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영문도 모르고 짐승처럼 끌려와 원치 않는 노예생활을 하고 짐승처럼 값이 매겨져 팔려 다니면서 끝없는 매질과 노동에 시달린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는 소설로도 그리고 영화로도 자주 다뤄져 그들의 한과 아픔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이 책은 그런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인 소녀 코라 역시 어느 노예랑 마찬가지로 할머니 때부터 대를 이어 노예생활을 하던 농장에서 죽도록 고된 노동과 폭력에 시달리지만 마침내는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탈출을 시도해 끝내 자유를 손에 쥐는 동안의 긴 여정과 그 여정에서 그녀가 보고 겪은 미국의 흑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예제도가 한창일 때 남부에서 다른 곳으로 노예를 탈출시키기 위한 조직이 실제로 있었고 목숨을 걸고 흑인 노예들을 구한 그들의 비밀조직을 일컬어 지하 철도라고 불렀는데 소설 속에는 코라와 시저가 실제로 지하철도를 통한 탈출을 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소설적 재미를 위한 장치로 실제 지하철도를 등장시킨 모양이다.
갈수록 노동량은 많아지지만 주인이 바뀌면서 그 처우는 더욱 나빠지던 중 코라에게 접근해 같이 탈출하자고 제안해 오는 시저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다른 곳에서 온 시저는 우연한 기회로 노예들을 탈출 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비밀조직인 지하철도 사람과 연결이 되었고 이 탈출을 성공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행운의 마스코트로 코라가 필요했던 것인데 야밤을 틈타 마침내 농장을 탈출하지만 지하 철도역으로 향하던 중 수색대에 걸려 다툼이 있었고 그 와중에 코라는 백인 소년에게 중상을 입히게 된다.
이런 코라를 무섭게 쫓아오는 노예사냥꾼 리지웨이... 이제 코라는 백인들에게 반드시 잡아서 그 처벌을 받아야만 하는 대상이 된다.
턱밑까지 쫓아오는 리지웨이 무리를 뿌리치고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자유민처럼 생활하며 직업을 가진 코라는 잠깐 맛 본 자유의 달콤함에 취해있던 중 호의를 베풀던 기숙사 사감과 코라 같은 자유민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던 친절한 의사선생님은 친절을 가장한 제안을 해온다.
너무 많은 아이를 출산하는 건 여자들의 몸에 무리가 간다는 설명과 함께 영구 피임을 위한 산부인과적 시술을 권장한 것인데 조금씩 글자를 깨치고 생각이 많아진 코라는 그들의 제안을 의심하게 된다.
여기에는 당시 남부 백인들 사이에 필요에 의해 사들였던 노예가 어느샌가 자신들의 주에서 자신들보다 많은 수가 살게 된 것을 경계하고 그들이 폭동을 일으켜 자신들의 재산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걸 두려워해 아무것도 모르는 흑인들에게 친절을 가장한 인구 산아제한 정책의 하나로 이런 방법을 쓴 것인데 잔인한 건 스스로는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흑인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늘 그들보다 자신들이 우위에 있고 그들을 열등한 인간처럼 생각하며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라면 그들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의식이 이런 식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자신들을 위한 표본 같은 존재로 흑인들을 이용해 마음껏 여러 가지 인체실험을 해오고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그들 역시 남부의 목화밭 농장주에 버금가는 잔임함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음모를 알게 되고 뒤를 쫓아온 리지웨이 일당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또다시 지하 열차역을 찾게 되는 코라... 하지만 이번엔 시저도 없고 역장도 없으며 아무도 그녀를 기다리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도착한 곳은 떠나온 조지아보다 더욱 인종차별이 심하고 심지어는 금요일 밤마다 모두가 모여 축제처럼 흑인 노예를 목매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즐기는 모습을 한... 공포가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한 노스캐롤라이나
한평도 안되는 다락방 한편에서 혼자 숨죽여 지내는 코라의 모습은 마치 유태인 학살을 피하기 위해 숨었던 안나의 모습과 닮아있다. 과연 그녀 코라는 얼마나 더 많은 고난과 고초를 겪어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는지... 그녀가 자유를 향해 걸어온 길은 누구도 걷기 힘들 정도로 험난하고 잔인했다.
탈출을 할 수도 없고 사방에서 모두가 귀가 되고 눈이 되어 감시하는 이곳에서 마침내 모두의 속박과 구속을 넘어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코라의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이자 그녀가 지나온 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당시 노예들의 처우와 환경이 어떠했는지... 백인들이 자신과 다른 피부색을 가졌다는 이유로 얼마나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고 행했는지를 여실히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옮은 일을 행하는 정의로운 사람이 존재했음이...그런 이들이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임을 새삼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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