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매미 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7
하무로 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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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정한 무사의 길이란 무엇일까?
주군을 위해 죽고 사는 것만이 진정한 무사인 걸까?
무사이면서 작은 실수로 친우를 다치게 하고 그 징계의 의미로 할복이 예정되어 있지만 군 부교일 적에 올바른 행정과 처사로 농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던 도다 슈코쿠공을 감시하는 역을 맡게 된 쇼자부로
가로의 명이었기에 거절할 수도 없어 감시자와 감시받는 사람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
하지만 처음부터 도다의 인품에 깊은 호의를 가졌던 쇼자부로는 자신의 역할이 괴롭기만 하고 그런
쇼자부로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리는 도다와 그 식구들의 배려에 더욱 맘이 쓰인다.
할복이 예정된 도다가 혹시 도주할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이곳에 와있는 걸로 알고 있는 쇼자부로의 진짜 임무는 사실 전대 가문의 가보를 편찬하는 소임을 맡고 있는 도다 옆에서 그가 기록하는 것 중 특히 자신이 할복을 하게 된 사건의 기록을 어떻게 하는지를 눈여겨보다 가주에게 은밀히 알려야 하는 것인데 자신이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도다가 감히 자신이 모시는 주군의 측실과 밀통이라는 건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직접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그날 사건의 진실은 도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누군가를 대신해 명분이 될 희생양이 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의 구명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도다
오히려 마을에 흉년이 들어 농민들 사이에 동요가 심하고 이런 농민들의 처지를 이용해 헐값으로 땅을 빼앗는 외지인까지 등장해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마을 분위기에 더 신경을 쓴다.
무사로서 자신의 일에만 정진하던 쇼자부로 역시 이곳 마을에 살면서 농민들의 처지를 보고 들으면서 마을 사람들을 돕고 그들을 위해 일해야 할 관리와 무사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전횡을 일삼는 걸 보고 자신이 걸어갈 길이라고 믿었던 무사의 길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농민들의 눈에 비친 무사는 주군과 주군이 이끄는 마을 번들을 위해 그곳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이미지가 아닌 그저 칼을 차고 다니면서 곡식을 축내며 거드름만 피우는 게으르고 못된 족속일 뿐이라는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
그래서 이 모든 혼란과 뒤숭숭한 분위기에도 굳게 자신을 길을 걷는 도다 같은 무사가 쓸데없는 정쟁에 희생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쇼자부로는 그를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도다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
주군이 믿어주지 않는 무사란 이미 무사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생각하는 도다이기에 자신의 구명을 위한 변명에는 뜻이 없었던 것이고 자신이 진정으로 믿고 따랐던 유일한 주군이었기에 그가 끝끝내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것에 이미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였다는 걸 깨닫게 된 쇼자부로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가족을 위해 살아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내려놓을 수 없다.
이런 때 세금 때문에 농민들의 동요가 커지고 결국 마을관리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조용했던 마을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감시하는 역할로 왔다가 서서히 감시대상인 도다의 인품에 반하고 그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곧은 의지를 보면서 진정한 무사로서 거듭나는 쇼자부로
가로의 원대로 그가 가진 걸 주고 가보의 내용을 조금만 바꾸기만 해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흔들림 없이 모든 것을 진실대로 아는 대로 쓰고자 하는 도다는 어떤 위협과 불의 앞에도 당당하고 그런 그의 태도를 보고 자란 아들 역시 어린 소년이지만 이미 무사였다.
목숨을 바쳐 진정한 무사란 무엇인지...무사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를 모두에게 보여준 도다의 가르침은 슬프지만 멋있기도 하다.
도다가 쓰던 저녁매미 일기처럼 하루를 살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무사의 길이 아닐지...
전체적으로 고즈넉하고 마치 정물화같이 잔잔한듯하지만 그 속에서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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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미나토 가나에 지음, 현정수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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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보고서 자신이 한쪽 날개가 되어 그 친구가 펄펄 날았으면 좋겠다는 초등학생의 글이 신문에 실리고 그 글로 인해 발족하게 된 `클라라의 날개`
처음은 분명 아이들의 아름다운 우정으로부터 출발해 선의에 의한 시작이었지만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입소문을 타면서 서서히 그 선의가 변질되기 시작하는 과정을 그린 `유토피아`는 특히 여자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갈등 심리나 시기심, 질투 등을 잘 표현해내는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이다.
대부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가진 친구나 이웃을 질투하는 악의적인 마음을 표현했다면 이 책에선 선의로 시작했지만 그 선의가 자라 누군가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서로가 가진 생각이나 가치관의 차이가 결국은 서로를 향한 미움과 원망으로 얼마나 쉽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두 초등학생의 이쁜 마음과 글을 모티브로 만든 `클라라의 날개`가 뜻하지 않게 인기를 끌고 주목을 받으면서 잡지에 인터뷰가 실리게 되지만 자신의 도예작품에 클라라의 날개라는 이름을 달고 상품을 팔아 그 돈으로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을 위한 모금을 하는 스미레와 휠체어를 타는 딸 자체가 이 모임에 상징처럼 되어버린 나나코와는 달리 정작 이 모임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지만 언론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고 점차 설자리를 잃어버린 딸 때문에 불만이 쌓이는 미쓰키
이렇게 처음의 결속과는 달리 점차 서로에게서 불만이 생기고 균열이 생길 즈음 평소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한편 이 모임의 주축 멤버이자 자신의 작품에다 날개 스트랩을 붙이고 `클라라의 날개`라고 이름 붙여 팔고 있던 스미레는 원래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닌 도쿄에서 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마을의 정경에 반해 자신의 작품으로 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는 거창한 이유를 가지고 입성한 케이스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평소 대단히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은 클라라의 날개가 관심을 끌기 전에는 작품 하나 팔아 본 적 없었을 뿐 아니라 학교 때 작품으로 인정받기는커녕 존재감조차 크지 않았던 동창이 도예가로 이름을 날리고 모두의 관심과 각광을 받는데서 오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자신에게 관심이 쏠리게 한 이 모임이 중요했고 어느새 모임의 취지보다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데 모임을 활용하게 된 스미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추문이 퍼지는 걸 결사적으로 막고자 한다.
미쓰카 역시 스미레와 마찬가지로 이 마을 사람이 아닌 외부에서 이사 온 아웃사이더로 늘 자신과 딸은 이런 촌구석에 살아서는 안되고 언젠가는 자신의 딸의 재능을 빛나게 해줄 도쿄로 입성하는 게 당연시되는... 그래서 늘 자신들은 이 마을 사람들보다 한수 위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스미레도 역시 자신이 그들보다 한수 위라는 마음으로 늘 마을 사람들을 조금 얕잡아 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간과한 건 자신들의 속마음을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하고 혼자서만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하지만 원래 사람들이란 아주 사소한 말이나 행동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오히려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온 두 사람은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었기에 더욱 쉽게 노출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이 선의를 가지고 한 행동에도 색안경을 끼고 볼 뿐 아니라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뭔가 실수나 잘못된 게 없나 불을 켜고 살펴본 데에는 이런 속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이 책에선 얼마나 쉽게 처음의 뜻을 바꿔버리고 초심을 잃기 쉬운지... 선의로 시작해도 그 끝이 반드시 선의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확실히 여자들의 마음을 깊이 간파한 미나토 가나에의 글은 설득력이 있었다.
역시 멀리서 보기엔 평화롭고 아름다운 유토피아 같은 곳도 들여다보면 우리 사는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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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는 밤에만 사냥한다 미아&뭉크 시리즈
사무엘 비외르크 지음, 이은정 옮김 / 황소자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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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벌거벗겨진 채 깃털 위에 눕혀지고 입에는 백합꽃이 꽂혀있으며 이상한 오각형 모양으로 꺾인 모습으로 발견된 소녀... 완벽한 제물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충격적인 모습으로 범죄를 드러내고 시작하는 `올빼미는 밤에만 사냥한다`는 `미아& 뭉크` 두 콤비 시리즈의 두번째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미아는 스스로를 죽이고자 늘 고민하는 심각한 병적 우울감을 가진 여자이기도 하고 쌍둥이 자매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 약물에의 유혹을 견디고 있지만 남과 다른 탁월한 영감을 가진 우수한 형사이기도 하다.
죽은 소녀의 모습을 모자마자 누군가가 의식에 사용한 것 같다고 느낀 홀리 뭉크 형사는 미아 크뤼거를 소환하고 둘은 먼저 소녀의 신원을 파악한다.
그녀의 이름은 카밀라 그린이며 부모 없이 떠돌다 보육원에서 생활했다던 그녀는 사라지기 전의 모습과 달리 형편없이 여위어 있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위에선 동물 사료가 발견된다.
이에 그녀가 실종 이후 누군가에 의해 갇혀 가축사료를 먹고 사육되었다고 짐작하는 미아
그녀의 의심을 입증하듯 동료 형사의 옛 친구이자 블랙 해커로 활동하던 친구로부터 보내온 영상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게 된다.
마치 새장 같은 곳에서 바퀴를 돌리는 햄스터처럼 무릎을 구부리고 바퀴를 돌려먹을 것과 전기를 구하는 카밀라의 모습은 인간 애완동물의 모습과 닮아있었고 그녀가 왜 그토록 여위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줬다.그녀는 왜 이런 모습으로 갇혀있었던걸까?
조사를 해나가면서 시신 밑에 있던 깃털이 올빼미의 것이라는 걸 알게 되고 자연사박물관에서 도난 사건이 있었음을 발견해 낸 조사팀
이럴 때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수하는 사람은 나타나기 마련이고 자신이 그녀를 죽였다고 스스로 자수해 온 남자는 죽은 카밀라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개와 고양이 사진을 가지고 있었지만 약간의 질문으로 그가 단순히 현장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은 사람임을 알게 된 미아는 사진이 찍힌 곳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왠지 모를 기분 나쁜 분위기를 느낀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채 살아가는 보육원 아이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도 누구 하나 제대로 찾지 않을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이용해 종교적인 이유로 학대를 일삼는 어른들
이렇게 이 책에는 전반적으로 어두운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듯하지만 북유럽 스릴러 특유의 서늘함과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지 못한 게 아쉽게 느껴진다.
어딘지 비밀스럽고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면서 시작했던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처음의 비밀스러움은 사라지고 평범해짐과 동시에 느슨해지면서 특유의 분위기를 못 살리다 너무나 쉽고도 갑작스럽게 드러난 범인의 정체와 결말은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전편에서의 미아와 뭉크 콤비의 활약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선 뭉크는 별다른 활약도 없는 그저 뚱보 형사에 걱정 많은 남자의 모습일 뿐이었고 미아 역시 자책하거나 술에 취한 채 비틀거리는 모습이 많아 그녀가 탁월한 형사라는 게 책속의 많은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확 와 닿지 않았달까
다만 알 수 있었던 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 모두는 대부분 행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누구와도 자신의 외로움을 이야기하지 못한 채 긴 밤에 홀로 깨어있다는 점이다.
밤에도 잠 못 이루고 술에 취하거나 약에 취해서야 겨우 잠들 수 있는 미아도 그렇지만 오래전에 헤어진 아내를 못 잊고 그 주변을 맴돌며 혼자 생활하는 뭉크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모두가 어딘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현실을 유지하고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여기 수사팀은 팀워크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각자가 떠도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책이 재미가 없었냐고 묻는다면 또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다. 단지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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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먹는 나무
프랜시스 하딩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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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하고 그저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주고 집안을 꾸미는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빅토리아 시대에는 자신의 영리함을 내보이면 미친 여자 취급을 받거나 마녀 취급을 받기 일쑤였지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보통 사람의 상식을 깨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 책에도 그런 여자들이 나온다.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앞장서서 사건을 해결한 소녀 페이스가 그렇고 여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원하는 바를 냉정하게 계산해 쟁취해내는 페이스의 엄마가 그랬으며 또한 미혼 여성으로 냉정하게 모든 걸 바라보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여론을 주무른 헌터 양도 그러했다. 물론 또 다른 강력한 의지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쟁취하고자 했던 여자는 말할 나위 없고...
어릴 적부터 영특하며 호기심이 많고 지식에 대한 열의도 많은 아이 페이스는 단지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도 아는 걸 안다고 할 수도 없이 그저 부모에게 복종하며 시키는 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불만스러웠지만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이런 모든 불합리한 일쯤은 견딜 수 있었다. 도망치듯 자신의 집을 떠나 낯선 섬으로 오기전까진...
이곳 베인 섬에서 새로운 화석이 발견되어 아버지를 초대한 것이지만 사람들의 호의도 잠시뿐... 자신의 가족을 덮쳤던 아버지의 부정행위에 대한 기사가 이곳 베인 섬에도 퍼져 화석 개발에 참여하기는커녕 하루 사이에 모두의 차가운 시선과 경멸 어린 냉대를 받게 되는 페이스네 가족은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다.
늘 아버지의 관심에 목말라하고 자신이 아는 것을 아버지와 이야기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싶다는 열의에 차있던 페이스는 아버지를 도와 한밤중에 바다 동굴로 몰래 아버지의 화분을 숨기는데 일조를 하고 이날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비밀이 생겼다는 기쁨을 누릴세도 없이 다음날 아버지는 비탈을 굴러떨어진 시신으로 발견된다.
슬퍼하는 페이스와 달린 엄마는 이 순간에도 평소 그녀의 특기대로 남자들에게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가냘픈 숙녀 행세를 하고 아빠의 죽음을 사고사로 위장하고자 노력하지만 평소부터 아버지를 존경하고 흠모했던 것과 달리 늘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자신이 여자임을 내세우던 엄마가 못마땅했던 페이스는 엄마의 처신에 혐오감을 느낀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의 기록과 개인적인 편지 그리고 일기장을 감춰버린다.
이렇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모두를 허둥대게 만들지만 이곳에서 완벽한 타인에 불과한 페이스 네 가족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냉혹하기 그지없고 그토록 숨기고자 노력했던 아버지의 죽음 사인 역시 집에서 부리던 어린 하녀의 고발로 만천하에 드러나 교회에 매장될 수도 없는 처지가 된다.
모두의 눈에서 자신의 가족을 향한 명백한 비웃음과 싸늘함을 본 페이스는 아버지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사나 사람들이 말하던 자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타살임을 깨닫지만 누구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들을 생각도 않는다. 심지어 엄마조차도..
이에 페이스는 직접 이 모든 진상을 파헤치고자 자신이 몰래 숨겨뒀던 아버지의 기록을 들쳐보고 일기장을 보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그토록 감춰두고자 했던... 어린 페이스로 하여금 존경하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단숨에 바꿀만한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가 모두로부터 숨기고자 했던 그것... 페이스가 아버지와 함께 몰래 숨겨뒀던 화분 속의 그것의 정체는 사람들의 거짓말을 먹고 자란다는 거짓말 나무였다.
거짓말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이 그 거짓말이 널리 퍼져 잘 믿으면 믿을수록 거짓말 나무는 그 거짓말을 양분 삼아 자라게 되고 작은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를 먹으면 원하는 진실을 알게 된다는 거짓말나무에 관한 기록은 누구라도 그 말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과학을 신봉하고 늘 인류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어 하던 페이스의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믿었을 뿐 아니라 조작 사건에도 아버지의 의도가 있었다는 사실에 절망을 느끼게 된다. 
또한 페이스 역시 악의를 품고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열망에 나무에게 거짓말을 속삭인다.
거짓말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페이스는 어린 소녀의 감성 그대로 용서도 없고 단 한순간도 망설임 없이 계획대로 악의적인 정보를 뿌리고 그녀가 뿌린 작은 씨앗들이 여기저기서 발아해 순식간에 마을 전체를 휩쓸어 버린다.
아무도 어린 페이스가 이런 작전을 펼쳐 모두를 혼란에 빠뜨릴 거라 예상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혼란 속에서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탐색해낼 수 있었고 사람들은 거짓말을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서 섬 전체 주민이 광기에 휩싸인 것처럼 폭등이 일어나고 여기저기서 싸움이 벌어지고 약탈과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여자는 늘 남자보다 열등한 동물이라고 생각하던 남자들의 허영심을 단숨에 눌러버린 게 여자 그것도 여자보다 더 낮은 지위로 보던 어린 소녀였고 이 모든 일을 조종하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 것 역시 소녀 페이스의 힘이었다.
또한 모두가 무시하던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녀의 도움이 되어준 사람 역시 잘난척하던 어른이 아닌 또래의 남자아이였다는 아이러니함이란~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면서 페이스 역시 잔인한 진실과 마주치게 된다.
그토록 존경하고 숭배하는 마음을 가졌던 사랑하는 자신의 아버지란 작자가 그저 자신만 아는 냉혈한이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가족의 안위 따위에 관심도 없는 이기주의자라는 걸 깨달은 후 그걸 인정하기까지 그녀가 겪었던 그 혼란과 슬픔이 안타까웠다.
또한 늘 자신이 여자라는 걸 이용해 남자들로부터 편의를 제공받는 모습을 경멸했던 엄마의 모습 이면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여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한 모성이 있었음을 깨닫고 마침내 자신만의 시선으로 보던 세상을 깨고 나온 페이스
음지에서만 자라고 햇빛을 싫어하며 사람들의 위선적인 거짓말을 먹고 자란다는 거짓말 나무의 판타지 같은 소재도 매력적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고 생각한 페이스가 사람들의 겉모습이나 말이 아닌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생각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매력적인 판타지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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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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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영문도 모르고 짐승처럼 끌려와 원치 않는 노예생활을 하고 짐승처럼 값이 매겨져 팔려 다니면서 끝없는 매질과 노동에 시달린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는 소설로도 그리고 영화로도 자주 다뤄져 그들의 한과 아픔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이 책은 그런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인 소녀 코라 역시 어느 노예랑 마찬가지로 할머니 때부터 대를 이어 노예생활을 하던 농장에서 죽도록 고된 노동과 폭력에 시달리지만 마침내는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탈출을 시도해 끝내 자유를 손에 쥐는 동안의 긴 여정과 그 여정에서 그녀가 보고 겪은 미국의 흑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예제도가 한창일 때 남부에서 다른 곳으로 노예를 탈출시키기 위한 조직이 실제로 있었고 목숨을 걸고 흑인 노예들을 구한 그들의 비밀조직을 일컬어 지하 철도라고 불렀는데 소설 속에는 코라와 시저가 실제로 지하철도를 통한 탈출을 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소설적 재미를 위한 장치로 실제 지하철도를 등장시킨 모양이다.
갈수록 노동량은 많아지지만 주인이 바뀌면서 그 처우는 더욱 나빠지던 중 코라에게 접근해 같이 탈출하자고 제안해 오는 시저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다른 곳에서 온 시저는 우연한 기회로 노예들을 탈출 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비밀조직인 지하철도 사람과 연결이 되었고 이 탈출을 성공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행운의 마스코트로 코라가 필요했던 것인데 야밤을 틈타 마침내 농장을 탈출하지만 지하 철도역으로 향하던 중 수색대에 걸려 다툼이 있었고 그 와중에 코라는 백인 소년에게 중상을 입히게 된다.
이런 코라를 무섭게 쫓아오는 노예사냥꾼 리지웨이... 이제 코라는 백인들에게 반드시 잡아서 그 처벌을 받아야만 하는 대상이 된다.
턱밑까지 쫓아오는 리지웨이 무리를 뿌리치고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자유민처럼 생활하며 직업을 가진 코라는 잠깐 맛 본 자유의 달콤함에 취해있던 중 호의를 베풀던 기숙사 사감과 코라 같은 자유민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던 친절한 의사선생님은 친절을 가장한 제안을 해온다.
너무 많은 아이를 출산하는 건 여자들의 몸에 무리가 간다는 설명과 함께 영구 피임을 위한 산부인과적 시술을 권장한 것인데 조금씩 글자를 깨치고 생각이 많아진 코라는 그들의 제안을 의심하게 된다.
여기에는 당시 남부 백인들 사이에 필요에 의해 사들였던 노예가 어느샌가 자신들의 주에서 자신들보다 많은 수가 살게 된 것을 경계하고 그들이 폭동을 일으켜 자신들의 재산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걸 두려워해 아무것도 모르는 흑인들에게 친절을 가장한 인구 산아제한 정책의 하나로 이런 방법을 쓴 것인데 잔인한 건 스스로는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흑인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늘 그들보다 자신들이 우위에 있고 그들을 열등한 인간처럼 생각하며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라면 그들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의식이 이런 식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자신들을 위한 표본 같은 존재로 흑인들을 이용해 마음껏 여러 가지 인체실험을 해오고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그들 역시 남부의 목화밭 농장주에 버금가는 잔임함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음모를 알게 되고 뒤를 쫓아온 리지웨이 일당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또다시 지하 열차역을 찾게 되는 코라... 하지만 이번엔 시저도 없고 역장도 없으며 아무도 그녀를 기다리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도착한 곳은 떠나온 조지아보다 더욱 인종차별이 심하고 심지어는 금요일 밤마다 모두가 모여 축제처럼 흑인 노예를 목매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즐기는 모습을 한... 공포가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한 노스캐롤라이나
한평도 안되는 다락방 한편에서 혼자 숨죽여 지내는 코라의 모습은 마치 유태인 학살을 피하기 위해 숨었던 안나의 모습과 닮아있다. 과연 그녀 코라는 얼마나 더 많은 고난과 고초를 겪어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는지... 그녀가 자유를 향해 걸어온 길은 누구도 걷기 힘들 정도로 험난하고 잔인했다.
탈출을 할 수도 없고 사방에서 모두가 귀가 되고 눈이 되어 감시하는 이곳에서 마침내 모두의 속박과 구속을 넘어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코라의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이자 그녀가 지나온 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당시 노예들의 처우와 환경이 어떠했는지... 백인들이 자신과 다른 피부색을 가졌다는 이유로 얼마나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고 행했는지를 여실히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옮은 일을 행하는 정의로운 사람이 존재했음이...그런 이들이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임을 새삼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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