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엄마의 대장암 수술이 있었다. 다행히도 수술이 잘 끝나서 지금은 일반병동에서 회복중에 계시다.
요즘은 진짜 의술이 좋아졌는지 사람들은 대장암을 이제 예사로 알고 있다. 뭐 맹장수술과 동급쯤이라고 하면 좀 심한 표현이려나? 그것을 몰랐을 땐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대장암 수술을 받고도 오래 장수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는 말을 들으니 일단은 마음이 놓였다. 특히 병력이 있거나 따로 먹고 있는 약이 없으면 예후는 더 좋아질 수 있기 때문에 크게 염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사람들 저마다 입을 모은다. 다행히도 엄마는 노인이라고 해도 건강하게 지내왔던 분이라 예후가 좋을 거라고 했다. 오죽하면 동생의 친구가 의산데 폐의 경우 자신 보다 엄마가 더 좋다며 추켜세운다. 그렇다면 뭐 크게 문제 없겠다 싶었다.
참고로 엄마는 대장암 3기라고 한다. 모르면 언제 3기까지 갔다 싶기도 하겠지만, 내가 아는 지인의 아버지는 2기인데도 다른 장기에 까지 전이가 된 것은 물론이고, 2기하고도 여러 갈래가 있어 다루기가 까다로워 의사들은 그럴 바엔 차라리 아예 3기가 낫다고 했단다.
게다가 대장암이나 위암의 수술 성공율은 우리나라가 세계 탑이라고 하니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법도 한데 막상 수술 당일이 되고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았을 땐 걱정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다. 수술 전날 저녁 엄마에게 전화해 "엄마, 고난 속에 흔들리지 않는 게 진짜 믿음이야. 사람들은 신앙생활 잘 하면 하나님이 건강 축복 주신다고 하지만 그건 반쪽짜리 신앙이고 미신이야. 그러니까 담대한 마음으로 수술 받아. 알았지?" 하며 엄마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드렸지만 그건 실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겁 먹을수록 겁 먹지 않은 척 일부러 오버하는 기합 같은 거 말이다. 그런데 고난이 믿음을 강하게 하긴 하는 모양이다. 몇 수십 년 동안 하지 않았던 아침 금식(아침을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도 이틀 동안이나 했다.
의사는 수술은 보통 2시간 정도고 그 보다 더 소요될 수도 있다고 했단다. 엄마는 혹이 커서 복강경으로 할지 개복으로 할지는 수술 시작하면서 결정하겠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간에도 전이가 된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절제가 필요할 것이라고도 했다.
수술이 시작되고 나의 기도도 시작됐다. 그 두 시간 남짓 동안 내가 망부석이 되어 줄창 기도만 했을 리는 없다. 우리네 엄마들 입시 날만 되면 교회고, 절이고 자녀들이 시험 끝날 때까지 줄창 기도한다던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신기할 뿐이다. 어쨌든 그동안 기도했다, 누웠다, 아주 잠깐 잠이 들었다 하면서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앞서 말한 지인은 아버지를 수술실에 들여보내놓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의 또 다른 지인은 몇 년 전 겨우 위암 1기였는데도 하나 있는 딸 걱정에 수술 전날까지도 딸에게 여러 가지 유언 같은 당부를 했다고 한다. 특히 나도 10살 때 어쩔 수 없이 수술실에 들어갔어야만 했는데 나를 그곳에 들여보내놓고 엄마와 아버지 마음이 딱 지금의 내 마음 같았겠구나 싶으니 짠했다. 또한 나는 평소 누가 나에게 기도 부탁을 하면 얼마나 성심껏 기도를 잘 했을까 반성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엄마가 아프고 수술을 받게 되니 여기저기 기도 부탁하는 내가 참 부끄럽게도 느껴졌다.
예상 소요시간을 훨씬 초과했는데도 병원을 지키고 있는 동생으로부터 이렇다할 연락을 받지 못하자 안절부절이 됐다. 뭔가 잘 못된 건 아닐까? 집도의가 힘든 수술이 될 수도 있다고 겁주던데 정말 그런 상황인 건가? 벼라별 걱정이 다 돼 갈수록 기운이 빠져 점심을 먹을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먹는 수 밖에. 오죽했으면 먹는 중에 동생으로부터 불미스런 소식을 듣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먹었을까? 그랬다면 그 먹는 것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도 내뱉지도 못하고 었겠지.
그런데 수술을 시작한지 4시간 가까이 되었을 때쯤 동생으로부터 참으로 다행한 소식이 들렸다. 엄마는 개복없이 복강경 수술로 수술을 마쳤으며, 무엇보다 간에는 전이가 되지 않아 그대로 뒀다고. 그리고 다른 몇 마디의 말도 덧붙였는데 종합해 보면 엄마는 아주 무난하고도 양호하게 그리고 생각 보다 일찍 수술을 마쳤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찌나 신경이 곤두섰던지 긴장이 풀리자 잠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제 엄마는 회복하는 일만 남았다. 혹시 몸에 남아 있을지 모를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한 달 후 정도부턴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환자의 나이와 건강상태를 고려해 생각보다 심하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의사에게 당신이 만일 암에 걸리면 항암치료를 받겠냐고 하면 열의 아홉은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왜 일반환자들에겐 이것을 하는지 모르겠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랬다고 병원에 들어 온 이상 병원의 치료법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 관례라는 것이 좀 씁쓸하다. 엄마는 바로 이것이 싫어서 병원을 안 가려고 그토록 버텼던 건데 한번 들어 온 이상 짜여진 프로그램에 의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게 마음이 편치가 않다. 단지 내가 처음 들었던대로 대장암은 예후가 좋아 수술 받고도 오래 장수하는 노인이 많다 말 하나 위안을 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