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수업 -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질문
박웅현 외 지음, 마이크임팩트 기획 / 알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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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그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 1월, 이틀에 걸쳐 한 지식 컨퍼런스가 열렸고, 거기에 무려 4천여 명이 참가 15시간 동안 9명의 연사들이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읽고 있자니 과연 그 행사가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그런 행사가 있는 줄 알았다면 나도 한번 기웃거려 봤을 것도 같다.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하도 뜨거우니 이젠 '인문학'이란 단어를 넣지 않은 책이나 강의는 관심도 끌지 못할 실정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하도 인문학, 인문학 하니 그것에 대한 피로감도 없지 않다. 그럴 경우 우린 꼭 따져 묻는다. 그거 하면 돈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고. 분명 인문학이 그저 이론만을 소개하는 정도라면 그건 죽은 학문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엇이든 각성하고, 적용 가능해야 그 학문은 살아있는 것이 된다. 사실 많은 책들이 인문학을 다루고 있다지만 너무 전문적이고, 깊이만을 추구하다 보면 보고서 형식에서 끝나버릴 수가 있고 따라서 넓게 바라보는 시야가 부족할 수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 울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런 컨퍼런스가 유용하겠다 싶다. 읽다보면 뭔가 깨어나는 느낌이고 퍼즐이 맞혀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우린 흔히 지식의 깊음만을 추구하지 넓음은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 나온 9인의 지식인들은 나름 그 분야에선 실력자고, 여러 많은 지식과 경험을 압축시켜 들려주고 있어 유용하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독특한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사고해야 얻는 것들을 단시간내에 속성으로 끌어내려고 하는데 탁월하다. 그게 결국 우리나라 교육의 맹점이기도 한데, 질문하지 않고 그러면 그런 줄 아는 것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피라이터 박웅현의 '왜는 왜 필요하가'는 (실제로 컨퍼런스에서 첫번째 타자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뭔가 문을 여는데 적합한 내용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요즘 사회가 스팩을 중요시 하고 있는데 과연 스팩이 중요한지, 왜 쌓으려 하는지를 이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하므로 스펙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죽으면 하나 쓸모도 없어지는 것ㅣ다. 그렇다고 허무주의를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아모르 파티! 즉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살라고 조언한다. 

 

그는 인생을 100으로 봤을 때 90은 이미 존재하는 기존이요, 9는 이미 이루어진 기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단 1만이 미성, 즉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바로 이 1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은 어떻게 하는가? 이미 그렇게 생겨 먹어 어찌 할 수도 없는 것에 지레 분노하고 좌절하던가, 아직 이루지 못한 그 1에 대해서는 겁내하거나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가장 뜨끔했던 건 '우리는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의 진중권 편이다. 읽고 있자니 나는 첫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나 투표에 참여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 안한 것 같다. 왜 몇 번 밖에 안 했냐고 한다면 답은 뻔하다. 찍을만한 사람이 없고, 찍어 준다고 해도 그 사람이 정말 일을 잘할 사람인지 확인할 길이 없으며, 무엇보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 방송은 하루가 멀다하고 정치인들의 치부와 막말 파문 등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가까운 미래에 저런 사람들에게까지 찍어 줄 표는 없다는 것. 찍을 사람이 없는데 투표를 독려한다는 건 강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투표를 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투표를 하지 않을 권리도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럴듯한 변명이라고 해도 내가 정치에 관심없다는 것과 게으름은 피할 수 없는 나의 진실이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진중권은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어찌나 논리적인지 반박을 할 수가 없게끔 만든다. 

 

사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한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정치는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냉소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른 감시와 관심을 가져 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린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안타깝고 위태롭게 느낀 건 '자본주의가 정의로울 수 있는가'의 장하성의 부분이 아닌가 한다. 사실 나는 정치 못지 않게 모르는 것이 경제다. 그런데 장하성의 말을 들으면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 지경이 된 거야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하니 새삼 이 말을 다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그의 말 중 인상적인 건, 이미 유럽은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이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없어지면 큰 일 날 것처럼 철저하고 처절하리만치 대립하여 파벌과 계파 간의 갈등을 끊임없이 조장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배후엔 기득권의 암투와 유언비어가 남발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나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모르는 것이 결코 약이 될 수 없음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하성은 희망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대충 얼버무리는 느낌인데 그게 시간에 쫓겨서 그런 것인지 아직까지 이렇다 할 확실한 희망에 도달하지 못해서인지 알 수가 없다. 난 몇 년 전 우연찮게 그의 책을 손에 넣은 일이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도무지 읽을 기회를 갖지 못해 누가 읽겠다고 하기에 내 준 적이 있다. 그게 좀 후회가 된다.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을, 최근 내가 책을 너무 함부로 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재밌게 읽었던 것은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의 고미숙의 부분이다. 그는 스스로를 고전평론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동양철학이나 의학에 해박한 인문학자다. 특히 명리학에 관심이 많은가 본데 나 역시 근래에 들어서 뭔가 인생의 비밀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생의 비밀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걸 알지 못하고 죽는다면 우리가 개나 돼지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인문학 또한 공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렇게 읽고 있는데 읽다보니 고미숙은 그런 말을 한다. 연애는 운명의 신비 중 가장 뒤떨어진 것에 속한다. 내가 어떤 리듬을 갖고 내 운명을 창조할 것인가가 중요하지 단순히 누군가를 만나는 게 목표라면 설령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연애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변태 아니면 권태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105p)라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질 운명이라면 모를까 연애를 못할까봐, 결혼을 못할까봐 지레 조바심내거나 그와는 반대로 일부러 도망치거나 3포 세대라고 미리 포기하거나 하진 말자. 세상이 내가 정한대로만 된다면 그 얼마나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이 될 것인가?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시야가 좁고 내가 무탈한 삶을 살면 세상도 그러한 줄 알고 살기 쉬운 세상에서 내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아 흡족했다. 책 말미에 가면 환경학자 안병옥 씨가 가수 홍순관의 노래 '쌀 한 톨의 무게'를 소개해 놓고 있다.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홍순관의 노래 '쌀 한 톨의 무게' 중                             

그러면서 안병옥은 그것은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주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고 말한다. 바람, 천둥, 비와 햇살, 외로운 별빛, 농부의 땀 그리고 우주를 나에게로 연결시켜주는 생명의 다리며 그래서 쌀 한 톨을 먹는다는 것은 나와 세계 그리고 우주와 접속하는 일이 된다 (311p)고 했다. 우리가 인문학을 하는 것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세상을 좀 더 의미있게 조망하고, 작은 것에서도 우주를 발견하는 일. 자연과 공동체를 생각하기 위해 우린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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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7-1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쉽네요. 제가 어제 책 세 권을 주문했거든요. 이 책도 함께 주문했으면 좋았을 뻔했어요.
이 리뷰를 보면 이 책을 사고 싶고, 저 리뷰를 보면 저 책을 사고 싶으니...
독서광이 되어야 할 텐데 단지 책광이어요. ㅋ
책 대신에 이렇게 리뷰로라도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 정리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stella.K 2015-07-12 19:5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언니 마음이 제 마음이어요.
근데 전 요즘 알라딘 중고샵에 꽂혀서 새로 들어 온 중고책들이
더 사고 싶더라구요. 개인으로 하는 중고샵 보다
배송비도 싸고 예전에 찜만하고 사지 못한 책 싸게 나온 거 보면
정말 사고 싶더라구요. 하지만 적립금이 없어서리...ㅠ
그나마 없는 게 낫겠다 싶어요. 안 그랬으면 책탐이 발동했을 테니.
그렇지 않아도 지난 달 적립금이 생겨서 털어서 샀는데 말입니다.ㅠㅋ

cyrus 2015-07-12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만 느끼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소위 ‘인문학’이나 ‘철학’을 한다는 똑똑한 사람들의 글이나 말을 보면 ‘생각’ 또는 ‘사유’라는 단어를 남발한다는 걸 느껴져요. 말로만 생각하라고 권하고 있을 뿐, 현실 문제 앞에서 발을 빼는 듯한 태도가 아쉬워요. 이러니까 철학을 현실에 동떨어진 낡은 학문으로 보는 편견이 사라지지 않아요. 고미숙 씨의 칼럼을 보면서 실망했어요. 한 번 읽어보세요.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8566

stella.K 2015-07-13 12:04   좋아요 0 | URL
네가 읽어 보라고 해서 읽어 봤는데 난 잘 모르겠네.
맞는 얘기한 것 같은데... 물론 현실에 대한 비판만 있지 이렇다 할
실천책이 없다는 거 그걸 말하는 건가?

네 생각이 맞아. 나도 동감해. 그런데 이 책 제목을 대했을 때
얼마나 생각을 안하면 이런 제목을 달고 나왔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
생각 없이 사는 사람도 많고 우리나라 교육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아니잖아. 그런 세상인 줄만 알았는데 이런 지식 컨퍼런스에 4천 명이 모였다니
좀 놀랍긴 했어. 마치 옛날 7, 80년대 기독교 부흥회나 사경회가 생각이 나더군.
우리나라 저력있는 나라야. 나는 생각만이라고 하고 살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
나만해도 나이가 드니 생각을 잘 안 하는 것 같아. 머리가 굳는다는
생각이 들더군.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말야. ㅠ

2015-07-18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8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9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9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 중국 문화대혁명을 헤처온 한 남자의 일생
옌거링 지음, 김남희 옮김 / 51BOOKS(오일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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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영화 <5일의 마중>을 감명 깊게 본적이 있어 이 책이 나왔을 때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난 소설이 영화화 되는 것에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소설이 영화화되면 나름 좋은 것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소설을 영화화 하면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 이야기가 잘 나가다가도 마지막에 뭉개져버리는 영화나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가? 어쨌든 이런 저런 장점을 들어 언제부턴가 그것을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풍조가 있는 것 같아 마뜩치 않았다. 그렇게 해서 영화 또는 드라마화하니 사람들이 더더욱 소설을 안 읽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기우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영화와 소설이 공생관계를 너무나 잘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가 뜨면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유를 받고 있다. 분명 영화가 다 담지 못하는 걸 소설은 섬세하면서도 자유롭게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 자유롭다는 것은, 영화는 과학이고,  2시간 안팎이라는 제약을 받기 때문에 그 흐름에 있어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하지만 소설은 작가가 쓰고 싶은대로 맘껏 쓸 수가 있다. 물론 이것은 내 말이 아니고 폴 오스터가 한 말이다. 이에 대해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은 한 술 더 뜬다. 어떠한 작품이 영화화 됐을 때 당장 볼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 본 영상에 갇혀 더 이상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작품을 문자로 읽게되면 연상을 하게되기 때문에 상상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영화 평론가 이동진도 소설가 김중혁과 나눈 대담에서 영화 보다 소설의 우수성을 자주 언급하곤 했다.

 

뭐 이쯤되면 소설 읽기 싫으면 영화 본다고 하지만 지금은 작품을 제대로 음미 한다면 아무리 영화로 봤다고 하더라도 소설을 읽어주는 것이 꽤 있어 보이지 않을까? 소설과 영화가 어떤 점에서 서로 조우할 수 있는지, 또 어떤 점에서 소설이 영화를 능가하고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영화와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다. 그래서 어디에 손을 들어줘야할지 다소 난감하다. 영화 <5일의 마중>이 이 작품의 원작이라기 보단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그래도 영화가 워낙에 강렬해 소설을 읽으면서도 뭔가 모르게 자꾸 그 족적을 찾고 싶어진다. 그래서 겨우 찾아낸 공통점이 루엔스의 아내 펑위완이 심인성 건망증이라는 것 하나 건졌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위대한 것이 영화와 소설에 각각 하나씩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소설의 위대함은 유장한 필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도 아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이렇게 꼼꼼하고도 유장하게 쓸 수가 있을까? 또한 혁명의 물결속에 한 개인과 가족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어떻게 그렇게 치밀하게 쓸 수 있을까? 그런 역사의 흐름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인간의 가치를 작가는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썼다. 그래서 단점이라면 영화를 이미 보고 이 소설을 읽는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소설이 주는 연상은 극대화 된다. 

 

또한 영화가 주는 위대함이란 결국 감독의 영화에 대한 천재적 감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떻게 이 유장한 소설을 읽고 극적인 요소와 영상적 요소를 끄집어 내서 스크린에 옮길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아내가 사는 집 실내에 환하게 드리워진  햇빛이라든지, 남편이 돌아왔음에도 원작엔 없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5일마다 남편을 역에 나가 기다리는 펑위완의 아타까운 운명은 정말 영화적으로 잘 살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도 그 영화의 잔상이 남아 아직은 영화에 손을 들어 주고 싶다. 하지만 훗날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이 책의 위대함에 다시 한 번 감동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중국 문학은 범접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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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9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9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5-07-09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와 소설을 다 본 작품으로 <위대한 개츠비>가 있어요.
대부분 영화보단 소설이 나은 법인데, 이 작품은 소설보단 영화가 나았어요. 저는 그랬어요.

<안나 카레니나>, <닥터 지바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그런 작품이 많지요.
영화를 잘 만들어서인지 영화로 봐도 실망하지 않는 영화들 아닙니까.

그래도 명작이 있다면 선택할 때 저는 영화보단 책을 택하겠어요. 심리 묘사가 궁금하거든요.
영화에선 묘사가 없으니 생략된 게 많잖아요. 둘 다 보는 건 좋은 공부가 되겠죠...



stella.K 2015-07-09 18:46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리고 작가 저마다 문체가 있잖아요.
그걸 아는 것도 묘민데 말입니다.
예전엔 읽는 게 고통이기도 했는데 이걸 알고부터 읽는 게
확실히 의미있는 일이구나 싶어요.^^
 
연인 심청 - 사랑으로 죽다
방민호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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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새삼 다시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이 이야기를 나는 어른이 되어 다시 읽었다. 저자는 왜 우리가 잘 아는 심청전을 연인 심청이란 새 옷을 입혀 독자들 앞에 내놓은 것일까?

무엇보다 저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설화 그대로를 복원해내고 있다.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원작에 없는 윤상이란 캐릭터를 첨가 시켰다는 정도다. 그렇게 하므로 심청이 얼마나 희생적이고 이타적 인물인가를 더 강하게 어필한 것으로 보여 진다.

보통 설화는전래 동화란 이름으로 주로 어렸을 때 많이 읽고 성인이 되어서는 여간해서는 접하질 않게 된다. 왜 그럴까?

어렸을 때 이미 전래 동화로 접해 온 터라 굳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다시 알아야할 필요성 못 느껴서일까? 물론 그것도 이유는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심청전만 해도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효를 강요받는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는가? 부모님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라고 하지만 이 말을 실제로 지키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심청전을 읽으면 왠지 마음이 편치가 않다. 누구든 심청이 되기를 원하지만 누구도 그 인물에 도달할 수 없음을 통감하니까. 그래서 우린 심청전을 박재된 이야기로만 취급할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새삼 심청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효도하는 심청이 아니라 사랑하는 심청으로 재해석된다.

하지만 난 현대의 페미니즘 영향 때문일까? 그 보다는 왠지 억압 받는 여성으로써의 심청이 더 많이 느껴져 읽으면서도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그것은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의 캐릭터 때문이었던 같은데, 이 작품에서의 심학규는 원작 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자신의 욕망이 충실하면서 한편으로는 한 없이 나약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두 눈이 멀쩡한 아비여도 매번 동냥젖을 물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렵게 동냥젖을 먹여 키웠다는 그 사실로 심청은 아비에게 효도할 것을 강요받는 인물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것엔 어떤 심리적 기저가 숨어 있는 것일까? 태어날 때부터 어미를 잡아먹은 운명과 아비가 자신을 동냥젖으로 어렵게 키웠다는 이 원죄 의식이 심청을 옥죄진 않았을까? 그렇다고 해서 그 운명을 거스르기 보단 아비를 위해 죽는 것이 당연하듯 인당수에 자신을 수장시키는 숙명을 택하기까지 한다. 바로 이러한 설정이 편치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식을 그만큼 키운다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키웠으니 그만큼의 봉양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한 세상을 편히 살려고만 하는 심학규가 왠지 정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자식으로부터 일정 정도의 봉양은 가능하겠지만 인당수의 수장은 아무리 설화라고는 하지만 과분하고 동시에 과장 돼 보인다.

거기엔 또한 남존여비의 사상이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춘향전만 해도 그렇다. 여자에게만 정조를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모진 시련과 고난을 견디다 보면 사랑도 이루고 축복 받고 잘 산다는 인과응보, 사필귀정의 논리가 숨어있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여자의 희생을 무조건 당연하게 그리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심청의 어미는 심청을 낳다 죽었고, 심청은 아비에게 희생을 하며 동시에 그 아비 때문에 사랑도 이루지 못한다. 또한 귀덕 어멈은 자신의 젖을 희생해 청이를 키워야 했고, 그 반대 선상에 있는 뺑덕 어미는 몸을 함부로 굴린 덕에 성병 보균자인 동시에 피해자며, 한평생 창녀와 도둑의 굴레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극단적인 인물군상은 하나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 쓰일 법한 인물이라기 보단 오히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논란의 여지가 아주 많아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대에 들어와서는 수많은 계약이론을 탄생시키는 듯도 하다. 이를테면 사랑에 이런 저런 계약 이론을 끼워 넣는 것이다.

심청전 같은 설화를 들이대면서 효도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 자식도 인간으로 누려야 하는 가치와 권리가 있으므로 아무리 부모 된 자라도 그것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지도 모른다. 또한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했는가? 그렇다면 그 자식도 응당 부모에게 효도할 거라고 말하고 싶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누구도 효를 강요하면 안 된다고 선을 그어 버리는 지도 모르겠다.

아는 것이 병일까? 이렇듯 성인이 되어 읽은 심청의 이야기는 어릴 때 읽은 그것 보다 순수하거나 더 이상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난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이런 시각에 경도되어 있었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저자의 해설을 읽을 때였는데 그 부분을 읽으니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겠단 생각도 든다.

저자는 말한다.‘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할 줄 아는 이타적 사랑 밖에 없다. <여인 심청>은 이타적 사랑의 이야기다. 그것을 실천해가는 운명 개척의 이야기(398~399p)’라고 했다.

그렇다. 여인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참으면서 자식을 낳는 것을 두고 이타적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 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여성의 자궁을 이타적 사랑의 근원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바로 이런 사랑이 아니면 세상을 구원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에 고난당하고 부활한 것이 아니겠는가? 인당수에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과 연꽃으로의 부활은 예수님의 그것과 흡사해 보인다.

그런데 또 드는 생각은 이 심청전의 최초의 설화자 즉 원작자는 누구였을까를 생각해 본다. 작자 미상일 테니 정확히 누구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남자였을 거란 짐작은 어렵지 않다. 그 시대도 여자와 어린 아이는 인간으로 대접도 못 받았던 시대였을 테니.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여자 보단 남자가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리고 남자가 아니면 이런 여인상을 그릴 수가 없다.

남자의 로망은 시대를 불문하고 뮤즈였다. 그래서 고래로 저마다 이야기를 다룰 줄 아는 남자는 구원의 여인상을 즐겨 쓰길 마다하지 않다. 그렇다. 이 세상을 구원할 방법은 사냥 기질에 영역 확장의 기질만 가지고 있는 남성성만을 가지고는 구할 수 없다. 희생을 전제로 한 이타적 사랑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다.

어쨌든 현대에 들어와서 자기희생이니 이타적 사랑은 또 얼마나 생뚱맞은 것이 되어 버렸는가?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반면교사 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역설하고 있다. 그러니 이야기에서의 자기희생과 이타적 사랑은 얼마든지 변용가능하다.

그런데 남자들은 이렇게 구원의 여인상을 즐겨 쓰면서 자기희생이나 이타적 사랑을 여성에게 슬쩍 미루는 것처럼도 보인다. 또 그런 점에서 어찌 보면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은 자궁 달린 남성 즉 구원하는 남자 또는 이타적 사랑을 보여주는 최초의 남성상을 보여주는 건 아니었을까?

 

진정한 작가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작가는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는 우리들 현대인의 어리석음에 관한 것... 상상적인 것, 환상적인 것, 마음속에서만 작용하는 것, 마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397p)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무조건 동의한다.

그래서 그렇게도 눈을 뜨길 원했던 심학규는 눈을 뜨자 자신의 어리석음을 통탄한 나머지 산속으로 숨어들었고, 윤상은 심청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그 마음의 작용에 따라 인두로 눈을 지지는 고통 속에 죽어갔어도 고귀하게 희생할 줄 알았나 보다.

그렇다면 애초의 어줍지 않은 나의 페미니즘의 사고방식을 잠시 내려놓고 저자의 의도와 생각에 깊이 침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아무튼 난 이 책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 특유의 문체와 사유의 깊이에 감탄했고,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작가의 몫이긴 하지만 기존에 있었던 이야기를 재해석 해 오늘날에 재조명 하는 것 또한 역량 있는 작가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평론과 학자의 길을 걸었던 저자가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유감없이 펼쳐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200번이나 고쳐 쓴 작가의 노고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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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6-2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이것이 철학이라고 합니다. 과학은 철학의 가지枝죠.

stella.K 2015-06-26 14:4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읽은 책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은 그 책이 또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해요.^^

페크pek0501 2015-06-26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나는 것. - 좋은 글이란 새로운 무엇을 보여 주는 글이거나 새롭지 않다면 새롭지 않은 무엇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는 글이거나 둘 중의 하나, 라는 것. 물론 둘 다 영양가 있어야 하겠죠.

재해석하는 능력이 작가들(또는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으며 했어요.

stella.K 2015-06-26 15: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런 의미에서 방민호는 소설가로서도 손색이 없어 보였어요.
원전을 해치지 않으면서 작가 나름의 상상력을 유려하게 잘 펼쳤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능력자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6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해석이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익숙한 것을 익숙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은 정말 짜증나는 경우죠. 중학교 국어시간도 아니고 말입니다. 가령 < 흥부전 > 은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런 거 누가모릅니까 ? 이렇게 쓰면 짜증이 나요..ㅎㅎㅎ

stella.K 2015-06-27 14: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했는데 기존에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자기만의 스타일로 바꾸냐가 관건이라잖아요.
중반 정도까지는 좀 디테일만 살렸다 뿐이지 뭐 다를 게 있나
그런 생각도 들었는데 결말이 나름 신선했어요.
아, 지금은 또 읽은 지 좀 되는지라 덤덤합니다만,
끝까지 읽히는 힘은 있는 것 같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6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방민호라는 사람 혹시 평론가 아니었나요 ?

stella.K 2015-06-27 14:26   좋아요 0 | URL
그거게요. 평론가가 소설도 잘 쓰면 어떡하라는 건지...ㅉㅋ
 
분 BOOn 9호 - 2015년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월간지)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사실 내가 이 잡지를 읽어 볼 생각을 했던 건 순전히 착각에서 였다. 

작년 이맘 때 나는 후지와라 신야가 쓴 <겪어야 진짜>란 책을 읽었는데 왠지 이 사람에 대해 흥미가 갔다. 그런데 이번호에서 이 사람을 다룬다지 않는가? 혹하는 마음에 집어 들었던 거다. 그런데 왠걸, 신야는 맞는데 잡지가 다루고 있는 신야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신야가 아니었다. '다나카 신야'였던 것이다. 일본에선 나름 알아주는 소설가인가 본데 나는 이 작가를 여기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러면 그렇지. 좋은 일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신야는 소설가는 아니고 일종의 문화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하긴, 후지와라 신야도 처음부터 알고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니니, 다나카 신야도 지금 알면 되는 거 아난가?  덕분에 모르는 작가도 알게 되었으니 나쁘지는 않다. 

사실 다나카 신야는 우리나라에도 그다지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지난 2010년 가와바타 나스나리 수상작품집이 번역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번데기>란 작품이 실리긴 했지만 그나마 이책은 품절 상태라 구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잡지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니 나름 꽤 다부진 인상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과 함께 몇번의 고배 끝에 <도모구이>란 작품으로 아쿠타가와 상도 받았는데, 그때 시상식에 참석한 도쿄도지사가 그런 말을 했단다. 지금의 젊은 작가들에게 리얼리티가 결여됐다(23p)고. 그러자 다나카 신야가 이렇게 받아쳤다고 한다.

"아마 셜리 맥클레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몇 번이나 아카데미상 후보가 돼서 마지막에 받았을 때 '내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것 같은데요, 뭐 대략 그런 느낌입니다. 네 번이나 떨어뜨려진 뒤니까 이쯤에서 거절해 주는 것이 예의라고 하면 예의입니다만 저는 예의를 모르므로, 혹시 거절했다고 듣고 소심한 심사 위원이 쓰러지거나 하면 도쿄도의 행정이 혼란하므로 도지사 각하와 도쿄도민 여러분을 위해 받아주겠다, 입니다. 저기, 얼른 끝냅시다" (23p) 

도쿄도지사가 요즘 작가에게 리얼리티가 없다고 일침을 가한 것도 놀랍기도 하지만 다나카 신야가 시상식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 또한 놀랍다. 난 이 도지사가 문학평론가쯤 되는 줄 알았는데 일본은 일개(?)의 도지사가 이런 말도 하는가 보다. 요즘 우리나라는 어느 유명 작가의 표절로 시끄러운데 그 말은 우리가 들어야 할 말 아닌가? 우리나라 작가들 리얼리티가 떨어지니까 표절도 하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작가가 이런 말로 받아치는 게 의외이긴 하지만 나에겐 일단 눈도장 한번 확실하게 찍는구나 해서 관심이 간다. 하지만 왠지 그의 작품은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소설 <일식>으로 유명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인터뷰도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렇다고 잡지는 일본의 문예지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일본의 주목 받는 작가도 소개하지만 문화 전반의 것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번호에서 다루고 있는 두 편의 에세이가 눈에 띄었다. 그 하나는 '헤이안 시대 궁정 여인의 삶'과 또 하나는 '한일의 경계를 산 사람들, 세스페데스 신부를 기억하며'다.

특별히 '한일 경계를 산 사람들....'에서 세스페데스 신부는 1500년대를 살았던 스페인 신부로 일본인 60만이 카톨릭을 믿게 된 예수회 소속 신부라고 한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로 치면 임진왜란을 직접 겪고 본 신부이기도 한데, 지난 드라마 <이순신>이나 현재 방영되고 있는 <징비록>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서 이건 정말 꿀팁이다 싶다.

또한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에선 젊은이들이 어떤 유행어를 쓰고 있는지 비교해서 다룬 글이라든지, 우리나라에 현재 번역되어 나온 일본의 신간들과 주목 받는 책들의 서평을 읽는 것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밖에도 여러 읽을 것들이 쏠쏠하다.

 

솔직히 난 남의 나라 문화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내 나라 문화도 모르는 것이 많은데 남의 나라에 대해 뭐 그리 관심이 많겠는가. 하지만 이 잡지는 일본문화에 대해 나름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게 다루고 있어 앞으로 종종 관심을 같고 읽고 싶어질 것 같다. 흔히 우리나라는 일본과 정치적으론 그다지 좋은 사이는 아니지만 문화적인 면에선 많은 부분 비교가 되기도 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잡지 대비 가격도 적당한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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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23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님의 글을 읽다가 문득 이 생각을 했어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추리소설 같은 전문 장르문학 잡지가 활발히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잡지가 우리나라에 나온다면 장르소설 마니아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특수 장르 잡지가 안 팔리면 1년도 못 가고 폐간되는 현실이 아쉬워요.

stella.K 2015-06-24 12:07   좋아요 0 | URL
솔직히 이 잡지도 얼마나 갈지 의문이야.
나름 괜찮은 잡지라고 생각해. 울나라랑 일본이랑
문화 비교도 할 수 있고.
격월로 발행한다는데 오래 갔으면 좋겠어.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미스테리아 잡지 나왔잖아.
그리고 이와 비슷한 잡지가 언제부턴가 나오기 시작했는가 본데
지금은 우리나라도 순수소설 보다 장르소설을 선호하는 편 아닌가?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나도 미스테리아를 예스24에 주문했봤어.
창간호니까 어떤가 싶어서. 근데 며칠째 안 오고 있다.
다른 책과 함께 신청했는데 그게 나온지 좀 오래 된 책이거든.
완전 끝장이다.ㅠ

페크pek0501 2015-06-2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관심사가 다양하네요. 이런 책도 읽으시다니...

오래전, 루스 베네딕트 저, <국화와 칼>을 읽으면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문화가 이렇게 비슷한 점이 있나, 그랬어요. 마치 우리나라에 대한 글을 읽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마도 같은 동아시아의 나라이기에 그런가 봐요. 사실 그 책을 읽기 전엔 일본이 우리나라와 얼마나 다른가에 관심이 갔었죠.
그래도 두 나라의 다른 점은 분명히 있죠. 소설을 읽어도 참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다른 나라와 비교함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얼굴을 확실히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소설을 통해서도요.

stella.K 2015-06-24 12:13   좋아요 0 | URL
ㅎㅎ 모처에서 협찬 받아서 읽어 본 거예요.
사실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중국이 조금씩 닮아 있잖아요.
전 우리나라가 인간성은 중국이랑 많이 닮은 것 같고
문화는 일본과 많이 닮고 그런 거 같던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음흉하잖아요. 아닌가?ㅎㅎ

같은 출판사에서 중국문화를 다룬 잡지도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같이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제가 워낙 잡자를 안 보는 주의라
생각만...^^
 

모르긴 해도 당분간은 이 책이 뜰지도 모르겠다.

급한대로 문제적 작품으로 지목되고 있는 그 작품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으니.

 

그리고 어느 출판사는 발 빠르게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들 재출간 한다고 하지 않을까?

미시마 유키오, 그는 누구인가? 떡 본 김에 제사 드린다고 이참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덕분에 이문열도 좀 뜨려나?

 

이래저래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좋은 일 많이 시킨다.

메르스나 얼른 한풀 꺾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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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6-19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님 덕분에 알게 된 게 있네요. 제가 <우국>을 읽지 않은 줄 알았어요.
미시마 유끼오의 작품은 <금각사>만 읽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책 시리즈 2번이라면 `죽음`편인데 이 책을 읽었으니 <우국>을 읽은 거죠.
이 책이 10권까지 있는데 그중 저는 다섯 권을 읽었답니다.
이렇게 좋은 단편소설만 집중해 놓은 책 시리즈를 발견하고 흥분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요.
이문열 작가의 얼굴이 새겨진 표지의 책이니 꽤 오래전에 나온 책입니다.
그 책이 이런 표지로 바뀌었네요.
(단편소설은 책 제목을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어요. 이 책만 해도 열 편의 단편소설이 들어 있으니...)

stella.K 2015-06-20 14:29   좋아요 0 | URL
아, 언니! 저는 언니 덕분에 무플을 면했어요. 얼마나 감사한지...ㅠㅠㅋ

저도 이번에 우국이 단행본으로 나와 있을 리는 없고 어디서 찾아 보나
했더니 의외로 쉽게 찾았어요.
전 솔직히 이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읽으면 좋겠다 생각하곤 오랜 세월
잊고 있었어요. 이문열이 어떠니 저떠니 해도 이런 책 편찬한 건
정말 고마워 해야할 일이지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읽어 봐야겠다 그런 생각이 드네요.
책값도 착하잖아요.^^

2015-06-21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21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21 17: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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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1 1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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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3 1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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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3 13: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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