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수집가 - 어느 살인자의 아리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정창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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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저 소리는 얕은 흙탕물에 떨어진 자작나무 이파리를 밟는 멧돼지 발자국 소리입니다. " 신부님, 보통 인간의 귀에 감지되는 소리는 똑같지만 저는 그 이상으로 소리의 형태, 소리의 정수, 소리의 본질 그리고 소리의 존재를 놓치지 않는, 더 이상은 해체할 수 없는 소리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신부님의 내부에 단조로운 소리가 살아있다면, 제 내부에는 소리에 대한 무한한 영역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p.41)

 

 위의 인용문 중에서 소리를 냄새로 바꾸고 귀를 코로 살짝 바꾼 뒤에 다시 읽어보면 누군가 한 사람 떠오르는 이가 있을 것이다. <향수>의 그르누이, 바로 그다. 그르누이가 절대후각을 가졌다면 주인공 루트비히는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루트비히는 갓 태어났을때 부터 보통의 아이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수개월이 지나도록 눈을 감은 채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가 했더니 '소리'로 모든 것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구분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가졌으며, 축적된 정보를 재조합하여 밖으로 끄집어내는 능력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루트비히의 목소리는 사람들을 기쁘게도, 행복하게도 만들 수 있었고 그가 원하는 여인들을 사랑의 포로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문제는 그르누이의 향수가 여인들의 죽음을 통해 얻어진 것 처럼 루트비히도 점차 살인자가 되어야만 했다. 천상의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행위가 반드시 필요했고 그와 밤을 보낸 여인들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아야만 했다. 마침내 그에게도 운명적인 사랑 마리안네가 나타났고 그녀 또한 루트비히와 같은 운명임을 알게된다. 마음 깊이 사랑하지만 그 이상은 허락되지 않는 사랑, 그들은 천상의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었으나 서로를 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특별한 능력은 축복이자 저주였던 것이다.



  

<소리 수집가>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모티브로 전개된다. 트리스탄은 왕을 위해 다른 나라의 공주였던 이졸데를 모셔오는 임무를 맡았는데 사랑의 묘약으로 인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끝내는 왕의 노여움을 사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 루트비히와 마리안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후예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운명을 타고 났다. 이럴경우 두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부터 소개만 보고도 이 책이 <향수>와 많이 비교되겠구나 싶었는데 책 읽는 내내 그랬다. 루트비히가 새로운 소리에 집착하고 그것들을 분류해서 몸 안에 담는 모습, 음악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첫사랑을 잃은 후 부터 점차 살인마가 되어가는 자신을 혐오하는 모습에서도 그르누이의 모습이 계속 오버랩되었다. <향수>의 경우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예술이든 뭐든 어떤 경우에라도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야지 '사람을 이용한' 그 무엇도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문학적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예술가의 광기에 대해서도 차라리 고흐처럼 자신의 귀를 자르거나 스스로 정신병원에 걸어 들어갈 지언정 타인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르누이가 아무리 훌륭한 향수를 만들었다고해도, 루트비히가 아무리 훌륭한 노래를 부른다해도 그것은 빈 껍데기일 뿐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그랬던 것 처럼 영원히 함께 하는 방법을 원했던 마리안네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살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 루트비히, 과연 누구의 선택이 옳은 것일까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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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식탁 프로젝트
대한암협회 엮음 / 비타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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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중국의 명의 화타에 관한 일화가 생각한다. 죽어가던 사람도 살려낸다고 할 만큼 용하다고 알려진 화타는 자신의 큰 형님이야말로 진정한 명의라고 소개한다. 바로 위의 형님은 환자의 병세가 심각해지기 전에 손을 써서 병을 막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마운 줄을 모르고, 큰 형님은 병이 발병도 하기전에 이런이런 병을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주니 사람들이 그 말을 무시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심각해진 병증을 치료하니 명의로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병이 치료되는 것을 눈으로 보아야 명의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명의였던 화타는 치료보다 예방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얼핏 들으면 '진정한 명의'를 알아보지 못했던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리석다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대인들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흡연과 음주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지만 끊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화를 다스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렇다더라~" 하는 지식은 공감은 하더라도 피부에 와닿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원인과 질병과의 상관 관계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얻지 못하면 나 자신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임에도 '남의 일' 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항암 식탁 프로젝트>는 먹거리를 통한 암 예방이 목적이다. 옛말에 '밥이 보약'이란 말이 있듯이 잘 차려진 밥상이야 말로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책에는 주식, 반찬류, 유제품, 음료와 주류를 비롯한 한국인의 식생활과 밀접한 음식들 위주로 설명하고 있어 당장 오늘 부터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리고 흰 쌀밥이 왜 나쁜지, 잡곡을 하면 무엇이 좋은지 성분과 수치로 설명하고 있어 이해가 쉬우며, 특정 음식에 대해 '무조건' 피하라고 강요하기보다 '피할 수 없다면 건강하게 즐기라!'고 충고하고 있는 등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 마음에 든다. 

 

 가장 중요하게 와닿았던 내용은 '음식의 양면성'에 관한 것이다. 가령 된장과 김치는 발효식품으로 한국인에게 대표적인 음식이면서 면역강화 및 항암효과가 뛰어난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음식에 함유된 염분의 경우 위암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생선의 오메가3지방산은 대장암 발생을 억제하지만 직화구이나 조림은 피해야 하며 덩치가 큰 생선의 경우 환경호르몬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완전식품으로 알려진 우유도 중년 남성의 경우 우유를 과다 섭취하면 전립샘암 위험이 높아지지만 여성의 경우는 골다공증을 비롯해 여성암을 예방해 준다.  

 

 한동안 '비타민'이라는 프로를 눈여겨 보면서 건강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곤 했다. 특정 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소개하는 음식이 회를 거듭하자...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대부분의 음식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을수록 한 가지 결론으로 연결된다. 건강을 위해서는 금연과 절주는 기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것도 없다. 거기에다 골고루, 적당히 먹도록 하고 오랜 기간 습관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말해 건강을 유지하고 항암 식탁을 차리는데도 정말 특별한 재료로 만든 '별식'이 아니라 "정성껏 차린 식탁(인스턴트 제외, 슬로푸드 식단)이더라."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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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 영화광 가네시로 가즈키의 열혈 액션 드라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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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사회적 위치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것이 달라지기 마련이고, 사람의 목숨에는 무게가 없다지만 국가의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보다 특별한 보호장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SP(Security Police)는 "국내외 VIP를 경호하는 특수경찰"로 요인전문 경호원을 말한다. 배경이 일본이다보니 우리 나라 시스템과는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책의 내용상으로는 그렇다. SP는 '움직이는 벽'이 되어 요인에게 닥칠 위험을 차단한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요인을 구하기위해 몸을 던지지만 임무를 완수했다고 해서 영웅이 될거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주인공 이노우에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테러리스트에게 목숨을 잃는 장면을 목격한 상처가 있는 인물이다. 이노우에가 SP로의 길을 걷게 된 이유도 경찰에 의해 길러졌다는 점과 그날의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사건 현장이나 컴퓨터 화면같은 특정 장면을 사진을 찍어 보관하는 것처럼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초인적이라고 할 만큼 직감이 뛰어나 SP들 중 가장 먼저 위험을 감지하며, 상대방의 살의나 악의를 읽어내는 능력도 탁월하다.  SP 역사 최초로 테러리스트를 직접 검거한다는 설정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이런 남자 옆에 있으면 정말 든든할 것 같은데 말이다. ^^

 

 주인공이 '특수 경호원' 이라는 정보를 알고 시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그런 장면' 기대하지 않을까.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같은 애잔한 곡이 흐르는 가운데 주인공이 의뢰인(대통령의 딸 혹은 장관의 딸 쯤 되는)을 향해 몸을 던지면서 테러리스트의 총탄을 대신 맞는 장면과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ㅋㅋ(심각한 장면인데 왜 웃음이 나지? ^^;;)  하지만 작가는 철저하게 멜로를 버리고 '다이하드 시리즈'를 선택했다. 화려한 액션,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주인공의 눈부신 활약, SP들의 동료애... 처음엔 주인공의 아픔을 감싸줄 여자주인공을 기대했다가 좀 서운하기도 했었는데 여자 SP들의 멋진 모습에 반해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책의 특성상 경호부 내에에 인원이 많고 공안부와도 업무가 얽히는데다 에피소드마다 여러명의 테러리스트가 등장하기 때문에 인물이 많아서 읽는데 힘들었다. 여전히 적응 안되는 일본식 이름, 이렇게 등장인물이 많으면 너무 헷갈린다. 그리고 매 페이지마다 작가의 주석이 달렸는데 드라마화 되면서 바뀐 점이나 느낀 점등에 관한 것이다. 처음엔 꼼꼼하게 병행해서 읽다가 나중에는 자꾸만 정신이 산만해져서 무시하고 읽었다. 그랬더니 내용에 몰입하기가 훨씬 쉬웠다. 드라마가 먼저 방송된 후에 시나리오가 출간되는 것이어서 작가의 감회가 새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경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를 쌓는 것입니다. 우리를 믿으십시오. 그럼 우리는 그 신뢰를 바탕으로 목숨걸고 당신을 지킬 겁니다. (p.246)"

 

 SP들도 사람이고, 의뢰인도 테러리스트도 모두 사람이다. 그런데 누구는 상대를 죽이려 하고, 다른 쪽은 구하려 한다. 부모와 자식간, 연인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경호원이라는 이유로 남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건다는 사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 이 대사는 작가가 SP들을 위해 고심해서 넣었다고 하는데 굉장히 가슴찡한 장면이었다. 그러고보니 우리 사회는 군인, 경찰들을 비롯해서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 '지켜주는' 사람들의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SP>는 소설이 아니다. 일본에서 제작되어 성공을 거둔 드라마의 시나리오이다. 처음엔 상세한 묘사가 없어 좀 어색하기도 했는데 드라마의 장면을 나름 상상해가면서 읽으니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유지나 질서보다 개인의 이익을 먼저 바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씁쓸했고, 경제 관련 사건의 경우 사건을 증언하려는 이들에게 실제로 테러가 많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무엇보다 SP로서 보호해야 할 인물이 '보호 하고 싶지 않은' 인물일 경우 인간적인 갈등이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이게 내 일이다.(p.499)" 라는 말은 이노우에가 테러리스트의 질문에 대답한 말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스스로에게 간절했던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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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상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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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를 '생노병사'의 과정이라 일컫는 것 처럼 국가의 흥망성쇠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마치 자연의 섭리와 오묘함 속에서 태어나 죽음으로 이어지는 유기체처럼 말이다. 그런데 국가의 경우 이미 쇠하였음에도 또 다른 강한 세력에 의해 기존의 권력이 무너지고 흡수되지 않은 상태라면 오직 '혼란'만이 존재하는 상태가 되고만다. 로마 멸망 이후 지중해 세계 처럼 말이다. 로마가 중심이 되어 평화를 유지했던 200여년의 팍스로마나가 막을 내리자 지중해는 중심을 잃고 어수선한 상황에 처하고 만다.   

 

"평화는 간절히 바라는 것만으로는 실현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 누군가가 평화를 어지럽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분명히 언명하고 실행해야만 비로소 평화가 현실화되는 법이다. 따라서 평화를 확립하는 것은 군사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였다. (p.66)"

 

 이야기가 길어지기 전에 고백하고 시작해야 겠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냐고 물으면 글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로마인 이야기'의 경우 언젠가는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권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시작을 못하고 있다. 그 방대함에 주눅이 들었다는 말이 어설픈 변명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리스/로마 신화부터 로마를 빼놓고는 서양 문화를 이야기할 수 없으며 세계사를 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단행본은 여러권 읽었는데 어쨌거나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전하는 로마이야기를 훌쩍 뛰어넘어 '로마 멸망 후'를 먼저 만났다.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상)> 이 책은 "해적으로 시작해서 해적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전(지하드)을 내세운 이슬람은 평화가 무너진 지중해를 끊임없이 탐하고 유린했다. 그들은 재물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노예로 팔거나 '목욕장'이라는 시설에 수용했다. 이슬람의 도발에 대응하여 빼앗긴 성지를 되찾는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십자군 원정은 역사상으로도 손꼽히는 무모한 전쟁이었다. 기독교 국가들은 앞다투어 이슬람으로 향하면서 저마다의 이익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 이기심은 억울하게 잡혀 온 이슬람의 기독교인들을 외면한 사례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지중해를 상대로한 해적 행위가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불러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북아프카의 이슬람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생존 수단이기도 했다.이슬람인들은 성전의 본래 목적대로 기독교인들을 개종시키려 하기보다는 노예로 부리거나 노예상인들에게 팔거나 혹은 이들의 몸값을 지불할 수도사, 기사들과 거래하기를 원했다. 십자군 원정이 200여년 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이슬람의 성전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이유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국가들 중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무역을 유지하고자 했던 나라들이 많았다.

 

 로마시대가 문화, 예술, 경제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시기라면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시대는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세계였고 경제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였다. 경제란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때론 국가간에 철저하리만큼 이기적인 면을 보이기도 한다. 과거 지중해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세계 정세와 경제상황을 보는 듯 해서 또 한번 놀라게 된다. 따지고보면 지중해를 위협했던 이슬람 해적이 제국주의 시대의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등과 같은 유럽의 해적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중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와 아름다운 섬들이다. 그 곳 사람들은 낙천적이면서 정열적이고 미식가들이 많은데다 장수하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아픈 역사 때문인지 오늘 만큼은 지중해의 바다가 슬퍼보인다. 특히 부츠 모양의 이탈리아 해변을 따라 수도없이 세워진 '사라센의 탑(해적들의 습격을 감시하던 망루)'들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절박함을 말해주는 듯 하다. 지중해의 해적은 19세기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은 이후, 서유럽의 국가들이 북아프리카 일대를 식민지화 할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계사라서 그런지 솔직히 진도가 빨리 나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책 내용중에 "설명을 하자면 길어지니 생략한다. 저서 **을 참고하시길..."이라는 문구들을 보면서 괜시리 머리를 긁적이기도 했다. 이젠 정말 '로마인 이야기'를 읽을 때가 되긴 되었나 보다. 끝으로 이탈리아 해군사에 재미있고도 씁쓸한 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이탈리아가 아말피, 피사, 제노바, 베네치아 네 개의 해양도시국가 였던 시대에는 서로 경쟁하면서 지중해를 지배했었는데 지금 하나의 이탈리아 된 후에는 지중해를 지배하는 것이 미국과 러시아라는 사실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영토가 넓었던 시기가 삼국시대 였다는 것과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런 공통점에 괜히 흥분하게 된다. 

 

어느 나라든지 역사적으로 아픔이 없는 나라가 없겠지만 그런 아픔을 밑거름으로 보다 발전된 모습,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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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를 리뷰해주세요.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일상을 전복하는 33개의 철학 퍼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 / 마젤란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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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참 어렵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류의 삶과 가치관을 학문이라는 틀에 맞추려는 것 자체가 쉬운 것이 아니다. 다른 학문은 그나마 연구대상이 눈에 보이거나 짐작이라도 가능하지만 철학은 말 그대로 '인간의 사고나 의식'을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명확한 답을 구하기가 어렵다. 가령 수학에서는 "1+1"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2"라는 답이 존재하지만, 철학에서는 물 한 컵을 쏟아붓고 다시 한 컵을 더 쏟아 부으면 "0"가 된다고도 하고, 한 컵에 한 컵을 더하면 더 큰 한 컵 "1"이 된다는 식으로 답이 무수히 많아져 버린다. @@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왜 하는가, 라고 생각하다가 이 책이 '철학적 사고'에 대해 말하려는 것임을 알고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따지고보면 지구상에서 인간 보다 더 다양한 먹거리를 가진 동물도 없다.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이 '특별한 동물'이 유독 같은 종족은 먹지 않는다. 하지만 원시 부족의 경우 분명히 식인 풍습이 존재했었고, 중국의 경우 인육을 넣은 만두 이야기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나라의 경우만 해도 효자가 병든 부모님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 드시게 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저자는 철학적 사고를 할 때 만큼은 '예스' 혹은 '노' 라는 식의 대답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황을 더 꼬아서 다시 질문한다. 만약 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굶어 죽을 상황이라면 먼저 죽은 사람들을 먹는 것이 도덕적으로 어떠한가 라고 말이다.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용납하게 될 것도 같다. 그러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만약 지구상에 아직도 식인 풍습을 유지하는 곳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단지 인육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의식의 일종이라면 과연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 뭔가 찝찝한 마음이 들면서도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서 철학이 힘들다는 것이다. ;;

 

저자가 제시하는 33개의 퍼즐은 모두 이런 식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는데 과연 '지금'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 어느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을 할 때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그리고 '개미와 배짱이'라는 이솝우화의 경우 개미는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았고 배짱이의 삶도 가치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면에서는 기발하면서도 참 난감한, 정말이지 '일상을 전복한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어린이들 대상으로 출간된 '철학동화'의 부록에 보면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것이 과연 효도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라든지 '토끼가 잠든 틈을 이용해서 경주에 이긴 거북이가 과연 옳은가?' 라는 내용으로 토론을 유도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 배우고 익히는 것이 참 심오하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고, 다양한 사고와 주장이 어우려져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간다. 앞서 언급한대로 철학적 질문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보다 넓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포용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철학적 사고의 기본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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