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게 (반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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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어릴 때의 나에게 마흔, 쉰의 나이는 너무나 까마득했고 그런 나이에도 여성성을 강조하거나 남성다움을 강조하고자 하는 중년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지금의 일부 청춘들이 나이 든 사람을 혐오하고 꺼리는 것처럼...
왠지 나이 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도 낡고 늙고 오래된 것처럼 여겨졌고 소통의 부재가 당연한 듯 여겨졌었지만 지금 내가 그때의 까마득했던 나이가 되고 보니 비로소 보이는 게 있다.
아..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구나..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도 늙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걸 비로소 그 나이가 되고서야 깨닫게 되니 어쩌면 지금의 청춘들이 나이 든 사람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조금은 욕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사회적으로도 움츠러들고 본인 스스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이 더욱 사소한 일에도 큰 소릴 내게 되는 이유가 되는듯한데 기시미 이치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위로를 한다.
이 모든 걸 사람들의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지금 현재의 나이에서도 얼마든지 원하는 걸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글귀 글귀가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어떤 상태든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공헌할 수 있다는 말은 반드시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으면 하면 좋고 할 형편이 안되더라도 누군가에게 공헌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인데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글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음으로써 도움을 주는 사람이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되었다는 보람된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면 앞으로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에 미안해하거나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에도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위축될 필요 없이 지금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고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실행하기는 좀 어려운 말도 결국 늙어가는 것을 인정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충분히 현재의 삶을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말로 대변할 수 있다.
제목은 마흔에게로 했지만 결국 서서히 나이 드는 것과 거기에 따른 신체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 지금 내 나이를 생각해서인지 나이 든 부모와의 관계에 관한 조언이 가장 와닿았다.
나 역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조금씩 예전의 나와 몸이 다름을 느끼는데 더 나이 드신 부모님과의 관계는 정말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부모님을 생각해서 한 조언도 결국은 부모님이 원하지 않으면 강요해서 안될 뿐 아니라 부모를 바꾸기 위한 노력보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새삼 알려주는데 그러기 위해선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기 위해선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기 보다 스스로 가치를 인정하고 결정은 스스로 내려야 한다. 물론 선택에 따른 책임 역시 스스로가 져야 하고... 또 부모를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건데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나이 드셔서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없게 된 부모님을 가엾게 여기는 것도 또 뭔가를 잘하는 부모님을 칭찬하는 것 역시 부모님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는 대목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소한 일에도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은 서로의 관계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많은 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마법 같은 단어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 모든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단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할 수 없는 일은 못한다고 해도 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결국은 내가 만족하고 행복해야 주변 사람들도 돌아볼 여유도 생기는 것...
솔직히 그래도 나이 드는 건 여전히 두렵지만 조금은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는 희망과 용기를 준 책이었다.
초고령사회로 가는 우리에게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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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
그렉 올슨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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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소유가 당연한 요즘을 살아가다 보면 고의는 아니지만 사고를 낼 수도 있다.
사고를 내는 건 실수나 과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고가 난 후의 뒤처리를 보면 그 사람의 도덕성을 알 수 있다.
우연히 누군가를 차로 치었는데 불행히도 그 사람은 죽은듯하고 주변에는 자신 외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면 그 자릴 도망쳐버리는 사람이 있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건 평소의 생활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에선 그런 경우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의 운명을 건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너무나 긴장했던 리즈는 하필이면 전날 약을 먹고 자느라 시험에 지각할 처지가 되어 급하게 차고에서 차를 빼다 그만 옆집 아이 찰리를 치고 말았다.
게다가 찰리는 이미 숨이 끊어진 것처럼 보이고 리즈는 당황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시험을 위해 아이를 방수포로 덮고 숨겨둔 채 시험장에 가지만 당연하게도 시험은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나와버린다.
찰리의 엄마인 캐럴은 잘 나가던 직장에서 큰돈을 벌었고 늦은 나이에 찰리를 가진 후 세상이 달라졌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 조용한 이곳에 넓은 집을 지어 이사를 왔지만 잠시 통화를 하는 사이 눈앞에서 아이가 사라지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아이러니한 건 이웃한 두 여자가 친해진 계기가 바로 찰리 때문이란 것이다.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순간의 두려움 때문에 아이를 숨겨버린 자신의 행동을 뒤늦게 후회하던 리즈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사실을 밝히려고 하지만 이제는 그녀의 남편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 입을 다물라고 요구할 뿐 아니라 찰리의 시신을 유기하기까지 하면서 과실치사였던 게 점점 더 범죄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한 행위의 무게 때문에 리즈는 스스로 자멸해가지만 이런 리즈 때문에 자신의 밝은 미래가 사라질 것이라는 걸 깨달은 리즈의 남편 오웬은 그런 그녀를 증오하게 되고 서로를 사랑한다 믿었던 부부는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깊은 경멸과 불신으로 상대를 직시하게 된다.
아이를 잃은 부부는 결국 그 상처를 상대의 탓으로 돌리다 원망하고 원망하며 관계가 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캐럴 부부 역시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의 실종 이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때는 그 둘 사이에 찰리가 있었으나 이제 그 찰리가 사라지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걷잡을 수없이 치닫는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절망과 비탄부터 사고 당사자인 리즈의 괴로움과 자기혐오, 양심의 가책 같은 걸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 책에서 남자들의 존재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아내의 잘못을 바로잡기보다 자신의 안위를 더 걱정하고 심지어 아내 몰래 이차적인 범죄를 저지르면서 그걸 아내에게 뒤집어 씌울 치밀함을 보이는가 하면 또 다른 남편은 자신의 아이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자신의 레스토랑만 걱정하고 그날 자신의 행적조차 밝히지 않아 스스로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
그 두 사람에겐 아이보다 아내보다 오로지 자신이 더 중요했던 것
아이의 사고와 실종으로 겉으로 완벽하게 보이던 두 가족의 적나라한 모습이 얼마나 허울뿐인 것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는 세심한 내면의 갈등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혹은 내 가족에게 이런 사고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걸 깊이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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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더 포스 1~2 세트 - 전2권
돈 윈슬로 지음, 박산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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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밤거리를 지배하던 왕이 구속되었다.
그의 이름은 데니 멀론
맨해튼 북부 특별 수사대 다 포스의 팀장
그는 그저 좋은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정신 차려보니 부패한 경찰이자 그가 잡아들이던 범죄자와 다름없을 뿐 아니라 더 최악은 그는 밀고자였다.
그가 어쩌다 동료를 배신한 밀고자가 되었는지 모두에게 존중받고 인정받던 그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몰리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는 더 포스는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범죄 세계의 모습을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다.
멀론은 좋은 경찰은 되지 못했지만 능력에선 최고라 할 수 있었고 그런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늘 세심하게 신경 쓰며 일처리를 하던 그가 덜컥 연방 요원들에게 덜미를 잡힌 것은 어쩌면 오랫동안 다 포스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그에게 대적할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에서 온 안일함과 누구도 자신에게 맞설 수 없다고 믿었던 그의 오만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갱단으로부터 돈을 받고 자신들이 덮친 마약거래 현장에서 돈을 빼돌리면서도 자신들은 맨해튼 거리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던 그들이지만 모든 것에는 정도가 있었고 어느 날 그 정도를 넘어서면서 그들의 추락은 불을 보듯 뻔한 결말이기도 하다.
교묘하게 유지되어왔던 거리의 평화를 깬 것은 다 포스팀이 콜롬비아 갱을 죽이고 그의 마약을 훔치면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저기서 돈을 받던 그들이 직접 마약을 거래한다는 것의 의미를 어느새 범죄에 젖어버린 그들은 몰랐던 것 같다.
그들의 그런 행위는 마약을 사고팔고 마약을 훔치는 다른 범죄 집단의 모습과 같다는걸...
자신이 덜미를 잡히고 누군가에게 그가 가진 정보를 자백하라고 윽박지르던 모습 그대로 스스로가 당할지 꿈에도 생각한 적 없었던 데니 멜론은 연방 요원과 거래를 하면서 밀고자의 모습 그대로의 길을 걷는다.
그의 자존심은 밀고자가 될지언정 동료를 팔지는 않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하지만 뭐든지 처음 한 걸음을 내디뎠으면 오로지 전진만이 있을 뿐 결국 하나둘씩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하기 시작하고 끝내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팀원들까지 팔아버리게 되는 동안 데니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은 점점 커져만 간다.
책을 읽는 동안 나쁜 놈이지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를 변명하는 데니에게 조금은 동정과 공감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가 받은 돈은 악당들로부터 나왔고 그들이 자신들끼리 총싸움을 하고 난리를 쳐도 일반 시민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나름의 질서를 유지시켰으며 아이들과 여자들을 때리는 나쁜 놈들에겐 응징을 가하는 모습과 동료를 밀고한 뒤 고뇌하고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끼며 자학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반전을 기대했던 건 너무 소설적인 결말을 원한 걸까?
아마 영화로 만들었으면 이런 나의 기대를 충족시켰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는 마약 카르텔과 그들을 추적해 전쟁을 벌인 경찰들의 이야기를 다룬 전작에서도 그렇고 이런 타협을 하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과 전개를 보여주지만 뻔하지는 않다.
영웅의 추락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이었는데 2권짜리라는 게 큰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가독성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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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토끼 식당 차림표 : 6시 20분의 고기감자조림 눈토끼 식당 차림표
고미나토 유우키 지음, 박유미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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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배가 고프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좀 더 심하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그러다 맛난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 그때 밀려오는 만족감이란...
그래서 힐링을 다루는 작품들 중에는 음식을 소재로 하거나 작은 소품처럼 다뤄지는 작품들이 꽤 있다.
아마도 뭐니 뭐니 해도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먹는 즐거움만큼 큰 즐거움이 많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 책 역시 제목에서부터 음식을 중요한 소도구로 다뤄지리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일본식에 대해 관심도 있었기에 더 궁금해진 책이었다.
할머니부터 해 오던 단출한 식당 눈토끼 식당을 물려받은 다이키는 식당 앞에서 쓰러진 아오이를 데려와 자신의 음식을 먹이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입맛을 잃어버린 아오이는 그저 최소한의 식사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결국 눈토끼 식당 앞에서 무너져버린 것인데 무엇을 봐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 아오이지만 웬일로 다이키가 만들어준 음식에 텅 빈 가슴이 조금은 채워지는듯하다.
알고 보니 이 집은 아빠의 단골 식당이었고 그때부터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씩 식사도 하게 되고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에 대해 새삼스러운 마음을 느끼게 된다.
늘 엄마가 만들어주신 음식들을 당연하다는 듯 먹었기에 소중한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해 지은 음식의 소중함과 정성을 깨닫지 못했지만 자신이 홀로 남은 아빠를 위해 아침밥을 지으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새삼 느끼는 아오이
사회 초년생으로 갓 들어간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딸을 보면서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가족들.... 그리고 그 마음을 알면서도 마음과 달리 짜증을 부리던 미케 역시 자신의 본심을 자신이 처음 만든 음식으로 엄마에게 표현하는 장면을 보면서 같이 음식을 먹는 사람을 왜 식구라 하는지 이해가 갔다.
또 오랫동안 사랑받았지만 새로운 트렌드에 따라 변화를 시도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고집스레 옛것만 주장하는 아버지와 마찰을 빚는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쿠라다 푸딩 가계의 이야기도 결국 그 사이에 낀 딸이자 동생이 만든 푸딩으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그렇고... 이렇듯 별다른 말이 없더라도
따듯한 밥 한 끼로도 때론 그 사람의 진심을 이해할 수도 있다.
특별한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모양을 자랑하지도 않지만 정성을 들여 오랫동안 조리하고 그 마음으로 누군가의 한 끼를 해결해주는 다이키의 태도는 우리가 바라는 음식점 주인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집 주변에도 이렇게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 내는 곳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이대가 비슷한 두 사람이 남녀 간의 로맨스로 변질되지 않은 점은 특히 마음에 들었고 읽으면서 내내 배고픔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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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회전목마처럼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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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때부터 남달리 서로가 죽이 맞아 지냈던 나츠키와 후유코의 인연은 여름과 겨울에서 따온 이름부터 남달랐다.
게다가 둘의 취향도 비슷해서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나 신기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이유를 추적하는 걸 즐기다 서로에게만 통하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래서 만들어진 말이 계절이고 서로 계절을 하지는 말은 암묵적으로 어떤 사건을 조사해서 수수께끼를 풀자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오랜 친구인 그들도 같은 동성이 아닌 이상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상대방을 이성으로 느껴져 이 관계가 깨질 위험이 다분한데 남자인 나츠키가 그런 경우다.
후유코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그녀는 늘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고 그런 남자들과 문제가 생기면 나츠키에게 연애상담을 받곤 한다.
그런 덕분에 나츠키는 그녀에게 자신의 진심을 말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그저 그녀와 계절을 하며 친구 사이 그 이상의 발전은 못한 채 졸업을 하고 각자 대학을 가면서 멀어지지만 몇 년이 지난 후 그녀에게서 안부 연락이 오면서 이 관계는 다시 이어진다.
그들이 함께한 세월 동안에 있었던 사건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를 소제목으로 하면서 마치 장난처럼 때론 게임처럼 계절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이사이에 그들의 오랜 세월 속 추억담도 조금씩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번에 말로 진짜로 자신의 진심을 그녀에게 고백하리라 결심한 나츠키에게 옛 연인과 다시 만나기로 했다는 후요코의 고백은 나츠키가 맥이 빠지는 만큼 읽는 사람도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매번 그가 고백을 결심하면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거나 혹은 스스로 사건을 일으켜 그의 주위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이쯤 되면 그의 마음을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고 봐도 될 뿐 아니라 그녀는 그를 친구로는 좋아도 남자친구로는 좋아할 수 없다는 그녀의 본심이 느껴진다.
왜 그렇게까지 그를 밀어내야만 했을까? 그런 정도라면 차라리 연락을 끊어버리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그녀의 행동은 지나치다.
그녀의 변명 아닌 변명이란 것도 친구로 그를 잃어버리기 싫었다는 말은 본인 스스로의 말처럼 이기적으로 들릴 뿐 아니라 몹시도 냉정하게 들려 그를 친구로 조차도 배려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들었다.
나츠키 역시 그녀에게 끌려다니기만 할 게 아니라 진심으로 고백하고 끝을 맺었어야 하는데 그의 우유부단함이 이런 관계를 계속하게 하는데 일조를 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일상에서 별생각 없이 흘려보내도 될 사건을 작은 단서를 가지고 그 사건의 개요를 유추하는 걸 보면서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혹은 아.. 그런 뜻이 하며 감탄했지만 때론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있었는데 대부분이 후유코와 관련된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 보면 그녀를 늘 신경 쓰고 눈치도 빠르며 제때 물러설 수 있는 남자 나츠키를 왜 그토록 무리한 수를 써가며 고백조차 듣지 않으려 할까 의문이 든다.
그녀를 위해 굳이 변명해보자면 어쩌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일상의 미스터리를 풀 때처럼 그 관계의 안이 아닌 밖에서 관찰자적 입장을 고수하는 그의 성격 탓이 아닐까 싶다.
누군들 연애를 할 때조차 자신을 내던지지 않는 사람과 깊은 연애를 하고 싶어 할까라고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을 약간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계절을 하는 건 흥미로웠지만 그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씁쓸했다.
마치 빙빙 돌면서 한번도 같이 할수 없는 회전목마속의 말들처럼...
결국은 사랑에 빠지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처럼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 데에도 특별한 이유 따윈 없다는 걸 새삼 알려준 책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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