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와 느린 춤을 - 아주 사적인 알츠하이머의 기록
메릴 코머 지음, 윤진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 메릴 코머는 미국 1980년대 방송 부분 여성 기자 첫 세대였다. 기자이자 토크쇼 진행자이며 제작자이기도 했다. 잘 나가던 그녀가 남편의 간병을 위해 젊은 나이에 일을 그만두고 19년간 간병한 기록이 이 책이다. 유능한 의사였던 남편은 50대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린다. 책은 아래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와 한 집에 사는 이 남자는 내가 사랑해서 결혼했던 그 사람이 아니다. - 13쪽

 

발병 초기 메릴이 겪은 고통이 눈물겹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치매가 발병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당시 알츠하이머에 대한 정보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메릴은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남편 하비을 보며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한다. 남편을 관찰하고 일지를 기록해 병원에 가지만 의사는 메릴의 말을 무시하고 같은 동업자 남성인 하비의 말만 듣고 이상 없음 소견을 내린다. (이건 뭐 맨스플레인의 전형적인! ) 하비는 메릴이 자신을 모욕한다고 생각하며 화를 낸다. 그러나 직장 일도 제대로 못하고 심지어 학회 참가하러 런던에 갔다가 발표를 망치고 혼자 파리로 가서 실종되는 등 문제가 나날이 생긴다. 하비는 직장 여성 동료들에게 성희롱 혐의도 받는다. 결국 하비는 58세에 정확한 진단을 받고 직장을 사직하게 된다. 몸은 건강하기에 체격 조건 우월한 하비가 폭력적으로 굴면 메릴은 그저 당하는 수밖에 없다. 입원도 시켜봤지만 차도가 없다. 메릴은 모든 정신적 기능을 잃고 몸만 살아 있는 하비를 거의 내내 집에서 간병한다. 간병인을 두지만 밤당번은 메릴이다. 직장 생활과 경제 상의 어려움은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도 고립된다. 메릴 스스로 친구들에게 징징거려서 지겹게 할까 걱정하기도 한다. 메릴은 자신이 느끼는 고립감을 일기에 틈틈이 적는다.

 

사람들이 우리를 버렸다. 하비가 예전의 그가 아니라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나까지 같이 버려져야 하나?

- 190쪽

 

힘든 시기, 메릴은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하비도 나를 돌보기 위해 자기 직업을 희생할까? 라고 생각하던 메릴은 돈은 대 줄지라도 아닐 것이다,란 결론을 내린다. 치매 발병 직전 하비의 외도를 목격한 일이 메릴을 회의하게 만든다. 메릴은 남편 하비의 세번째 아내였다. 그녀가 19년간 간병하는 동안 하비의 친아들은 방문하지 않는다. 하비와 피 한방울 안 섞인 메릴의 아들과 며느리가 간병을 돕는다.

 

이 와중에 설상가상, 메릴의 어머니도 치매가 발병한다. 메릴은 어머니 집에 간병인을 두고 두 집을 번갈아가며 간병하다가 어머니가 문제를 자꾸 일으키자 어머니도 모셔온다. 어쩌면 이런 삶이 있을까? 메릴의 남동생은 자살했다. 아버지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살아 남아서 정신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12년 살다가 돌아가셨다. 물론, 맏딸로서 메릴이 뒤치닥거리를 하고 어머니를 받아 주었다. 그런데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니,,,

 

어머니가 우리집으로 오시게 되면서, 오래 묵은 감정의 응어리들도 함께 딸려왔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해묵은 상처들이 되살아났다.

 - 225쪽

 

아, 난 이런 감정이 어떤 느낌인지 대강 알겠다. 어떻게 메릴은 이런 상태에서 두 치매환자를 간병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일기 쓰기의 힘일까? 메릴은 쓴다. '손자손녀를 위해 이 글을 쓴다. 내가 남편과 어머니를 위해 해온 일을 내 아들이 나를 위해 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라고. 그녀는 자신이 길게 간병을 했을 수는 있지만 자신이 대단한 일을 했다거나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방송 출연을 계기로 제프리 비 알츠하이머병재단을 운영하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도 메릴은 이렇게 쓴다.

 '내가 알츠 하이머 관련 활동을 하는 이유는 누구도 나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그녀는 현재 알츠하이머병의 조기 발견과 예방을 위한 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한 이야기는 책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하비와 나는 여러 해 동안 어떤 낯선 이와 느린 춤을 추었다. 알츠하이머는 하비와 나 둘 다를 사로잡았다. 그 병은 훌륭한 정신 하나를 파괴했고, 더불어 우리의 인생을 파괴했다. (중략) 내가 다음 춤 상대가 되는 건 단지 시간 문제인 걸까?

- 323

    

2016년 내내 엄마 문제로 힘들었다. 그랬던 2016년 마지막날에 읽은 책이다. 그런데 2017년 첫날에 눈 떠서 어제 다 읽고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잔 이 책을 보니,,,, 메릴이 겪은 19년과 같은 시절이 내게도 20년간 계속될지도 모른다, 오늘이 그 첫날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어 끔찍했다.

 

책은 참 좋은데, 읽고 나니 막막하고 가슴이 휑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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