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애초에 마스크를 손에 넣을 거라곤 꿈도 꾸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보름 전쯤 편의점 가는 길에 마스크 살 수 있냐고 물어 본적이 있었다.
지난 주부터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됐다는데 이것 역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살까 하다가도 필요한 사람 한 사람이라도 더 써라. 과감히 포기했다.
근데 문득 내가 마스크에 대해 관심이 없어도 너무 관심이 없구나 싶었다. 예전에 미세먼지 대비해서 사 둔 마스크가 이렇게 쓰일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지금 사 두면 또 언제 어떻게 쓰일지 누가 알아. 더구나 지금은 교회를 안 가지만 앞으로 다시 교회를 가면 당분간은 마스크를 써야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뒤늦게 마스크 구입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
아, 그런데 막상 산다고 생각하니 헷갈렸다. 자기 생년의 끝자리인 건지, 생년월일 6 자리중 끝자리인 건지. 분명 관심없었을 땐 생년의 끝자리가 분명한데 산다고 생각하니 마구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tv에선 지난 주엔 자막으로 알려주더니 이번 주엔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결국 어제 약국 가서 "죄송한데요..." 먼저 양해를 구하고 물어봤으려고. 6자리 중 마지막 자리로 따진다면 어쩌면 살 수도 있는 날일줄도 모른다. 물론 보기 좋게 아닌 것으로 판명 났지만. 이게 다 나이 먹어 총기가 떨어진 탓이다. 그러면서 약사는 사시려면 내일 아침 8시 반까지 오세요 한다.
어제 밤부터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결국 나가보기로 했다. 내가 순진하게 약사가 그렇게 말했다고 8시반에 나갔을까. 15분 전에 나갔다. 갔더니 역시 줄이 서 있는데 다행이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마터면 늦을뻔 했다. 내가 줄을 서자 어느덧 내 뒤로 줄이 이어진다. 까딱 늦으면 큰 일 날 뻔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 뒤에 여자는 내 앞에 여자와 서로 아는 체를 하더니 슬쩍 내 앞에 선다. 내 앞에 줄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들이 받았을 것이다. 눈총을 줬는데도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른 척 하는 건지 계속 딴청이다. 예민하긴 예민할 때다. 내내 신경도 안 썼던 내가 도끼 눈도 뜨고 그 사람에게 빨간 광선을 내뿜기도 하니.
어쨌든 꼴랑 마스크 두 개를 겨우 샀는데 뿌듯하기 보단 허탈했다. 예전엔 마트에 걸려 있어도 심드렁했는데 어쩌다 이지경까지 된 건지. 그래도 봄은 봄이라고 이걸 사니 정말 어디론가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유력지는 책도 팔겸 중고샵에 죽치고 오는 것이다. 여기를 헝겊 마스크라도 끼고 갈까 한 달 전부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답이 나오지 않았다. 1층이라면 모르겠는데 두 군데 다 지하다 보니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내가 너무 민감한 걸까. 이런 와중에 중고샵 문닫을까 봐 제일 걱정이다. 이놈의 코로나 언제 물러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