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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 악의 역사 3, 중세의 악마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3월
평점 :
이 책은 제프리 버튼 러셀의 악의 역사 4부작 중 중세에 해당하는 것으로써 3권에 이른다. 저자는 고대로부터 시작해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악마가 그 시대 시대마다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가를 신학, 역사, 문학사등 다양한 방면에서 고찰한다.
나는 기독교인이고 기독교에서는 사탄을 실재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성경은 사탄의 존재와 그가 하는 일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들이 많이 나온다. 이를테면 구약의 욥기서를 보면 사탄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고, 신약에도 보면 예수님이 광야 시험을 당하셨을 때도 역시 사탄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은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며 공중권세 잡은 자로 언급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인간의 역사와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까? 무신론자들이 인정을 하던지 안하던지간에 인간의 역사는 신(神)과의 역사고 동시에 악마하고의 역사다. 신 또는 신앙은 인간을 절대의 세계로 인도하려고 하지만 사탄은 그것을 끊임없이 전복시키려고 한다. 그 사이에 낀 인간은 늘 갈등하고 번민하며 고통하고 괴로워 한다.
사실 동양은 어떨지 몰라도 서양은 악마를 지칭하는 이름도 다양하다. 데블이라고도 했으며, 사탄이라고도 하고, 루시퍼, 메피스토텔레스까지. 또 부여한 이름이 있는가? 3권은 '루시퍼'에 해당하는 것이니 그 이름을 살펴보자. 루시퍼란 그 이름엔 위대한 왕, 새벽 별, 자신의 자만심 때문에 하늘에서 떨어진 헬렐 벤 샤하르와 창조된 날로부터 죄악을 저지를 때까지 나름대로 완벽했던 [에제키엘서] 28장의 거룹, 이 세상의 왕이며 하나님 왕국의 방해자인 사탄의 연합으로 생겨났다.(8p)
이것이 중세에 미쳤던 저자의 작업은 실로 방대해서 나의 조그만 머리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그래도 내가 이 책을 감히 읽을 생각을 했던 건 기독교인 때문마는 아니다. 오히려 오래도록 글 쓰는 일에 관심을 갖다보니 악마가 이야기를 만드는데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는 도구(?)인가를 나름대로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중세>라고 하는 이 매력적인 시기에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문예부흥기이라고 하는 르네상스에도 불구하고 중세 때 악마는 그다지 멋있는 존재로 비쳐지지는 않아 보였다.
악마는 '결핍'이라고 하는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는 아직도 유용하고 너무 매력적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유사 이래로 역대 많은 이야기꾼들이 악마를 다룸에 있어서 자기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데 악마를 데려다 쓰는 것을 서슴치 않았고 '메타포'란 왕관을 그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11장) 그것이 오늘 날에도 유용하여 영화에서도 환타지 소설에서도, 권선징악을 말할 때도 악마는 실제적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물질계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영계(靈界)를 얘기할 때 그것이 인간의 상상력과 정신이 빚어낸 산물이냐? 아니면 원래 영계(靈界)는 존재하는데 인간이 그것을 캐내어 알게된 발견의 산물이냐가 궁금하다.
물질이야 인간이 필요해서 만들고 이용하고 손에 잡히는 거지만 신이나 영혼 또는 악마나 천사까지도 인간의 오감만으로는 말해질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 아닌가? 그것을 증명해 내려는 것은 어찌보면 프로메테우스적 도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험을 기꺼이 나선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도용해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를테면 9장에서, 중세 때 각 시대마다 사탄이 연극에서 어떤 비중으로 그려졌는가를 보는 것은 좀 흥미로웠다.)
악마라고 하는 이 하나의 역사만을 추적하는 것도 상당히 방대한 작업인데 11장에 가서 악마는 '메타포'(은유)라고 결론지으니 다소 맥이 빠져보인다. 물론 뭐에 대한 메타포냐를 추적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그것도 꽤 의미있는 일이 되긴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