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유독 나이에 민감하고 '나이'를 위계지표 삼는 경향이 있다. 유치원 교사들이 "형님반" "아우반"이라는 정다운(?) 표현으로 5세, 6세 반을 구별짓는 걸 보고 흠칫 놀랐던 적 있다. 같은 새내기로 입학한 대학생 끼리도 "빠른" "늦은**(生)"을 굳이 구별하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의 7세 꼬마들이 초등학교 입학 후, 나이를 속이도록 교육받던가? "친구들이 물어보면 8살이라고 해. 넌 2014년에 태어난 말띠야."


뉴스를 보니, "76년 만에 초등 입학연령 하향 추진" 중이라한다. 곧 7세 꼬마가 나이와 띠를 속이지 않고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려나 보다. 사실, 이 주장은 경제학자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제임스 량이 저서 [Demographics of Innovation]에서 저출산, 고령화 한국 사회에 제시했던 해법과 맥을 같이 한다.


"12년이라는 한국의 현재 기본 교육연수 가운데 보통 2년은 고등학교 과정과 더불어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데 허비한다. 이런 비효율적인 시스템 때문에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고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이 배우자를 선택하고 아이를 낳는 데 필요한 시간이 줄어든다. 교육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한 가지 방법이 교육연수를 12년에서 10년으로 단축하는 것인데 이는 엄청난 시간 낭비를 줄여줄 것이다." [혁신을 이끄는 인구혁명] 中



그는 현재의 "6-3-3" 교육연수에서 2를 빼라고 권고한다. 12년에서 10년으로 교육연수를 단축함으로써 교육의 효율성, 나아가 노동 효율성도 높인다는 계산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제임스 량 자신이 스무 살에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지 않을까? 즉, 제임스 량처럼 우수한 학습능력을 탑재한 영재에게는 10년도 과하게 길겠지만, 과연 대다수 학생에게도 10년이 충분한 교육기간일까? '6-3-3 공교육받으며 보낸 12년을 꼭 "시간 낭비"로 보아야 할까? 효율의 잣대로 계량화할 수 없는 무언, 무형의 소통과 성장이 이뤄지는 기간일 수 있을텐데? 스탠퍼드 대학 경제학 박사인 제임스 량의 주장을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싶다.


동시에 만약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7세로 당기고, 교육연수를 10년으로 줄여, 20~21세면 대학을 졸업한다고 가정하자! 평균수명 앞자리 숫자가 8에서 9로, 아니 아예 세 자리 수도 바뀔지도 모를 미래 사회, 스무살에 사회로 나온 청년들은 어떤 삶을 채워가야 할까?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질문 하나 추가해 본다. 한국에서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법적 정의, 통계청 정의, 여성가족부 법적 실태 조사의 정의는 일치하지 않는다. 만 15세를 기점으로 보기도 하고, 만 25세를 기점으로 보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만 54세까지의 경력단절 경험 있는 여성을 "경력단절여성"이라 칭한다. 이런 나이 범주에 대해, 실제 만 54세를 향해 가던 여성이 사석에서 "욱" 반응 보여 당황했던 적이 있다. "100세 시대인데, 경력단절을 54에서 잘라 놓으면 어떡하냐, 생애주기와 평균수명 바뀌어 가는 걸 왜 고려하지 않냐?"라고, 그 분은 목소리를 높였다. 

초등입학연령 조정 논의가 우리 사회, 나이 범주 관련 다른 이슈들도 공론화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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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2-07-30 04:52   좋아요 10 | 댓글달기 | URL
제가 ‘빠른‘ 생으로 남들보다 일찍 진학을 했었는데 어렸을땐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아이들은 쉽게 하던 것도 생각만큼 안되던 일이 어찌나 많던지... 어릴 때 1년의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같네요... 학제 문제는 보다 신중하게 아이들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얄라알라 2022-08-04 00:35   좋아요 2 | URL
겨울 호랑이님, 제가 요 포스팅을 휘릭 올린지 벌써 4일이 넘었네요.
그 간 많은 기사며 반응들이 뜨겁게 오간 것을 보면,
이 문제는 쉽게 결정할 게 아니라 더 폭넓은 의견 수렴이 선결,필수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어린이들 일반화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되지만,
초 1입학하면 좌르르 태권도 축구 피아노 발레 (초저에 예체능 초2부터는 영어 수학 논술) 학원 셔틀돌다가 초 6만 되어도 인생 고뇌 짊어진 듯 학원 순례자 되는데
1년 일찍 입학하면 그 쳇바퀴가 되레 더빨리 오래 돌게 되지 않을까,
아이들 입장에서 안타깝기도 하고..

저도 계속 이 이슈에 따른 반응들 지켜보며 제 생각부터 정리해야 겠습니다.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07-30 07:1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학령이 줄면 그렇게 당겨진 시간들이 지금의 한국 같은 경우 입시에 필요한 n 수 기간이나 취업준비 기간이 늘어나는 쪽으로 흘러갈 것 같아요... 그리고 아직도 나이가 벼슬인 전근대적 봉건주의 잔재 같은게 남아서 어린 신입 오면 어떻게든 어리숙하고 모르는 애한테 일 더 떠맡기고 젊으니까 네가-를 시전하는 조직이 많으니까...더 어린 나이에 사회 진출해서 조직에서의 젊은이 착취 기간만 늘어나지 않을지. 숙련과 성장에 쏟을 젊음을 왜 뽑아 먹지 못해 안달들인지 ㅋㅋ 요즘 젊은이들은 그걸 모르지 않으니 부모가 아직 경제활동하고 있으면 사회 진출 최대한 늦추는 것도 같고요. 저는 만나이로 연령 따지는 건 찬성인데 학령 낮추는 건 잘 모르겠어요. 유치원 어린이집만 해도 보육 돌봄이라 공부시킨다 느낌은 없는데 공교육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그 아이들이 학교 일찍 들어가면 더 놀 시간 짜르고 힘든 순간을 일찍 시작하게 하는 것 같아요. 말이 길었네요 ㅋㅋㅋㅋ

얄라알라 2022-08-04 00:37   좋아요 2 | URL
저도 열반인님 말씀 공감합니다.
하긴 요즘은 유치원생이라 해서 ‘놀 시간‘ 많이 확보하는 건 아니지만, 40분 수업의 꽉 쫘인 스케줄에 일찍 조련당하는 게 과연 사회 진출 앞당기니까 유익한 것인지....생각 더 해야겠습니다.

mini74 2022-07-30 08: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반대예요. 소수의 몇명 빼곤 대부분 그 나이또래의 평범한 아이들입니다. 화장실에서 능숙하게 처리하고 40분 잘 앉아있고? 아이들 학대라고 생각해요. 1년 일찍 초딩이 된다면 또 거기에 맞춰서 사고육시장이 짜여지갰죠. 결국 더 어린 나이에 경쟁을 시작하는 거 ㅠㅠ 정말 걱정이에요 알라님. 정년이나 경력단절 관련 논의는 저도 필요하다고 봐요. 그러나 아이들은 ㅠㅠ

얄라알라 2022-08-04 00:38   좋아요 1 | URL
˝경력단절 여성˝
˝단절˝이라는 단어를 두고 논란이 많다는 정도로만 알아왔는데
정의를 할 때, 결혼 여부나 연령대 측면에서 정의하는 주체 간 편차가 있다는 걸 알고 저도 당혹스러웠어요.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이슈구나 하면서요.

새파랑 2022-07-30 09: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입학연령이 낮아지고 교육과정이 10년으로 줄어들면 미성년자 나이 기준도 바뀔까요? 🤔 대학생이 되어도 미성년자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수도 있겠군요 ㅋ
그래도 학교다닐때가 재미있었는데 10년으로 줄면 아쉬울거 같군요 ㅎㅎ

얄라알라 2022-07-30 10:12   좋아요 4 | URL
제임스 량이 경제학자로서, (성공한) 사업가로서 보았을 때 생산성과 창의력 최고조의 CEO의 연령대가 20대부터...그러니까 학교에서 그만 잡아두고 빨리 젊은 세대를 사회로 내보내면 그만큼 사회가 성장한다는 기저 논리가 있는 듯 해요....전 경제를 모르니까...일단 그런 주장은 주장대로 흡수하지만, 일면만 본 주장일 수 있다는 건 북플 여러 친구분들 댓글에서도 느껴집니다

바람돌이 2022-07-30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논리에 여성의 취업연령을 낮춰서 출산율을 높이겟다는 목표도 있는거 아세요? 진짜 어이없지 않나요?
지금 한국사회에서 아동 학령을 낮추는건 무조건 아동학대와 청소년학대의 연령을 낮추는 쪽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할건 많겠지만 그 중 어떤 이유도 지금의 아동학대를 더 낮은 연령으로 낮춘다는 현실에 대적할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학교 현장에서 우울증과 과잉의존증으로 불안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해마다 얼마나 많이 늘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르는 인간들이 할짓이에요.

얄라알라 2022-08-04 00:39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께서

겉으로 드러나는 이면의 현실적 문제를 말씀해주시니, 만 5세 입학이라는 정책이 과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육인가,
근본적인 고민을 저도 해봐야 겠습니다

서니데이 2022-07-31 16: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뉴스 보고 처음에는 원한다면 일년 먼저 입학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그런건가? 했었어요.
전에는 2월 출생자는 전년도 출생자와 함께 입학했지만, 요즘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몇년간은 빠른 연도 학생들이 늘어날 것 같아요.
일찍 입학하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님도 계시겠지만, 학교를 일년 일찍 가는 게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얄라알라님, 오늘은 7월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8월에도 좋은 시간 되세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8-04 00:42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음성 직접 들어본 적은 (당연히) 없지만
항상 남겨주시는 댓글 읽다보면 상상되는 음성이 있어요.

고맙습니다. 서이데이님께서도 행복한 8월 첫주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