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재가 공기
나카타 에이이치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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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작지만 애잔한 사랑 이야기라는 소개 글을 읽고 제목이나 표지에서 느껴지는 것까지 포함해서 조금은 달달하고 가벼운 이야기일 거라 짐작했는데 생각보다 참신한 스토리에 마냥 가볍지 많은 소재를 다루고 있어 솔직히 의외로 다가온 책이었다.

6편의 단편으로 묶여 있는 이 책에는 참으로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는데 남들보다 능력치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런 점을 스스로는 핸디캡으로 여겨 소심하게 무리 속에 끼어들지 못하고 겉도는 아웃사이더가 대부분이다.

소년 점퍼에서는 너무 못생긴 얼굴 때문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소년이 등교거부를 하고 집에서만 머물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에게 원하는 곳으로 순간 이동 즉 점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학교 여자 선배를 구해주고 그걸 계기로 그녀와 친해져 혼자 짝사랑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신도 모르는 새 남들의 시선에 두려워하거나 움츠러들지 않게 된 자신을 발견한다는 조금은 가벼운 이야기

제목인 나는 존재가 공기는 부모의 불화로 어느샌가 자신의 기척을 숨길 수 있게 된 한 소녀의 이야기인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전시킨 이 기술로 부모를 비롯해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아봐 주지 않는 이곳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알아봐 준 친구를 위해 멋진 활약을 펼친다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유쾌하면서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게다가 그녀의 활약에는 생각도 못 한 인물의 일탈이 그려져있어 그녀라는 존재가 자신의 흔적을 숨길 수 있게 된 사연만큼 이야기 자체가 마냥 밝고 유쾌하지만은 않다.

스몰 라이트 어드밴처 또한 한 소년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는데 우연히 신기한 라이트를 비추어 갑자기 작아지게 된 아이는 그 상황에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러 나섰다 오히려 여자친구를 도와주게 된다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그려져있는데 이번에는 아이의 연령이 어려서인지 그에 맞게 유쾌하고 재밌게 아이의 활약상을 그려놓고는 어드밴처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인 작가의 센스가 재밌다.

여기에는 순간 이동부터 발화 능력을 가진 사람, 그리고 염력을 가진 사람과 같은 진짜 초능력을 가진 사람부터 어떤 계기로 순간적으로 능력을 얻게 된 사람까지 참으로 다양한 능력자들이 등장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소극적이고 자신의 이런 능력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그렇게 스스로 움츠러들었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즉 대부분 이성을 만나면서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범인을 잡기도 하고 위험한 순간에 도와주기도 하고 때로는 같이 목숨을 건 위험을 넘기면서 조금씩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자신감을 찾아가는 모습이 담겨있는데 등장하는 인물들의 나이가 대부분 어리다 보니 거기에 걸맞은 귀엽고 가벼운 연애의 감정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제목도 소재도 자칫 유치할 수 있는 이야기로 제법 진중하면서도 무겁지만은 않게 풀어놓는 솜씨가 좋다 생각했는데 소개 글을 보고서야 이 책의 저자가 그 오츠이치라는 걸 알았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소재와 장르에 따라 몇 가지의 필명을 이용해 마치 다른 사람의 작품처럼 쓰는 오츠이치라는 작가에 대해 새삼 감탄하게 되는데 그가 쓰는 호러와 공포소설을 가장 좋아하지만 이런 느낌의 작품 즉 판타지와 현실의 교묘한 조합을 이용한 조금은 라이트 한 소설도 괜찮았다.

작가가 다음에는 또 어떤 스타일의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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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 있는 공간 - 새로운 세대가 리테일 비즈니스를 바꾼다!
정창윤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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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천편일률적으로 세워진 빌딩 사이로 언제부턴가 다소 이질적인 건물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이런 건물이 특색 있는 건물이라며 사람들이 많이들 선호하고 있는 걸 보면 건축물이나 조형물, 혹은 공간에 대한 시각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높이만 강조하던 것에서 특색 있고 개성 있는 건물, 자연친화적인 건물 혹은 옛날의 감성을 일깨우는 레트로 풍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건물을 보면 우리도 점차 다양성이 요구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상권에서 가장 중요하다 여기던 입지 선정보다 어떤 테마를 들려주고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가느냐가 더 중요한 포인트로 부각하고 있다.

사실 소비패턴이 언제부턴가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 오프라인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 구매하던 소비패턴이 이제는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구매하는 패턴으로 중심이 옮겨 갔다.

어쩌면 이런 구매 패턴의 변화가 오프라인의 변화를 촉발한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물건을 보여주고 판매하기 위한 단순한 공간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자각은 공간에 대한 인식마저 바꿔버려 물건을 판매하기 위한 공간이 문화 공간으로 혹은 테마가 있는 공간같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데 이런 변화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변화라 생각한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대기오염과 늘 바쁘고 피곤한 현대인들의 시간 활용도를 높이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는 실외가 아닌 실내공간에서의 원스톱 쇼핑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런 소비자의 니즈를 재빨리 캐치한 기업들은 한 공간 안에서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복합 쇼핑몰로 눈을 돌렸다.

이제 고객들은 단순하게 물건을 사는 것에서만 만족하지 않고 문화 인프라도 충족시키고 자연친화적이며 시간과 접근성 등 여러 가 지면을 만족시키는... 그러면서도 새롭고 크리에이티브 한 공간을 원하고 있다.

저자는 그런 달라진 고객 니즈에 대해 많은 걸을 참고하고 직접 발로 뛴 경험으로 이 책을 썼는데 책 속에 소개하는 각국의 리테일 한 공간이나 창의적이고 새로운 발상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장소에 대한 설명과 함께 왜 그곳이 주목받는지에 대한 분석까지 곁들여놔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공부도 공부지만 내용도 담백해서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중국의 예는 아주 흥미로웠는데 화 궈 식당 한편에서 직접 채소를 재배, 손님의 눈으로 확인시켜줌으로써 건강을 생각하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어디든 뜨는 장소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경제가 어렵다, 불황이다, 외식하고 소비하는 사람이 줄었다고 하지만 결국 고객이 원하는 걸 빠르게 간파하고 그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면 변화하는 시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장소, 뭔가 남다르고 색다른 점이 있어 고객의 지갑을 열수 있는 그런 공간만이 앞으로 21세기 리테일 산업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저자의 말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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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나의 집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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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집은 안식을 주고 휴식을 안겨주는 평화로운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집에서 가장 많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고 더 나아가 가족 간의 갈등으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사람도 많다.

그래서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하면서도 피로 연결된 가족이라는 이유로 외면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어 괴로워하며 서로에게 지옥처럼 되어버린 가족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많은 소설이나 드라마가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경과 매 그리고 진 역시 그런 가족 중 하나지만 이 가족은 여기에다 낯선 타국에서 유색인종으로 살아야만 했다는 핸디캡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진입하기 쉬지 않은 미국의 주류층에 입성한 성공한 가족이기도 한데 이것은 오롯이 진의 능력만으로 당시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을 이겨내고 대학 내 종신교수가 된 케이스이다.

이렇게 직장에서 성공하고 자신만의 특허로 많은 부를 축적한 그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모범적인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집안에서 폭군처럼 군림하고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내를 폭행하면서 풀은 과거가 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며 자란 경은 아버지의 폭행으로부터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더불어 부모 두 사람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는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어 성인이 된 후 자신의 가정을 그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그들과의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이제 물거품이 되기 직전이다.

분명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해 산 주택으로 인해 모든 재정이 파탄 나기 일보 직전이고 이제는 아내 질리언의 말처럼 집을 팔거나 세놓고 부모님의 저택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해 숨이 막힐 즈음 부모님의 집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져 그가 그토록 원했던 그들과의 거리를 넓히는데 실패했다.

이제 서로를 미워하는 그들이 한 집에 모여살게 되면서 악몽은 시작된다.

강도가 침입해 매가 오랫동안 꾸미고 가꿔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그 집을 난장판으로 부셔놓은 걸로 모자라 진과 매를 폭행하고 심지어는 가정부와 매를 잔혹하게 성폭행한 사건은 이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부셔놓게 되는데 늘 그들 위에 폭력으로 군림하던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폭행당하고 굴복했다는 사실은 경에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무엇보다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누구보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매가... 늘 남편에게 순종적인 모습만 보였던 엄마가 남편을 거부하고 반기를 들었을 뿐 아니라 가장 먼저 자신을 추스르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사실 경은 어린 시절 그렇게 잔인하게 폭행당하면서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엄마를 연민함과 동시에 경멸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성인이 된 후 폭행당사자인 아버지 진보다 희생자였던 어머니 매를 더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경의 아내 질리언은 경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전혀 들은 적이 없었기에 남편이 그의 부모를 향한 미움과 적대감에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녀는 비록 경처럼 부유하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자랐기에 파산직전인 상태에서도 부유한 부모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기를 거부할 뿐 아니라 손자를 보여주는 것조차 꺼리고 거리를 두었던 경의 태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들이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할 때조차 유일한 혈육인 남편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기를 꺼리는 경의 태도는 그녀의 눈에 이성적으로도 성숙한 성인으로도 비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서 그저 달아나기만을 바라는 모습은 실망스럽게 느껴져 그들 사이도 위태로워진다.

아내에게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들, 아내와 아들에게 든든한 가장이고 자신의 집안에는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걸 막고자 했던 그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서 경은 스스로를 가뒀던 자신을 놔버린 채 자포자기하며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런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는 질리언은 자신이 사랑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경이 누구도 진심으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벽을 치고 있는 성인의 모습을 한 미성숙한 남자라는 자각을 하면서 그에게 깊은 실망을 하게 되고 경은 어느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부모를 향한 깊은 원망과 분노를 드러내지만 그가 자신 안에 내재된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고 화해의 시간을 갖기도 전에 부모는 그에게 또 한 번 강력한 한방을 먹인다.

그것은 완벽한 한 방이었다.

태풍처럼 휘몰아친 감정의 끝에서야 마주 보는 부자 진과 경

그들은 그저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고 지키고자 한 이방인이자 힘없는 가장이었을 뿐이라는 걸 자각하고서야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고 연민하게 된다.

스릴러이면서도 살인사건이나 큰 사건이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에게 쌓인 불만과 원망이 많은 이 가족이 작은 집에 같이 모여 살게 되면서 그 분노가 언제 어떻게 표출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독자를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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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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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사라진 그녀가 나타났다. 러시안 인형과 함께... 그리고 시작된 파국

브레이크 다운이나 비하인드 도어를 통해 잔인한 살인사건이나 연쇄살인마가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일상에서 늘 주위를 둘러싼 친구나 배우자 혹은 연인처럼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생각해왔던 사람들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공포를 주로 그리고 있는 B.A 팰리스의 신작은 이번에도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나오지 않고 오롯이 연인과 그 연인의 전 애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게임을 소재로 하고 있다.

결혼을 앞둔 핀과 엘런 커플에게 어느 날부터 시작된 이상한 일들... 그것은 마치 12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한 여자 레일라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그녀와 그들만이 아는 흔적만을 남길뿐이다.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져 사라져버린 그때까지 단 한시도 레일라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핀에게 그녀의 행방불명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엘런을 만나 간신히 다시 사랑할 힘을 내었지만 레일라의 등장은 그가 겨우 다시 세울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뿌리째 흔들리게 했다.

오래전의 옛 연인의 등장만으로 이 커플이 뿌리째 흔들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레일라가 사라진 날같이 있었던 사람이 바로 팀이고 그는 잠시나마 그녀의 살해 사건 용의자가 되었던 전적이 있었을 뿐 아니라 옛 연인인 레일라가 바로 지금 현재의 연인인 엘런의 친동생이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한데 두 사람의 결합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도 많지만 무엇보다 엘런 자신이 동생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는 데다 연인인 핀 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의 걱정이 지나치지 않은 것은 핀에게 있어 레일라는 절대로 잊지 못하는 사랑일 뿐만 아니라 그녀가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핀 역시 흔들리고 있다는 걸 그녀가 알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두 사람을 흔들어대는 레일라는 핀에게 메일로 연락만 취하고 자신이라는 증거로 오래전 자매가 가지고 있었던 러시안 인형을 계속해서 보내기만 할 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레일라의 그런 태도에 진짜 그녀가 맞는 건지 아니면 그들을 잘 아는 누군가의 악의인 건지 계속 의심하게 되는 핀은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형 래리와 전 연인이자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었던 루비까지... 주변 모두를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보게 되면서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정신적인 빈사상태가 된다.

차라리 레일라가 모습을 드러냈다면 이 두 사람은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 두 사람의 곁을 맴돌면서 계속 사인만 보낼 뿐 아니라 다시 핀과의 재결합을 원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속절없이 흔들리는 핀.... 그리고 그런 그를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는 엘런

이렇게 뭔가 사건이 벌어질 것 같으면서도 아무런 일은 없는 아슬아슬함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즈음 마침내 레일라가 강력한 요구를 해온다.

엘런을 사라지게 하라는...

이성으로는 그녀의 요구가 말이 안 된다고 저항하면서도 그녀를 만나고 싶고 다시 한번 그녀와의 완벽한 재결합을 꿈꾸는 그에게도 엘런은 어느샌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어있다.

레일라는 진짜 돌아온 걸까? 아니면 범인은 따로 있는 걸까? 핀은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까?

보면서 느끼는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게 얼마나 사람의 정신을 피폐해지게 하는 건지... 사람의 평온은 얼마나 쉽게 무너 질 수 있는 건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사실 범인의 정체나 범행의 방법을 찾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 점에 초점을 맞추는 독자에게는 다소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지만 저자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서서히 변해가는 사람의 심리와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심리 스릴러라는 걸 생각하면 살인사건이 나오거나 뚜렷한 뭔가 행동을 하지 않고도 서서히 사람을 광기로 몰아가는 과정을 잘 표현한 심리 스릴러 다운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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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죽음 1~2 세트 - 전2권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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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서 새 책에 쓸 첫 문장을 떠올린 가브리엘

`누가 날 죽였지?

그가 떠올린 이 첫 문장이 더할 바 없이 마음에 든 가브리엘은 흡족한 마음이 들지만 이내 꽃향기를 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병원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영매를 통해 알게 된 사실. 즉 그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역시 자신의 죽음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집으로 가 쓰려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기 어려워진 가브리엘은 자신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닌 누군가가 독살한 것이라는 걸 깨닫지만 아무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할 뿐 의문을 가지진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눈을 뜨고 맨 먼저 떠올린 문장처럼 과연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직접 찾아보기로 한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할 수도 궁금한 것을 물을 수도 없는 처지라 죽은 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뤼시의 도움을 받아 용의자들을 만나러 다니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를 죽이고 싶어 할 만한 용의자는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그와 잠시 사랑을 나눴다 헤어진 후 그와 다시 재결합하고 싶어 했지만 거절당한 일로 앙심을 품었을지도 모를 전 여자친구와 늘 그의 작품을 쓰레기라 칭하며 강렬한 혐오와 분노를 내뿜었던 비평가 그리고 어렸을 때는 둘 도 없는 사이였지만 커면서 어느샌가 서로 멀어진 걸로 모자라 서로를 못 견뎌하게 된 가브리엘의 동생이자 과학자인 토마

이렇게 세 사람의 용의자가 걸러지지만 좀처럼 범행 동기도 범인의 정체도 밝혀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범인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은 그의 작품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고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나름의 철학과 고찰 그리고 책 속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온갖 잡학 지식을 곁들인 그 유명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등장 등등

사실 그가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나 영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의 팬이라면 다 알 것이다.

이전의 작품에서도 사후 세계를 증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타나토노트나 천사들의 제국 같은 작품 등을 통해서 그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깊은 관심을 알 수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죽음이나 사후세계 혹은 인간의 죽음이란 뭘까에 대한 깊은 철학적 물음을 이미 오래전 죽은 유명인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그만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죽음이란 모두가 생각하듯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이 아닌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바뀜 즉 옷을 바꿔 입듯 육체라는 탈을 바꿔 입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면 죽음에의 공포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데 좀 더 즐겁고도 충실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작가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 듯하다.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아 헤맨다는 설정도 흥미롭지만 범인을 찾는 과정 또한 일반 추리소설과 닮은 듯 다르다.

용의자를 추려내 그들을 직접 만나보고 탐문하듯 수사하는 건 비슷하지만 역시 단순히 범인을 찾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단서들을 마치 나무에 가지가 엮이듯 스토리가 펼쳐져가는 작가 특유의 방식을 펼치고 있어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 가브리엘의 죽음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옅어지게 되고 그가 그러하듯 그의 죽음을 즐기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그의 죽음을 납득하면 그제서야 쓱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의 의외성을 나름대로 납득하게 된다.

추리소설 형식을 쓰고 있지만 추리소설 같은 결말은 보여주지 않는 죽음

베르나르 베르베르 다운 환상과 과학적인 추론 그리고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이 드러나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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