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눈물 - 한니발보다 잔인하고, 식스센스보다 극적인 반전
라파엘 카르데티 지음, 박명숙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왜 하필 마키아벨리일까, 라는 의문으로 시작했다. 솔직히 팩션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기에는 마키아벨리라는 인물의 부정적인 면이 너무 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군주론'을 통해 권력은 도덕과 분리되어야 하며, 권력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심지어 군주가 국민들에게 했던 약속을 저버려도 된다고까지 주장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냉혹한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 주인공이라니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과연 그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런지, '마키아벨리의 눈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읽었다.  

 
 15세기의 피렌체, 도시 곳곳에서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다. 민심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공포와 두려움이 만들어낸 분노의 화살은 누구를 향하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수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벽에 부딛치고 만다. 목격자들의 증언이 지목하고 있는 인물은 부패한 성직자를 비판하고 시민들의 편에 서있던 종교개혁가 사보나롤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개혁가의 억울한 죽음은 물론이고, 그를 지지하던 피렌체의 최고 지도자인 소데리니까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서기관 마키아벨리는 스승인 피치노가 도난당한 수사본이 이번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임을 깨닫게 되고 친구들과 함께 살인범을 뒤쫓는다.      

 
"한니발보다 잔인하고, 식스센스보다 극적인 반전", 솔직히 이 문구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보다' 라는 말은 명백하게 과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컸던 까닭이다. 그동안 속기도 많이 속았고 말이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너무 끔찍해서 몸이 굳어버리는 줄 알았다. 어쩜 고문하는 장면을 그렇게 길게, 상세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살인자는 아마도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일겁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기가막혔다. 살인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인간이 이렇게도 잔인해 질 수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내용의 전개는 흩어진 퍼즐들을 모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없는 화가가 모사한 '성모영보'라는 그림, 단테의 수사본, 오래전 피렌체를 떠들석하게 했던 스켄들의 진실과 신비스런 여인 보카도르의 등장까지 이 모든 퍼즐들이 어떻게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될지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작가는 젊은 시절의 마키아벨리를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캐릭터로 묘사하고 있는데, 잔혹한 살인마를 쫓는 인물로 마키아벨리 만큼 적당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후반부의 반전은 감탄사를 자아내기 보다 혼란스럽고 충격적이었다는 것만 말해두고 싶다.  


 
 당시 피렌체가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것은 사실이나 정세는 매우 불안했다. 주변국은 호시탐탐 피렌체를 노리고 있었고 내적으로도 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책에서도 프랑스 대사 자격으로 피렌체에 머물던 추기경이 무리한 요구를 함으로써 피렌체의 지도자와 마찰을 빚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존했던 마키아벨리도 '주변국과의 교섭'을 담당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군주만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가 <군주론>에서 주장한 내용도 같은 이유로 설명이 된다. 비록 팩션으로 되살아난 캐릭터이긴 하지만 젊은 시절 마키아벨리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어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림의 완벽해 보이는 아름다움 뒤에는 종종 가장 끔찍한 공포와 견디기 힘든 폭력성이 숨어 있기도 한다는 것을. 그 잘못은 우리 인간들과 그들의 거짓 순수성에 기인하는 거야. (중략) 더 잘 감추기 위해 보여 주고, 더 잘 드러내기 위해 감추는 것. 예술은 그렇게 모순에서 탄생하는 것이지! (p.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고학 탐험대 이집트 인류 문명 발굴하기 3
재키 가프 지음, 정윤희 옮김, 조가영 감수 / 넥서스주니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지난주에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였던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읽은 적이 있어요. 덕분에 왕권을 둘러싼 내란과 외세의 침략 속에 혼란을 겪던 이집트의 모습에 대해 알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이집트 문명의 시작은 어떠했으며 인류에게 남긴 문화 유산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때마침 넥서스주니어의 '고고학 탐험대'를 만나게 되었는데 로마, 그리스에 이어 시리즈의 세 번째로 이집트 문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네요. 고대 이집트 문명을 파헤친다. 고고씽~!!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과 함께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로 유명하지요. 고대에는 큰 강을 중심으로 문명이 발달하였는데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이 만들어 낸 비옥한 토지 위에 세워졌어요. 이집트 문명이 대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문명이 시작된지 5천년이고,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며 유지해 온 시기도 3천년이나 된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무화 유산을 남겼겠어요? ^^

 사람들이 이집트의 문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 무렵인데요. 나폴레옹의 군대가 이집트에 주둔 하면서부터 유물을 발굴하기 시작했어요. 문제는 그들이 예술가이자 유물을 수집하는 사람들이긴 했지만 대부분 값비싼 유물을 차지하려는데만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때문에 많은 무덤이 도굴되고 유물들이 훼손되었지요. 뒤늦게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힘겨운 싸움이었어요. 우리 역사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기에 마음이 아팠답니다.

 이어서 이집트인들이 사용했던 상형문자와 상형문자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되어준 로제타석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아무래도 장례의식과 미라만들기를 눈여겨 보게 됩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죽은 뒤에도 삶이 지속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시체를 그대로 보존하는 방법을 연구하게 된 것이지요. 미라는 총 70일 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복잡한 과정과 의식을 거쳐 완성된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의 삶과 귀족들, 노동자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벽화와 조각 같은 유물을 통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에 관한 연구는 오늘날에도 활기차게 진행중이랍니다. 이미 발견된 것에 대한 연구도 지속되어야 할 것이지만 앞으로 발굴할 유물도 엄청나다고 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훼손을 통해 최대한의 정보을 얻어내는 것이겠죠. 또한 영국이나 프랑스의 박물관에 전시된 이집트의 보물들을 생각할 때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런 유물들이 유출되는데 앞장선 사람들이 이집트인들이란 사실도 씁쓸하지요. 

 방법은 한 가지, 나라가 부강해 지는 길 밖에는 없어요. 우리가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은 것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다른 나라에 빼앗길 수 없었던 것도, 지금의 분단된 현실도, 통일이 지연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한 때문이랍니다. 이집트의 유물들은 이집트인에게, 한국의 유물들은 한국인에게 돌아가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꼭 기억해요~ 상황이 어떠하든, 고대인들이 남긴 유물들의 가치와 정신적인 유산들은 인류 공동의 것이라는 사실을요. ^^


 

 

책을 읽고 뭘 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파라오가 되고 싶답니다. ^^;;  





생각해보니 안 될 것도 없지요.  변신해라!  파라파라~ 파라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를 리뷰해주세요.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권진.이화정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스스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연히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얼굴이나 옷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러움이 묻었다면 거울을 보지 않고는 알수가 없으며,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습관이나 말투 등도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범위를 확장시켜 도시와 나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수다 라는 프로가 잡음도 많지만 긍정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외국인들에게 보여지는 한국이 어떤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항상 보기에 좋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 아름답다, 친절하다, 음식이 맵지만 맛있다 등의 비슷비슷한 표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에 오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너무나도 아는 것이 없었으며 주변에서도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는 말에 당황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중국이나 일본을 연상함으로써 한국을 이해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어쨌거나 방문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좋은 기억으로 간직되는 한국이 되기를, 누구에게나 다시 찾고 싶은 도시 서울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국인 보다 더 서울에 대해 잘 안다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본다.     

 
한국에서 시를 쓰면서 영어 강사를 하고 있다는 로버트 프리먼과의 인터뷰중에 "여기 사람들이 외국회사나 자본이 들어와 정체성에 위협을 느낀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난 이런 식의 교육을 통한 인성교육의 위협은 왜 느끼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p.13)" 라는 말이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외국으로 유학 보내는 현실을 생각할 때, 힘들더라도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한국의 학생들은 학원시스템에 치여 꿈꿀 시간조차 없어 보인다는 그의 지적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 중에는 지나치게 폭력적인 것들도 있다며 한국의 아이들을 걱정하는 모습에서 천상 선생님이구나 싶었다. 
 

 TV프로 서프라이즈에 출연했던 젠 아이비는 제법 얼굴이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군인 신분이었고, 광주 민주화운동 직후라서 환영받지 못했던 분위기 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만난 한국인들에 대한 기억만큼은 긍정적이었다. 그것이 그를 다시 한국으로 오게 만들었다고.  "희생과 성공, 지난 20세기 한국은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산업의 엔진으로 성장했다. 요즘 한국의 GDP는 세계14위다. 실로 대단한 결과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분명 무언가를 잃어 버렸다. (p.104)" 오랫동안 한국을 알아 왔던 만큼 변화된 모습에 아쉬움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느끼는 '상실감'을 공감하는 외국인이라니 그는 정情'을 아는 사람이다. 
 

얼 잭슨 주니어는 미국이면서 동아시아 영화를 연구하는 학자다. 그는 한국인보다 한국 영화에 대해 더 많이 안다. <맨발의 청춘> <오발탄> <강원도의 힘>등과 같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는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미국인인 그가 한국영화를 지키위한 방법으로 주저없이 제시한 것 중 가장 중요하게 꼽은 것이 '스크린 쿼터 사수'이다. 광우병만큼이나 문화적인 것들도 중요하다는 주장에 깊이 공감한다. 독일인 마크 시그문드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한국의 전통 혼례 방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많은 한국인들이 서양식을 추구하면서 전통을 이어가지 않으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한다.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이 책에는 다섯 나라, 일곱 명의 외국인이 말하는 한국과 한국인,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한국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대신 각자가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전문직이란 점이 대화 내용에 무게를 실어 주고 있다. 인터뷰 형식을 그대로 옮겨놓아 잡지의 한 코너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살짝 들었는데 일반적으로 외국인에게 거주하고 있는 나라에 대한 질문을 하면 아무래도 가식적인 내용이 섞인 칭찬만 늘어놓을 수도 있을텐데 이 책에서는 진심으로 한국을 이해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난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한국이, 서울이 자신 만의 색깔을 버리고 외국의 것만 따라가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이야기 한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은 외국의 것을 모방한 관광지보다는 서울에만 있는 곳, 서울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어 한다. 다시말해 서울만의 특징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사동이나 이태원도 좋지만 강남보다는 강북을 선호하고 옛종로와 노량진 같은 재례시장이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외국인들이 가장 매력을 느끼는 서울의 모습은 가장 한국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0℃>를 리뷰해주세요.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초여름 날씨, 교실엔 선풍기 두어대가 전부였지만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버스로 대여섯 코스나 떨어진 대학교에서 시위를 하나본데 바람을 타고 여기까지 날아온다. 창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 온 최루탄 냄새에 여기저기에서 기침 소리가 터져 나오고 짜증섞인 한 숨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며칠전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대문을 들어서던 큰 언니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도 시위대 속에 있을거라 생각하니 걱정스러움에 마음이 울컥했다. 엄마, 아부지는 우리들 공부시키느라 힘들게 일하시는데 너무 한다 싶은 생각도 들었고, 나라도 효녀딸이 되어드려야지 다짐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날이 바로 20여년전 '그 날' 이었나 보다. 
 
 
<100도씨> 이 책은 인터넷 6월항쟁 기념관에 올려진 '만화로 보는 6월 민주항쟁'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미 볼 사람은 다 보았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지만 근래의 시국을 반영하듯 활자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인 최규석님이 그날의 일들을 '규모가 큰 데모' 정도로 생각하였다가 우리 '민주화 역사에 정점'이 된 사건이라고 새롭게 인식한 것 처럼 나 자신도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어 많은 부분을 인터넷에 의지하였다. 


 
 간선제로 선출된 전두환 정권은 당시 군부독재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태우 정권에 권력을 넘기려는 계획을 진행한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전두환 정권의 호헌선언(직선제를 위해서는 개헌이 불가피한데 이런저런 이유로 개헌이 힘드므로 기존의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선언함.), 이한열 열사 사망 등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의 꽃은 꺽이지 않았다. 이처럼 '100도씨'에는 우리 민주화 역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기록들과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담고 있다. 
 

반공소년 영호는 부모님의 자랑이다. 공부도 1등, 웅변도 1등... TV 속에서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볼 때마다 나쁜 사상에 빠진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리라 결심하면서 자랐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서 마주친 세상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자신을 믿고 계신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을 뒤로하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영호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아들을 빨갱이로 키웠다며 스스로를 자책하던 어머니는 그 옛날 보도연맹에 끌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가족과 빨갱이라 멸시받으며 자랐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들을 위해 구명운동에 나선다.        


어린 시절 영호의 모습은 내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국민들 세금으로 깔아 놓은 보도 블럭을 깨뜨리질 않나. 세금으로 지은 관공서에 화염병을 던지질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목숨 내놓고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왜 세계에 유래없는 북한의 사상을 옹호하고 따르려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고, 국내 정권의 비민주화와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침튀며 욕하는데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않는 것인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는 경축이라던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세습'에는 왜 입다물고 있는건지. 부분적으로 일치되지 않는 행동이 위선자처럼 보일때가 많다.  

 
해답은 바로 "한 사람의 열 걸음 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 이다. 책에도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간의 논쟁이 잠시 나오는데 민주화에 있어서도 '범국민적인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가령 고 노 전 대통령의 탄핵 때와 한미 FTA와 관련한 집회 처럼 전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비폭력이면서도 강력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촛불'이야말로 '6월 민주항쟁'을 제대로 계승한,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민주화 운동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말한다. 그 날, 6월 항쟁의 결과로 받은 것은 '소중한 백지 한장'이라고 말이다. 무엇을 채울지는 우리 각자의 몫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채워가야 하는 것이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p.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 - 안데스 음악을 찾아서
저문강 지음 / 천권의책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문제는 주말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늦었다~!! 집안 잔치가 있어서 서울행 기차를 타야 하는데, 온 식구가 늦잠을 자 버린 것이다. 1시 예식이라고 넉넉하니 시간맞춰 9시 25분 기차를 예매했더니 평소 출근시간보다 더 여유롭다고 느낀 탓일까 아예 정신줄을 놓았나 보다. 비몽사몽인 남편이랑 아이 깨워서 후다닥 준비하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가 기차 플렛폼까지 숨 넘어가는 것 억지로 참아가며 전력질주 했더니... '덜커덩~'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9시 26분이다. ㅠ.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멀어져가는 기차를 쳐다보고 있자니 누굴 원망할 일도 아닌데 괜시리 서러운 생각이 든다.   

 
다행이 15분 뒤에는 다음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어찌나 한심한지. 만약 여기가 한국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놓친것이 기차가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비행기였다면, 다음 기차를 타기 위해 15분이 아니라 3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면... 이런 내가 어떻게 '진짜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워 졌다. 남편은 전날 계모임 후유증인지 금새 골아 떨어졌고, 아이는 휴대폰 게임하느라 정신없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렇게 미친듯이 뛰지나 말걸. 이런저런 생각들 모두 접어 버리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얼굴을 묻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길을 가다 우연히 작은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온 음악에 걸음을 멈추게 되고, 순간 '마술에 걸린 듯'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고 한다. 저자는 안데스 음악과의 첫만남을 길에서 마주친 여인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그후 몇년이 흘러 안데스 음악을 라이브로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안데스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단지 안데스 음악이 좋아서 안데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곳 사람들을 만나 악기를 배우고, 안데스 음악을 연주하는 그룹의 매니저도 되었다가 자신이 직접 뮤지션의 길을 걷게된 사연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일들이 순로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그 곳에만 가면 하루종일 안데스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 음악 선생님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 일정 기간 내에 악기들을 마스터하려 했던 기대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진행되는 것이 없다. 더구나 안데스인들의 생활 습관이랄지 그 사람들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종종 오해도 생긴다. 특히, 저자의 음악적 열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안데스 그룹을 만났을 때, 정작 그들은 생계를 위해 '그 음악'을 더이상 연주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실망하던 장면에서는 내 마음도 뒤숭숭한 것이 당혹스러웠다. 집나가면 ㄱ고생 이라지만 좌충우돌 예기치 못한 상황들 때문에 이야기가 흥미진진해 지는 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잉까 트레일'에 관한 것이다. 3박 4일 동안 걸어서 마추픽추를 등반하는 코스인데 거의 '행군'하는 수준이다. 몸이 피곤한 것도 힘든데 고산병까지... 정말 힘든 과정 끝에 오른 마추픽추 이기에 평생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와중에 다국적의 여행객들이 모여 잠들기 전 '공공칠빵'을 했다는 말이 얼마나 웃기던지. 가장 안타까웠던 이야기는 인구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눈에 보이는 차별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인디헤나(인디헤나는 스페인어로 원주민 이라는 뜻이고, 영어식 인디오는 낮춰 부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들의 사연과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 기차에서 읽는 '여행서' 라니 정말 탁월했어. 스스로의 선택에 만족해 하며 읽었던 책이다. 기차에 오를 때만 해도 정신이 없었는데 빗질된 것처럼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 같았다. 고백컨데 처음에는 '안데스 음악' 보다 '안데스 여행기'에 중점을 두고 읽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엘 꼰도르 빠사'를 검색했고, 운 좋게도 인디헤나들이 직접 연주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멜로디만 기억하고 있던 내게 안데스 음악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제야 알겠다. 안데스에는 우리와 같은 '한恨의 정서'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안데스 음악이 '우리가 피괴하거나 잃어버린 자연, 순수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일깨워 준다.'는 저자의 설명에 깊이 공감한다.     

 
안데스여~ 대단히 고맙습니다. 안데스여~ 무차스 그라시아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