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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 중국 문화대혁명을 헤처온 한 남자의 일생
옌거링 지음, 김남희 옮김 / 51BOOKS(오일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영화 <5일의 마중>을 감명 깊게 본적이 있어 이 책이 나왔을 때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난 소설이 영화화 되는 것에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소설이 영화화되면 나름 좋은 것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소설을 영화화 하면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 이야기가 잘 나가다가도 마지막에 뭉개져버리는 영화나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가? 어쨌든 이런 저런 장점을 들어 언제부턴가 그것을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풍조가 있는 것 같아 마뜩치 않았다. 그렇게 해서 영화 또는 드라마화하니 사람들이 더더욱 소설을 안 읽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기우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영화와 소설이 공생관계를 너무나 잘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가 뜨면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유를 받고 있다. 분명 영화가 다 담지 못하는 걸 소설은 섬세하면서도 자유롭게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 자유롭다는 것은, 영화는 과학이고, 2시간 안팎이라는 제약을 받기 때문에 그 흐름에 있어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하지만 소설은 작가가 쓰고 싶은대로 맘껏 쓸 수가 있다. 물론 이것은 내 말이 아니고 폴 오스터가 한 말이다. 이에 대해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은 한 술 더 뜬다. 어떠한 작품이 영화화 됐을 때 당장 볼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 본 영상에 갇혀 더 이상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작품을 문자로 읽게되면 연상을 하게되기 때문에 상상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영화 평론가 이동진도 소설가 김중혁과 나눈 대담에서 영화 보다 소설의 우수성을 자주 언급하곤 했다.
뭐 이쯤되면 소설 읽기 싫으면 영화 본다고 하지만 지금은 작품을 제대로 음미 한다면 아무리 영화로 봤다고 하더라도 소설을 읽어주는 것이 꽤 있어 보이지 않을까? 소설과 영화가 어떤 점에서 서로 조우할 수 있는지, 또 어떤 점에서 소설이 영화를 능가하고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영화와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다. 그래서 어디에 손을 들어줘야할지 다소 난감하다. 영화 <5일의 마중>이 이 작품의 원작이라기 보단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그래도 영화가 워낙에 강렬해 소설을 읽으면서도 뭔가 모르게 자꾸 그 족적을 찾고 싶어진다. 그래서 겨우 찾아낸 공통점이 루엔스의 아내 펑위완이 심인성 건망증이라는 것 하나 건졌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위대한 것이 영화와 소설에 각각 하나씩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소설의 위대함은 유장한 필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도 아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이렇게 꼼꼼하고도 유장하게 쓸 수가 있을까? 또한 혁명의 물결속에 한 개인과 가족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어떻게 그렇게 치밀하게 쓸 수 있을까? 그런 역사의 흐름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인간의 가치를 작가는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썼다. 그래서 단점이라면 영화를 이미 보고 이 소설을 읽는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소설이 주는 연상은 극대화 된다.
또한 영화가 주는 위대함이란 결국 감독의 영화에 대한 천재적 감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떻게 이 유장한 소설을 읽고 극적인 요소와 영상적 요소를 끄집어 내서 스크린에 옮길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아내가 사는 집 실내에 환하게 드리워진 햇빛이라든지, 남편이 돌아왔음에도 원작엔 없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5일마다 남편을 역에 나가 기다리는 펑위완의 아타까운 운명은 정말 영화적으로 잘 살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도 그 영화의 잔상이 남아 아직은 영화에 손을 들어 주고 싶다. 하지만 훗날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이 책의 위대함에 다시 한 번 감동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중국 문학은 범접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