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수집가 - 어느 살인자의 아리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정창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아닙니다. 저 소리는 얕은 흙탕물에 떨어진 자작나무 이파리를 밟는 멧돼지 발자국 소리입니다. " 신부님, 보통 인간의 귀에 감지되는 소리는 똑같지만 저는 그 이상으로 소리의 형태, 소리의 정수, 소리의 본질 그리고 소리의 존재를 놓치지 않는, 더 이상은 해체할 수 없는 소리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신부님의 내부에 단조로운 소리가 살아있다면, 제 내부에는 소리에 대한 무한한 영역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p.41)

 

 위의 인용문 중에서 소리를 냄새로 바꾸고 귀를 코로 살짝 바꾼 뒤에 다시 읽어보면 누군가 한 사람 떠오르는 이가 있을 것이다. <향수>의 그르누이, 바로 그다. 그르누이가 절대후각을 가졌다면 주인공 루트비히는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루트비히는 갓 태어났을때 부터 보통의 아이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수개월이 지나도록 눈을 감은 채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가 했더니 '소리'로 모든 것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구분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가졌으며, 축적된 정보를 재조합하여 밖으로 끄집어내는 능력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루트비히의 목소리는 사람들을 기쁘게도, 행복하게도 만들 수 있었고 그가 원하는 여인들을 사랑의 포로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문제는 그르누이의 향수가 여인들의 죽음을 통해 얻어진 것 처럼 루트비히도 점차 살인자가 되어야만 했다. 천상의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행위가 반드시 필요했고 그와 밤을 보낸 여인들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아야만 했다. 마침내 그에게도 운명적인 사랑 마리안네가 나타났고 그녀 또한 루트비히와 같은 운명임을 알게된다. 마음 깊이 사랑하지만 그 이상은 허락되지 않는 사랑, 그들은 천상의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었으나 서로를 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특별한 능력은 축복이자 저주였던 것이다.



  

<소리 수집가>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모티브로 전개된다. 트리스탄은 왕을 위해 다른 나라의 공주였던 이졸데를 모셔오는 임무를 맡았는데 사랑의 묘약으로 인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끝내는 왕의 노여움을 사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 루트비히와 마리안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후예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운명을 타고 났다. 이럴경우 두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부터 소개만 보고도 이 책이 <향수>와 많이 비교되겠구나 싶었는데 책 읽는 내내 그랬다. 루트비히가 새로운 소리에 집착하고 그것들을 분류해서 몸 안에 담는 모습, 음악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첫사랑을 잃은 후 부터 점차 살인마가 되어가는 자신을 혐오하는 모습에서도 그르누이의 모습이 계속 오버랩되었다. <향수>의 경우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예술이든 뭐든 어떤 경우에라도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야지 '사람을 이용한' 그 무엇도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문학적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예술가의 광기에 대해서도 차라리 고흐처럼 자신의 귀를 자르거나 스스로 정신병원에 걸어 들어갈 지언정 타인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르누이가 아무리 훌륭한 향수를 만들었다고해도, 루트비히가 아무리 훌륭한 노래를 부른다해도 그것은 빈 껍데기일 뿐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그랬던 것 처럼 영원히 함께 하는 방법을 원했던 마리안네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살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 루트비히, 과연 누구의 선택이 옳은 것일까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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