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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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래왔듯이, 신경숙 작가의 소설들을 읽는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마는 아니다. 그녀의 작품엔 늘 쓸쓸함과 우수가 베어있다. 그것을 또 객관적으로 보기란 쉽지가 않다. 말하자면 함께 그것에 젖어든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제 이 작가의 작품은 그만 읽어야지 해놓고 또 어느샌가 또 한 권의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역시 그 특유의 쓸쓸함을 목도했고 다 읽고난 지금 우울함이 가슴 한켠에 잔잔히 남아있다.   

이 작품은 과거를 더듬는다.  연대기적 배경은 80년대 중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은 그로부터 8년 후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80년 대하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건 역시 민주화항쟁운동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제와서 민주화항쟁운동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랬다면 민주화항쟁의 선봉에 선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테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 주변인물에 촛점을 맞춘다. 이를테면 그 시대가 민주화 운동에 압장선 투사가 아니라 그 주변인들이 어떻게 상처받고 어그러졌는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시대가 행복했다면 이 작품도 행복을 얘기했거나 아예 다른 형태로 나왔을 것이다. 그 시대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암울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았는가? 그 시절 주변인들이 어떻게 고통당했을지. 나는 이 책을 대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별로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을 작가는 잘도 잡아 펼쳐보이는구나 했다.  

솔직히 그 시대를 돌아보면, 민주화항쟁의 투사든 아니든 크고 작게 다 상처받은 세대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나 역시도 밝힐 건 못되지만, 그 시절은 암울했던 것만큼 문학 역시 암울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모든 작가들이 참여 문학만을 쏟아내는데 우리나라 문학에 무슨 밝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이것이 한 개인의 미련한 생각이겠지만, 그 사람에겐 그 시대가 문학과 절연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상처라면 상처일 수도 있다. 일개의 개인일지라도 문학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은 내일을 논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거니까. 이런 식으로 그 시대의 아품은 어떤 식으로든 개인에게 상처를 남기는데, 작품 속 인물의 아품은 비슷한 시기에 청춘을 살았던 나 같은 벽안의 독자 보다 더한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소설은 허구다. 그러므로 주인공 역시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이겠지만 그 시대를 말함에 있어 실제는 그 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어찌보면 미래와 미루 자매의 집안은 오늘 날의 시각에서 보면 꼭 저주 받은 집안 같기도 하다. 어떻게 미래는 치명적인 육체적 상처로 인해 발레리나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런 언니의 그 상처가 자기 때문이라며 살아있는 날 동안 십자가를 진 미루. 그래도 미래는 훗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행복해하고 그 애인을 동생에게 소개시켜 주기로 한다. 하지만 소개시켜주기로 한 바로 그 날 애인의 실종 소식을 접하고 반미치광이가 되어 그를 찾아 헤멘다. 미래의 애인은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쫒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애인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때 미래는 분신 자살을 하고, 미루는 그때 입은 화상을 천형처럼 지니게 된다.  생각해 보라. 사랑하는 언니가 눈 앞에서 분신자살을 하는데 그것을 온전한 정신으로 지켜 볼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 부분은 확실히 나에게도 조금은 충격스러웠다.  

하지만 또 어찌보면 죽은 미래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이해 못할 부분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것. 그것도 젊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지만 무엇보다 그것은 미래가 할 수 있는 시대를 향한 극단적인 항거인지도 모르겠다. 왜 그 시대는 개인이 맘놓고 사랑도 못하는 시대란 말이인가?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지켜줄 수 없다면 그 나라는 별로 좋은 나라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랑이 깊으면 증오도 깊다고 결국 죽음으로써 항거하는 것 밖엔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실로 미래는 가련한 영혼이다. 

하지만 죽기로 한 사람에게 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죽을 수 있을까? 그것은 정말 살아있는 사람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윤미루 역시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가? 한 집안에 자살자가 둘이나 나왔다면 그건 저주받은 집안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지만 종국엔 나라와 시대가 한 가정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 그 시절 그렇게 스러져간 가정이 어디 하나였겠는가? 연좌제다 뭐다하여 실제로 민주화엔 가담도 하지 않았았는데도 그 가정과 개인의 권익은 박탈당했다.  

누구는 그랬다. 불행속에서도 행복은 있으며, 행복속에도 불행은 있는 법이라고. 8년이나 지나서 은사의 임종 때문에 잊을 줄 알았던, 아니 일부러 과거 속에 묻고 살았을 청춘의 한자락을 다시 생각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쓸쓸하다 못해 쓰리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를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이 다 불행했던 것마는 아니다.  행복하지 못한 때에도 작은 행복 한 두 가지는 있게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윤이 미루와 명서가 그래도 가장 행복한 시절을 살았던 건, 죽은 언니와 함께 살았던 그 집에서의 한때였을 것이다.  결국 인간은 아주 불행하지만도, 너무 행복하지만도 아닌 존재들이다.  

시대가 암울할수록 오히려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시대의 조류에 떠밀려 불행한 항거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노래하는 희망은 희망 그 자체 보다는 정의의 염원이 더 많이 실린 희망의 노래였을 것이다. 정의가 없으면 희망도 없는 거니까. 그 시절 윤교수는 왜 윤이나 명서에게 강을 건너는 크리스토프를 각인시켰을까? 암울한 시기는 민주화항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여전히 어두움의 시대에 살고 있는 줄도 모른다. 우리가 언제 정말로 행복한 때가 있었나? 그렇게 시대의 강을 흘러보내면서 누군가는 대신해서 시대를 건너 줄 크리스토프가 필요하다. 나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는 윤교수가 한 없이 존경스러웠다. 이런 세상에서 그런 빛이 되어줄 말을 하는 건 오히려 쑥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침묵해 버리거나 남이 행동하는 만큼만 행동하고 살려고 한다. 하지만 가치관을 확립해야 하는 청소년이나 청년의 시기에 마땅히 들어야할 소리를 듣지 못하면 그 사람의 10년 후는 어떻게 되겠는지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젊은 청춘의 시기를 다 보내버린 내가 지금도 가끔 돌아보면 그때는 정말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진짜 아름답게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젊음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소설 속의 윤만큼이나 쓸쓸하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어 들춰보기 싫은 것들이 더 많다. 젊음 그 자체는 아름다운데 왜 그리도 상처가 많고, 아쉬운 것이 많은 것일까? 그런 점에서 신은 공평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토록 젊음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그 삶이나 내면도 아름다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그도 사춘기 때만큼이나 실수가 많고 치이는 게 많다. 하긴, 인생자체가 고되지 않은가? 어느 때고 만족스럽고 평온한 때가 있으면 얼마나 되겠는가? 

젊음은 젊음을 벗어나야 젊음의 참된 가치와 아름다움을 한다. 그래서 어느 가수는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른다고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윤에게나 명서에게나 젊은 청춘 노트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각자에게도 청춘 노트가 있다. 때론 그걸 다시 꺼내볼 용기도 나지 않는다. 윤 역시도 윤교수가 임종을 맞지 않았다면 아니 맞았어도 그녀가 끝까지 몰랐다면 그 노트를 꺼내보지 않았을 것이다. 젊음은 좋은 거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과거는 좋은 게 없으니까. 하지만 사람은 언제 어떤 이유로든 그 추억의 노트를 꺼내보게 될 것이다. 그 노트가 실제로 있든, 마음 속에 있던 말이다. 그건 즐거운 것도 있지만 실수와 상처도 많을 것이다. 그때가 오거든 꼭 그때의 나와 화해하길 바란다. 그런 때는 나의 잊혀진 아픔을 건드리기 위해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과거는 현재와 연결이 되어있고, 오늘의 윤처럼 그렇게 현실에서 불쑥 나타나 화해를 요청하러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거든 피하지 말아라. 그냥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생각보다 덜 아프고, 생각보다 덜 슬플지 모른다. 또 아프면 어떻고, 슬프면 어떠랴? 이미 겪은 것들이 아닌가? 무엇이 두렵겠는가? 아마도 작가는 그것을 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는 줄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우울함이 다소 걷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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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8-30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우리 이 리뷰도 찌찌봉이네요~
우와~감탄사가 절로 나와여.
백만 개쯤의 추천을 날립니다.

stella.K 2010-08-31 10:30   좋아요 0 | URL
이거 사실은 이유있는 리뷰잖아요.
양철님은 아니신가?ㅋㅋ
방금 리뷰 읽고 왔어요. 님이 저 보다 10배 20배 잘 쓰셨네요.
전 어제 컨디션이 안 좋아 겨우겨우 썼다능...ㅜ

양철나무꾼 2010-08-31 12:03   좋아요 0 | URL
아니긴요~^^
이유 있는 리뷰 맞습니다.


전 아직 글이란 게 뭔지,리뷰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온 몸과 마음을 열어 놓고 터득하는 중이구여.

이게,이런 리뷰 대회에서 연거푸 물을 먹고 있지만,
계속 도전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님의 이벤트 참여도 그래서 였는걸요~
여러사람들에게 보여 객관적인 평가를 받다보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 하여...

lo초우ve 2010-08-30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어제 알라딘에서 구입했어요 ^^
읽기전에 스토리를 다 알게 되버렸어요 ^^
그래도 읽어야겠죠 ^^

stella.K 2010-08-31 10:31   좋아요 0 | URL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긴 하죠?
그래도 뭐 한자락에 불과하구요, 슬쩍 보여주는 맛이 있어야
리뷰라 하지 않을까요?ㅋㅋ

프레이야 2010-08-30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양철님과 동시에 텔라님도 이 리뷰를요. ㅎㅎ
아무튼 전 둘 다 반가워요.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이상은의 '언젠가는' 저 이 노래 무지 좋아해요.^^

stella.K 2010-08-31 10:34   좋아요 0 | URL
참 그 노래가 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애잔해지는지 모르겠어요.
누구는 빨리 나이 먹고 늙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저는 가면갈수록 젊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게 아쉽고 안타깝고
그래요. 어쩌면 좋아요.ㅠㅠ

순오기 2010-08-3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이 책은 끌리지 않아서 아직 구입도 안 했어요.ㅜㅜ
어쩌면 지난 연말 만났을 때, 강연에 초대하면 오겠다고 철썩같이 구두약속 해놓고
바쁘다고 시간낼 수 없다며 틀어버린 신경숙한테 삐쳤는지도...ㅋㅋ

선댓글, 후독서 할게요~ 큰딸이 12시에 할 게 있대요.^^

stella.K 2010-08-31 10:47   좋아요 0 | URL
저도 신경숙 씨의 작품은 누구한테 선듯 읽어보라고 권하진 못하겠더라구요.
이번 작품도 그렇긴한데 작가가 참 많이 달라지고 있구나 하는 게 느껴졌어요. 그건 리진 때부터인 것 같긴하지만...
이 작품은 약간 지적인 느낌도 있고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있더라구요.
왜 느리고 우울한 그런 영화.^^

조선인 2010-08-31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노래가 생각났어요. "내 청춘의 빈 노트엔 무엇을 채워야 할까.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리들 사랑의 이야기??? =3=3=3

stella.K 2010-08-31 10:48   좋아요 0 | URL
ㅎㅎ맞아요. 그 시절 그런 노래도 있었죠.^^

비로그인 2010-08-3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은 청춘을 몰라보고...
꼬부라져야 청춘을 제대로 느낀다니까요.
에잇~~

stella.K 2010-08-31 10:49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청춘도 두번 살아봐야 하는데...ㅎㅎ

마녀고양이 2010-08-31 11:42   좋아요 0 | URL
그니까,, 마기님은 지금이 청춘이라니까.
같이 퀼트하는 언니들, 나보고 제일 좋을 때라던데? 아하하.

그져, 스텔라 언니? 우리 모두 청춘 맞져? ^^

stella.K 2010-08-31 12:08   좋아요 0 | URL
마고님, 여러말 말구요, 추천이나 해 줘욧!ㅋㅋㅋ

비로그인 2010-08-31 12:38   좋아요 0 | URL
추천도 안하구선 댓글 달았었대요, 마녀님은?
얼른 눌러~~~

마녀고양이 2010-08-31 13:33   좋아요 0 | URL
추천 눌러떠여... 귀신이다...
깜박한걸 어찌 알았을고... ㅋㄷㅋㄷ

stella.K 2010-08-31 13:38   좋아요 0 | URL
제가 서재질만 7년째요. 그걸 모를까...ㅎㅎ
고맙소!

2010-08-31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31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1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09-0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신경숙 작가와 코드가 잘 맞는가봐요. 별 다섯개^^

stella.K 2010-09-01 11:09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저는 좀 안 맞나봐요.^^

다이조부 2010-09-0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 어느 시점에 신경숙의 출세작(?) 풍금이 있던 자리

를 필사하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

stella.K 2010-09-04 13:10   좋아요 0 | URL
오, 필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