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만이 기록문학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록문학의 대표성을 지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찾아 보면 시대를 대표할만한 기록문학은 더 있지 않을까?

 

새해 벽두에 내 눈에 띈 책은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다. 다소 신파스러운 제목이긴 하지만,  평생 복숭아밭 농사를 하며 1961년부터 죽기 1년 전인 90년까지 30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쓴 이춘기 옹의 일기를 엮은 책이라고 한다.(그는 1906년도 생이다).

 

아내가 병에 걸리고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아내를 간호한 것은 물론 그의 자잘한 일상과 3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세시풍속과 변화상, 3.1 운동 및 6.25에 대한 상세한 회고담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읽고 싶어졌다.

 

특히 이춘기 옹의 기록정신은 무엇이고, 그가 느끼고 보았을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어땠을지 궁금해진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너무 사관 위주나 학자들의 저서로만 알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역사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에 관해선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 책은 서경대의 이규복 교수가 발굴해 분석하고 이를 논문으로 써서 관련 학회에 보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제 난 또 알라딘으로부터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다. 물론 서재의 달인이 되어서 받는 것이긴 한데 최근 3년간 연속이다. 이미 밝히긴 했지만, 난 오랜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알라딘 덕분으로 다시 일기 쓰기에 도전을 해 볼까 했는데 재작년엔 반도 채 채우지 못했고, 작년도 거의 그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재에 글을 올리는데 뭐 또 써야하나 싶기도 하고, 팔도 아파 육필로 글을 쓴다는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올해 뭔가 뜻한 바가 있어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알라딘 선물이 새해가 시작되고도 늦게 도착해 그동안은 작년 다이어리에 이어서 쓰기 시작했다. 난 쓰레기 강박증이 있어선지 아니면 블로그라고 하는 사이버 상의 공간이 있어서인지 무엇을 쌓아두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책을 쌓아두고 사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다이어리 쓰기가 유행이라고 하지 않는가? 거기에 편승해서일까? 아니면 그나마 건강 보조식품을 먹고 팔을 쓰기가 조금 나아져서 일까? 육필이 좀 수월해졌다. 

 

다이어리에 글을 쓴다는 건 공간의 제약이 있다. 하루하루 날짜가 적혀져 있어서 1페이지를 넘어가지 못한다. 그러니 한 가지 사안을 가지고 주저리 주저리 쓸 수 없다. 그저 하루하루 간단한 기록만 하게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이어리엔 가급적 간단 명료하게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루에 있었던 일, 반성과 계획, 자신에 대한 소망과 바람 정도만 간단히 쓰는 것이다.

 

블로그란 공간이 없었을 때는 일기 쓰기가 나름 중요한 시절이 있었다. 그것마저  없으면 어디가 말도 못하고 정리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블로그가 생기고 부터는 이를테면 오픈형 일기 쓰기가 가능해졌고 댓글러들의 실시간 코멘트가 있으니 선호하는 장르가 된 것도 사실이다. 또한 원치 않으면 비공개로도 할 수 있으니 나쁠게 없다.

 

그런데도 꼭 육필로 쓰는 일기가 필요한 걸까? 글쎄..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이제 너무 흔한 형태가 되었고, 어떤 면에선 기록 보다는 소통을 위한 것이많다. 그래서 다소의 말장난과 농담들이 오고 간다. 누군가 볼 것을 생각하고 쓰는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는 책이 생각난다. 거기에 보면 19세기였던가? 미국의 한 조산원이 쓴 일기가 발견이 되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앞서 서두에 밝힌 책 <목련꽃 필무렵...>도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일상이 위대하지 않다고 누가 말하지 않겠는가? 세월은 무심히 흐르는 것 같아도 인간은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그 변화가 별 것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변화를 쫓아가던가 못하겠으면 관망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하하는 말 중 하나는 '유장함'이란 단어다. 길고 오래며, 급하지 않고 느릿하지만 그속에서 뭔가의 변화를 이루어 내는 것. 사람이 밥 먹고 잠만 자고 사는 것 같아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내는 것만으로도 어떤 일을 이루어낼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너무 눈에 띄지 않아 사는 동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죽을 수도 있다.

 

사실 어떤 형태로든 일기는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필요성이 가면 갈수록 더 커진다. 뭐 치매 예방은 물론이고, 한 해를 마쳤을 때 내가 뭐하며 살았지? 치매 환자처럼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 말하기 전에 하루를 잘 살고, 잘 마치려면 일기 쓰기는 필수인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순간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먹어 본다. 일기를 잘 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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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0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1-10 16:12   좋아요 1 | URL
맞아요. 동감입니다.
그래서 <목련꽃 필무렵...> 같은 책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도 일기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같이 써요!^^

2018-01-10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1-10 17: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렇게 말씀하신대로 감사나 감동을 적으면
엔돌핀이 솟기 마련이죠.
저는 제가 좀 의지가 약하고 뭘 계획적으로 하지 못하거든요.
그걸 개선해 보고자 일기를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쓰면 이루어진다잖아요. 그거 한 번 해 보려구요.^^

cyrus 2018-01-10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블로그를 하기 전에 제가 생각했던 ‘일기’는 그 날 하루 뭐했는지 시시콜콜한 일상을 기록하는 글이었어요. 지금 제가 생각하는 ‘일기’는 책을 읽으면서 뭘 느꼈는지 기록하는 글이에요. ^^

stella.K 2018-01-10 17:53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요즘 왜 ‘읽어본다‘ 시리즈 있잖아
거기에 너도 들어가야 한다니까.ㅎㅎ

서니데이 2018-01-10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장하다는 말에서, 어쩐지 한번도 보지 못한, 그러나 텔레비전으로는 언젠가 보았을지도 모를, 길게 흐르는 강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stella.K님, 서재의 달인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


stella.K 2018-01-10 19:06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보통은 무심히 흐르는 천년도 더 흘렀을 강물에
비유하기도 하죠. 또는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패이게 한다잖아요.
그럴 때도 쓰이지 않을까 싶어요.
서니님이 매일 같이 쓰는 페이퍼도 나중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언제까지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써 보세요.
응원합니다. 축하 고마워요.^^

hnine 2018-01-11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는 좋아요만 누르고 와서 지금 다시 읽었어요.
두권 모두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위의 책은 소개글만 봐도 마음이 찡했고,
아래 소개해주신 책을 보고 일단 반가왔던 것은, 저도 평소에 기록하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Homo xxx 라는 말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저도 나름 쓰거나 기록하는걸 좋아하기 때문에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stella.K 2018-01-11 13:23   좋아요 0 | URL
ㅎㅎ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는 저의 책에서도
다뤘던 것 같아요.ㅋ
위의 책은 저도 좀 궁금하네요.
h님도 기록하는 거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기록하는 걸 좋아해야 할 텐데
왜 가면 갈수록 게을러지는지 모르겠어요.ㅠ

페크pek0501 2018-01-1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날짜가 적혀 있는 일기장을 선호하지 않아서(매일 쓰는 건 어려워서) 대학노트에 내가 날짜를 적고 일기를 쓴답니다. 몇 년을 썼는지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써 왔기 때문에요. 매일 쓰는 건 아니라도 일기장이 몇 권 쌓이는 걸 보는 건 뿌듯합니다.
제가 문맥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문맥에 맞게 썼던 건 일기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일기를 쓰는 시간은 문장을 갖고 노는 시간, 문장을 연구하는 시간도 되거든요. ㅋ

꼭 그날 있었던 일만 쓰는 게 아니라 며칠 전에 있었던 일도 쓸 수 있어 일주일에 한두 번 쓰는 것도 좋답니다.

님의 일기 쓰기를 응원합니다!

stella.K 2018-01-11 14:3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다이어리는 날짜가 적혀 있으니
안 쓸 수도 없고. 일단 가계부 쓰는 마음으로 써 보려구요.
언니는 문장을 갖고 노는 마음으로 쓰시는군요.
저는 오히려 그나마 블로그가 있으니까 문장을 다듬지
일기는 그냥 생각나는데로 개발세발로 쓰고 있습니다.
까이 꺼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하면서 말이죠.
나중에 보면 이걸 내가 썼단 말야? 놀라기도 하죠.ㅋㅋ

이번에 쓸 땐 글씨도 나름 정성들여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보게되면 후회없게 하려고.
알고 보면 제가 좀 많이 허술합니다.ㅎ
응원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18-01-1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는 날들입니다. 기억이 차츰 흐릿해지니 더욱이요. 그럼에도 게으름을 ㅎㅎ 저 책은 네맛대로읽어라 에서도 나왔지요.

stella.K 2018-01-17 13:04   좋아요 0 | URL
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ㅎ
그런데 그 책이 아쉬운 건 좀 딱딱하지 않나 싶어요.
책 제목은 100% 동의하는데 말이죠.

저 <목련꽃...>은 도착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