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여성 영웅의 탄생 - 융 심리학으로 읽는 강한 여자의 자기 발견 드라마
모린 머독 지음, 고연수 옮김 / 교양인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는 <여성 영웅의 여행>이다. 말하자면 테세우스나 이아손같은 남성 영웅이 '영웅의 일대기 구조'에 들어맞는 여행을 떠나 영웅이 되는 과정에 빗대어 여성 영웅 - 바로 우리 - 의 삶이 어때야 하는가를 규명한 것이다. 저자는 융 심리학자인 상담가답게 인류의 집단 무의식이 드러나는 신화, 민담, 동화, 꿈을 예로 들어 여성이 어떻게 성장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스스로 영웅이 되어야하는지를 밝혀 주고 있다. 그 과정은 남성들과 다르다. 세상의 인정을 받고 성공대로를 달리던 여성들이 갑자기 상실감을 느끼고 우울에 빠지는 이유는 남성 영웅의 인생 경로와 여성의 인생 경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남성 영웅의 여정을 따른 많은 여성이 바로 그들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여성들은 성공하려면 계속해서 칼날을 세우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많은 여성들이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을 느끼고서야 성공을 좇는 과정을 끝맺는다.

- 본문 24쪽에서 인용

 

하지만 능력 있는 아버지의 인정받는 착한 딸이 되고 싶고 엄마같이 살고 싶지 않은 우리 딸들은 자신의 본성을 저버리고 스스로 자신을 심리적으로 학대한다. 이에 저자는 정신적 하강 단계를 지나 여신으로 입문, 남성성과 여성성을 통합하여 진정한 자신이 되어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아버지,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하, 읽다가 참 좋아 길게 인용한다.

 

우리 문화에서는 남성이 규정한 기준이 리더십, 개인의 자율성,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사회적 기준이 되어 왔고, 상대적으로 여성들은 자신의 역량이나 지성, 힘이 떨어진다고 여겨 왔다.

여자아이는 자라면서 이러한 점을 관찰하고 남성들이 규정한 매력, 명성, 권위, 독립, 돈 따위의 가치를 추구하고 싶어 한다. 큰 성공을 이룬 많은 여성이 아버지의 딸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첫 번째 남성 모델의 인정과 힘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인정은 어쩐지 그만한 무게가 없다. 아버지는 딸의 여성성을 규정하고 이것은 딸의 성, 남자들과 관계 맺는 능력, 세상에서 성공을 좇는 능력에 영향을 끼친다. 여성이 야만을 품거나 권력을 쥐거나 돈을 벌거나 남성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에 만족하는지 여부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 본문 66쪽에서 인용

 

'아테나 유형 여성'은 아버지의 딸이다. 즉 어머니를 경시하고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아버지의 딸'은 총명하고 야심만만하여 일을 척척 해낸다. 정서적인 관계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딸은 상처 입기 쉬운 약한 존재에게 공감과 연민을 느끼는 능력이 부족하다.

- 본문 74쪽에서 인용

 

아버지나 아버지를 대체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인정과 격려는 대개 여성의 긍정적인 자아 발달을 이끈다. 하지만 아버지, 계부, 삼촌, 할아버지로부터 인정과 격려를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오히려 용기를 꺽는 말을 듣는 경우에는 자아감에 깊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또한 과잉 보상 문제나 완벽주의를 야기하거나 아니면 여성의 발달을 거의 마비시킬 수도 있다.

- 본문 80쪽에서 인용

 

위 세 부분은 모두 2장인 '아버지의 딸'에서 인용했다. 2장을 읽으면서 나와 내 아버지는 물론, 내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의 관계, 그리고 루이자 올컷, 캔디 고 씨, 전혜린, 박근혜 대통령과 그녀들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했다. ( 언젠가 내 글에 써 먹으려고. )

 

만일 여성이 어머니에게 제대로 보살핌받지 못한 것을 두고 계속해서 분노한다면 그녀는 영원히 '기다리는 딸'로 남게 된다. 비록 외부 세계에서는 성숙한 어른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녀는 성장하기를 거부한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을 가치 없고 불완전한 존재로 여긴다.

- 본문 280쪽에서 인용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다시 받아들인다면, 내가 사랑받고 싶은 방식으로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게끔 만들 수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드러내놓고 마음껏 사랑을 주는 '엄마', 아니 '어머니'를 결코 갖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제대로 보살핌받지 못한 딸의 고통에 매달려 있을 수 없다. 그 고통은 온전한 내가 되는 것을 방해한다.

- 본문 282 -283쪽에서 인용

 

오늘날 여성 영웅은 자신을 과거에 묶어 놓았던 자아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신의 영혼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찾기 위한 분별의 칼을 들어야 한다. 어머니를 향한 분노를 놓아버리고 아버지를 비난하거나 우상화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자신의 어둠을 대면할 용기를 찾아야 한다. 그녀의 그림자는 이름 지어주고 껴안아줘야 할 바로 자신의 것이다. 여성은 자신 안의 이 어둡고 그림자 진 공간에 명상, 미술, 시, 연극, 의식, 관계 맺기, 흙을 만지는 일을 함으로써 빛을 비춘다.

- 본문 337쪽에서 인용

 

위의 세 인용부분은 읽으면서 많이 찔렸다. 나는 아직 어머니와 긍정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못한 것이다. 작업하다가 힘들 때마다 치솟는 엄마에 대한 분노의 정체가 이것이었던가! 그래서 예스에 계신 지혜로우신 인생 선배 언니들이 삽질을 하고 흙을 만지는 것이었나!

 

이 책 덕분에, 완전히 마음이 편해졌다고는 말 못하지만 조금 내 그림자를 들어다 볼 수 있어 좋았다. 어느 정도는 진 시노다 불린의 여신 이야기와 겹쳤다. 빨리 마리야 김부타스를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언니들이 계신다면, 이 책을 강추. 혼자만 읽기엔 아까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