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나의 집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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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말해주듯이 집은 안식을 주고 휴식을 안겨주는 평화로운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집에서 가장 많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고 더 나아가 가족 간의 갈등으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사람도 많다.

그래서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하면서도 피로 연결된 가족이라는 이유로 외면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어 괴로워하며 서로에게 지옥처럼 되어버린 가족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많은 소설이나 드라마가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경과 매 그리고 진 역시 그런 가족 중 하나지만 이 가족은 여기에다 낯선 타국에서 유색인종으로 살아야만 했다는 핸디캡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진입하기 쉬지 않은 미국의 주류층에 입성한 성공한 가족이기도 한데 이것은 오롯이 진의 능력만으로 당시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을 이겨내고 대학 내 종신교수가 된 케이스이다.

이렇게 직장에서 성공하고 자신만의 특허로 많은 부를 축적한 그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모범적인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집안에서 폭군처럼 군림하고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내를 폭행하면서 풀은 과거가 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며 자란 경은 아버지의 폭행으로부터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더불어 부모 두 사람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는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어 성인이 된 후 자신의 가정을 그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그들과의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이제 물거품이 되기 직전이다.

분명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해 산 주택으로 인해 모든 재정이 파탄 나기 일보 직전이고 이제는 아내 질리언의 말처럼 집을 팔거나 세놓고 부모님의 저택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해 숨이 막힐 즈음 부모님의 집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져 그가 그토록 원했던 그들과의 거리를 넓히는데 실패했다.

이제 서로를 미워하는 그들이 한 집에 모여살게 되면서 악몽은 시작된다.

강도가 침입해 매가 오랫동안 꾸미고 가꿔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그 집을 난장판으로 부셔놓은 걸로 모자라 진과 매를 폭행하고 심지어는 가정부와 매를 잔혹하게 성폭행한 사건은 이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부셔놓게 되는데 늘 그들 위에 폭력으로 군림하던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폭행당하고 굴복했다는 사실은 경에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무엇보다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누구보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매가... 늘 남편에게 순종적인 모습만 보였던 엄마가 남편을 거부하고 반기를 들었을 뿐 아니라 가장 먼저 자신을 추스르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사실 경은 어린 시절 그렇게 잔인하게 폭행당하면서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엄마를 연민함과 동시에 경멸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성인이 된 후 폭행당사자인 아버지 진보다 희생자였던 어머니 매를 더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경의 아내 질리언은 경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전혀 들은 적이 없었기에 남편이 그의 부모를 향한 미움과 적대감에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녀는 비록 경처럼 부유하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자랐기에 파산직전인 상태에서도 부유한 부모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기를 거부할 뿐 아니라 손자를 보여주는 것조차 꺼리고 거리를 두었던 경의 태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들이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할 때조차 유일한 혈육인 남편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기를 꺼리는 경의 태도는 그녀의 눈에 이성적으로도 성숙한 성인으로도 비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서 그저 달아나기만을 바라는 모습은 실망스럽게 느껴져 그들 사이도 위태로워진다.

아내에게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들, 아내와 아들에게 든든한 가장이고 자신의 집안에는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걸 막고자 했던 그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서 경은 스스로를 가뒀던 자신을 놔버린 채 자포자기하며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런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는 질리언은 자신이 사랑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경이 누구도 진심으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벽을 치고 있는 성인의 모습을 한 미성숙한 남자라는 자각을 하면서 그에게 깊은 실망을 하게 되고 경은 어느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부모를 향한 깊은 원망과 분노를 드러내지만 그가 자신 안에 내재된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고 화해의 시간을 갖기도 전에 부모는 그에게 또 한 번 강력한 한방을 먹인다.

그것은 완벽한 한 방이었다.

태풍처럼 휘몰아친 감정의 끝에서야 마주 보는 부자 진과 경

그들은 그저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고 지키고자 한 이방인이자 힘없는 가장이었을 뿐이라는 걸 자각하고서야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고 연민하게 된다.

스릴러이면서도 살인사건이나 큰 사건이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에게 쌓인 불만과 원망이 많은 이 가족이 작은 집에 같이 모여 살게 되면서 그 분노가 언제 어떻게 표출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독자를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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