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님께
제목을 저리 쓰면 요즘 한창 배포중인 도스토옙스키의 새로운 버전의 책인줄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이 책이 그렇습니다. 제가 좀 짓궂죠?ㅋ
오늘 낮에 이 책을 받았습니다.
며칠 전 님께서 이 책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을 때 얼마나 가슴이 찌릿찌릿 하던지요. 얼마 전 TV에 나오신 임헌영 선생님을 뵙고 지난 날 선생님과의 짧은 사제관계를 회상했고 더불어 선생님의 새 책이 나온 것도 알았습니다. 처음엔 그저 언제고 사 봐야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웬지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강렬해지고 조급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님께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게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벌써 작년이었군요. 제 책을 님께 보내드린 게. 제 책이 나온 게 2015년 가을이었는데 무려 5년이나 늦게 보내드렸으니 면목이 없었죠. 님을 결코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닌데 이걸 보내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차일피일 미루고 결국 잊어버렸죠. 무엇보다도 님께서 워낙 조용하신 분이라 함부로 알은 체하기도 뭐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그때 서운해 하신 걸 보고 진작 챙겨드리지 못한 것을 많이 후회했습니다.
그때 님은 저의 책을 그냥 받기가 뭐하셨는지 책을 선물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의 방은 읽은 책 보다 읽지 않은 책으로 포화상태라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저는 그냥 마음만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님은 잊지 않으시고 이렇게 1년도 더 넘었는데 이 책을 보내주시니 정말 뜻밖의 선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책도 책이지만 님께서 보내주신 카드는 감동이다 못해 뭉클하기까지 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이렇게 20년에서 몇년을 뺀 세월을 무던히도 알라디너로 있게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긴 제가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를 30년째 다니고 있으니 말 다했죠. 저도 서점이든 교회든 왜 그렇게 바꾸지도 않고 오래 다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사는 집도 20년 넘게 살고 있고, 미용실도 10년 넘게 다니고 있습니다.ㅎ 물론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고 권태롭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간간히 외도라는 것을 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더군요. 그리고 오랫동안 무던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보니 오늘 같은 날도 있지 않습니까.ㅎ
제가 알라딘을 쉬 떠나지 못하는 건, 글쎄요... 님이 카드에 쓰셨던 것처럼 저처럼 오래 인연을 맺어 온 분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기엔 님 또한 계시죠. 저는 알라딘 서재가 처음 생길 때야 비로소 온라인 활동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저의 책에도 그런 내용의 글을 쓴 것으로 기억하는데, 인터넷 안에서의 인연을 과연 인연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저는 참 오랫동안 의문을 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 온 저로선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 웃고 떠들고, 기쁨과 슬픔도 함께 나눠야 그게 인간관계 아닌가 하는데 이렇게 간헐적이고 나를 적극적으로 나타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 인터넷 안에서의 인간관계를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이제 그 질문은 진부한 느낌이 듭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또 다른 차원에서의 인간관계를 가능케 하더군요. 이렇게 님과 제가 20년에서 몇년을 뺀 세월을 한결같이 만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분도 마찬가지구요. 전 그분들이 여전히 좋습니다. 오프에서 만나 온 사람들은 오프에서 만나야하고,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은 온라인에서 만나야 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엔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길래 이런 글을 쓰는 걸까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는데 이젠 그런 생각이 잠시 들다가도 그냥 내려놓게 되더군요. 아, 그렇다고 너무 온라인 오프라인 구분짓는 건 아닙니다.
님은 저에게 보내신 카드에 그리 약속하셨습니다. 알라딘서점이 망하거나, 서재가없어지지 않는 이상 끝까지 서재를 지키시겠다고. 저도 똑같은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알라딘서점이 망하거나, 서재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끝까지 서재에 남겠습니다. 우리 우정과 의리로.ㅎ
늘 지켜봐주시고, (요며칠을 제외하고)거의 대부분 저의 허접한 글에 조용히 좋아요만 눌러 주시고 사라지시는 님께 오늘은 존경과 친애의 마음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책은 조금씩 아껴가며 읽겠습니다. 늘 평안하십시오.
그럼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