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89세.
옛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때나 그 정도 사셨다면 장수하셨다고 하시겠지. 요즘엔 그래도 90은 넘어야 장수했다고 하지 않나?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3년전인가? 고인은 암을 진단 받으셨다고 했다. 하지만 치료를 거부했다고. 그렇지 않아도 가끔 궁금하긴 했다. 잘 지내시는지. 과연 노인은 그렇게 치료를 거부해도 되는지. 몸의 고통은 견딜만 한건지. 그 암이라는 건 치료를 해도 아플 것이고 안 해도 아플 것인데 치료해서 낫는다는 보장을 못하니 그저 온전히 감내하는 것을 택하셨을까.
그렇지 않아도 금요일인가 밤 우연히 리모컨을 돌리다 불교 방송에 향가를 설명하기 위해 나오신 것을 잠깐 봤다. 언제 녹화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아픈 환자치곤 의식도 또렷하고 말씀하시는 것도 이상이 없었다. 지금은 육체를 벗어버리고 10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따님과 만나셨겠지? 따님의 권유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 들이셨던 것으로 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그를 가리켜 희대의 천재라고 했다. 원래 그렇게 똑똑한 사람은 신앙을 갖기란 쉽지 않은데 말년엔 복음을 증거하는데 힘을 쏟으셨던 것으로 안다. 나도 언젠가 이분의 신앙 강연을 들으러 어느 교회를 간 적이 있는데 따님 천국 떠나기 바로 전인지 후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전인지 싶기도 하다. 이분의 지식은 워낙에 방대해서 한 두 가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분은 기독교 변증학자이기도 하다. 한국의 C. S 루이스라고나 할까? 무엇을 가지고 말해도 이분에게선 딱딱 떨어진다. 희대의 천재가 맞을 것이다.
나는 전작주의자는 못 되는데 그래도 이분의 책을 몇 권 읽었던 적이 있다. 특히 이분은 그 수 많은 저작물들 중 <둥지속의 날개>란 소설을 쓰기도 하셨는데 나는 20대 시절 그걸 읽고 거의 충격을 받다시피 했다. 너무 완벽했다. 너무 완벽해서 한동안 소설 이미지가 잊히지 않았다. 오늘 뉴스를 보니 타계 소식에 그의 저작물들이 다시 한 번 조명을 받고 역주행 중이라고 나온다. 뭐 좋은 소식이긴 한데 이미 절판된 책도 많아 안타깝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다시 복간되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이분은 뭐하나 부족할게 없어 보인다. 말마따나 굉장한 지성인이고 초대 문화부장관도 지내시지 않았나. 하지만 한때는 따님 때문에 마음 고생도 하셨으리라 짐작이 된다. 더구나 그 딸을 그렇게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으니 그 마음이 어땠을까. 따님 보내놓고 최근까지 바쁘게 강연을 다니셨겠지. 평소 병원에서 말고 자택에서 임종을 맞기 원했고 잠자듯이 가면 좋겠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정말 마지막이 됐을 때 방에 환자용 침대를 들여놓고 잠자듯 떠나가셨다고 한다. 이제 따님 곁에서 편히 쉬셨으면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