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가 최고야 킨더랜드 픽처북스 9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최윤정 옮김 / 킨더랜드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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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어릴 땐 그랬어요.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기고 멋있는 남자라고 생각했지요. 아빠는 크도 크고 힘도 세고 고장난 가전 제품을 고치거나 집을 수리하시는 등 못하는게 없는 만능맨이셨거든요. 하지만 아버지는 무척 엄하신 분이셨어요. 아버지의 한 마디는 거역할 수 없는 법처럼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집행되곤 했어요. ^^; 가끔씩은 아버지한테 매달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가끔씩은 아버지가 나를 꼭 안아 주시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지금의 아이들은 아빠를 어떤 존재라고 생각할까요? 그림책을 읽으면서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지요. ^^ 
 




 
 <우리 아빠가 최고야> 이 책은 아이가 생각하는 아빠의 모습을 참으로 잘 표현했어요. 그 모습은 어릴 때 제가 생각했던 것과도 같답니다.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요? 아빠는 늑대를 무서워하지 않을 정도로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달을 훌쩍 뛰어 넘고 빨랫줄 위로 걸어다니고 거인이랑 레슬링을 하는 모습을 통해 불가능한 것이 없는 아빠를 표현하고 있어요. 운동회날 달리기를 해도 1등 할 수 있고 말 만큼이나 많이 먹어요. 고릴라 처럼 힘이 세고 부엉이처럼 똑똑하고 춤도 노래도 축구도 잘하는 아빠는 정말 완벽하지요. ^^  
 





 오늘날의 아빠들은 과거의 아버지들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고 유치원이나 학교 행사에 참여하는 아빠들도 꽤 늘었어요. 어릴 때 아빠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도 더 안정되고 사랑을 많이 느낀다고 하지요. 권위적인 아빠는 사라지고 아이와 놀아주는 아빠, 아이를 웃게 하려고 웃겨주기 위해 애쓰는 아빠, 아이를 꼭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빠가 많아졌다고 해요. 참으로 바람직한 변화지요. 


 울 아들 말이 "가족은 세트입니다." 라고 하더군요. 가족은 맛있는 것을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하고 마트를 갈 때 처럼 어디를 가든지 함께여야 하기 때문에 세트라는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물질적인 부분을 채워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엇이든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맨이자 가족을 지켜주는 울타리인 아빠, 아빠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아이 키우는 집에 앤서니 브라운의 책 없는 집이 없을겁니다. 이 책은 그림만 보아도 앤서니 브라운의 책인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으로 그려졌어요. 아이들의 생각을 잘 표현했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지만 다소 과장된 아빠의 모습을 통해 '우리 아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터뜨리게 합니다. 이 책은 아빠에 대한 아이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가족간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꼭 소장해야 할 책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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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박치기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인생은 박치기다 - 재일 한국인 영화 제작자 이봉우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책!
이봉우 지음, 임경화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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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박치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김일 이라는 레슬링 선수다. 아~주~ 오래전 아마도 흑백TV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 같은데, 한일 간의 레슬링 경기가 펼쳐지면 온 가족이 모여앉아 경기를 응원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양 선수가 주먹 다짐을 하고 피터지는 광경을 보면서도 꼭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마치 천성적으로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절실했다.

 

 하지만 착한 사람(?)은 늘 초반에 밀린다. 안타까움에 발을 한참이나 구르고 나서야 마침내 김일 선수가 박치기를 시작 한다. 사람이 저렇게 박아도 뇌가 멀쩡한가 따위는 생각할 결흘도 없이 이제 이겼구나 싶은 생각뿐이다. 그리고 김일 선수의 두 손이 번쩍 올라갈 때 우리 가족도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특별한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없었던 그 시절, 김일 선수의 박치기 한 방은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특별한 뭔가가 있었다.   

 

 <인생은 박치기다> 이 책은 영화제작자인 저자가 영화 산업에 뛰어들어 성공하기까지를 서술한 에세이다. 개인의 성공스토리를 다룬 책들이 그러하듯이 무일푼에 희망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화에 대한 열정만 가지고 시작한 일이다. 영화에 대한 감만 믿고 첫번째 영화를 계약했으나 상영관을 찾지 못해 곤란을 겪고 홍보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 버벅거리던 과정, 흥행 실패로 친구의 돈을 날려 버린 일 등 어찌보면 그의 영화 인생은 무모함의 연속이었다.

 

"예전에는 이 나라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비하했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 일을 통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므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표현할 수 없다면 다른 나라에서 표현하면 된다는 명쾌한 사고방식까지 갖게 되었다. (p.58)"

 

 하지만 책의 제목처럼 저자는 '박치기 인생'이었다. 일단은 부딪혀서 해결하고 때론 끈기있게 때론 과감하게 재도전해서 이룬 결과였다. 돌이켜 보면 그 시작은 재일 조선인으로서 차별받았던 어린 시절부터 다져진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세대에 제주도 4.3 사건을 계기로 일본으로 건너와 온갖 힘든 일을 겪으면서 견디어야 했던 세월, 형의 죽음 등 가족사에 대한 솔직한 고백도 기억에 남았고, 무엇보다 '자이니치(재일 한국인)'에 대한 몰이해가 가져온 정체성의 혼란으로 누군가 건들이기만 하면 폭팔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청소년기가 너무나 가슴 아팠다.

 

"왜 우리는 조선인인 거야? 조선인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p.174)"

 

 국민들을 보호 하지 못했던 정부, 그로인해 가까운 일본으로 떠나와야 했던 재일 한국인들...  해방후에 남북 분단과 군사 독재, 민주화 과정에서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재일 한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에 대한 애증을 키우게 만들었다. 그나마 부모님들 세대는 고향에 대한 무조건 적인 향수가 남아있었겠지만 2세들의 경우는 그런 감성적인 부분 보다는 냉혹한 현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 경험들이 대표작 <박치기>를 통해 고스란히 표현되었고 개봉과 동시에 일본 열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가끔씩 외국에서 명성을 떨친 교포들의 사연을 접할때면 뿌듯한 마음과 함께 민망한 생각이 드는 것.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하인스 워드, 추성훈, 위성미 등 적어놓고 보니 스포츠 선수들만 나열해서 그런데 하여간 그들이 한국인이거나 한국계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기사화 할때도 꼭 한국이름을 적는다. 하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교포들을 위해 해 준것도 없고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마음이 좀 그랬다. 그 그설에는 저마다 먹고 살기 힘들어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고 치자. 하지만 이제라도 재외 교포들을 돌아봄으로써 2세, 3세들이 한국을 찾고 한국을 자랑스러워 하도록 만들어 주기위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책을 처음 펼쳤을 때만 해도 일본 영화제목이나 영화인들에 대한 언급이 많아서 무척 낯설었고, 끝까지 읽을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자의 솔직한 고백에는 아픔을 나누고 성공에는 진정한 박수를 보낼 수 있을 만큼 공감하게 되었다. 중반 이후에 저자가 배급하거나 관람했던 영화 목록과 감상이 적힌 부분에서는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르는 영화가 대부분이어서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재일 조선인의 아픔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것과 저자의 열정과 도전 정신이 보여준 감동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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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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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받고는 여느 책과 다른 판형때문에 화들짝 놀랐다. 동갑내기들보다 머리 길이 만큼 키가 큰 아이를 본 것 같은 어색함이랄까.  '실험적이고 독특한 책'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첫인상부터 비범했다. 각각의 페이지들은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세뇨르 C는 유명한 작가인데 그가 출판사로부터 의뢰받아 집필하던 에세이가 제일 상단에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는 세뇨르 C가 비서인 안야에 대해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 그리고 하단에는 안야의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초반에는 책에 몰입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세 부분이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 서로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가 세 가닥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산만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길이까지는 같은 파트를 연속으로 읽어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다가 그마저도 힘들어 중간 부분인 세뇨르 C의 시점을  끝까지 읽고 안야의 시점을 읽은 후 다시 세뇨르 C의 에세이를 읽는 방법으로 읽으니 그제서야 전체적인 내용이 머릿속에 정리되는 것 같았다.

 

 세뇨르 C는 부와 명성을 모두 가진 노작가이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되돌아 보면서 정치, 경제, 문화, 철학 등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심오한 메세지를 글로 남길 계획이었다. 어느날 아파트의 세탁실에서 안야라는 젊은 여인에게 반해버린 그는 안야를 설득해서 타이피스트이자 비서로 채용한다. 노작가는 안야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으면서도 비서로서 그녀의 실력에 의문을 가지게 되고, 안야 또한 노작가의 글이 딱딱하고 재미없다며 투덜거린다.

 

 이처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현재의 사회적 위치도 다른 두 사람이 에세이를 매개체로 만나 소통을 시작하고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전개된다. 안야는 자신을 좋아하면서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세뇨르 C에게 연민과 존경을 느끼게 되고 점차 그의 글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세뇨르 C도 안야가 살아온 인생과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마침내 안야는 노작가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남자친구 앨런을 만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위해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세뇨르 C와 안야, 앨런이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분명 여느 소설처럼 흥미로웠다. 하지만 세뇨르 C가 '강력한 의견'이라는 제목으로 서술한 내용은 소설의 범위를 벗어난 '비소설' 적인 내용이었다. 때문에 초반에 안야가 느꼈던 감정과 마찬가지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인 것은 세뇨르 C가 '두 번째 일기'라는 제목으로 선보인 에세이들은 안야의 충고를 받아들인 탓인지 말랑말랑해 졌다는 느낌이다. 강력한 의견을 고수하던 노작가의 글이 조금씩 부드러워 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소설을 읽는 또 다른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와는 그렇게 친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J.M. 쿳시라는 작가의 이름도 처음이었고 남아프리아 출신이라는 점부터 여러가지 면에서 낯선 만남이었다. 어쩜 작가는 세뇨르 C라는 소설 속 노작가의 에세이를 통해서 지금껏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뱉어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에세이만 출간되었더라면 내용의 무게때문에 대중적인 면에서 주목받기가 힘들거나 내용면에서 논란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설과 비소설의 경계를 적절하게 넘어들면서 소설적인 흐름과 조화를 이루는데 성공함으로 J.M. 쿳시라는 이름을 각인시킬 만큼 특별한 작품을 완성시켰다.         

 

 덧붙임 - 실험적인 소설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꼽으라면 살바도르 플라센시아의 <종이로 만든 사람들>을 꼽고 싶다. 3단 구성과 세 가지 시점의 전개와 난해한 스토리도 인상적이었지만 글씨를 검은 색으로 처리해서 읽지 못하게 하거나 심지어 책에 구멍을 내기도 하는 등 정말 쇼킹한 책이다. 

 

 

밑줄 그은 문장

 

 "우리는 발이 아픈 개 혹은 날개가 부러진 새에 대해 얘기한다. 하지만 개는 그런 식으로 자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새도 마찬가지다. 걸으려고 하는 개에게는 그저 아프다는 것만 있고, 날려고 하는 새에게는 그저 그럴 수 없다는 것만 있다. (육체에 관하여, p.69)"

 

 "(세뇨르 C의 이웃인 벨라는 기온이 40도 이상 올라가자 개구리들을 걱정하며 플라스틱 물통을 시내에 놓아 둔다. 그 일에 세뇨르 C의 의견임. ) 벨라와 같은 사람들을 놀리면서, 장기간에 걸친 혹서는 이난이 참견해서는 안 되는 생태적인 과정의 일부라고 지적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런 비판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인간도, 그리고 미물에 대한 우리의 애정도 까마귀의 잔인함처럼 생태의 일부가 아닐까?  (동정에 관하여,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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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의 역습 - 당신이 몰랐던 우유에 관한 거짓말 그리고 선전
티에리 수카르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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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우리집은 우유 소비량이 정말 높다. 일주일 기준으로 1리터 짜리 10개를 정기적으로 배달받고 그것도 부족해서 마트에서 가장 용량이 큰 사이즈를 추가로 구입할 정도이니 말이다. 친정 부모님과 남편, 나까지 이렇게 어른들은 하루 한 컵 정도를 마시는데 실제로 우유를 가장 많이 마시는 사람은 초등 1학년인 내 아이다. 보통 우유 400밀리 정도를 입 한번 떼지 않고 들이키는데 학교 다녀와서, 저녁에 잠들기 전에, 밥 먹다가 목이 말라도 우유를 마신다. 그러니 학교 단체 급식으로 받는 200밀리 포함하면 하루 1리터 이상을 마시는 샘이다. ^^; 

 

 아이한테 처음 우유를 먹이게 된 것은 특별한 이유를 들 것도 없이 당연히 먹이는 줄 알고 시작했다. 돌 정도만 지나면 생우유를 먹일 수 있기 때문에 분유를 끊으면서 자연스럽게 우유를 먹였고 어린이집 보내면서 단체 우유 급식 시스템에 길들여진 이유도 있다. 본격적으로 우유 섭취량을 늘리게 된 이유는 또래 아이들이 과자의 독특한 맛을 좋아하고 사탕, 초콜릿 등 달콤한 맛에 끌리는 반면 내 아이는 군것질을 전혀 하지 않는다. 아빠쪽 식성을 닮았다는데 독특하다는 소리 정말 많이 듣는다. 어쨌거나 군것질을 하지 않으니 간식 삼아 한 잔씩 챙기게 된 것이고, 채식주의자인 친정엄마의 영향을 받아 된장, 김치, 나물 종류가 밥상을 점령하다 보니 동물성 단백질 섭취가 부족할 것 같은 걱정에 더 열심히 챙기게 된 이유도 있다.   

  

 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만 판단할 때는 솔직히 아무 문제가 없었다. 가끔씩 '우유에 대한 오해' 라는 주제로 우유가 완전식품이 아니다, 라든지 우유와 골다공증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단편적인 글을 읽은 적은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현재의 상황에서는 그나마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각을 바꾸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또래들 보다 월등하게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것, 운동을 잘하고 사고가 성숙한 것에 대해 우유가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믿는다. 심지어는 아이들 키가 작아서, 면역이 약해서 고민하는 엄마들이 뭐 먹이냐고 물으면 우유를 강추해 왔다. 그렇게 수년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우유에 대한 신뢰가 쌓이다 보니 어느새 우유 예찬론자가 되어있었다.    

 

 <우유의 역습>이라는 이 책을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잘만 살았는데... ^^;; 아뉘~ 책 한 권 때문에 지금 좀 흔들린다. 이 책대로라면 우유는 절대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이 아닌가. 송아지가 먹고 빨리 자라라고 성장인자가 많이 들어있다보니 우유를 먹는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것은 맞지만 결코 많이 먹어서 좋은 음식은 아니다. 우유를 많이 먹는 나라의 사람들이 오히려 골다공증이나 골절이 더 많고, 전립선과 관련된 암 발병율도 높단다. 그리고 이 책이 '사회문제'로 분류된 점이 의아했는데 낙농업 관계자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정치권에 로비해 왔고 국민들을 상대로 마케팅 해왔는지 알게되니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일에 대해 거짓임을 주장하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리고 막연하게 우유를 과신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보다 이렇게 세부적인 수치로 설명하니 뿌리치지도 못하겠고 얼떨떨할 수 밖에 없다. 유전자 변형 제품, 환경호르몬, 발암물질과 관련된 제품을 일일이 가리다보면 정말 먹을 것 없다, 라고 반박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우유는 주식인 밥과 달리 선택이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우유 안 먹겠다는데 우유 밖에 없다면서 억지로 먹일 필요는 없다. 다만 우유를 잘 소화하는 성인일 때, 하루 한 잔 정도는 섭취해도 좋을 것 같고 내 아이 처럼 엄청난 양을 먹을 경우 지금보다는 확실히 줄일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고 끊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런 고집불통~~) 어떤 것이든 과한 것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사실, 음식에 있어서 만큼은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고 과하게 먹는 것 보다는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참, 저자도 인정하는 것 중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우유 섭취량과 키가 비례한다는 사실. 그래도 키가 크는 것은 확실하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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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02 0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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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추워져서 옷장 정리를 하다 보니 작년에 입었던 아이의 내복이 죄다 작아져서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봄에 구입했던 옷들이 가을에 꽉 끼일 정도로 쑥쑥 자라는 아이인데 옷 장만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싶기도 했고, 어짜피 내의로 입는 것이니 올 겨울은 지내보자 싶어 그냥 입혀 보냈다. 그랬더니 저녁에 아이가 하는 말이 발목이 시리더란다. ^^;; 옆에서 모자의 대화를 듣던 남편이 누웠다가 벌떡 나서는 궁상 좀 그만 떨라고 버럭 거린다. 둘이서 맞벌이 해가며 돈을 버는데 아들내미 내복값까지 아껴서 뭐하냐고 말이다. 그날 저녁 당장 마트가서 내복 사입혀 재우고 아이 옆에 누우니 한 순간에 엄청 나쁜 엄마되고 이게 뭔가 하면서 가슴을 치면서 후회했다. ㅠ.ㅜ 

 

 절약과 궁상... 생각해보면 전혀 다른 차원을 의미하는 단어일수도 있지만 때론 한 끗 차이일 때도 있다. 바람이 차가운 날 버스로 몇 코스나 되는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날도 추운데 왜 걸어가느냐는 주위의 질문에 차비가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을 들으면 정말 궁상맞고 처량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환경을 생각해서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니기로 스스로와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위해 그런 것이라는 대답을 듣는다면 약간은 다른 의미로 와닿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내가 아무리 소신때문이라고 말을 해도 상대가 "그래도 궁상이면서..." 라고 해버리면 이것은 소신인가 궁상인가? ^^;

 

  <고등어를 금하노라>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소신있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게된 것 같다. 책의 저자는 고등학교 때 가족이 독일로 이주한 후로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결혼을 하여 두 자녀를 둔 아줌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줄일 수 없다는 철칙을 고수하기위해 높은 학력에 비해 적은 월급을 기꺼이 감수하고, 환경을 위해 차를 포기하고 자전거를 타며, 취침때는 난방을 돌리기 보다 따뜻한 물주머니를 안고 잔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운송되어 온 물품이나 먹거리를 거부하며 대형 마트가 있음에도 동네 유기농 슈퍼를 이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에세이의 특성상 개인적인 일상사까지 언급되어있어서 수다를 떠는 것처럼 편하게 듣다가도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등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줄때는 역시나 똑소리 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독일이 지난 날의 잘못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사죄하고 배상하였고 국제사회도 그 부분은 인정하였다. 하지만 독일 사회의 일부분에서는 여전히 나치의 잔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짐작은 했으면서도 섬뜩했다. 그리고 독일처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나라에서 조차 돈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엄마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때 어느 나라든지 정도의 차이일뿐 사회적인 현상은 비슷하구나 싶다.

 

 도덕과 윤리 개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유란 무조건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 다는 것을 함께 배우고 자란다. 하지만 '자유'라는 말의 어감은 세트로 따라다니는 책임을 떼버릴 자유까지 포함하고 있는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때문에 누구나 원하는 것만 모두 가지고 하나 라도 포기하거나 잃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포기'란 생각해서는 안될 단어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위해,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Winner 라는 사실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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