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더의 연인들 - Ladies in Lav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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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은 해안가 마을에 자넷과 우슐라라고 하는 노년의 자매가 평화롭고 조용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웬 낮선 젊은 청년이 실신한 상태로 바닷물에 실려 이 마을에 표류하게 된다. 알고 봤더니 폴란드의 바이올리니스트 였다. 자매는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하는 청년에게 몸이 회복될 때까지 돌봐주면서 영어를 가르쳐 주기로 한다. 그런데 자넷과 우슐라는 이 청년과 함께 있는 동안에 뭔가모를 마음이 동요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자넷과 우슐라에게 청년 안드레아는 그저 손주벌 밖에는 안되는 청년이다. 어떻게 그런 청년에게서 로맨틱한 감정이 가능하겠느냔 것이다. 특히 우슐라 역의 주디 덴치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볼만했다.  


청년 안드레아는 점점 건강을 회복하면서 잠깐 동안 잃었던 기억 상실 또한 회복하고,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여류화가를 알게 된다. 그녀는 안드레아의 음악성을 발견하고 관현악단 지휘자로 있는 자신의 오빠에게 소개 시켜주기 위해 그를 데리고 마을을 떠난다.  

변변한 작별 인사도 못하고 자신 곁을 떠나버린 우슐라는 큰 상실감을 경험한다. 자넷은 안드레아에게서 옛 사랑을 떠올리는 정도지만 젊을 때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우슐라는 안드레아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것이다. 그것은 누가 봐도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도 결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영화는 줄곧 우슐라의 감정을 충실히 따라간다. 자신을 돌봐 준 것에 감사해 라벤더 꽃 두송이를 꺾어다 자넷과 우슐라에게 각각 손에 쥐어줬을 때 자매가 느끼는 감정을 여과없이 보여주기도 하고, 우슐라는 그렇게 안드레아가 없어진 빈자리를 강하게 느끼며 그에 대한 기억의 주변을 서성인다. 그런 자기자신에 대해 이 낮선 감정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그녀 또한 젊었다면 당연 즐겼을 것이고,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그런 감정에 불을 짚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기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고 젊을 때 한때 그런 감정을 마음껏 발산해 보지 못한 것에 후회를 하고 짙은 고독만이 무겁게 마음을 누른다. 

영화를 보면서 내심 우슐라의 감정이 느껴져 나 또한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가 되면 그 나이에도 사랑의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는 거로구나 즐거워 하고 기뻐하게 될까? 그냥 로맨틱한 감정을 즐기는 정도라면 그것도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에게서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생을 그만큼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이니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영혼이 바뀐 사람처럼 전혀 생뚱맞게 이런 미끈한 젊은이나 좋아한다면 마냥 좋아할 수마는 없을 것 같다. 그건 차라리 두려운 것이고 저주받은 감정일 뿐이다.   

나는 나이 먹어서 사랑의 감정 같은 것은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냥 평온하게 살고 싶다.그런데 모를 일이다. 그 나이에도 사랑을 원치 않으면 안 할 수도 있는 마음이 생길지. 그때도 영화속의 우슐라처럼 마치 영혼이 바뀌기라도 해서 여전히 그 혼란스러움 감정을 느끼면 어떻게 할까? 

물론 영화든 소설이든 어느만치의 허구가 깔려있는 법이다. 이런 사람의 이런 사랑도 있다는 인간 미학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에 제법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 감정이입이 가능했던 것같다. 

영화는 '한 방의 미학'이라고도 한단다. 여러 에피소드의 층위를 잘 쌓아서 어느 지점에서 관객에게 어떤 식으로든 감동내지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한 방 날려주는 뭔가가 있으면 된다라는 것이다. 영국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도 약간 지루한 면도 있다. 그런데 말미에 가서 울컥 한 방 먹여주는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 한 번 울고 싶은 감정이 들 때 보고 싶은 영화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조슈아 벨의 연주도(진짜 연주를 한 것은 아니고, 저 안드레아의 연주 소리를 입힌 것이다.) 감상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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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2-26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 하네요.
나이 들어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말씀도 이해가 가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 또한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주디 덴치의 독특한 억양이 막 들리는 것 같네요.
요즘들어 영화 리뷰를 많이 올려주시네요? ^^

stella.K 2009-02-26 14:05   좋아요 0 | URL
작년 여름에 나온 영화죠. 인디계열의 영화라 많이 알려지진 않았어요.
개봉했을 때도 스폰지 하우스 정도에서만 했으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노년의 고독감이란
엄청 쓸쓸해서 그닥 행운이란 느낌이 안들었어요.^^

프레이야 2009-02-26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본 영화에요. 참 좋더군요.
우슐라의 감정, 청춘의 특권으로만 여겨지는 그런 감정이 남기는
뒷모습에 숙연해지더군요. 좋은 영화였어요.^^

stella.K 2009-02-27 10:58   좋아요 0 | URL
이거 저까지 네 명이서 같이 봤는데 한 명만 빼놓고
전부 다 울었어요. 그 울지 않는 한 명 울지도 않고
졸았다고 하길래,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마구 야유를
퍼부어준 기억이 납니다.ㅎㅎ
 
멋진 하루 - My Dear Enem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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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여자, 정혜>를 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란...! 대사는 별로 없고 영상으로 말하려 하는 것을 충실히 전달해  나름 좋게 보았다. 그런데 누구는 그의 영화가 재미없다고도 한다. 아니 어떻게 이 괜찮은 영화를 재미없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재미로 봐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내가 말하는 재미란 인상 깊은 것의 다른 말일 뿐이다.  

어쨌거나 난 '여자, 정혜'를 본 이후로 이 감독을 좋아하게 되었고, 얼마 안있다 이 <멋진 하루>가 나왔다고 하길래 조용히 대중들의 반응을 지켜 보았다. 뭐, 그닥 큰 성공을 거둔 건 아니지만 '여자, 정혜'보단 조금 낫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의 반응? 그래도 하정우, 전도연이 나온다니까 봐줄만 하지 않았을까? 



영화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떤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음모나 배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 이윤기 감독만의 독특함이 묻어나 있어 즐겁게 봤다.   

이 이야기는 하루 동안 옛 애인에게 떼인 돈을 받아내기 위해 그 애인을 따라다니는 일종의 로드 무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희수의 애인 병운이 350만원을 갚기 위해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는데 희수가 동행하면서 겪에되는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병운이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하고 있고, 그 사람들을 통해 병운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만나게 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줌으로 희수는 처음엔 몹시 귀찮아 하다가 차츰 병운에게 동화되고 그와 동행하면서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이구나 체험하게 된다. 그러니 제목처럼 '멋진 하루'일 밖에.  

거기에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그저 비슷 비슷한 인간 군상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각 나름의 사연들을 안고 살아간다. 또한 그것을 별것 아닌 양 능청스럽게 보여주면서도 간간히 희수의 1년 간의 삶과 병운의 1년간의 삶을 서로 넌지시 던지는 한마디 속에 응축해낸다. 나는 감독의 그 노련미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주인공의 삶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매 씬마다 보여주는 에피소드 즉 조연들이 보여주는 삶속에서 빗대어 보여줄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도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다이라 아즈코란 일본 작가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원작을 읽어보긴 했지만 원작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병운 역을 맡은 하정우의 연기가 돋보인다. 껄렁껄렁한 백수건달 역을 참 잘도 소화해낸다. 하지만 건달이어도 참 사랑스럽다. 그런 돈 빌린 기억이 없다고 딱 잡아 뗄 수도 있을텐데 성실하게 갚아 줄려고 애쓰고, 나는 비록 백수여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으니(스페인에 막걸리집을 내는 희망) 지난 세월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 까칠할대로 까칠해진 희수를 오히려 위로한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많고 까칠한 희수에겐 차라리 단순한 병운이 잘 맞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왜 둘은 서로를 못 알아보고 헤어지는 걸까? 물론 맨마지막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둘이 뭔가의 프로포즈를 할 것처럼 하다가 끝나버리긴 하던데 거기서 뭔가의 암시가 있는 것 같긴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 자체는 사랑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에 있지 않다. 


영화를 보다보니 좀 황당한 장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문제의 이 스틸컷. 

남자들은 왜 여자의 과거가 궁금한 걸까? 맨 오른쪽의 재수남 이미 자신의 와이프가 된 여자에게 학교 때 병운이랑 자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걸까? 이에 저 긴 생머리의 여자 순간 화가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희수가 남자에게 가 봐야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다시 돌아 올거라고. 정말 잠시 후 다시 돌아와 앉는다. 그래놓곤 미안하다고 하고, 앞으로 또 한번만 그러면 죽을 줄 알라고 한뒤 둘은 또 이전 분위기를 회복한다. 참 재밌는 설정이기도 하다. 그러는 남자들은 온갖 비리를 서츰치 않으면서 왜 그렇게 여자들의 과거를 건드리고 싶어하는 걸까? 진짜 저런 재수남 보면 두들겨 패주고 싶다. 

이 영화의 영상적 미덕이라면 남녀 주인공의 얼굴이 전혀 덧칠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아닐까? 하정우 피부 정말 장난 아니다. 어쩌면 그리도 얼굴에 분화구가 많은지? 그래도 별로 개의치 않고 자기 맡은 역할에만 충실했던 것 같다. 또한 전도연도 늙는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직 피부는 좋아보인다만 코에서 입까지 한쪽에 짙게 그려지는 굵은 주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보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나이 먹어가는 모습 그를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지켜봐 주는 것도 특권이 아닐까 싶다. 제발 배우들 늙는 거 싫다고 발악하는 모습 좀 보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배우들 그렇게 늙어가면서 관객들이 위로 좀 받으면 안되는 걸까? 배우들이야 돈이 많아 늙지않게 하는 온갖 것들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하지만 서민들이야 그럴 수 있는 처지가 못되지 않는가? 그럼 그 갭을 어디가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배우란 모름지기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관객과 함께 나이 먹고 늙어가며 관객의 가슴속에 별로 남을 수 있는 믿음직한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저 하정우와 전도연도 그렇게 남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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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 - Marriage Is a Crazy Thi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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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니 소설이 읽어졌다.(하지만 난 아직 소설은 읽지 못하고 있다.)
정말 똑똑한 이야기가 아닌가?  

많은 사람이 결혼을 한다. 사랑이 없이도 하고, 사랑하니까 결혼을 한다. 아마도 이 영화의 전제는 사랑없이도 하는 결혼에 대한 조롱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니 더 나아가 결혼 자체에 대한 회의를 드러내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사랑이 없는 결혼은 많은 위험과 스스로 일탈을 감행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까지 꼭 결혼을 해야하는 것이냐고 묻는 것 같다. 

주인공 연희(엄정화 분)를 보라. 준영(감우성 분)과는 진정한 섹스와 사랑을 하면서(처음 섹스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발전한다.) 결혼은 다른 사람과 하고, 준영이 방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평일은 결혼한 남편과 함께 보내고 주말은 준영과 함께 보내는 진짜 결혼한 주말부부 같다. 

 
하지만 그들의 불안한 동거는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이야기가 하도 설득력이 있어 이땅의 거의 대부분의 결혼한 사람들이 배우자를 두고 이런 형태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어수룩한 상상을 해 보게도 된다. 물론 이런 형태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그런 형태의 사랑 또는 가상의 부부는 지양되어야 되지 않을까 한다. 괜히 영화가 그런다고 따라했다가 파탄지경에 이를 테니. 이혼에 드는 경제적 손실 또한 적지 않다지 않은가? 

난 솔직히 이즈음 결혼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를 많이 듣는데, 과연 결혼이 미래에 그렇게 부정적이고 없어져야할 것이냐라는 것에 오히려 회의적이다. 물론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결혼이 흔들리는 건 사실이지만 고래로부터 결혼이란 제도는 있어왔고, 그런 악순환 속에서도 결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단지 우려가 되는 걸 한다하는 학자들이나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너무 정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결혼은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할 것처럼 터부시 된다. 왜 결혼의 긍정적인면을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물론 잘못된 결혼 또는 불행한 결혼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결과를 낳긴 하지만 결혼을하고 가정을 이루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이기심을 다스리는 것으로서 결혼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영화도 어차피 연희와 준영이 그런 관계는 언젠간 종지부를 찍을거라는 걸 드러내주지 않아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충분히 감지하고도 남는 일이 아닌가? 적어도 그렇게 결혼에 관해 부정적으로 뇌까리는 준영이 언젠간 결혼할거라는 건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은가?     

영화는 참 화끈하게 보여줄 건 다 보여주는 것 같다. 중간중간 낮뜨거운 장면이 혼자 보고 있음에도 좀 민망하더라.  

왜 나는 이런 이야기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알았으면 내가 먼저 썼을텐데 하는 일말의 아쉬움이 들 정도로 탐나는 스토리였다.

새로운 발견은 작년에 시나리오를 공부하면서 거기모인 젊은 수강생들이 의외로 엄정화를 의외로 많이 좋아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40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은 탄력과 당당함이 마음에 든다는 중론이었다. 불론 저 영화는 그녀가 40이 되기 한참 전에 찍은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덩달아 나이 많아 시나리오를 공부한 나도 어부지리로 좋게 봐주는 건 아닐까? 어줍잖은 기대를 잠시 가졌더랬다.ㅎ 나는 엄정화는 잘 모르겠고 감우성은 확실히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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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9-03-0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짝 부럽... 아, 뭐여...?

stella.K 2009-03-04 11:13   좋아요 0 | URL
부럽긴 뭐가 부럽단 말이어요?ㅎㅎ
 
시민 케인 - Citizen K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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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두번째로 봤다.
흑백 필름이고 워낙에 오래된 영화라 지루하다고 생각해서 지
루한 감이 없지않다.
하지만 이제보니 생각보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사람들의 인터뷰로 극적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진 영화가 뭐가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나는 언듯 영화<파이란>이나 <불멸의 연인들>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20세기 영화사에서 불멸의 작품으로 꼽는 작품에 <시민케인>을 넣곤 한다.
그런데 새롭게안 사실은 이 영화는 당시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으며
아카데미에서도 각본상 외 받은 것이 없다고 한다.(난 솔직히 9개 부문쯤 될 줄 알았다)

말에 의하면 바로 그 점이 아카데미 역사상의 몇 안되는 실수중의 하나라고 전한단.
그렇게도 유명하다던 오손 웰즈가 나오는데 감독상이나 남우 주연상 정도는 줘야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오늘날 이 작품이 위대한 걸작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뭐가 있을까?
내가 볼 땐 가장 미국적 정서를 잘 담아내면서 한 인간의 흥망성쇄를 잘 표현해 줬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미디어로 갑부가 된 케인이 미디어에 의해 몰락해 가는 그것.


 

물론 영화적 기법으로 볼 때 탁월한 점도 많겠지만, 난 솔직히 그딴 건 잘 모르겠다.
단지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인상적 장면을 꼽으라면, 초반에 어린 케인이 눈 오늘 날 혼자 눈장난을 하면서 놀고 있는 장면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했다가 그것을 쭉 뽑아 실내로 들여오면서 케인의 어머니의 시선으로 처리해 준 장면이 어찌보면 몽환적이기도 하고 좋았다.(그 스틸 컷이 없어 아쉽다.) 

이야기에서의 서스펜스도 잘 녹아져 있는 것 같다.
로즈버드란 상징적 물건을 통해서 약간의 미스테리적 효과도 노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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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 Lord Of The Flie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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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19년이나 됐다고 하니 나는 그 무렵 TV에서 보지 않았을까?
그렇게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오래 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무인도라는 고립된 섬에서 아이들을 거의 발가벗겨 놓고 찍어서 일까?
의상비는 거의 들지 않았겠다 싶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 더 드는 생각은 인간에 대한 통찰을 여지 없이 보여준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낡아지지 않는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잘 알다시피 이 영화는 199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골딩의 작품을 영화화 한 것으로
인간의 원시적인 본능을 이제 10살을 갓넘었을 소년들의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왜 꼭 그만한 소년들을 등장시켰을까?
추측컨대 자아에 눈뜰 나이이고, 어린 아이의 순수함과 성인으로 넘어가는 그 경계선상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본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은 아닐까?

 
무인도란 공간은 그들에게 있어 마법의 공간과 같은 곳이다.
거기서 인간의 문화성과 원시성이 대립을 한다.
문화성은 잘 교육되어지고, 자기 보단 남을 생각하며, 개인 보단 전체를 생각하는 것으로,
몇몇의 아이들이 집을 그리워 하고 몇시냐고 물어보고,
집에 있었으면 무슨 TV프로를 봤을거라며 읊조린다.
그리고 서로를 위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갈등을 겪으면서 두 파로 나뉜다.
하나는 원시파. 하나는 문화파라고나 해야할까?
당연 그런 환경에선 원시파에 아이들은 몰리고 문화파는 얼마 되지 않는다.
원시파는 현재 지금의 상황에 더 충실하고, 문화파는 이 섬에서 구출되어 나갔을 때의 미래를  상징한다.

불은 원시적 본능의 상징적 의미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아이들은 불 앞에서 놀고, 불 앞에서 권력 다툼을 하며, 불 앞에서 살인을 한다.
문화파는 상대적으로 약자의 세력이며 둘이 남았고 그나마 한 아이는 돌에 맞아 즉사를 하고 만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소년은 원시파를 피해 사정없이 달리다가 숲속을 뛰쳐 나와 해변가 다다르고
자기네들을 구출해 줄 어느 헌병 아저씨 앞에 고꾸라졌을 때야 비로소 이 악몽이 끝났음을 감지한다.
그들의 마법은 그 헌병이 "아니, 너희들 여기서 뭐하는 거니?"했을 때야 깨어나는 것이다.

물론 그 후에 남아있을 이야기들은 관객의 상상에 맡긴채 영화는 끝난다. 훌륭했다.
오래 전 영화를 보았을 땐 그 헌병의 마법을 깨주는 대사 하나만을 기억했는데
지금보니 영화 진행에 있어서 보여지는 에피소드들이 대단하다.
무인도라고 하는 한정된 공간에서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연출이 가능할까?

무인도라고 하는 공간이 주는 마법이 인간의 역할 놀이에 대한 상당한 통찰을 보여준다.
깨어났을 때 트라우마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그것까지는 보여주지 않지만 충분히 짐작은 가능하게 한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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