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아이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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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글쎄...솔직히 말을 하자면, 미안하게도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감흥은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기야 문학 작품이 아니고, 교육 수기에 해당하는 책이니 내가 지나치게 문학에 경도되어 있는 탓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간간히 보여지는 진솔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잠언 같은 구절은 정말 새겨볼만 하다. 예를들면,


인간의 상냥함이나 낙천성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분명 어딘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인간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다른 사람의 상냥함이나 낙천성을 흙발로 짓밟는 일일것이다. 69p


라는 글귀 같은 경우 교육자가 그 사회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선행해야할 책임을 지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오늘 날의 교육이 어떠한가? 인간화 교육을 하기 보단 사회에 맞춰가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기능하는 인간으로서만을 강조하는 세태이지 않는가?교육이 시대를 리드하고 개도하기 보다 사회의 그것에 맞춰 나가는 꼴이란 눈뜨고 못 봐 줄 정도가 되어버린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글쓰기 교육을 하고, 그것을 통해 사람의 착한 심성을 일찍부터 깨우쳐 줄려고 하는 숨어 있는 선생님들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간간이 우리나라의 지금은 작고하신 이오덕 선생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라는 분은 어찌보면 지나치게 아이들에 대해 낙관적인 면 또는 선한 측면만을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 나로선 이해가 안 가거나 좀 부자연스럽게도 느껴졌다.


사실 아이들은 순수한 면도 가지고 있지만 지나치게 영악한 면도 가지고 있다. 또 저자는 주로 지체가 부자유스런 아이에 대해 좋고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서 말하곤 하는데, 관계된 이야기인지는 모르나, 언젠가 장영희 교수는 사람들이 자체 부자유한 사람들에 대해 너무 감상적이거나 무조건 연민을 가지고 있는 것이 또한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런 사람들이 막상 또 자체부자유자들을 자신의 며느리나 사윗감으로는 절대로 안된다고 결사 반대를 하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것인가를 사회 교육 프로그램에 넣어야 한다.


말이 좀 빗나갔다. 저자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그것이 주로 장애자들이기도 한데) 긍정적이고 따뜻하지만, 이것이 교육자로서 갖는 덕목인 것마는 사실이지만, 난 왠지 저자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상대적인 감상주의가 더 많이 작용한 것 같아 그다지 쉽게 읽혀지지는 않았다.


물론 저자가 교사로 활동했던 시기는 오늘 날의 일본과 다를 것이라는 추측도 해 본다. 전후 일본 사회에서의 교사의 시선이란 폐허에서 인간은 더 많은 가능성과 낙관을 보기도 하니까. 그리고 인간이 한가지의 주장과 사상을 펼쳐 나갈려면 지나치다 싶으리만치 경도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하지만 이 한권의 책에 그런 것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 같이 어설픈 불평주의자가 또 이렇게 얘기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사람이 왜 이런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교육을 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이 한권의 책으로는 역시 부족한 듯 싶다. 왜 교사의 길에 들어서게 됐는지도 이해할 수있는 대목이 없어 보인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 붕 떠서 지금의 교사 이야기를 하고, 간간히 어두운 과거 이야기를 한다. 좀 불친해 보이지 않는가?


저자의 또 다른 책을 읽으면 감지할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전작주의 책읽기가 가능할지 난 좀 의심해 본다.


책을 공짜로 받고 혹평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한권의 책이 폐지가 되지 않고 그 불씨가 계속해서 살려지려면 편집인과 출판사의 좀 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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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서주의자의 책 -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사.철 기록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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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표정훈. 작년만해도 나는 그를 일주일에 한번씩 볼 수 있었다. 모 지상파 방송 독서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러로 나와 그 시간에 다룰 책에 대해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참 인물이다 싶었다. 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날카로움 또한 가지고 있어 젊은 패기가 느껴진다.  그의 직업이 하도 다양해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 많은 직업을 통폐합해 '매문가(賣文家)라고 규정한다고 한다. 매문가라. 나는 그를 출판칼럼니스트로 알고 있었는데...하지만 그는 기획도 잘한다. 매문가답게  이 한권의 책을 어떻게 하면 독자로 하여금 읽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그나름의 실력을 한껏 발휘했다.

책에 대해 또 그 책의 저자에 대해 독자가 흥미롭게 느낄만한 부분들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매끈하게 뽑아냈다. 역시 그답다란 생각을 했다. 내가 흥미를 느낄만 첫부분은, 일본의 작가 가네하라 히토미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일본의 주요 문학상을 거머쥔 작가인데,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교 등교 거부를 했다고 한다. 문제아는 문제아였나 보다.

내가 그녀를 흥미롭게 느꼈던 건, 나 역시 학교를 지독히도 싫어했었기 때문이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 툭하면 학교를 빼먹어었더랬다. 그런데 우리 엄마 그것에 대해 별로 나무라는 기색이 없었고, 선생님 조차도 왜 학교에 오지 않았냐고 지적하신 적이 없었다. 여느 엄마나 선생님 같았으면 몽둥이 들고 야단을 치고, 선생님은 왜 안 나오는지 면담을 하자고 했을텐데, 나는 왜 그 시절 엄마와 선생님이 그걸 묵인해 왔는지 가끔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독서를 본격적으로 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내가 책 읽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고 생활통지표에 그렇게 적었으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4학년 때부터 책에 빠져있었다는 걸 알면 도대체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적으셨는지 궁금하기 짝이없다.

4학년 때부터 책을 읽었고, 6학년 때 상습적으로 결석을 했으니, 그 많은 남아 돌아가는 시간을 무엇으로 매꿨겠는가? 바로 독서만이 나의 힘이었던 것이다. 테오도르 몸젠은 독서삼매경에 빠져 자기 머리가 불에 타들어 가도 몰랐다고(266p)하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어도 틈만나면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 때 책을 읽었다. 그때는 내가 생각해도 집중력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많이 읽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워낙에 느리게 읽는데다가 정독을 해야했기 때문에 나는 그 쉬는 시간까지도 책을 읽지 않으면 진도가 안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지금도 난 통독은 몰라도 속독법을 그다지 선호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 그렇게 속독을 해서 머리에 남아있을까 해서 말이다. 모름지기 독서의 능력은 사유와 함께 깊어지나니!

중학교 시절 <만딩고>란 영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는 모르겠는데, 책으로나와 한창 선전을 하고 있었는데, 꽤 괜찮을 것 같아 아버지께 그 책을 사겠으니 돈을 달라고 했다. 그때만해도 나는 일일이 아버지께 용돈을 타 써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딸이 뭘 사는데 얼마를 쓰겠으며 하물며 책을 사는 것조차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야 했다. 근데 왜 하필 그때 아버지는 책 제목을 물으셨던 걸까? 그런 적이 거의 없으셨는데. 그리고 나는 순진하게도 곧이곳대로 말씀을 드려서 결국 그 책을 사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 책은 소위 말하는 검열 대상의 성인 소설이었던 것이다.

사실 아버지는 검열대상의 책일지 모르나, 나는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에 버금가는 책일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 책은 아마도 지금 살 수 없으니 확인이 불가능해졌으리라. 그 검열 대상의 책이 나와서 말인데, 그 시절 하이틴 로맨스가 붐을 이루어었다.

중학교 2학년 땐 선생님은 어느 날 갑자기 소지품을 다 책상위에 올려 놓으라고 하시더니 그 검열 대상의 책들을 다 압수해 가셨다. 그때 나도 한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 거기엔 야한 장면은 하나도 안 나온다. 그것을 반장 아이를 시켜서 거둬가버리니 나는 "야, 그 책 왜 가져가?"하다 선생님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그런데 그 시절 동시에 T. H 로렌스의 책이 나왔다. 그의 책이 어떤 책인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리라. 명작이다. 근데 국어 선생님은 그 책을 읽는 나를 범상치 않은 눈으로 바라보셨다. 독서 수준이 높다는 거다. 야하기로 치자면 그게 더 야했는데 나는 그 책을 압수 한번 안 당하고 버젓이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읽었던 것이다. 읽고난 느낌은 아름답다란 인상 밖에는. 아마도 성애에 대해 로렌스만큼 아름답게 쓰는 사람은 없지 않나 싶다.

검열 대상의 책은 도색 잡지 밖엔 없다고 생각하는 게 나의 지론이다. 어느 날 막 사춘기에 접어든 오빠가 도색잡지를 방안에 숨겨둔 걸 엄마한테 발각되었다. 그것도 오빠가 없을 때, 사실 사춘기 때 도색잡지 한 번 안 보고 자란 남자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이건 정말 검열 대상이다. 근데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을 얘기한 하이틴 로맨스가 검열 대상의 책이라니. 그 기준이 너무 애매모호하지 않나?

이 검열 대상의 책이 국가의 감시체계하에  놓였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80년 대 민주화 때 공산주의를 표방한 책들은 모두 '불온한' 책으로 분류됐으니 책의 수난 시절이지 않은가? 지금은 그런 책들은 서점 한귀퉁이에 놓여 주인을 찾아가길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국가는 일개의 소녀가 하이틴 로맨스를 읽건 말건 관심도 없는데, 이 불온 서적이 영원히 사라지느냐 마느냐가 더 중대사안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책은 죽지 않았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책의 종말을 예견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하다.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무슨 SF 영화를 본적이 있었는데, 내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장면은 주인공이 서기 몇 천년 인지도 모를 미래에 왔다. 시대는 정말 유토피아 그 자체였는데 한가지 의문은 책이 없고 도서관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찾아 헤메고 헤메다 지나가는 청춘 남녀 한쌍에게 왜 여기엔 책이 없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그 둘은 갸웃거리며 그걸 찾는다면 박물관을 가 보라고 하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주인공은 박물관을 갔다. 정말 들은대로 거기엔 책이 있었다. 근데 그 책을 집어든 순간 그 책은 바싹마른 나뭇보다 못하게 건드리는 순간 가루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시대는 더 이상 책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주인공은 그 시대를 한탄하며 울분에 못이여 그 책들을 박살을 내고만다. 공중엔 가루가 된 책들이 흙먼지처럼  뿌옇다. 나는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정말 그런 시대가 오면 어떻게될까?

내가 20대 초반만 하더라도 책장에 책이 쌓여가는 것이 너무 좋아 책권수를 세었더랬다. 20대 후반으로 접어 들면서 400권 넘어가는 것을 세고 더 이상 세지 않았다. 그중 이사를 앞두고 오래된 책들은 버릴려고 했는데 교회 친구가 버리지 말라고 해서 약 150권 정도를 덜어주고 그러고도 지금까지도 나는 정확히 몇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박스에 넣어둔 책들 상태가 어떤지 알 수다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 책들을 다 읽었느냐면 반도 채 읽었을까 말까다.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오는 누구처럼 한 개인이 5만권 넘게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집 한채에 해당하리만치 귀한 희귀본만을 밝히는 그런 사람도 못된다. 그래. 난 역시 책이 좋아 책을 사서 모은다. 엄마는 그 책 좀 갖다 버리라고 성화시다. 난 도무지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다 없다.

내가 앞으로 몇년을 더 살 수 있으며 몇권까지 책을 사 모을 수 있을까? 이젠 책을 사 모르는 것도 부담이 된다. 압사당할까 봐 겁이난다. 그래도 책을 사 모으는 건 중단하지 못할 것 같다. 이만하면 나도 탐서주의자가 될 수 있으려나?

오늘도 나는 신문에 난 책기사들 알라딘의 서재 주인장들 중 잘쓴 리뷰들을 부지런히 긁어 모은다. 막상 사서 읽지도 못하면서 책을 사 모르는 것만큼 그 책을 읽고 소화하는 처리속도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큰 일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모으는 것이 남는 것인지 읽는 것이 남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래도 후자쪽이 아닐까?

* 이 책은 수니나라님이 이벤트 때 선물하신 책이다. 다시한번 수니나라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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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4-11-12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잘쓴 에세이 한편 같네요. 추천 한방 남기고 갑니다.

설박사 2004-11-12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로 오래간만의 리뷰인데... 잘 읽었습니다.

탐서주의자... 한문만 나오면 저는 왠지..ㅋㅋㅋ

stella.K 2004-11-12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감사해요.^^

설박사님/이 책 정말 괜찮아요. 님도 꼭 읽어보세요.^^

Phantomlady 2005-03-18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을까 말까 고민하던 책인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왔던 사람이군요 몰랐어요 스텔라님 글 읽으니까 더 고민되네요..

stella.K 2005-03-18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담없이 한번쯤 읽어볼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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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독서철학은 이른바 필독서나 추천도서를 거부하고 각자 자유롭고 즐겁게 책을 읽는 것이다. '배우기 위해, 즐거워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위해, 또는 연설을 하기 위해, 회상하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아무런 목적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 현재를 읽기 위해 지금 이 시간을 독서하라.'
느슨하고 비체계적인 그러나 자유롭기 그지없는 그의 독서 철학은 창작에도 반영되어, 열린 서사구조, 줄거리에 신경쓰지 않는 태도, 묘사를 피하고 상황과 대화의 그적인 효과에 중점을 두는 스타일 등이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특징이다.-4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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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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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산문을 읽지 않았던 건, 아주 오래 전 잡문 수준의 '산문'을 '산문'이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비판했던 글을 읽은 영향도 있었다. 결국 난 산문을 좀 폄하하는 편견에 사로잡혔고, 이 책을 읽었을 때 이제라도 산문을 폄하해서는 안되겠다는 반성도 하게됐다. 그만치 이 책은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사실 산문도 글을 쓰는 수준이나 취향이 제 각각이라 내가 좋아할만한 수준의 책을 고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 정도라면 고급한 산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작가의 깊은 사유와 사물에의 성찰이 돋보인다. 작가 자신은 무교라고 말하지만 불교에 꽤 심취해 있는 것 같다. 이 만한 문장을 구가하려면 얼마만한 책과 깊이있는 사고를 해야하고, 문장과의 질기디 질긴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일까 의문스러워지기도 한다.

물론 일시적이긴 하지만, 어떤 글은 읽고 있으면 내가 글을 쓸 때 언젠가 모르게 그 문장을 흉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남의 것을 정령으로 하여 쓰고 있을 때 묘한 안정감이 느껴지곤 하는 건 뭘까? 결국 글발도 무당처럼 신이 내려야 쓴다는 말이 맞는 얘길까? 하지만 나는 이내 그 정령을 떨쳐 버리고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 과연 문장이 누구의 것을 흉내내서 될 일이란 말인가? 잠시 흉내는 낼 수 있어도 내것으로 도용하거나 차용할 수는 없다. 누구는 누구 같이 쓴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문장은 그 사람의 생각을 표현해주는 도구일 것이다. 나는 알라딘 서재를 쓰면서 내 글이 참 많이 허접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정리도 안된 글들을 마구 토해낸다. 어떤 땐 내 스스로의 글에 창피함을 느끼고 앞으로 안 쓸까도 생각해 본 때도 많이 있다. 내가 산문에 관심을 갖으려한 것도 어떻게 하면 내가 내 글에 책임을 지고, 조금이라도 나은 글을 구사해 볼까 얍삽한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선우의 문장을 대하면서, 문장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사람처럼 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문장은 사유의 깊이에 비례할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때론 문장이 사유의 깊이를 쫓아 갈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작가들은 피를 말리는 문장과의 사투를 서슴치 않기도 하는 거겠지.

작가에게 있어서 문장을 다듬는다는 건 어떤 글을 쓸 것이냐 못지 않게 자기 살을 깍는 아픔과 같은 것이리라.

무엇이 산문 정신일까? 좀 더 심사숙고 해 볼 일이다. 단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문장의 명징함과 유려하다 못해 장중함 또한 느껴졌고, 사유의 깊이에 천착하는 작가의 성실함에 마음 속 깊이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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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10-1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산문을 잘 쓰지 못하는 시인의 시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Love 파이어 1
우에수기 카나코 지음 / 대명종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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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인터넷 써핑을 하나 재미있는 이미지가 있어 이곳 알라딘 페이퍼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것은 당신은 왜 이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쏠로냐는 것에, 예. 아니오를 화살표 방향대로 따라가 답을 찾는 것이다.  

궁금하면,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foryou/mypaper/530205 를 보라.

거기에 따른 서재 주인장들의 댓글엔 '두려움'이라고 답한 주인장들이 많았다. 나 같은 경우엔 '미숙'이라고 나왔는데, 막연히 짝은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만나겠지. 뭐 그런식으로 따라 가다가 그렇게 나온 것이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난 미숙하기도 하고 두려움도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두려움이 있다고나 할까?  

결혼에 대해 아예 관심없는 것을 제외하면, 결혼을 하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들 것 같다. 가장 좋은 건 어느 한순간 상대에게 그야말로 뿅가서 결혼하게 되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하고, 빠르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기대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좀 더 강해지는데, 그럴 수 있는 확률은 현실적으로 가면 갈수록 희박해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결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 나를 선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건 현실에서 그다지 많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결혼하려고 아둥바둥 거리는 것도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확실히 자존심이 허락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딘가 운명의 짝이 있지 않을까? 나는 항상 이성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길 바라지 않을까? 그래서 결혼 상대자를 만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유혹의 기술을 연마하는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싶어한다면 미숙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화 '러브 파이어' 한 여자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고 결혼 상대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재치있고 사실적으로 그려간다. 

주인공 다카라는 스물 여덞에 결혼을 안하면 평생 독신으로 살게될거란 어느 정쟁이의 말을 듣고, 독신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좀 황당하지 않은가. 고작 점쟁이의 말을 믿다니. 하지만 이러한 설정도 나쁘지마는 않다. 결혼이란 자기 하고 싶을 때 하는 거라고 다들 말하면서도 또 어느 누구는 그래도 몇살이 될 때까지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되지 않을까?

정말 결혼이란 자기가 하고 싶을 때 당당히 할 수 있는 것일까? 말은 그렇게해도 막상 현실을 살아가노라면 그렇게 녹녹치는 않을 것이다. 결혼을 하기로 했다면, 어떻게 많은 사람을 만나 보지 않고 좋은 사람을 판별해 낼 수 있는가? 단순히 이상형만 가지고, 쪽지 하나들고 주소 찾아가듯 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많이 만나 보는 과정에서 좌절의 아픔도 격고 그러면서 연애 철학자가 되는 것이기도 하겠지.

이 만화책은 총 두권으로 되어있는데, 왜 결혼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은 나와있지 않다. 그리고 결혼해서 어떻게 살 것이라는 계획도 없다. 그저 오로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그렸을 뿐이다. 거기서 인상적인 건, 주인공 다카라가 이성과의 만남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고 자위하듯 하는 대사였다.

"난 지금까지 인간이란 혼자서 사는 게 편하고 제일 좋은 생활이라고 생각해 왔어...하지만 그 사람을 만나서 처음으로 알았어. 처음으로 알았어.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있는 게 좋은 것보다 기쁜 일이 많다는 걸."

그렇게 돈을 뜯기고 사기를 당하는 순간 이런 깨달음을 얻는 건 또 뭘까? 그러면서 비록 자기에게 사기친 사람을 오히려 두둔하듯,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만 있는 산노지에게 따귀를 맞자 "여자를 위해서 뭔가를 희생할 용기도 없는  남자한테 맞을 이유는 없어!"라고 절규한다.

어쩌면 연애나 결혼이 어렵다고 말하는 건,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지만, 기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용기가 없어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 주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쟁취하려고 한다는 건 좀 유아적 아닌가. 그래도 다카라를 사기친 상대는 비록 목적은 다른 것에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그 목적을 이루기까지 다카라에게 최선을 다 한다. 나중에 주인공에게 허무한 상처를 줄 망정. 과연 상대에게 최선을 다 한다는 점은 본받을만 하지 않은가?

끝마무리가 다소 싱거운 것 같아도 역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확정하는 순간, 현실에서 정말 이 사람이 내 사람 맞아? 하는 의구심은 가질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믿기로 하는 순간, 옛 애인의 방해 공작도 있을 법하다.

만화는 정말 보여줄 수 있는 한도내에선 충실하게 잘 짚어나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게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하다보니 주제 의식은 나름대로 있어 보이긴 하지만, 뭔가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인 것 같다. 적어도 진지한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겐 그랬다.

* 만화 리뷰는 처음 써 본다. 만화를 접할 기회가 그다지 않지 않은 나에게  아직 비교하고, 생각하고가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다. 그래도 지난 번 로드무비 이벤트 때 선물 받고 좋은 독서 체험을 하게 돼, 로드무비님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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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4-09-13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만화를 꽤 좋아하는데 이 리뷰를 읽어보니 마구 읽고 싶어지는데요..^^

설박사 2004-09-1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증맞은 표지와는 다른 진지한 서평이네요. ^^

stella.K 2004-09-1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예. 읽어 볼만 합니다.^^
설박사님/오랜만에 뵙겠네요. 제가 좀 그렇습니다. 설익은 진지과라고나 할까요? 하하.

마립간 2004-09-13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을 생각하신다면 <준비된 결혼이 아름답다> (홍일권 저/생명의 말씀사 출판) 도 읽어보세요. (마립간의 평 - 결혼전에 단점을 많이 보고, 결혼 후 장점을 많이 본다. - 결론 결혼 못한다.) 저는 제 자신이 배우자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을 만하다고 느끼면 결혼 상대자를 찾으러 나설 생각입니다. 좋아하다면(사랑한다면) 희생 못 할까?

로드무비 2004-09-1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스스로 존경과 신뢰를 받을 만하다고 느끼는 날이 과연 올까요?
아무리 양심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살아도 평생 자신을 회의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지?
아이구참,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건방졌다면 양해해 주세요.
스텔라님, 아유, 세상에 리뷰까지 쓰셨네요.
잘 읽었고요, 스텔라님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아주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stella.K 2004-09-1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그 책 저한테 선물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하하. 농담이어요.^^
로드무비님/어제 졸려서 횡설수설하면서 쓴 흔적이 보입니다요. 그래도 이쁘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마립간님은 이상적이어요. 저도 그렇지만. 로드무비님은 결혼을 하셨으니 현실적인 충고겠죠. 전 왠지 로드무비님 말씀에 한표!^^

바람구두 2004-09-2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한 눈에 뿅가서 결혼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닐까요? 흐흐.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