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호텔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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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코인을 투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루나 코인 사태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투자자에게 10%의 수익을 보장하면서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형태부터 사기의 전조가 보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사기 수법이 이른바 폰지 사기라는 건데 사기 수법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면서도 한 번씩 사기 사건에 말려들면 그 피해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에서 유의를 해야 할 부분이다.

이 책 글래스 호텔은 2008년 전 세계를 뒤흔든 금융 사기 사건이자 역사상 최대의 폰지 사기 사건이었던 버나드 메이도프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제목인 글래스 호텔이 의미하는 것처럼 반짝거림으로 눈속임을 할 수 있지만 유리로 만들어진 호텔이 얼마나 깨지기 쉽고 허상에 가까운지를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겠다.

소설 글래스 호텔에서는 주인공의 횡보가 뚜렷하지 않다.

아니 모든 시점을 주인공의 시점으로 두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겠다.

어쩌면 전 세계를 휩쓴 폰지 사기 사건에 어떻게 이 남매 즉 폴과 빈센트가 엮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삶 속에 스며든 이후의 삶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를 통해 폰지 사기 사건의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외부에서의 시선을 대표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듯하다.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배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밴쿠버의 외딴섬에 있는 호텔 카이에트로 흘러 들어온 폴과 빈센트는 이 외딴곳에서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을 맞게 된다.

폴은 로비의 유리창에 자살을 권유하는 문장 `깨진 유리 조각을 삼켜라` 라는 걸 에칭 펜으로 쓴 혐의를 받고 쫓겨나면서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길 즉 작곡가의 삶을 살게 되지만 빈센트는 바텐더로 살다 호텔의 소유자이자 거대 투자회사의 ceo인 조너선 알카이티스의 새로운 아내가 되어 그의 곁에서 트로피 와이프로서의 화려한 삶을 살아간다.

이 부분만 보면 폴은 왠지 패배자가 되어 쫓겨난 것 같지만 긴 안목으로 볼 땐 이때 쫓겨난 것이 그로 하여금 오래전부터의 꿈이었던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이 되었고 늘 자유롭게 살기를 갈망했고 그전까지는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았던 빈센트는 그때 만난 조너선 알카이티스의 엄청난 부의 맛에 길들여져 버려 끝내는 자신의 엄마가 절대로 그런 삶을 살지 말라고 했던 누군가에게 종속된 삶을 살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조너선이라는 인물은 겉으로 봐선 누군가를 철저히 속이고 남의 걸 빼앗은 돈으로 살아갈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친절하고 유능하며 자신에게 철저할 뿐 아니라 일도 열심히 하는 전형적인 성공형 인물처럼 보인다.

일례로 오래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나이차가 큰 형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투자자에 비해 적은 돈을 투자한 형의 옛 지인에게 친절을 베풀어 남들보다 높은 이자를 챙겨주며 바쁜 시간 중에도 시간을 내서 맞이하는 모습을 보일뿐 아니라 최후의 순간에도 그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모든 것이 만천하에 밝혀지고 자신들이 한 짓에 대한 죗값을 치러야 할 순간에 자신과 함께해왔던 팀의 죄를 자신이 모두 짊어지고 갈려는 모습을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서 목숨과도 같은 돈을 투자라는 명목으로 사기를 친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그토록 많은 사람을 현혹시킨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저택에 살면서 온갖 사치를 다 부리지만 내부를 보면 공허한 삶을 살았던 조너선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몰락을 예견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보면 가장 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파국이 왔을 때 대처하는 자세도 달랐던 걸까?

그에 반해 같이 사기에 가담했고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자각을 하고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그의 팀들은 자신들이 세운 이 회사가 영원할 줄 알았던 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자 속절없이 무너져내린다.

누군가는 모든 걸 버리고 달아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부고발을 통해 자신의 죄를 경감 받고자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신들로 인해 피해를 입고 나락으로 떨어진 투자자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30살 이상이나 많은 조너선의 곁에서 그가 주는 사치와 부에 젖었던 빈센트는 사법적인 형벌은 피했지만 과연 이 모든 일에서 무죄라 할 수 있을까?

자신이 누린 온갖 사치가 다른 사람의 눈물로 만들어진 걸 진정 몰랐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모든 것이 무너진 후 십수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읽으면서 느낀 건 지나치게 달콤하게 수익을 약속하는 것에는 뭔가 수상한 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세계를 뒤흔든 이 사기극에서 무죄인 사람은 없을 듯...

스릴러라고 생각하고 본 책이었지만 스릴러라기 보다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사기에 휘말리는지... 그리고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을 속이고 모럴해저드에 빠져들어가는지에 대한 전말을 그린 드라마였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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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A 살인사건
이누즈카 리히토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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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발전하고 개방될수록 범죄에 노출되는 아이들의 연령은 낮아져만 가지만 법은 현실을 따라 잡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지금의 십 대는 옛날의 십 대와 발육상태도 다르지만 정서적인 면에서도 천지차이... 당연히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나이 역시 갈수록 어려질 뿐 아니라 범죄의 잔인성이나 치밀함은 성인 범죄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법에서 정하는 형벌은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오래된 법에서 명시하는 연령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문제는 영악해진 아이들이 자신들이 어떤 짓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법으로 보호받는 이른바 촉법소년이라는 걸 이용한다는 점인데 일본에서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런 딜레마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 책 소년 A 살인사건은 그런 촉법소년의 이야기와 과연 법이 이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보호하는 게 정당한 일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터넷의 은밀한 통로인 다크 웹에 20년 전 일본을 떠들썩하게 한 여아 살해 사건 당시를 찍은 일명 스너프 필름이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다.

경시청에서 재빨리 문제의 필름을 손에 넣지만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한동안 잊혔던 그때의 사건 즉 어린 소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걸로 모자라 안구를 적출해 그 부모에게 보내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고쿠분지 여아 살해 사건이자 일명 소년 A 살인사건으로 불렸던 사건이 20년 만에 다시 화제에 오르는 계기가 된다.

이 사건이 파란을 일으킨 건 사건이 잔인한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범인이 당시 14세의 중학생이었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해자 소년은 소년법에 의해 법으로 보호를 받아 이름도 신상도 어느 것 하나 공개되지 않은 채 제대로 된 처벌 없이 의료 소년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4년을 지낸 후 사회에 복귀해 살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공분을 사게 되고 문제의 스너프 필름은 소년 A 가 돈 때문에 경매에 부친 거라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가고 있었다.

경찰 역시 스너프 필름이 유출된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경찰은 이 필름이 유출된 과정에는 당시 모든 필름의 원본을 증거물로 압수했지만 소년 A가 몰래 복사본을 가지고 있다 돈이 필요해 경매에 올렸거나 아니면 그 필름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경찰 측의 누군가가 몰래 복사해뒀을 것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조사에 들어가 용의자를 추출한다.

하지만 경찰의 조사와는 별개는 인터넷상에는 일명 소년 A로 불리는 당시의 소년이 범인이라는 게 기정사실처럼 굳어져 신상정보를 밝혀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결국엔 그의 정체가 밝혀지게 된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이미 그의 모든 것이 공개되면서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리고 그의 죄를 앞장서서 주장했던 인터넷 자경단 앞으로 협박 문과 더불어 목이 잘린 고양이의 머리가 배달되는 등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며 협박을 해오는 존재가 등장한다.

이들의 폭로로 모든 걸 잃은 소년 A의 반격일까? 아니면 또 다른 범죄자의 등장일까?

이야기는 잔인한 범죄로 한 가족을 붕괴시킨 범인이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을 뿐 아니라 몇 년간의 보호 조치 후 새로운 신분으로 아무런 제제 없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정당한 가 하는 문제 제기와 더불어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사적인 제재에 대한 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다.

정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익명성 뒤에 숨어 여론몰이를 하고 누군가의 신상을 까발리는 데 있어 아무런 죄책감이나 거리낌이 없는 요즘 세태에 대한 비판을 촉법소년 문제와 엮어 독자로 하여금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 작가의 참신한 주제 선정도 놀랍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토리텔링 역시 탁월해 그가 왜 이 작품으로 데뷔와 동시에 요코미조 세이지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한 작가라 생각되고 사회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또한 단순한 흑백논리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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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와 헤이즐이 절대 사귀지 않는 법
크리스티나 로렌 지음, 김진아 옮김 / 파피펍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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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사이엔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는 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는 문제 중 하나다.

나 같은 경우는 절대로 친구 사이가 될 수 없다는 쪽인데 두 사람 중 누군가는 감정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둘 사이엔 언제든지 성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 조쉬와 헤이즐이 절대로 사귀지 않는 법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는 친구 사이 즉 서로에게 온갖 꼴을 다 보인 관계였지만 어느 한순간에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헤이즐은 감정에 솔직하고 다소 엉뚱하면서 에너지가 넘치는 발랄한 여자다.

그런 헤이즐의 절친인 에밀리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 오래전 대학 때 자신이 첫눈에 빠졌던 조쉬와 10년 만에 재회하게 된다.

하지만 아뿔싸!!

조쉬가 에밀리의 오빠였다니...

자신의 온갖 흑역사... 술을 먹고 조쉬에게 구토를 했던 일을 비롯해 조쉬의 룸메이트랑 거사를 치르는 장면을 들켜버린 일 등등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고 어디론가 숨고 싶은 일을 전부 다 알고 있는 남자가 바로 조쉬였다.

더군다나 그는 대학생 때부터 완벽하게 보이던 모습이 이제는 성숙미를 더해 섹시함까지 갖춘 그야말로 꿈같은 남자가 되어 헤이즐 앞에 나타난 것이다.

언제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헤이즐이지만 남자들은 그런 헤이즐의 겉모습만 보고 다가왔다 이내 떠나가며 상처를 준 경험뿐이어서 어느새 연애는 쉽게 해도 사랑에는 소극적으로 변해버렸고 자신이 조쉬와 오랫동안 함께 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사귀는 사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게 그런 결심만으로 된다면 세상의 연애 중 절반 이상은 쉬워질 터... 언제나 자상하면서 친절하고 사려 깊은 조쉬의 모습에 헤이즐은 점점 빠져들게 된다.

조쉬 역시 2년을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쳤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충격에 의기소침해 있는 자신을 데리고 나가 기분전환을 시켜주고 소개팅까지 주선해 주는 헤이즐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엉뚱하고 술을 먹으면 귀여운 사고를 치기 일쑤인 말썽꾸러기 헤이즐이 귀엽게 보일 뿐 만 아니라 씩씩하고 유쾌한 겉모습 뒤에 남자들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쓰는 여린 마음의 그녀가 신경 쓰이고 자신도 모르는 새 그녀의 섹시함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보면 볼수록 여러 가지 매력을 발산하는 그녀가 눈에 들어온 후로 더 이상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두 사람의 삽질은 한동안 계속된다.

이 두 사람의 연애는 과연 어떻게 될까?

친구사이로만 알던 남녀가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이성으로 자각하다 한순간에 사고를 치지만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고민하던 중 별 볼일 없던 연애도 한순간에 불타오르게 할 수 있는 연애의 최강 치트키인 라이벌이 등장해 갈등을 고조시키다 서로의 진짜 감정을 확인한다는 로맨스 소설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그럼에도 재미있고 섹시했다.

아무래도 어른들의 로맨스다 보니 성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는데 그런 부분까지 적당히 야하고 적당히 달콤해서 오랜만에 만족스럽게 본 로맨스 소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문장도 감각적이며 대화체 위주로 되어 있어 톡톡 튀는 듯한 젊은 감성의 이 로맨스 소설은 일단 조쉬가 한국계라는 점도 더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외국인이 쓴 로맨스 소설에서 한국 남자가 최강의 섹시하고 완벽한 남자 주인공이 되는 날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세계에서 우리의 위상이 높아진 걸 이런 데서 느낄 줄이야...

엉뚱녀 헤이즐과 완벽한 매력남 조쉬의 엉뚱하지만 달콤한 로맨스...

달달하고 로맨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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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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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아쉬움, 미련, 후회와 같이 뭔가 못다 한 것에 대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만약 그 마지막의 대상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알고 있고 단 한 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가장 하고 싶을까

생각해 보니 그런 순간이면 사랑한다 고맙다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다.

어쩌면 사고로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설정부터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지만 살아가면서 한 번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단단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도 어쩔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지 않을까?

이 책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승과 저승의 끝인 기차역에서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사람과 남은 사람이 만나 못다 한 말이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설정이고 책 속에서는 4편의 죽음이 등장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곧 결혼을 앞둔 오랜 연인의 이야기이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쉽게 사람과 친해지지 못해 외톨이 생활을 하거나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듯이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자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은 여자 역시 그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와 단둘이 사는 넉넉지 않은 형편의 그녀를 아이들은 따돌리거나 놀리기 예사였고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잃고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었던 그녀는 우연히 알게 된 기차역 이야기에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이라도 그 사람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열망에 열차에 오른 후 삶의 희망을 찾는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자신이 죽으려고 한 날 우연히 손을 내밀어 준 그녀의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보지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채 열차 사고로 그녀를 잃어버린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사고가 났던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의 아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실린 두 번째 에피소드 아버지에게였다.

아버지의 옷에 묻은 기름이나 허름한 옷차림이 늘 부끄러웠던 아들은 그런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에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종합상사에 들어갔지만 현실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사수에게 밉보이는 바람에 계속 지적을 당하고 사소한 잘못에 비웃음을 받으며 몇 개월을 보내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새 자존감은 땅에 떨어지고 결국은 회사를 뛰쳐나오지만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도 사람과의 교류가 쉽지 않아 그곳마저도 때려치운 채 근근이 버티던 중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고향집에서 들은 아버지에 대한 평가는 그가 생각했던 거랑 완전히 달랐다.

언제나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와서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계셨을 뿐 아니라 주변에서 아버지의 도움에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자신이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깨달은 후 남자는 기차를 타 아버지를 만날 단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되고 그 만남에서 자신이 그토록 외면했던 아버지가 자신이 회사를 그만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다시 일어설 거라는 걸 믿고 계셨다는 사실에 죄송한 마음과 더불어 다시 한번 더 도전해 볼 용기를 얻게 된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남은 사람의 슬픔과 후회의 감정에 공감하고 위로와 위안을 주고 있다.

설정 자체만 보면 진부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고 가슴 아픈 사연을 보다 보면 그 사람들의 사연에 공감이 가고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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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라의 비밀 약방
사라 페너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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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여자들에게만 은밀하게 건네지는 독약 가게가 있었고 오직 여자들에게만 그 약방의 문이 열린다

단 한 줄의 카피로 시선을 사로잡고 궁금증을 폭발시킨 책이었다.

원래 비밀이란 게 그렇다.

은밀하면 할수록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 수록 비밀의 유지가 더 쉬운데 카피를 읽으면서 그런 의문이 들었다.

비밀리에 여자들에게만 독약을 파는 가게는 과연 그 비밀이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었을까?

18세기의 이야기라고 해도 충분히 독자들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데 작가는 현대 런던과 교차하는 보험까지 들었다.

어떤 이유로든 남자를 죽이고 싶어 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단순히 오래전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의미하는 지도 모르겠다.

결혼 10주년을 기념하는 런던 여행을 불과 며칠 앞두고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캐롤라인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배신감과 절망감을 안고 혼자 런던으로 날아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으로 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템스강 진흙 속 뒤지기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때 발견한 작은 곰이 그려진 하늘색 약병은 캐롤라인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사실 현재의 그녀는 매일매일 그저 그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오래전 그녀는 호기심이 많았고 역사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역사 학도였었기에 이 오래된 약병은 그녀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여기에다 약간의 상상력과 검색을 통해 200년 전 약제사 살인사건을 발견하게 되고 그 흔적을 쫓으면서 오래전 자신의 모습을 점점 찾아가는 캐롤라인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듯이 캐롤라인이 발견한 약병은 대를 이은 약제사이자 여자들 사이에 은밀하게 독약을 조제해 주는 일을 하는 넬라의 것이었고 이렇게 18세기 넬라의 마지막 의뢰와 캐롤라인이 연결된다.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약방의 가벽 뒤 비밀공간에서 [ 2월 4일 새벽, 주인마님의 남편, 아침식사]라고만 적혀있는 쪽지에서 의뢰한 대로 독약을 제조하면서도 꺼림직함을 느끼는 넬라에게서 약을 받으러 온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어린 소녀 엘리자였다. 어쩌면 모든 일이 엉기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 일 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약제사였던 그녀가 왜 여자들의 은밀한 주문대로 특별한 독약을 처방해 여자들의 살인을 도와주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은 오로지 남자들만 죽이는 독약을 제조하는 그녀의 행동으로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신분이 높은 여자든 밑바닥의 하녀든 심지어는 어린 여자아이까지 남자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남편이 눈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손을 뻗어도 참아야만 하고 때리면 그저 맞을 수밖에 없는 여자들이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그 상대인 남자가 죽어야만 가능했기에 넬라의 존재가치는 높을 수밖에 없었고 이토록 허술해 보이는 거래방법에도 불구하고 그 비밀이 오랫동안 지켜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여자들만의 비밀 공유와 연대감은 생각보다 튼튼했을 뿐 아니라 넬라는 비밀이 발각될 순간에도 놓지 않을 만큼 책임감이 강했고 그건 어린 엘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두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 은밀하게 이뤄진 복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넬라는 어느 순간부터 내내 후회하는 삶을 산다.

그토록 원하던 복수에 성공하지만 행복하지도 않고 슬픔이 사라지지도 않았을 뿐 만 아니라 자신이 한 짓에 대한 죄책감을 내내 짊어지고 살아야 했기에 웃을 수도 행복할 수도 없었던 넬라의 모습은 남자들을 죽이기 위해 거침없이 독약을 제조하는 악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분명 남자들의 허를 찌르고 독약을 이용해 복수에 성공하는 통쾌한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던 내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지만 작은 단서 하나를 쫓아 오래전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했다.

생각했던 거랑은 달랐지만 충분히 매력적으로 어필할 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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