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먹는 나무
프랜시스 하딩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하고 그저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주고 집안을 꾸미는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빅토리아 시대에는 자신의 영리함을 내보이면 미친 여자 취급을 받거나 마녀 취급을 받기 일쑤였지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보통 사람의 상식을 깨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 책에도 그런 여자들이 나온다.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앞장서서 사건을 해결한 소녀 페이스가 그렇고 여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원하는 바를 냉정하게 계산해 쟁취해내는 페이스의 엄마가 그랬으며 또한 미혼 여성으로 냉정하게 모든 걸 바라보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여론을 주무른 헌터 양도 그러했다. 물론 또 다른 강력한 의지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쟁취하고자 했던 여자는 말할 나위 없고...
어릴 적부터 영특하며 호기심이 많고 지식에 대한 열의도 많은 아이 페이스는 단지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도 아는 걸 안다고 할 수도 없이 그저 부모에게 복종하며 시키는 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불만스러웠지만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이런 모든 불합리한 일쯤은 견딜 수 있었다. 도망치듯 자신의 집을 떠나 낯선 섬으로 오기전까진...
이곳 베인 섬에서 새로운 화석이 발견되어 아버지를 초대한 것이지만 사람들의 호의도 잠시뿐... 자신의 가족을 덮쳤던 아버지의 부정행위에 대한 기사가 이곳 베인 섬에도 퍼져 화석 개발에 참여하기는커녕 하루 사이에 모두의 차가운 시선과 경멸 어린 냉대를 받게 되는 페이스네 가족은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다.
늘 아버지의 관심에 목말라하고 자신이 아는 것을 아버지와 이야기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싶다는 열의에 차있던 페이스는 아버지를 도와 한밤중에 바다 동굴로 몰래 아버지의 화분을 숨기는데 일조를 하고 이날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비밀이 생겼다는 기쁨을 누릴세도 없이 다음날 아버지는 비탈을 굴러떨어진 시신으로 발견된다.
슬퍼하는 페이스와 달린 엄마는 이 순간에도 평소 그녀의 특기대로 남자들에게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가냘픈 숙녀 행세를 하고 아빠의 죽음을 사고사로 위장하고자 노력하지만 평소부터 아버지를 존경하고 흠모했던 것과 달리 늘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자신이 여자임을 내세우던 엄마가 못마땅했던 페이스는 엄마의 처신에 혐오감을 느낀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의 기록과 개인적인 편지 그리고 일기장을 감춰버린다.
이렇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모두를 허둥대게 만들지만 이곳에서 완벽한 타인에 불과한 페이스 네 가족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냉혹하기 그지없고 그토록 숨기고자 노력했던 아버지의 죽음 사인 역시 집에서 부리던 어린 하녀의 고발로 만천하에 드러나 교회에 매장될 수도 없는 처지가 된다.
모두의 눈에서 자신의 가족을 향한 명백한 비웃음과 싸늘함을 본 페이스는 아버지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사나 사람들이 말하던 자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타살임을 깨닫지만 누구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들을 생각도 않는다. 심지어 엄마조차도..
이에 페이스는 직접 이 모든 진상을 파헤치고자 자신이 몰래 숨겨뒀던 아버지의 기록을 들쳐보고 일기장을 보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그토록 감춰두고자 했던... 어린 페이스로 하여금 존경하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단숨에 바꿀만한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가 모두로부터 숨기고자 했던 그것... 페이스가 아버지와 함께 몰래 숨겨뒀던 화분 속의 그것의 정체는 사람들의 거짓말을 먹고 자란다는 거짓말 나무였다.
거짓말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이 그 거짓말이 널리 퍼져 잘 믿으면 믿을수록 거짓말 나무는 그 거짓말을 양분 삼아 자라게 되고 작은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를 먹으면 원하는 진실을 알게 된다는 거짓말나무에 관한 기록은 누구라도 그 말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과학을 신봉하고 늘 인류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어 하던 페이스의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믿었을 뿐 아니라 조작 사건에도 아버지의 의도가 있었다는 사실에 절망을 느끼게 된다. 
또한 페이스 역시 악의를 품고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열망에 나무에게 거짓말을 속삭인다.
거짓말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페이스는 어린 소녀의 감성 그대로 용서도 없고 단 한순간도 망설임 없이 계획대로 악의적인 정보를 뿌리고 그녀가 뿌린 작은 씨앗들이 여기저기서 발아해 순식간에 마을 전체를 휩쓸어 버린다.
아무도 어린 페이스가 이런 작전을 펼쳐 모두를 혼란에 빠뜨릴 거라 예상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혼란 속에서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탐색해낼 수 있었고 사람들은 거짓말을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서 섬 전체 주민이 광기에 휩싸인 것처럼 폭등이 일어나고 여기저기서 싸움이 벌어지고 약탈과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여자는 늘 남자보다 열등한 동물이라고 생각하던 남자들의 허영심을 단숨에 눌러버린 게 여자 그것도 여자보다 더 낮은 지위로 보던 어린 소녀였고 이 모든 일을 조종하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 것 역시 소녀 페이스의 힘이었다.
또한 모두가 무시하던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녀의 도움이 되어준 사람 역시 잘난척하던 어른이 아닌 또래의 남자아이였다는 아이러니함이란~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면서 페이스 역시 잔인한 진실과 마주치게 된다.
그토록 존경하고 숭배하는 마음을 가졌던 사랑하는 자신의 아버지란 작자가 그저 자신만 아는 냉혈한이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가족의 안위 따위에 관심도 없는 이기주의자라는 걸 깨달은 후 그걸 인정하기까지 그녀가 겪었던 그 혼란과 슬픔이 안타까웠다.
또한 늘 자신이 여자라는 걸 이용해 남자들로부터 편의를 제공받는 모습을 경멸했던 엄마의 모습 이면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여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한 모성이 있었음을 깨닫고 마침내 자신만의 시선으로 보던 세상을 깨고 나온 페이스
음지에서만 자라고 햇빛을 싫어하며 사람들의 위선적인 거짓말을 먹고 자란다는 거짓말 나무의 판타지 같은 소재도 매력적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고 생각한 페이스가 사람들의 겉모습이나 말이 아닌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생각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매력적인 판타지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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