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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얼흥얼 노래하는 고슴도치 ㅣ 이야기 새싹
조소정 지음, 신외근 그림 / 하늘우물 / 2022년 10월
평점 :
어렸을 때 그림책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그림책이 흔하지도 않았지만 꼭 봐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 시절 내가 그림책에 관심이 없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나도 눈 달린 사람이다. 어디선가 그림책을 보고 홀딱 빠질 만큼 좋았는데 차마 부모님께 사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글은 듬성듬성이고 그림만 무성한데(그림책이 원래 그렇잖나) 부모님은 그것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셨다. 무엇보다 잠깐 보자고 그걸 사 보나 한 번 보고 말걸, 그러셨던 것 같다.
마치 아이는 금방 자라니 속옷이고 겉옷이고 무조건 길고 낙낙한 것을 입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는 애에게 책은 2, 3학년이나 읽을 법한 동화책부터 읽혀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독서의 선행학습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그림 같은 만화는 TV에서도 해 주는데 무슨 그림책인가 하셨을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그런지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책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이의 마음 어디 안 가는 것 같다. 어찌어찌해서 운 좋게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마냥 좋았다. 빨려 들어 갈듯이. 그러면서 내 안의 어린아이는 사라진 게 아니었구나. 어디선가 잠들어 있다가 이렇게 조금의 자극에도 반응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이 이야기는 행복을 찾아 떠난 아기 고슴도치의 이야기다. 아기 고슴도치 치곤 너무 철학적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없는 아이가 행복을 찾아 떠나는 길에서 자신을 긍정하게 되고, 덤으로 자신의 (노래하는) 재능을 발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은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런데 역시 나는 어른은 어른인가 보다. 내용과 그림에 매료되었음에도 여전히 현실을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오늘날의 어른과 교육이 어린아이로 하여금 자아를 찾아가도록 허락하고 있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아이의 선택은 무조건 잘못됐거나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부모가 권하는 것만이 좋은 것이라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철학은 어른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어린이를 위한 철학은 알지도 못하며 외면해 온 건 아닌지. 한마디로 난 아이들에 대해 너무 무지했구나 싶었다.
사실 고슴도치는 그 가시 때문에 그렇지 엄청 귀여운 동물이다. 주인공이 자신을 깨달아 가면서 처음엔 자신의 가시가 다른 이를 아프게 한다며 안타까워하지만, 나중에 바로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건 감동적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자세는 너무 중요하다. 넌 왜 그렇게 생겼냐고 손가락질하고 윽박지르면 고슴도치의 그 털은 정말 가시가 되어 상대를 공격하고 종국엔 자신도 찌르게 되는 무기가 될 것이다.
글쓴이는 아들 때문에 고슴도치를 키우게 됐고 그 경험을 바탕 삼아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더 정확히는 아들이 게임에 중독되다시피 했는데 그것을 벗어나 보겠다고 한 아들의 선택이었는데 나중에 이를 허락하고 키우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은 실제로 게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난 그게 좀 놀라웠다. 어쩌면 아이들은 자신의 상태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방법을 모르는 거겠지. 정말 그럴 땐 부모가 그것을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고 격려해 줘야 한다.
그런데 언뜻 내용이 어린아이가 읽기는 조금은 어렵지 않나 싶기도 하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 책을 읽고 행복을 찾아 떠나야겠다며 정말 가출을 감행하는 아이는 없겠지. 학교에서 학원으로 뺑이 치는 치는 삶을 살고 있는데 가출은 무슨. 그런데 어찌 보면 가출도 좀 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늘 감싸기만 하는 자식 다 커서도 늘 품 안에만 있으려고 하면 그 아이의 독립심, 자립심은 언제 키울 것인가.
물론 이 이야기는 어린이의 자아 정체를 위한 하나의 은유이긴 하지만 이를 위한 노력은 교육에서 참으로 중요하겠다 싶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어려운 수학 문제 풀 줄 안다고 그게 교육의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참내, 늘 에세이나 소설만 읽을 줄 아는 내가 그림책 한 권 읽고 이렇게 생각이 많을 줄이야. 이 분야에 종사자들 고민이 참 많겠다 싶다. 솔직히 요즘에 그림책부터 보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사물을 인식할 때부터 바로 게임으로 직행하는 게 요즘 아이들 아닌가. 책 읽기 어려운 시대를 사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같은 것도 같다. 그렇지만 책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 모쪼록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