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을 구경하며 natural born gatherers]
얼마 전, 귀농하신 어르신.찾아뵌 김에 그분들의 안내를 받으며 시골길을 걸었다. 한 때는 참새 쉼터였을 전깃줄을 지중화한 도시에 사는 내게 살짝 기울어진 전봇대는 온기를 주는 시골다움이었다. 그 산책 길에서 놀라다 못해 경탄했던 것은 어르신들의 탁월한 식물감별안이었다.
나도 쑥은 안다. 쑥향 진하게 나는 쑥개떡도 좋아한다.부추와 달래도 구별한다. 하지만 다른 초록이들은 그저 땅을 뚫고 올라온 봄생명일뿐 이름도, 쓰임도, 그리고 그 아름다움도 잘 모른다.어르신들은 산책하시는 내내 존재조차 몰랐던 초록이들의 이름을 알려주셨다. 당귀. 머위. 돌나물...등등.
100여 년 전엔 집에서 술을 담궈 마셨던 조상들
50여.년.전만.해도 집간장, 집된장이 대세였다. 이젠 유튜브 동영상 따라하거나 요리 과외를 받아도 어렵다. 불과 1ㅡ3 세대만에 그 귀한 지혜가 전수되지 못한 채 끊겨간다. 풍경을 보는 눈 또한 바뀌어간다. 30분 산책으로 한끼 채식.밥상을 준비하실 수 있었던.귀농 어르신들의.나물감별안을 보고.많은 생각이.스쳤다.
봄쑥 150g에 4000원이 넘는 가격이 매겨져 있다.
마침 어제 "natural born gatherers"라는 제목으로 메모를 남겼기에, 그 연장에서 쑥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동화 [몽실언니]에서 어린 몽실이는, 처절한 심정으로 산에 오른다. 봄 나물이라도 뜯어야 젖동냥으로 자라 온 동생 입에 뭐라도 흘려 넣을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바디나물, 고수나물, 뚜깔나물, 개미나리, 칫동아리나물, 미역 나물, 잔대나물, 싸리나물, 고사리....." 몽실이는 죽으로 끓일 수 있는 들풀들을 참 많이도 안다. 누구의 소유도 아니기에, 바코드 찍히지 않은 봄 나물은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몽실이와 난남이(몽실이의 동생)를 살려왔을까?
하지만, 한 줌에 4000원이 넘는 가격표를 붙이고 진열대에서 형광등과 냉기를 받는 봄쑥을 보니, 인간의 '먹을 권리'에 대한 전망 역시 냉기를 뿜겠구나 싶다. 고급 품종으로서 샤인 머스캣을 밀어내고 새로운 프리미엄 포도가 등장하여 누구나 따먹을 수 있던 산딸기와 머루를 비웃듯. 몽실언니에게는 생명의 끈을 연장해주었던 봄나물도, 인간의 먹고 살 권리도 의미를 잃어간다...
고작 쑥 한 봉지 사들고 비관이 너무 앞서 나간걸까...
누구나
깨끗한 물 마시고, 깨끗한 공기 들이 마시고,
최소한의 먹거리를 권리로 챙길 수 있는 세상.
그 당연한 권리주장이 왜 떼쓰는 걸로 느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