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들을 모아 우타노 쇼고가 현대에 맞게 각색해서 낸 일종의 콜라보라 할 수 있겠다.

환상과 공포, 괴기 그리고 추리의 영역을 넘어 참으로 다양한 소재로 작품을 쓴 란포의 작품은 지금 읽어도 그 내면에 흐르는 광기나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탐구를 알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작품이 많은데 요즘 세대들에겐 아무래도 그 시대적 차이에서 오는 괴리로 인해 깊은 몰입감을 방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현존하는 추리작가 우타노 쇼고가 원작의 훼손을 최소한으로 해서 현대에 맞는 소품과 소재를 섞어 새롭게 재탄생 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개중에는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작품도 있고 처음 보는 작품도 있다.

이를 발췌한 건 어디까지나 란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를 오마주 한 작품을 이미 발표한 경력이 있는 쇼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유명한 작가가 된 옛 연인에게 메일을 보내며 협박하는 남자

그의 요구는 예전처럼 작품을 공동 집필하는 걸 원하지만 이미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른 여자는 그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을뿐더러 그가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도 끔찍해 한다.

점점 집요하게 요구하며 협박해 오는 옛 연인은 급기야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 수 없는 사실조차 나열하며 숨을 조여온다. 그는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그는 그녀가 편히 쉴 때 사용하는 인체 맞춤형 의자 속 빈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경악하는데... 원작 인간 의자를 재해석해 낸 작품인 의자? 인간?에서는 의자 속 빈 공간에 숨어서 그녀의 빈틈을 엿보고 있었다는 본래의 작품에다 그녀를 숨도 쉴 수 없게 조여오는 도구로 현대인들의 필수품인 이메일과 휴대폰을 선택해 신구의 조화를 멋들어지게 섞었다.

시작부터 상당히 흡인력 있는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고 짧은데도 그 속에 긴장감과 의외의 반전까지 있어 다음 편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다.

스마트폰과 여행하는 남자는 한 여자에 집착하고 스토킹하던 남자가 끝내는 자신이 만든 환상 속으로 침몰해간 사연을 다루고 있고 표제작인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은 우연히 들른 약국에서 사람이 죽어 뜻하지 않게 목격자로 사건에 휘말리게 된 남자와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추리소설답게 사건 과정과 범인을 추리해가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져있다.

원작 D 언덕의 살인사건 속에 나오는 이상성욕이라는 소재에 IT 기술을 접목해 온라인상으로 이뤄지는 은밀한 만남으로 재해석했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번뜩이는 반전이 돋보였다.

란포의 음울한 짐승을 재해석한 작품은 음울한 짐승의 환희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도덕적이고 근엄한 남자가 사실은 마음속으로 음흉하면서도 비틀린 성적 판타지를 품고 있었는데 잘 숨겨오던 그가 자신의 이상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여자를 만나면서 표면적으로 쏟아져 나오게 된다.

그리고 끝내 맞이하게 된 파국은 뜻하지 않았던 진실을 드러내는데 그 비틀림이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마치 나쁜 놈을 벌주는 것 같았달까...

조용하고 평범해 보이는 모습 뒤에 감춘 위선과 끓어오르는 욕망 그리고 추악한 진실을 통해 인간 본연의 내밀한 욕망과 진면목을 제대로 표현한 란포의 작품을 멋지게 재해석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너무 무겁지 않은 작품을 골라 현대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들을 읽다 보니 그 원작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기발하고 독특한 소재가 많아 가독성도 좋고 몰입감도 좋아 부담 없이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아버지와 꿀벌과 나
메러디스 메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모의 잦은 다툼은 소녀 메레디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기 충분했고 마침내 어느 날 밤 느닷없이 짐을 싸라는 엄마의 말 한마디로 가족은 갈라지고 말았다.

메레디스는 비틀스의 음악을 틀어놓기를 좋아하는 아빠를 사랑하는 아이였고 이 갑작스러운 이별은 아이에게 충분히 충격을 줬지만 엄마는 자신의 상태에 매몰되어 메레디스와 아기 매튜를 돌볼 여력이 없다.

외할머니의 집에 와서부터 침대에 누워 아이들을 돌아볼 생각도 할 여력도 없는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 편에서 아이들에게 무조건 엄마 말을 잘 들으라 당부하는 할머니

아빠가 보고 싶고 그리운데 매일 슬퍼하는 엄마에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어린 메레디스를 붙잡아 준 양봉가인 할아버지였다.

과묵해서 별로 말을 많이 하는 것도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시하지는 않지만 외롭고 슬픈 메레디스에게 벌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게 한다.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의 의도대로 메레디스는 이내 벌들에게 매료된다.

작디작은 벌들이 서로를 어떻게 도와 벌집을 지키고 엄마인 여왕벌을 지키는지 그리고 단순하게 보였던 벌들의 윙윙거림에도 벌들만의 언어가 있고 서로 의사소통을 춤으로 혹은 냄새로 한다는 이야기는 어린 메레디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덕분에 아빠와 떨어져 있는 슬픔도 보살펴야 할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자신의 슬픔에 빠져 있는 엄마에게 느끼는 안타까움과 불만을 잊는 데 도 도움이 된다.

할아버지를 도와 양봉을 배우며 꿀벌들에게서 삶의 많은 것을 배우는 메레디스

그 아이에게 꿀벌과 할아버지는 유년기의 외로움과 슬픔을 잊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그렇게 꿀벌들과 함께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배우는 여러 가지 삶의 지혜들... 이를테면 봉군에 어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미리 다른 집을 알아보고 또 여기저기서 알아본 새 집에 대해 모여서 의논한 뒤에 옮기는 모습에서 재난이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자세라든가 혹은 춥거나 더울 때 서로 모여 날개를 흔들어서 열을 내거나 온도를 조절하는 모습에서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든가 등등은 이후 그녀의 삶에 큰 힘이 되어준다.

그렇게 어린 소녀 메레디스가 차츰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할아버지와 꿀벌과 나는 가족의 해체라는 슬픔을 이겨내고 주변을 돌아보고 사랑할 줄 아는 당당한 여자로 자라난 저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더 감동적으로 와닿는다.

특히 양봉을 하는 할아버지의 꿀벌을 비롯한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

이외에도 우리는 몰랐던 꿀벌들의 세계에 대해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메레디스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그들이 비록 혈연으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꿈꾸던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정하고 묵묵히 지켜봐 주고 믿어주는 ...

이야기 전체적으로 따뜻함과 삶의 지혜가 녹아있는 동화 같은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복수해 기억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8
섀넌 커크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 봐도 대충 어떤 내용일 거라 짐작이 가지만 장담컨대 그 짐작을 뛰어넘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복수를 다짐하면서 기억하라고 다짐하듯 말하는 주인공은 16세의 아직 어린 소녀... 여기서부터 여느 복수극과는 조금 다르다.

얼핏 생각하면 그녀가 단순히 화가 나고 분해서 하는 소리인가 싶지만 이 소녀에 대해 안다면 그녀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녀 리사는 변호사 엄마와 건축가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란 상류층 아가씨지만 평범하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재판 성공률이 거의 100%에 육박하는 완벽한 포식자의 습성을 지닌 엄마에게서 어릴 절부터 남들과 다른 현실적인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 것도 그렇지만 본래의 성격조차 감정 변화가 크지 않은 그녀의 이런 남다른 면모가 모두에게 확연히 드러난 건 아직 어릴 때 그녀가 있는 교실에 총기를 들고 남자가 나타났을 때이다.

아이들은 물론 선생까지 모두를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들었지만 오로지 그녀 리사만 전혀 떨지도 않고 총격범의 심리상태를 관찰하고 침착하게 판단해 단번에 제압하는 모습은 리사가 어떤 유형의 아가씨인지를 설명해준다.

그런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임신을 한 상태에서 등굣길에 누군가에게 납치당하는 일이 생겼고 갇힌 상태에서 파악한 바로는 그들이 노린 건 바로 뱃속의 아기

리사는 납치된 순간부터 납치범이 저지른 실수 하나하나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기 시작하고 반드시 그들을 처단하리라 결심하면서 탈출을 계획한다.

눈에 보이는 사소한 것 이를테면 자신이 갇힌 곳의 크기부터 납치범이 식사를 가져올 때의 시간 그리고 그의 보폭과 그림자 등을 이용해 그의 신장을 파악하는 것까지 그야말로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해 계획을 짜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은 여느 피해자의 모습과는 다를 뿐 아니라 책을 읽어가면서 독자 역시 아무것도 없이 갇힌 그곳에서의 탈출을 그녀만큼 믿게 될 만큼 그녀에게서는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진다.

일견 감정이라곤 없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소시오패스를 닮은 듯하지만 그런 선입견은 그곳에서 만난 또 다른 10대 소녀를 만나는 순간 깨질 뿐 아니라 그녀가 마치 피도 눈물도 없는 듯한 느낌에서 그녀 역시 사람이고 아직 어린 소녀라는 걸 자각하게 해준다.

처음 본 그 소녀에게서 동질감과 더불어 그녀를 향한 보호본능을 강하게 자각하는 리사는 이제 납치당한 위험에 빠진 소녀에서 자신과 아기 그리고 그녀가 지켜야 할 사람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전사로 거듭나는데 그 과정에서 마치 훈련받은 특수 요원 같았던 리사에게서 사람 냄새가 나고 그녀가 휠씬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느껴지게 한다.

납치되어 갇힌 첫날부터 마치 일기를 쓰듯 써 내려간 그녀의 기록은 이제 그녀의 복수가 왜 정당한지 그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한다.

리사의 엄마도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였고 그녀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FBI 요원들의 활약도 그리고 그가 가진 상처도 인상적이었지만 역시 이 책은 리사라는 캐릭터의 일인극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오로지 리사에 의한 리사를 위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피해자는 여성 그리고 그런 여자에게 위협을 가하는 가해자는 남성이라는 대결구도를 제대로 깨부순 작품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취준생으로 온갖 구박을 받다 저렴한 값으로 호텔에서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다는 광고에 혹해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훌쩍 떠나온 박지우

그녀의 눈에 비친 이곳 원더랜드는 이상하기만 하다.

누구보다 친절해야 할 호텔의 주인인 고복희는 세상 까칠하고 깐깐하기 그지없으며 융통성이라곤 1도 없다.

그런 사장이 운영하니 당연히 이곳 원더랜드는 손님이라곤 없어 언제 문 닫아도 이상하지 않는 곳이지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온 해외여행이 하필이면 이런 곳이라니 울고 싶기만 하다.

환불받고 싶지만 사장 고복희에겐 바늘도 안 들어갈 소리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니 그런 사장의 태도는 이곳 교민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은근히 왕따를 당하고 있는듯하지만 사장은 그런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강적이다.

도피하듯 온 이곳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만난 원더랜드의 사장 고복희는 박지우의 시선에서 보자면 상당히 독특한 인물이다.

근처에 유명 관광지도 없고 호텔이 들어설만한 곳이 아닌 곳에서 호텔을 연 것도 이상한데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친절과 봉사정신이 결여되어 있어 손님에게도 쌀쌀맞기만 하다.

그런 걸 보면 손님이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듯하다.

뿐만 아니라 교민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데 그녀는 왜 하필 이곳에다 낙원이라는 원더랜드를 지었을까?

이런 그녀의 의문은 그녀만의 의문이 아닌 것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의아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을 싫어하고 귀찮게 여기는 그녀가 왜 하필 이곳에서 호텔을 열었을까? 하는 의문은 소설 중간중간에 보여주는 그녀가 살아온 과거에서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엄마를 위해 공부에만 전념하던 그녀를 동기들은 배신자 취급을 하였고 고집스레 자신의 뜻을 지키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반한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그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점점 작아져 마침내 그녀의 곁을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

그녀는 그저 원리원칙을 지켰을 뿐인데 그런 그녀를 보고 누구는 인정머리가 없다고 하고 누구는 꽉 막혔다 욕하며 손가락질한다.

그녀를 가장 잘 이해해주던 남편은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회에 목소릴 내다 끝내는 사그라져 버렸고 이제 그녀는 남편이 죽기 전에 한 말을 따라 이곳으로 왔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소릴 높이고 원칙보다는 정을 내세우며 약삭빠른 계산을 앞세워 그녀를 압박한다.

지치고 힘들다. 사람이 싫다. 모두가 귀찮을 뿐이다.

그런 고복희의 눈에는 박지우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곳에 한 달이나 살려는 건지...

서로 전혀 다른 환경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한 달을 같이 살면서 서로의 속에 대해 알아가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져있는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는 유쾌하면서도 작은 감동을 주고 위로를 주는 책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뒤처져도 괜찮다 말해주고 남들 눈을 의식해서 살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라고 위로해준다.

조금 달라도 괜찮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씩 시간을 내서 전시회에 가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리고 조용히 혼자서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에 놀랄 때가 많다.

그래서 많은 전시품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보면 조용히 조금 더 보고 싶다 가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신경 쓰여 한 작품에 오래 시간을 들여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그 사람들도 나처럼 유명하다 입소문난 전시회를 마음먹고 찾아온 것이 이에 짧은 시간 많은 작품에 눈도장을 찍고 싶은 건 마찬가지리라.

아쉬운 건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는 점이다.

마음먹고 외국을 가서 찾은 전시관이나 미술관은 오히려 더 치열해서 유명한 작품은 그야말로 스치듯 바라볼 수밖에 없어 그저 보고 왔다는 만족감만 가질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덕분에 그림에 대해 제대로 감상하기도 쉽지 않고 그림에 대해 알 기회조차 쉽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런 책이 어렵기도 하지만 고맙기도 하다.

그림은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보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만 제대로 알고 그림을 감상한다면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오랫동안 갤러리에서 전시물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일했고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어 더더욱 그림을 제대로 보는 법을 가르치는 가이드로서 안성맞춤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작품 그중에서도 고전 미술을 볼 때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하도록 놔두고 적극적으로 작품을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앞뒤로도 왔다 갔다 하면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한자리에 머물러 집중해보는 것보다 오히려 나을 수 있으며 어떤 작품이든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그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설명은 의외였다.

작품을 감상할때에는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서서 보는 것이라 알고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는 고전미술을 독창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방법 타불라 라사를 제시하고 있다.

타불라 라사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는 백지상태를 뜻하는 데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선입견 없이 백지상태에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해석하라는 의미로 T, A, B, U, L, A, R, A, S, A는 작품 감상 방법의 각 단계를 나타내는 약자이기도 하다.

시간, 관계, 배경, 이해하기, 다시 보기, 평가하기를 거치고 나서 리듬, 비유, 구도, 분위기를 적용하면 고전미술을 독창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책의 서두에 이런 설명을 거친 후 본격적으로 그림에 대한 설명과 어떤 식으로 그림을 보면 좋을지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보충되어 있는데 그가 제시하는 방법을 따라가면 좀 더 재밌고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것은 확실한듯하다.

 

발이 묶여 있는 양을 그린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린의 하나님의 어린 양은 곧 죽을 운명인 양을 통해 죽음을 처량하게 묘사한 듯 보이지만 그가 제시한 작품 감상 방법의 원리 즉 리듬, 알레고리, 구도, 분위기를 활용해 보면 단순해 보이던 양을 묶은 다리가 십자 모양이고 배경의 색조가 대조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좀 더 종교적인 느낌이 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제목이 납득이 간다.

그림에 대한 설명 중 특히 눈에 들어와 흥미로웠던 부분은 보이는 그대로, 마음이 느낀 대로 진짜 같은 그림을 그렸던 19세기 사실주의 화가들의 이야기와 작품에 관한 설명이었다.

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리는 사실주의는 산업혁명 이전의 좀 더 단순했던 농업사회의 하층민의 위치를 재평가했는데 그들의 그림에서 그 시대의 시대상을 볼 수 있었지만 정직하게 그린 그림은 판매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이런 현실은 시대의 관습을 깬 작품에서 더 두드러졌는데 이런 간극을 무시하고 영국에 처음 도착한 타히티 사람으로 유명 인사가 된 오마이를 그린 그 시대의 탁월한 초상화가인 레이놀즈의 작품은 그가 영국 왕립 미술원의 전시회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탁월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가 죽을 때까지 팔리지 않았다는 걸 보면 그림 한점으로도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조금은 알 수 있는 것 같다.

 

화폭 속에 마치 드라마를 보는듯하게 연출해 내는데 탁월한 화가도 있었다.

그들은 그림을 마치 연극 무대 속에서 조명을 받고 빛나는 주인공처럼 역동적이고 드라마틱 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작가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카라바조다.

그들은 성경의 내용에 상상력을 더해 역동적이면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을 주로 그렸는데 그들의 드라마틱 한 연출은 확실히 관람자의 눈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이렇게 마치 드라마적인 연출을 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사람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용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각인시키는 화가도 있었는데 이들의 그림은 연출 방법이 어떻든 간에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뚜렷하게 각인시킨 반면 진짜 목적을 드러내지 않아 그 의도가 궁금한 화가도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다.

이 작품은 화가는 몰랐지만 그림은 여러 곳에서 본 적이 있는데 단순히 왕가의 모습을 그린 걸로 만 알고 있던 나에게 저자가 여러 가지 숨겨진 의미를 설명하는 글을 보고서야 이 그림이 왕실을 풍자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설명을 듣고 보면 새롭게 보이는 듯하다.

처음 보는 그림도 설명을 읽어가며 보니 더 흥미로웠고 알고 있던 그림도 설명을 읽으며 보니 새삼 달리 보이는 걸 보면 역시 뭐든 알고 보면 재미가 배가되는 건 확실한듯하다.

생생한 그림과 복잡하지 않은 설명 그리고 시대적 배경까지 곁들여 놓아 확실히 그림을 보는 재미를 배가 시키고 있는 것은 물론 책에 나오는 그림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리라.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목적한 바를 이룬게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