을 감안하더라도 독자와 소통할 수 없는 문학에 나는 가치를 두지 않았다. 하긴 그렇더라도 오만한 작가에 오만한 독자는 있게 마련. 오만한 독자가 보기에 나를 또 얼마나 하찮게 볼 것인가?
하지만 분명한 건 파트릭 모디아노는 매력적인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를 가리켜 기억과 시간의 작가라고 하지 않는가? 원래 기억은 모호한 법이다. 같은 사건이라고 해도 사람들 저마다 기억하는 것이 다르고 의미 부여가 다르다. 이것을 그만의 언어로 육화시킨다는 건 확실히 매력적이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만해도 얼마 전 좀 우스운 일이 있었다. 예전에 연극을 할 때 함께 일했던 연출가 N과 새롭게 뭔가를 해 보려고 했었다. 세월이 약이라고 함께 할 때는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할 정도였는데 지나놓고나니 좋은 기억만 남는 것을 보면 분명 N은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하지 않은 세월이 10년이고 보면 그동안 그도 많이 다듬어졌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실제로 나를 대하는 태도도 예전만 같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이 중요한 '일'을 대하는 태도가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달라져야 우린 옛날로 돌아가지 않고 보다 즐겁고, 의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순간 툭하고 비어져 나와 나의 감정을 자극했고, 내가 그와 함께 다시 일하려고 했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또한 그것은 그 안에 잠자고 있는 야생마 같은 기질을 건드린 거란 걸 알았을 때 난 시간을 되돌려 옛 기억의 블랙홀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온갖 잡다한 감정들이 꿈틀대며 튀어 나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문득 헤어졌던 연인이 서로를 그리워 하면서도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도 더불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 것처럼 일에서 만나고 알게된 관계도 세월 지나면 잊혀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았던 것이다.
나의 그 기억은 분명 또렷하고 유쾌한 것만은 아닌데 그래도 훗날 N과 같이 다시 일 해 볼 생각을 했던 것을 보면 내가 그를 아주 싫어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그가 확실한 그인 건 맞는 것일까? 지금의 N은 뭐고 과거의 그는 또 뭐란 말인가? 뭐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나 역시 파트릭 모디아노는 아니어도 기억의 작가란 타이틀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좀 우스운 얘기긴 하다.
아무튼 파트릭 모디아노는 분명 나에겐 어려운 어려운 작가지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자기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한 작가임은 틀림없다. 그런 작가를 나는 언제쯤이면 '아, 이런 작가였어?! 하며 놀람과 환영의 마음으로 내 안에 모셔들이게 될지 모르겠다. 훗날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