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추리소설를 범죄소설이라 불러야 한다며, 범죄소설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솔직히 난 추리소설이 됐든 범죄소설이 됐든 이쪽 장르의 소설을 그나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얘기하기가 뭐하지만, 초등학교 때 코난도일의 추리소설이 어린이용으로 쏟아져 나온 적이 있다. 그때 잠시 관심을 가진 적이 있기는한데 그건 순전히 당시 내가 좋아했던 같은 반 남자 아이의 눈에 들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이쪽 장르는 일단 사람을 죽여놓고 시작되는 이야기라 그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피비린내를 맡는 것만큼이나 나에겐 불온한 느낌이라 그렇다. 게다가 이쪽 장르는 인간의 어둡고 내밀한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 그것 역시도 나에겐 그다지 매력이지 않다. 무엇보다 이런 소설을 좋아하면 영혼마저도 사악해지는 건 아닌가 해서 아주 잘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면 보지 않는다. 


이 작품은 TV 방영 때부터 작품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누구는 매주 선물을 받는 느낌이라고 했던가 그랬다.) 무엇보다 영화 <<화차>>를 만든 변영주 영화감독이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끔 영화 감독이 드라마 연출을 맡는 경우가 있다. 변영주 감독이라면 알아줄만하니 결코 후회는 안 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와는 또 다른 것이라 관객을 1시간 반 내지는 2 시간 화면 앞에 앉히는 것과 물론 끊어보긴 하겠지만 14시간 내지 16시간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하지만 역시 변영주 감독은 드라마에서도 그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또 드라마 하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뭐 한 번 정도는 더 한다고 덤빌지 몰라도 감독도 아직 중년이긴 하지만 이제 노년을 생각할 나이라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살인이 개인의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 즉 집단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을 때 얼마나 추악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어느 작은 마을에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한 소년이 하루아침에 살인의 누명을 쓰고 10년 동안 교도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한다. 그 소년은 10년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살인을 한 적이 없는데 억울하게 교도소에서 성인이 된다. 사실 교도소 생활 10년이면 보통의 정신력이라면 거의 대부분은 가스라이팅으로 어쩌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그런 보통의 이야기로는 드라마가 될 수 없다.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와 노력, 그에 대해 어떠한 댓가도 치르겠다는 사람에게만 주인공이란 이름을 허락한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세력이 주인공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이 드라마에선 하나 같이 존경하고 의지했던 마을의 아줌마와 아저씨들 즉 친구의 부모들이기도 한다. 그 마을 사람들은 주인공 고정우(변요한 분)가 출소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건 그저 살인자를 혐오해서만도 아니다. 사실은 마을 사람들이 그 살인사건에 이렇게 저렇게 다 연루가 되어 있다. 하다못해 피해자의 아버지와 엄마도 직간접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니 고정우의 출소와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자신에게 어떻게 불리하게 작용할지 몰라 사람들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혐오를 이유로 정우가 마을을 떠나줄 것을 바라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정우로선 그렇게 안 보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행복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알고 싶고, 누명 만큼은 벗고 싶어한다. 진실을 아는 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그것은 확실히 새로운 국면이어서 새롭게 누군가는 죽어야하고, 누군가는 진짜 살인자가 되며, 누군가는 파멸을 향해간다. 이렇게 진실이 혹독한 것이라면 차라리 그냥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조용히 사라져 주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마져 들게 만든다. 자신이 누명을 벗는다고 해서 행복해질 것도 아니지 않는가. 더구나 믿거라 하는 사람이 하나 같이 검은 속내를 감추고 있다가 결정적일 때 들어내면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사람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무지와 이기심이 사람을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도 이 드라마 교훈은 있다. 진실은 늘 용기있는 자 편이라는 것. 고정우가 너무 괴로워 중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친다면 드라마 자체로도 성립이 안 될뿐더러, 악은 또 다른 악을 부른다고 누군가 진실을 바로 잡지 않으면 더 큰 불행이 올 것이다. 누구는 그랬다. 섣불리 행복만을 추구하지 말라고. 어차피 이 세상은 그리 행복한 곳이 아니다. 나의 행복만을 추구하다 내 이웃이 불행해질 수도 있다. 그 보단 힘들어도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훗날 덜 불행해질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른다. 또한 행복을 위해서는 아니지만 희망을 위해서는 걸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작품은 이것을 웅변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각색이나 연출은 거의 퍼펙트인데 원작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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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11-17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추리소설 마니아는 아니지만, 추리소설을 범죄소설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뜩이나 상상 이상의 범죄들이 뉴스에 나와서 세상이 흉흉한데, 범죄소설이라고 부르면 추리소설 입장에서는 시무룩할걸요.. ㅋㅋㅋㅋ

stella.K 2024-11-17 21:3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럴수도 있지. 근데 이건 내 말이 아니고 장강명 소설가가 했던 말이야.
그런 추세라네. 그러니까 무시할 수도 없겠더라구.
근데 너도 추리 별로구나? 근데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정말 재밌기는 해.
그맛에 보는 거겠지?

니르바나 2024-11-18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살인, 피비린내 싫어하는 것은 니르바나와 스텔라님의 취향이 비슷한 편이네요.
퀴즈를 풀듯이 사건을 추리하는 드라마,
이를테면 아주 오래 전에 형사콜롬보 시리즈는 재미있게 보았는데
범죄 과정을 필요이상 길게 묘사하는 영화나 소설은 별로입니다.
뭐~ 다 개인 취향이지요.

stella.K 2024-11-18 11:49   좋아요 1 | URL
ㅎㅎ 형사 콜롬보! 진짜 옛날 영화죠? 그리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극장인가 그런 시리즈물도 했던 거 같아요. 전 그때 넘 어려서 제목만 알고 있었죠. ㅋ

참, 어제 실황음악인가? 거기서 말러 교향곡 5번을 틀어주더군요. 앞서 베토벤 5번은 좋았는데 역시 전 좀...ㅎ 무슨 영화나 연극 중간 배경음악으로 쓰면 좋겠다 싶기도 하더군요.

yamoo 2024-11-19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은 그닥 좋아하지 않고 첮아 읽지도 않아요. 오직 첩보소설을 좋아할 뿐이죠..^^;; 프레드릭 포사이쓰와 잭 히긴스, 로버트러들럼의 광팬..ㅎㅎ

stella.K 2024-11-19 15:28   좋아요 0 | URL
첩보소설은 좀 잔인한 게 없죠? 주로 두뇌 싸움 아닌가요?
저도 책은 잘 안 보는데 드라마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하는 게 있어요.
잔인한데 또 나름 멋있거든요. 그게 문제인 것 같긴합니다.
걍 가끔 보는 걸로. ㅎㅎ

물감 2024-11-20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그런 내용이었군요. 원작을 읽진 않았지만 워낙 유명해서 작가이름과 작품은 알고 있었는데, 이 작가는 이상하게 손이 안가더라고요. 저는 장르소설 좋아합니다만 확실히 세월이 갈수록 멀리하게 됩니다. 딱히 그런 장르가 싫다기보다 슴슴한 맛(?)의 문학들이 좋아졌달까요? 과자도 늘 달다구리만 찾다가 뻥튀기 같은 게 좋아지듯이요 ㅋㅋㅋㅋ

stella.K 2024-11-20 11:23   좋아요 1 | URL
저도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장르소설 원래 안 좋아하는데다가 표지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었죠. 리커버로 나오니까 그나마 관심은 가는데 저는 책 보다는 드라마를 더 추천합니다. 모르긴 해도 원작 보다 각색이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근데 과자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달달한 과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성격이 스윗하고 짭짤한 과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한 성격이란 결과가 나왔다더군요. 그렇다면 뻥튀기는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어디에도 잘 어울리는... ㅋㅋ

고양이라디오 2024-11-20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차> 감독이면 기대가 되네요ㅎ

저 지금까지 stella.k님 남자 분인줄 알았어요ㅎㅎㅎ... cyrus님하고 말씀편하게 하시는 거보고 남자 분으로 착각했다는. 근데 cyrus님 남자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착각일려나요ㅎ;;

stella.K 2024-11-20 15:57   좋아요 1 | URL
ㅎㅎㅎ 댓글 생활 20년만에 저를 남자로 착각하시는 분은 고라님이 처음이어요. 고맙습니다. 착각해 주셔서. ㅋㅋ 사이러스는 남자가 맞고요, 오래 전부터 누나 동생하기로한 사이예요.^^

레삭매냐 2024-11-25 1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화제가 된 원작인가 봅니다 :>

제가 드라마도 책도 보지 않은지라...

사회 곳곳에서 진실과 정의가 무너
져 내리니 더 암울해지는 그런 느낌
입니다.

stella.K 2024-11-25 19:35   좋아요 0 | URL
이 드라마 재밌습니다.
제법 묵직하구요.
요즘에 본의 아니게 범죄 스릴러물을 연달이 보고 있는데
재밌긴 하더군요. 대신 영혼은 좀 암울하긴 합니다.ㅋㅋ
책을 안 보실 리는 없을 것 같고 가끔 책 보다가 지치시면
이 드라마 함 보세요.^^

페크pek0501 2024-11-29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리소설을 한때 재밌게 봤었는데 읽어야 할 필독서가 많다고 느껴져 추리소설은 재밌으나 그다지 공부가 되지 않을 것 같아 멀리했어요. 이젠 생각이 달라졌어요. 추리력 상상력 창의력 향상에 좋다는 걸 알았거든요. 낯선 여행지에 가는 게 유익한 것처럼 낯선 내용의 책을 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하네요. 두뇌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두뇌 발달에 좋다는 거죠. 드라마나 영화도 추리극일 때 더 흥미로운 것 같아요.

stella.K 2024-11-29 21:12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연달아 이 작품하고, 김명민, 손현주가 나오는
<유어 아너>란 드라마를 봤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보고 있는데 셋 다
범죄 스릴러물이거든요. 재미는 있는데 정신적으로는 피폐해지는 것
같아 다음엔 좀 코믹이나 휴먼 드라마 찾아서 보려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