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 교수의 구석구석 우리 몸 산책
권오길 지음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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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일이다. 방학을 맞이해서 수영을 배우던 아들이 귀가 아프다고 해서 집 까가운 내과/소아과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중이염이 아주 심하다고 했다. 전문 이비인후과로 가는 것이 좋겠다며 소견서와 함께 전화 예약까지 해주길래 서둘러 병원을 옮겼더니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 말로는 중이염이 아니라 귀의 겉부분에 염증이 좀 있는 것 뿐이라고 하셨다. 수영을 계속해도 상관없으며 손만 대지 않으면 저절로 낫는다는 것이다. 두 의사선생님의 소견이 어찌 이리도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순간 어리둥절해서 몇번을 되묻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과 의사가 어디... 귀를 제대로 안답니까?"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첫 번째 진료했던 의사 선생님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곳은 단골 병원인데다 친절하기로도 소문이 난 곳이다. 자신이 치료할 수 없을 것 같다든지 의심이 되는 환자인 경우 신속하게 다른 전문의에게 진찰받도록 하는 것도 오히려 신뢰가 간다. 두 번째 의사 선생님 말씀도 맞았다. 그 날 저녁에 처방해 준 항생제를 먹여 재웠더니 다음날은 훨신 나아졌다고 했고 수영도 보냈다. 우리 부부도 오랫동안 수영을 했기 때문에 귀 뿐만 아니라 어느 부위든 손만 대지 않으면 탈 날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몸이 얼마나 신기한가 하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는 인체에 대해 너무 모른다. 손은 손이고 발은 발이다?, 라는 정도... 이건 너무 심했다. 그러면 심장은 자기의 주먹 크기만하고 눈알은 탁구공 만하다, 이건 좀 낫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사람의 적혈구는 지름이 7-8nm이고 수명은 약 120일, 평생 약 144km를 돌아다닌 셈이며, 그 수는 25조 개에 가깝다. 적혈구는 핵과 미토콘드리아가 없으며 산소를 운반하는 일을 하면서도 산소를 쓰지 않는 유일한 세포다. " 이런 설명은 어떤가? 머리에 쥐가 좀 나긴 해도 이제야 우리 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뿌듯하다. ^^;;

 

<권오길 교수의 구석구석 우리 몸 산책> 내용이 제목 그대로다. 우리 몸의 구석구석 -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세포에서 겉모습까지 심장에서 손발톱까지 인체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이 들어있는 책이다. 그런데 처음 책을 펼쳤을 때, 글이 너무 빽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문용어들도 제법 보이는 것이 예전에 생물교과서 혹은 참고서를 보는 기분이랄까. 중간중간 배치된 삽화와 실사 특히 매끄러운 종이질도 오히려 교과서스럽다는 느낌을 더한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학창시절 생물 수업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 나면서 그런대로 진도가 쉽게 나간다. 

 

개인적으로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여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과 나이가 들수록 가정 내 여성(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호르몬과 연관지어 설명했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철학적인 면에서 보면 노화라는 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해 준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데, 이 또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세포들로 인한 것임을 생물학적으로 설명들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는 노교수의 노력이 엿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학문적인 것 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도 함께 전해주려는 시도 또한 돋보인다. 

 

 유전학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프리카인'이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제국주의 시대에 흑인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않았던 이들과 나치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목숨 걸고 진실을 은폐했겠지. --;; 또 한가지 의문은 미래 생물학이 과연 어떤 식으로 발전할까? 하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 이미 한 단계 진화의 과정을 거친 존재라고 주장한다. 길쭉한 얼굴 모양, 날카로운 턱선, 커진 눈... 하지만 그런 걸 가지고 진화라고 한다면 너무 김빠지는 것 아닌가 싶은데... 현생 인류가 발견된 이후 오늘날 까지의 시간 만큼, 그 만큼의 시간이 다시 흐르면 인간의 모습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사피엔스의 차이 만큼이나 또 다른 종으로 바뀌어 있을까? 난 그것이 궁금하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인체,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너무나 신비스러운 존재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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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을 리뷰해주세요.
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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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비가 그렇게 많이 내렸다고 하는데 창문 꼭꼭 닫아놓고 초저녁부터 책읽다가 잠이 들어버려서 인지 간밤에 비가 오는줄도 몰랐다. 정말이지 천하태평이다. 그런데 출근과 함께 며칠동안 중국과 대만에 피해를 준 태풍 '모리꽃'과 어제 일본을 강타했다는 지진 이야기가 나오자 은근히 걱정이 된다. 일본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있어 예전부터 지진이 많은 나라였다지만 몇년전부터 중국에 크고 작은 재해가 끊이질 않아 그 중간에 위치한 우리 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올여름 '해운대'라는 한국형 재난 영화가 주목받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운명의 날> 이 책은 1775년 11월 1일 리스본에서 일어난 대지진에 관한 내용이다. 운명의 그 날은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는 만성절 아침이었고 재난의 어떤 징조도 보이지 않을 만큼 화창한 날씨였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성당에서 축일을 기념하는 오전 미사를 드리다가 재앙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지진은 리스본 내의 거의 모든 건물들을 붕괴시키면서 최소 2만 5천명에서 최대 10만명의 사상사를 발생시켰다. 뒤이어 몰아닥친 쓰나미는 불타고 있던 건물 잔해와 생존자들 마저 쓸어가버렸고 이로써 리스본은 복구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초토화 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포르투갈을 다스리던 주제 1세는 대재앙 앞에 망연자실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때 신의 전령사처럼 나타난 이가 바로 카르발류(폼발 후작)였다. 카류발류는 주제 1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리스본 재건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아 임무에 착수하게 된다. 문제는 교황청을 비롯한 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재앙을 하느님의 심판으로 보았고 리스본 재건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보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회개하거나 리스본을 떠나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카르발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의지를 현실화 시켰다.   
 

 당시 포르투갈은 식민지로부터 거두어 들이는 세금과 노예무역 특히 브라질의 금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같은 풍요로움은 왕실과 성직자, 귀족들만의 것이었다. 서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었고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카르발류는 지방 유지 출신으로 일찌기 계몽주의에 눈을 뜬 인물이었다. 그는 강력한 철권통치를 바탕으로 성직자, 귀족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으면서 고질적인 부정 부패를 근절시켰다. 그리고 리스본 대지진이 신의 진노함이 아니라 자연현상임을 인식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개혁을 주도해 나갔다.   
 

 오늘날 카르발류에 대한 평가는 많은 부분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혹자는 그가 권력 남용을 일삼았고 비민주적이었으며 정적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잔인한 정치가였다고 주장한다.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권정치'가 불가피했고, 그가 자신을 위해서는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역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도 있다. 카르발류가 아니었다면 '운명의 날' 이후 리스본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재건된 리스본은 그 후 오랫동안 '유럽 근대화'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리스본 대지진은 포르투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럽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리스본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건은 인접 유럽국가는 물론 전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괴테나 볼테르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 철학자들이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을 외침으로써 계몽주의에 힘을 실어주고 근대화를 가속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나약하기만 한 인간들, 자연재해는 과연 인간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 '운명을 날'을 통해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덧붙임... 올해는 어찌된 영문인지 열대야다운 열대야 한 번 없이 여름이 지나가려나 보다. 모처럼 휴가내어 여행을 간 지인들의 말이 산 아래 위치한 팬션의 경우 너무 추워서 보일러를 돌려야 될 정도이고, 계곡물은 차가워서 발만 겨우 담글 정도라고 전한다. 지금이 8월 중순이니 오늘 당장 휴가를 가더라도 물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포기해야 할 듯 싶다. 도대체 지구의 기후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 예년 같지 않은 기후탓에 괜시리 긴장감이 더해진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우리 나라도 결코 재난에 있어서 안전지대는 아니다.
과연 우리의 재난 대책은 어느 수준일까? 우리에겐 카르발류와 같은 지도자가 있는가? 갑자기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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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고 멋진 세상 미래아이 저학년문고 6
귀스타브 아카크포 지음, 이주희 옮김, 오동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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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켈리는 아홉살, 천진난만하고 개구장이인 소년입니다. 케켈리가 사는 곳은 도시 근교의 호수 근처로 물 위에 집을 지은 아름다운 마을이랍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아프리카의 베니스' 라고 불렀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했어요. 케켈리는 해가 질 때마다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작고 멋진 세상'에 행복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호수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을 시작으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의 어른들이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도시에서 온 전문가들도 마을을 방문했어요. 케켈리는 '아름다운 호수'가 '썩어 병든 호수'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너무나 상심했지요. 때마침 여자친구 아미비를 집으로 초대하기로 약속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버려서 더욱 당황했어요. 케켈리는 아미비가 좋으면서도 한동안 그녀를 피해 다녀야만 했답니다. 그뿐 아니라 케겔리의 어린 동생들이 병에 걸리는 등 마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케켈리의 '작고 멋진 세상'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요? 

 

 이 책은 방학을 맞이해서 학교에서 추천한 '환경도서 리스트'에서 발견하게 된 책입니다. 저학년 문고답게 분량이 적당하고 내용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1학년인 우리 아이는 케켈리의 학교 생활 특히 친구들과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입니다. 먼 나라 아프리카의 아이들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이 비슷한 것을 눈으로 보면서 친근해 합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는 일몰과 반디불이 같은 곤충을 매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케켈리를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케켈리가 마음아파 할 때 아이도 함께 아파하고, 고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습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맑은 공기, 먹을 거리, 아름다운 경치 등 모든 것들 내어줍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연에게 돌려준 것은 '쓰레기' 였습니다. 케켈리네 마을의 호수를 병들게 한 것도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수가 썩어가며 냄새를 풍기기 까지 말못하는 호수의 생물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결국은 그 결과가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 온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잘못을 깨달은 후에는 이미 늦어 버린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 작고 멋진 세상>은 아홉 살 소년의 눈으로 본 '환경 문제'에 관한 내용입니다. 케켈리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작은 수첩에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어갑니다. 케켈리는 일기의 마지막 부분에 "이제 마을 사람들은 호수를 떠나야만 합니다. " 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호수가 언젠가는 되살아 날 것이라는 희망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을 교훈삼아 자연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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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여행 2 : 희망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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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능하면 후회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땐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라는 식의 인생의 방향이 걸린 큰 후회도 있겠지만 일상 생활속에서도 후회도 가급적 하지 않는게 정신 건강에 좋다. 가령 모처럼 만에 괜찮은 옷을 한벌 장만했다고 좋아라 하는데 돌아서니 더 싸고 이쁜 것이 눈에 띄더라도 마음아파 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읽고 싶었던 시리즈 책을 큰 맘먹고 구입했는데 1권도 다 읽기 전에 50% 특가세일 한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절대 마음아파 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다잡곤 한다. ^^;;

 

 후회없는 인생이란 없을 수 없겠지만, 그런 후회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인생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리움은... 그리움은 후회와는 분명히 다르다. 후회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만, 그리움은 뒤돌아 볼수록 앞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누구나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힘이 들때 마다 끄집어내 보면 힘이 불끈 솟아나는 그런 추억의 조각들이야말로 바로 그리움이다.

 

<내 마음의 여행 2 : 희망>은 페이지마다 그리움이 묻어난다. 복잡한 도시를 가득 채운 빌딩도, 소음도 없고 뭔가에 쫓기 듯 살아가야만 하는 도시인의 분주함도 없다. 책을 읽다보면 소개된 곳이 정말 우리 나라가 맞나 싶은 생각도 들고, 때론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 처럼 느껴질 정도로 시간 개념을 초월한 공간 같다. 이런 것이 바로 '영상미' 인가 보다. 실제로 이 책에는 아름다운 풍경과 글 그리고 음악까지 3박자가 어우려져 있는데 음악의 경우 리스트만 적혀 있어 CD까지 첨부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우리 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한국에 살아서 좋은 부분에 대해 말한 내용이다. 원하기만 하면 어디에서 출발하든 2시간 내로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좋고, 원하기만 하면 당장 등산을 할 수도 있어서 좋다고 말이다. 3면이 바다라는 것에 대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는데 이 책에도 바다가 많이 등장하다보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 어쩌다 보니 아직 여름휴가도 떠나지 못했는데 소개된 장소를 중심으로 여행 계획을 세워도 좋을 듯 하다. 지녁별로 가까운 곳을 패키지처럼 묶어서 하루나 이틀에 걸쳐 둘러보면 시간 활용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창한 봄날은 며칠 되지 않아 스러지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삶에서 생기 넘치고 발랄하던 시절이 항상 그리운 것은 그 시간이 짧아서 그리울 수밖에 없다는 말과 일맥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머리말에 나오는 이 문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서른 나이는 아무 생각없이 맞았는데 서른 중반이 되고보니 내 삶에 있어 발랄하던 시기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리움속에 모두 묻혀버린 느낌이다.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를 위한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무치는 그리움을 마주대하고 싶다.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다 선명하게 그릴 수 있으리라. 

 

 

어쩌면 산다는 건

기억과 망각을 반반씩 버무려 품고 가는

저 강물과도 같은 것이리라.

 

두물머리에서 나는 보았다.

추억을 제 몸속에 깊이 묻으면서 사는 법을.

그리고 모든 것을 흘려보내고

떠나보낸 후에 찾아오는 삶의 평화로움을...

 

방송_ 2008년 1월 20일(p.76)

글_ 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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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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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막힌 우연이 있나. 백정 출신의 영웅 이야기 <제중원>을 읽고 돌아서자 다시 백정 출인 '임꺽정'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앞서 읽은 책은 구한말 황정이라는 인물이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에 의사가 되고 면천되는 이야기가 펼쳐졌는데 또 다른 백정 출신 임꺽정의 경우는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청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드라마의 힘이 참 크긴 한가보다. 일단 임꺽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산적'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그 이미지는 10여년전 드라마에서 임꺽정을 연기했던 한 연기자의 인물과 오버랩 되니 말이다. 

 
 임꺽정이 활약했던 시기는 연산군에서 중종, 인종, 명종으로 이어지는 시기다. 우선은 한 사람의 인물을 이야기하는데 네 명이나 되는 왕이 언급되다보니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임꺽정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무수히 많았을 만큼 엄청난 갈등과 사건들이 많았던 시기인 것이다. 왕실을 중심으로 갈등이 컸다는 것은 결국 백성들의 삶이 온전치 못했다는 뜻이고, 그런 이유로 임꺽정과 같은 인물이 나오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임꺽정은 요즘 말로 하면 백수다. 어찌보면 경제 개념도 없고 그저 누군가에게 밥 한끼 얻어 먹을 정도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가진 것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고, 잃을 것이 없으니 뭔가 절박한 것도 없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내는 아니다. 그는 여러 스승들께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배우고 말타는 법, 검술 등 필요한 것들을 열심히 배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놀면서 쉬엄쉬엄 배운 것이 달인의 경지에 오를 정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의아스러웠던 부분, 그러면서 결국 수긍할 수 없었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임꺽정에게 '대의'가 없다, 라고 했던 부분이다. 임꺽정은 어릴 때 부터 한 마을에서 자랐던 친구들,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과 의형제를 맺고 청석골 이라는 일종의 '공동체 마을'을 세운다. 그곳에 식솔들을 데려와서 자식을 낳아 키우다 보니 마을의 규모가 커진 것이다. 관에서 그의 조직(?)을 위험하다고 여기는 것과는 상관없이 임꺽정의 삶은 철저하게 본능에 따라 움직였고 단순 무식에 의리파이며 곧 죽어도 '자존심' 뿐인 인생이었다. 임꺽정이야 말로 진정한 아웃사이더이자 자유인이었던 것이다.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이 책을 읽는 순간 지금까지 권수만으로도 주눅들던 '임꺽정'을 읽어보고픈 마음이 생겼다. 중간 중간 발췌한 부분을 보니 구수한 구어체가 어찌나 정겨운지, 그리고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여성들의 파워에 관한 내용이나 민초들의 생활상 특히 성이야기를 읽다보면, 배 고픈것만 빼면 양반님네들보다 백성들의 삶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미숙님, 기회되면 꼭 한번 만나고 싶은 분이다. 이 분이 쓴 책으로는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이 영화를 보라> 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인데 어찌나 글빨(좀 민망한 표현이긴 하지만 달리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질 않는다.)이 센지 과연 말빨도 그러한지 궁금해서 그렇다. 스스로를 '고전 연구가'로 소개할 때가 가장 뿌듯하다는 말처럼 그 어렵다던 고전이 고미숙님 손만 거치면 쉽고 웃긴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왜 하필 임꺽정인가 했는데, 이제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  

 

"니체가 그랬다던가. 운명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두었다고. 그러니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행운들과 기꺼이 대면할 수 있는 배짱과 호기, 다만 그것뿐! 이다.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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