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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와 엠마 - 다윈의 러브 스토리
데보라 하일리그먼 지음,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이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겉으로는 찰스 다윈이 그의 사촌 엠마 웨지우드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선택하고, 인생을 함께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찰스 다윈(그의 아내 엠마도 마찬가지겠지만)이 결혼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과 어떻게 세계관(이를테면 신앙인과 불신앙 또는 유물론자와 유신론자)이 다른 사람과 만나서 조화를 이루며 살 것인가에 대한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과 '언제' 사이에서
책의 시작은 이렇다. 어느 날 결혼적령기에 이른 찰스가 '결혼하기와 결혼하지 않기'의 목록이 기록된 노트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결혼해서 좋은 점과 불편한 점. 결혼하지 않아서 좋은 점과 나쁜 점 등을 대차대조한 것이다. 이것은 읽는 나로 하여금 찰스 다윈의 현명하면서도 어찌보면 깜찍한 일면을 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세상에 이것을 꼼꼼히 따져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나는 기독교인이고, 진화론에 대해선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관계로 다윈 역시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그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본인도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라고 시인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이런 인간적인 일면이 있다니! 그건 확실히 그를 다시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늑대 같은 일면 보단 여우 같은 일면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결혼에 의해 상대를 선택하기 보다 상대가 좋기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물론 여자도 별로 다를 바는 없어보이긴 하지만)? 그런데 이렇게 결혼을 먼저 생각하고 후에 사람을 생각했다는 것은 새겨 볼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그의 결혼에 대한 대차대조는 이런 것이다. 결혼을 하면, '저녁시간에 독서를 못함, 비만과 나태, 불안과 책임, 자식이 많아 생활비를 벌어야 하며 책을 살 돈이 더 적어짐.'(23p) 이것은 확실히 결혼해서 안 좋은 점들에 속한다. 하지만 결혼해서 좋은 점은, '상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한결같은 동반자','사랑과 재미를 함께 나눌 대상'이 있어 좋을 것이라고 쓰고 이것은 아무리 나빠도 '어쨌거나 개보다는 낫겠지'라고 까지 썼던 것으로 보아 그렇게 냉정하게 결혼을 생각하려고 해도 상당히 결혼하는 쪽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어쨌거나 개 보다 나을 것이라니! 어찌보면 도박하는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결혼은 정말 도박일까? 아무튼 그가 이런 기록을 했다는 것은 그가 인정을 하던 안하든 그는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런 기록은 씌여지지 않았거나 이 보다 훨씬 뒤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또 '만약'이란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 만약에 결혼을 안 한다면. 하지만 그 초점을 '언제'로 돌리면 그건 좀 더 진지한 것이 된다. 그는 말한다. 결혼을 일찍하지 않으면 순전한 행복을 너무 많이 놓치게 된다. 아내를 어루만지고 그 뜨거운 열정을 느끼는 행복 말이다(82p). 이건 확실히 개 보다 나은 생각에서 훨씬 발전된 형태고, 구체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그를 결혼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그런 말을 한다. 결혼은 아무 것도 모를 때 하라고. 그런데 이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어디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무책임성을 조장하는 말이다. 결혼은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를 철부지 나이 때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윈 같은 생각을 가급적 어린 나이에 해 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내가 몇 살에 결혼할 것이며, 상대는 어떤 사람이 좋을 것이며,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가급적 구체적으로 해 보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를 때 결혼한다는 것은 사춘기를 두 번 사는 것과 같지 않을까? 이제 겨우 정체성이 뭔지를 알고 그것을 확립할 나이는 10대 말에서 20대 초반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럴즈음 결혼을 해버리면 닥쳐 오는 혼란을 슬기롭게 해쳐 나가게 될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거기다대고 결혼은 아무 것도 모를 때 하라고 부추기다니. 물론 그래서 잘 살면 다행이지만, 바로 아무 것도 모를 때 결혼해서 실패한다면 그것을 책임져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럴 땐 다시 한번 말하건데, 결혼은 아무 것도 모를 때 하라고 하지 말고, 아무 것도 모를 때 생각해 보라고 권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또 그만큼 결혼에 대해 이것저것 듣는 것이 많으면 오히려 결혼을 못한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아는 것 같다. 어차피 몇 살에 결혼을 하든 결혼은 선택이다. 그만큼 신중히 생각해 보고 선택하는 것일테니 그것도 지나친 기우다. 단지 다윈은 결혼을 생각한 이상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얻은 것 같다.
하지만 오늘 날의 결혼은 어떤가? 이런 절차 보다는 한 눈에 반해서 결혼이거나 정략적인 결혼을 많이 하는데 그건 또 아무 것도 모를 때 결혼해야 한다는 그것과 얼마나 쌍벽을 이루는 말인가. 물론 그래서 평생 잘 사는 커플이 없지 않지만, 나는 대체로 그런 결혼은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따라나오는 말이 결혼은 도박이라고 까지 하지 않는가? 그렇게까지 결혼을 속되게 표현해도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아는 남자 후배는 20살이 되면서 결혼을 생각했고, 기도해 왔다고 했다. 그말을 들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결혼에 대해 적잖이 회의적이었으므로 그의 말이 그다지 좋게만 와닿지 않았다. 무슨 결혼 못해 걸신이 들렸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결혼한 때가 30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무려 10년 동안을 사모하며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그는 지금 아이 셋 낳고 잘 살고 있다. 물론 사람들 누구나 드라마 같은 사랑과 결혼을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 준비나 생각없이 결혼해서 실패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그러므로 이 책이 말하는 것은 '결혼은 신중한 선택'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다.
세계관(또는 인생관)이 다른 사람과의 결혼에 대하여
사실 찰스와 엠마의 결혼이 주목이 되는 것은 찰스가 결혼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해서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건,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다른 사람이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느냐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결혼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해 보면 비슷하다는 건 어느 한 두 개의 경우에만 해당이 되고 많은 부분 서로 다름에 놀라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신앙인과 비신앙인과의 결혼을 문제 삼는 경우가 있는데, 찰스와 엠마 그들의 결혼이 신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결혼 자체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찰스 역시 처음엔 신앙인이었다고는 하나(유니테리언) 그다지 믿음 좋은 사람은 아니었고, 훗날 진화론을 확립한 후엔 교회와 멀어졌다. 그런데 비해 아내 엠마는 독실한 크리스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 날에도 적지않은 남녀가 결혼하는데 발목잡는 문제거리다. 물론 성경에도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구약 시대로부터도 믿지 않는 자와의 결혼을 경계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보다 정확히는 이교도와의 결혼을 경계해왔다고 보는데 그것은 신앙의 정통성을 흐려놓는 것 때문에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믿음을 지키기 보다는 믿음이 약화되거나 배반히는 것 때문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따져 볼 것이 많다.
물론 오늘 날 정통파 교회들은 이것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안에서도 다소 유연한(때론 파격적일지도 모르겠다) 사고를 취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그 사람이 교회를 다니느냐 안 다니느냐고만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의 인격이 어떠한지, 인생관이 어떠한지를 먼저 보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건 상당히 중요하다. 예전엔 신앙을 가졌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인격과 인생을 걸었다는 것과 같기 때문에 상대가 믿는 사람이냐 아니냐는 너무나 중요했다. 하지만 오늘 날의 신앙은 예전의 절박한 그 무엇인가가 없기 때문에 무늬만 신앙인 경우도 많다. 때문에 상대가 신앙이이냐 아니냐만을 가지고는 선뜻 결혼 상대자로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논리가 되어버렸다. 배우자가 비신앙이어서 나의 신앙을 핍박하거나 덩달아 나의 신앙이 흐려진다면 그건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이나 성격을 봐야할 문제라는 것이다.
사랑하면 배우자가 신앙을 가졌다고 핍박을 할 것이 아니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고도 나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면 결혼하라고 조언하는 입장이다. 이 책도 바로 그점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찰스는 믿음이 없었지만 아내의 신앙을 핍박하거나 믿지 말라고 종용한 적이 없다. 그는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에 아내의 신앙도 존중했다. 물론 그에 비해 아내 엠마는 남편 찰스가 믿음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 했지만 그녀 역시 남편에게 신앙을 종용하지는 않았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처럼 교회가 무조건 믿지 않는 자와의 결혼을 금한다는 건 맹신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오늘 날의 교회가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찰스와 엠마의 시대처럼 말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지나치리만큼 그런 교회가 있다면 그건 좀 의심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이 책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조금은 덤덤하고 처음보단 흥미가 다소 떨어진다. 하긴 남의 결혼도 연애하고 결혼식 할 때까지만 관심이 있지 결혼하면 더 이상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이 책도 그런 한계는 있다. 엠마의 계속되는 출산, 찰스의 연구 과정 그리고 아이의 탄생과 죽음 그 가운데 결혼생활을 관조하는 것 정도인데 결혼생활의 관조가 좀 약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찰스 다윈의 위인 전기를 읽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일까? 엠마의 계속되는 출산이 나는 보면 볼수록 안쓰럽게 느껴졌다. 사람이 애 낳은 기계도 아니고. 하지만 그 시대는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아이의 생존율이 그렇게 높지가 않았다(그것은 어느 나라 마찬가지다). 그러니 힘 닿는 데까지 계속 낳는 수 밖에. 오늘 날의 다둥이는 거의 영웅 대접을 받지만 그 시대는 그렇지는 않다. 남자 역시 아이를 먹여 살리고 가정을 책임져 나간다는 건 그 시대나 이시대나 똑같이 어려운 것 같다. 무엇보다 내 시간이 없지 않는가? 그래서 전에는 결혼하는 쌍을 보면 무조건 좋아 보이거나 부러웠는데, 지금은 안쓰럽고 걱정되는 부분이 더 많다.
결혼하면 나는 없다. 그래서 결혼을 인생의 무덤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혼해서 나를 찾고 가꾼다는 건 모순이다. 그럴 것 같으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혼자 찾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 희생되어질 때 완성되어진다고 했던 것 같다. 통계에도 보면 끊임없이 가정을 돌봐야 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도 건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만 집착되어 있는 사람은 우울증이나 자살할 확률이 그렇지 않는 사람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한다. 또한 종교를 가진 사람이 종교를 가지지 않는 사람 보다 건강하게 살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그것을 여기서 새삼 짚지는 않겠다. 그런데 찰스 다윈은 좋은 신앙관만 가지고 살았더라면 건강하고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는 평생 건강은 안 좋았지만 시대치고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은 만족한 결혼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니 이 책의 결론은 이런 것이다. 신앙이 없으면 결혼생활이라도 잘하라. 신앙도 좋고 결혼생활도 좋으면 금상첨화다.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