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 싸인 : 별똥별이 떨어질 때
이선희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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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수십 년 만에 혜성이 우리별 지구를 스쳐 지나가는 날이라거나 별똥별이 수없이 떨어지는 날이면 그 모습을 뉴스로 보여준다거나 하면서 그걸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들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위해 천문대를 가거나 높은 산에 오르기도 하는 등 축제 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스릴러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그 혜성이나 별똥별에 뭔가 알지 못하는 생명체가 같이 실려오거나 괴바이러스가 같이 있다 지구로 은밀하게 퍼져나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런 상상력을 소설로 그려낸 것이 바로 이 책 싸인이다.

K-좀비 스릴러 기대작을 표방하는 싸인은 스릴러 장르의 여러 가지 장치와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데다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는 낯선 괴생명체를 등장시켜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사고로 시력을 잃은 박하는 다행히 누군가로부터 안구기증을 받아 각막수술에 성공해 이제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박하가 입원한 병원이 누군가의 고발로 생체실험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면서 여론이 나빠지고 병원이 어수선한 틈을 타 병원의 지하 3층...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도록 엄격히 통제받던 곳에서 보안 요원 홍철은 낯선 생명체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병원이 폐쇄되면서 박하를 비롯해 사람들은 갇히게 되고 누구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이른바 밀실 상태가 된 병원에서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로부터 사람들은 공격을 당하고 무차별적인 살육이 벌어진다.

하지만 무차별적으로 도륙하는 듯 보이는 그 무엇은 사실은 특정의 사람들만 공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사람들을 카리온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보안요원과 함께 탈출구를 찾으면서 숨을 잠시 돌린 듯하지만 이내 또 다른 긴장 상황을 불러온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카리온이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공격하기 시작하는 카리온...그리고 그런 카리온의 공포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 분열하고 내부 배신자까지 나오는 상황이 연속되면서 병원을 탈출하는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고 반목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함께 하는 상황에 묘하게도 박하만은 공격하지 않는 카리온의 모습에서 박하라는 아이가 이 모든 일에 뭔가 히든 키를 가진 존재임을 알 수 있다.

폐쇄된 병원이라는 밀실 상태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을 공격하고 살육하는 괴생명체... 서로 도와 이 위기를 탈출해도 부족한 마당에 뭔가 비밀을 숨긴 채 오히려 괴생명체에게 사람들을 떠미는 것 같은 보안요원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둘씩 괴물의 정체에 대해 밝혀지면서 긴장감을 서서히 높여가는 싸인은 드라마적 요소가 많아 영상으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괴생명체가 우리와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설정만 보면 오래전 영화 맨 인 블랙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그 영화에서의 외계인은 겉모습을 평범한 사람들처럼 하고 같이 생활할 뿐 만 아니라 특별히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선 이 책의 괴생명체와 차이가 있다.

어쩌면 영화 에일리언 속의 기괴하면서도 섬뜩한 외계의 그 무서운 생명체와 더 닮아있다.

계속되는 긴장감이 오히려 몰입을 조금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지만 가독성도 괜찮았고 좀비와 같은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호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괜찮은 선택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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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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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시리즈 중 하나인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 중 2번째 작품인 내가 죽인 소녀가 새롭게 리뉴얼되어 나왔다.

예전의 시리즈는 워낙 텀이 있어서인지 표지가 시리즈 느낌이라기보다 각각의 단권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시리즈의 연속성을 고려해서 비슷한 느낌으로 맞춘듯한데... 둘 다 각각의 매력이 있다.

뭐... 책이 재밌다면 솔직히 표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

그런 점을 본다면 내겐 믿고 보는 시리즈 중 하나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작가인 하라 료가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 우연히 읽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히로인 필립 말로에 매료되어 미스터리 작가로 전향을 했다는 다소 이채로운 그의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인생을 전환시켜준 챈들러의 작풍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걸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왠지 어딘가 권태로운듯한 탐정인 사와자키는 챈들러의 작품인 필립 말로와 비슷한 듯 닮아있다.

속물적인듯하면서도 책임감이 강하고 마초 같은 느낌도 들면서 우직한... 그리고 경찰들의 협박에도 눈 하나 깜작하지 않으면서 제 갈 길을 간다..

일본인 같지 않은 느낌의 이 탐정.. 그래서 묘하게 친근감도 가고 신뢰가 더 갔었다.

작가인 하라 료의 특징이 잘 산 이 작품은 그의 작품들처럼 스타일리시하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탐정 사와자키.. 이번엔 엉뚱하게도 소녀의 유괴범으로 몰린다.

단지 의뢰인의 부탁으로 의뢰인의 집을 방문했을 뿐인데... 기다리던 형사들에게 연행당하고 그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

그에겐 오래전 경찰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엄청난 거금을 챙겨 달아난 동업자의 굴레가 아직도 씌어있었기에 이번에도 경찰들은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지만 유괴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돈을 맡기는데 그들이 우려했던 대로 어처구니없이 그 돈을 강탈당하고 결국 그 소녀는 사체로 발견된다.

그 소녀의 사망 추정 시간이 그가 돈을 빼앗기고 난 전후의 시간이랑 비슷하기에 소녀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는 사와자키

그리고 그런 사와자키에게 뜻밖에도 소녀의 외삼촌이 사건을 의뢰해오면서 드디어 사건의 진상은 만천하에 드러난다

 그의 책은 현재 단 5권만 번역되어 출간된 걸로 아는데.. 그런 작품 수에 비해 그의 다음 작을 기다리는 독자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의 작품 단 1권만 읽어도 그의 스타일리시한 작품세계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데.. 영미 작가가 그리는 하드보일드와 일본 작가인 그가 그리는 하드보일드는 비슷한듯하면서도 어딘지 조금 다르다.

그의 작품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잔인하게 총기들이 등장하고 피를 흩뿌리지 않기에 좀 더 인간적이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든 달까... 그리고 그가 만들어낸 사와자키라는 인물에도 묘한 매력이 있다.

한 마리의 고독한 늑대처럼 늘 혼자 다니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곁을 허락하지 않는 일종의 완벽주의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며 유괴사건과 관계가 없으매도 자신이 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책임을 강하게 느끼고 어쩌면 자신이 그녀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을 하는 부분에서 그라는 캐릭터가 가진 성격이 확연히 드러난다.

하나의 사건에 끝까지 덤벼들어 결국 끝장을 보고야 마는 그의 근성 역시 그에게서 수컷을 향기를 강하게 느끼게 하기에 그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한다.

책 속에 나오는 구절이지만... 돈을 노린 유괴사건의 대부분이 가족이나 가족 주변 즉 지인과 연관된 사건일 확률이 가장 높다는 말이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맞물려 참으로 씁쓸하게 다가온다.

복잡한듯한 사건이었지만 그 사건 속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이어서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은 허무한듯하지만 충분히 납득할 만한 내용이었다.

조만간 그의 세 번째 작품이자 역시 사와자키의 활약을 담은 `안녕 긴 잠이여`가 새롭게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다시 읽어도 역시 좋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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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길을 잃다
엘리자베스 톰슨 지음, 김영옥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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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로맨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아무래도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난 데서 오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말랑말랑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해서 평소보다 더 감수성이 폭발하는 것도 낯선 여행지에서 쉽게 사랑에 빠지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 여행지가 여자들이 로망으로 간직하는 파리라면...?

제인 오스틴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는 여행 가이드 해나는 현재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별다른 불만이 없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자신을 버려둔 채 마음대로 살던 엄마 말라와는 늘 티격태격하는 사이

그런 엄마가 긴급하게 연락을 취해오고 해나는 불길한 예감을 하게 되지만 자신의 인생이 뒤바뀌는 사건이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할머니가 엄마와 자신에게 남긴 집을 정리하던 중 있는지도 몰랐던 증조할머니의 파리 아파트 문서를 발견했으며 그 아파트가 이제 두 사람의 소유라는 말라의 말을 듣고 믿을 수 없어 하는 해나

매사 충동적이며 자유분방하고 감정에 솔직한 엄마 말라는 당장같이 파리의 그 아파트로 가보자고 하지만 언제나 신중하고 계획적인 해나는 선뜻 찬성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파리 아파트의 상속세를 걱정하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해나를 끌고 파리로 가게 된 건 순전히 말라의 추진력 때문

하지만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증조할머니의 아파트의 문을 연 순간 그 집과 사랑에 빠져버리게 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집안에서 발견된 증조할머니 아이비의 다이어리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증조할머니의 연애사를 보게 되었다는 것...

늘 할머니로만 기억했던 증조할머니의 젊은 시절 뜨겁고 아름다웠던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해나는 점점 더 그 집에도 할머니의 사연에도 매료되고 결국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로맨스 소설의 요소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어떤 계기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에게 끌리고 그런 끌림이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리고 평탄하던 연애는 라이벌의 등장 혹은 어떤 갈등 요인이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게 되고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면서 괴로워하다 극적인 화해와 더불어 해피엔딩~

이렇게 보면 너무나 단순한 플루트일 수 있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놨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메마른 가슴에 설렘을 안겨주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을 간절히 바라게 되기도 하는 데 이 작가는 과하지 않은 감정의 표현과 담백한 문체로 시대를 넘어선 두 여자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두 사람에게는 수십 년의 세월 차가 있음에도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지를 몰라서 애태우고 고민하는 모습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달콤한 로맨스에다 극 중에서 너무나 다른 성격 때문에 늘 갈등을 빚는 해나와 말라 모녀의 심리 역시 제대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화해하는 과정까지 큰 무리 없이 이끌고 있다.

로맨스나 모녀 사이의 갈등을 제외하고서도 내용 중에 파리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시기인 1930년대를 아이비의 다이어리를 통해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 데 그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당대의 가장 빛나던 예술가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해 피츠제럴드 등등의 인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걸 보면 당시의 자료나 인물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 듯 보이는 데 작품과 잘 어우러졌을 뿐 아니라 작품을 돋보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예술이 찬란하게 꽃 피던 시기에 급작스럽게 맞은 전쟁 중에 예술가들과 당대의 지성인들은 어떤 고민을 하는지...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연애관은 지금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 지도 흥미롭게 비교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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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맨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양혜진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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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 전 세계가 고통받았던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아직도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많다.

더 무서운 건 앞으로도 코로나19보다 더 세고 변종이 강한 바이러스가 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던 의료기술과 과학기술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우리가 실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바이러스가 수없이 많고 거기에 인류는 얼마나 속수무책인지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이 책 엔드 오브 맨 역시 그런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변해버린 세상을 그린 것과 동시에 우리가 평소 이런저런 상상을 했던 것 중 하나를 구체화해 뼈대에 살을 붙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남녀 갈등이 치열해지고 있는 요즘... 한 번쯤 생각해 봤음 직한 상상 즉 남자가 혹은 여자가 지상에서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하는 우리의 상상을 구체화하고 있는 엔드 오브 맨은 결국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서로 반목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처음 이상을 발견한 건 스코틀랜드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 어맨더였다.

단순 독감 환자처럼 보였던 남자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그녀로 하여금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했고 주변의 응급환자들을 조사하다 이내 이게 단순 독감이 아니라 남자들만 공격하는 팬데믹의 전조라는 걸 깨닫는다.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보고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이 바이러스는 스코틀랜드를 시작으로 런던을 포함해 영국 전역을 넘어 다른 대륙으로 순식간에 전파된다.

각국은 이 바이러스의 정체에 대해 알지도 못해 허둥거리는 사이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어찌해 볼 틈은 없었다.

우리가 처음 코로나 상황을 잘 못 판단한 것처럼 한순간의 판단 착오는 이제 걷잡을 수 없을 사태로 번지는 데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남자들이 죽어 나가다 보니 사회 전반을 유지하는 인프라가 올 스톱 된 것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릴 사령탑도 부재하고 공공시설을 유지 보수도 불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대륙 간 이동도 불가능해져서 모든 것이 멈춘 것이나 다름없다. 이젠 인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 전반은 남자들에게 치명적인 이 바이러스로 인해 사랑하는 아들이 남편이 형제가 죽는 걸 손놓고 바라만 봐야 했던 여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으로 이뤄졌다면 중반 이후부터 즉,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의 대책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한다.

이제 인류의 반격이 시작된 것

누구보다 먼저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했던 어맨더는 어디서 이 바이러스가 시작된 건지 그 흔적을 쫓아 마침내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고 그런 그녀의 노력은 바이러스의 실체를 파악해 백신을 발견하는 데 이르게 된다.

이렇게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가족이 붕괴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후 고통받는 여자들의 심경과 이 모든 험난한 과정을 이겨내가는 사람들의 노력이 마침내 무서운 바이러스로부터 벗어나가는 과정을 심도 있게 그린 것만으로도 소설적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남자들에게만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는 설정을 통해 만약 지구상에 남자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여자들이 우세인 세상이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재밌는 상상을 더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하게 이뤄져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쳐 남자든 여자든 어떤 분야에 있어 성비의 완벽한 왜곡이 만약의 사태일 때 어떤 불안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극단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는데... 어쩌면 작가가 하고자 했던 말의 핵심은 이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더해 만약 여자들이 세상의 우위에 있고 중요사항을 결정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여자가 된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 될까 하는 한 번쯤 생각해 봤음 직한 상상을 세심하면서도 극단적으로 풀어낸 게 바로 이 책 엔드 오브 맨이다.

스릴러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였고 풀어가는 과정 역시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세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더 공감이 갔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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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 - 오사카 게이키치 미스터리 소설선
오사카 게이키치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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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어수선하면 이런저런 괴담이 유행하기 마련이다.

괴담이란 건 대체로 사람들의 불안함과 공포를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고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면서 조금씩 살을 더해 나중에는 원래의 이야기가 뭐였었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기 마련인데 그 괴담의 뿌리를 더듬어 가다 보면 한두 건의 사건에다 이런저런 사연이 보태지고 범인이 오리무중인 상태일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손안에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요즘 시대와 괴담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도시괴담이라는 형태로 유행되는 걸 보면 지금보다 훨씬 옛날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각에서 납득하기 쉽지 않거나 다소 괴이하다 생각되는 사건들이 괴담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흉흉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 침입자에서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빨리 범인을 특정 지을 수 없었다면 괴담이나 흉흉한 소문이 되어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만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건의 괴이성이나 수수께끼적인 면모를 단숨에 파악해 조기 해결해 가는 과정이 허술하지 않을 뿐 아니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근거까지 보여주면서 독자를 매료시키고 있다.

놀라운 건 이 작품이 쓰인 연대가 1930년대였다는 사실이다.

작품들을 읽어보면 지금 읽어도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만큼 세련되었을 뿐 아니라 용의자를 특정 지을 때 내세운 근거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는 것이다. 요즘 추리소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 책에는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데 표제작으로 한 침입자는 일종의 밀실 상태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화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적한 별장으로 간 화가 부부와 화가의 친구는 이층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뭔가에 뒤통수를 맞고 죽은 남편을 아내가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은 화가는 그림을 그리던 도중이었는데 문제는 그가 그린 그림이 지금 있는 동쪽의 방에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그림이었다는 점... 이런 걸로 인해 화가는 아내가 있던 남쪽방에서 피살된 후 동쪽방으로 옮겨진 거라는 걸 추론할 수 있었고 당연하지만 아내는 중요 용의자가 된다.

더군다나 아내와 화가의 친구는 불륜 관계가 의심된다는 점에서 더욱 두 사람의 혐의는 짙어갈 뿐...

추운 밤이 걷히고에서는 학교 선생님이자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는 남편이 부재 중일 때 늘 겨울이면 이곳에 묵으면서 스키를 즐기던 아내의 사촌과 아내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고 아이의 행방이 묘연해진 사건 이야기다.

죽은 사람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아직 어린아이의 실종... 창밖에는 누군가의 발자국이 남아있고 그 발자국을 따라갔지만 당연하게도 흔적이 사라져 모두가 당황한 상태에서 누군가가 사람들의 착각을 일깨워주면서 미스터리했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

세 명의 미치광이에서는 요즘도 흔히 사용하는 트릭이 나오고 긴자의 유령 역시 모호했던 사건의 실체를 하나의 발상을 전환시켜 해결한다.

그리고 가장 맨 먼저 소개된 탄굴귀는 가장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괴담에 어울리는 사건이 아닐까 싶다.

갑자기 무너진 탄광 그리고 그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한 명의 광부...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틈을 비집고 광부가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탄굴의 입구를 봉쇄해버린 기사와 감독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가장 혐의가 짙은 죽은 광부의 가족은 알리바이가 확실하고 죽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일조한 사람들이라고 봤을 때 사건은 마치 죽은 자가 돌아와 복수를 한 것 같은 양상을 보여 남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탄굴의 입구는 완벽하게 막혀있고 빠져나올 구멍이 없는 밀실 상태... 만약 범인을 특정 짓지 못했다면 그야말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할 괴담이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작가는 도저히 사람의 범죄가 아닌 것 같은 상황에서 논리와 정확한 근거로 사건을 해결해 보인다.

나오는 작품들 대부분이 미스터리하고 다소 괴이할 수 있는 것을 본격 미스터리답게 트릭을 찾아내고 증명해 보이는 데 과연 정통 미스터리를 계승했다고 평할 만하다.

잘 짜여진 트릭의 허점을 논리로 해결하는...요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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