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테러리스트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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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선 일본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

이는 모든 일본 사람에게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대사건으로 무사히 올림픽을 치르는 것만이 유일한 사명인 것처럼 온 나라가 한마음으로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합심하는 게 당연시되는 이때 누군가가 올림픽 개최를 반대한다는 협박편지를 보내고 곳곳에서 폭발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하게도 경시청은 비상이 내려지지만 올림픽 개최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이유로 언론을 통제해 일반 사람들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채 그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드디어 용의자가 떠오른다.

그의 이름은 시마자키 구니오

일본 최고의 대학이라는 도쿄대의 경제학부 대학원생이자 시골마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그가 왜 이런 행위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올림픽을 방해는 그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경시청은 그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는 양들의 테러리스트는 두 가지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뛰어난 머리를 가진 조용하고 튀지 않는 성품의 평범한 대학원생이 왜 모두를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는 이런 테러리스트의 길을 가게 되었나 하는 그가 이런 범죄행위를 하게 되는 필연의 과정을 담은 과거 시점과 지금 현재 그가 벌이고 있는 폭탄 테러를 막고 무사히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그를 검거하고자 노력하는 경찰들의 행동을 담고 있는 현재 시점으로 나눠 진행해 그의 범죄 동기에 대해선 공감하게 하게 그를 잡고자 하는 경찰의 모습을 통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장과 공권력의 입장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 보면 구니오가 왜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

올림픽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육체노동자에게 가장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또 그런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면서 거기서 나오는 부와 영광은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고 부유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독차지하는 현실은 충분히 부조리하다 분노할 수밖에 없다.

모든 혜택이 올림픽을 여는 도쿄에 집중되고 자신이 사는 곳에서는 이런 부의 작은 혜택조차 받지 못할 뿐 아니라 풍요가 넘치는 도쿄에 비해 죽도록 일을 하면서도 먹을거리를 걱정하고 어떤 문화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가난이 대물림되는 게 당연시되는 현실을 죽은 형을 대신해 일을 하게 된 건설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깨달아가는 구니오가 분노와 더불어 점차 허무함을 느끼는 모습은 고뇌하는 젊은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게다가 하필 그가 대학원에서 공부한 과목이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공산주의 이론이었다니...

어쩌면 그가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는 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어쭙잖은 공명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만이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다는... 한 창 피 끓는 엘리트 젊은이가 가지는 오만한 열정이 아닌 순수한 분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그가 있는 위치도 이런 결정을 하는 데 한몫을 했다.

타고난 머리로 우수한 대학을 나온 재원으로 그가 원한다면 사회에 나가 어디서든 높은 지위에 쉽게 오를 수 있지만 그는 가난한 마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프롤레타리아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아웃사이더로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보아 넘기지 못하는 여린 심성을 지녔다.

그래서 서른이 넘도록 일만 하다 죽은 형의 죽음을 모른 척 외면할 수 없어 마치 죄를 고해하듯 형을 대신해 평생을 해보지 못한 육체노동을 하면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늘 당하고 겪는 부조리함과 노동착취에 분노하며 분연히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더불어 그가 앞으로 행 할 행동에 대한 동기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그의 동기가 순수했고 그가 분노하는 심정 또한 십분 이해 가능했기에 그가 걷는 행보가 더욱 위태롭고 안타깝게 느껴져 그의 행위와는 별개로 그가 무사하기를 바라게 된다.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수없이 자행되는 폭력의 모습과 도시의 뒤편에 가려진 어둠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구니오의 짙은 허무가 왜 이렇게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지...

그의 도피에 많은 도움을 준 여자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정도로 그는 마치 위태롭기 그지없는 고독한 한 마리의 늑대 같다.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가 이 작품으로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받고 현시점에서 나의 최고 도달점이라 생각한다는 말을 한 게 이해가 될 정도로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중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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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살인사건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3
에드거 월리스 지음, 허선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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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는 부자 손튼 라인이 가슴에 수선화를 든 채 살해당해 공원에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죽기 전 누군가 백화점의 공금을 횡령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직원과는 싸움을 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용의자는 쉽게 추려지는 듯하지만 용의자로 의심받던 직원인 오데트는 어디론가 사라져 행방이 묘연하다.

중국에서 유능한 경찰로 이름을 떨쳤던 탈링은 손튼이 죽기 전 사건을 의뢰받았다는 이유로 이번 사건에도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는 사실 오데트에게 첫눈에 반했던 상태라 그녀가 범인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집을 수색하면서 사건이 그녀의 방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녀에 대한 의혹이 깊어지는 즈음에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하는 탈링은 자신을 덮친 사람이 백화점 공금을 횡령한 걸로 유력시되던 밀버그가 벌인 일이라는 걸 직감하지만 교활하고 속임수에 능한 밀버그는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용의자가 두 사람으로 좁혀지는 가운데 여기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손튼의 유일한 상속자가 탈링이라는 게 알려지면 서 그에게 의혹이 드리워지고 또 그와 중국에서 같이 건너온 조수인 링추가 손튼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여동생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그 역시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된다.

모두가 살인사건에서 무관할 수 없는 가운데 오데트가 손튼에게 자신의 집으로 와달라고 한 편지가 발견되면서 그가 왜 그녀의 집에서 살해당한 건지 이유가 밝혀지고 백화점의 경리부 직원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보였던 그녀가 사실은 부유한 집의 딸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점점 더 그녀에게 의혹이 쏠리지만 그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행방을 알 수 없어 탈링의 속을 태운다.

오랫동안 형사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범죄자와 만났던 탈링이 한눈에 누군가에게 빠져 여러가지 증거와 증황증거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가장 강력한 용의자라는 걸 믿고 싶어 하지 않는 걸로 모자라 오히려 그녀의 범죄사실을 덮고 싶어 한다는 설정은 오늘날의 범죄소설과 조금은 다른 점이다.

물론 미모의 용의자에게 빠진다는 설정은 오늘날에도 쓰이는 설정이긴 하지만 탈링과 오데트는 몇 번 마주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별다른 대화를 하거나 스킨십을 했다거나 한 게 아니라 그저 첫눈에 서로 호감을 가진 이후로 그녀에게서 용의점에 발견되었는데 그런 사실을 무시하는 걸로 모자라 모른 척 덮어주려 애쓰는 점에서 그는 일단 형사로서의 자질은 부족한 로맨티시스트임에 틀림없고 그런 그의 모습은 오늘의 형사나 혹은 탐정들과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이 여자들의 사회적활동이 많지 않았던 때고 특히 살인사건 같은 강력 살인사건의 범인이 여자일 리 없다는 믿음이 깔려있는 탓이기도 하리라.

그래서 결혼도 안한 미혼의 여성이자 청초하고 아름다운 외모의 오데트는 비록 용의자가 되지만 그녀는 살인사건에 우연히 엮인 가녀린 희생자일 뿐이라는... 여자들이 이런 험악하고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리 없다는 작가의 평소의 신념이 강하게 묻어난다.

어쩌면 작가의 다른 작품이자 가장 잘 알려진 킹콩에서도 그의 이런 관점은 두드러진다.

괴수의 왕인 킹콩이 아름다운 여자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은 자신의 암컷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수컷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누구도 생각지 못한... 그저 거칠고 야수성만이 존재할 것 같은 괴수에게도 사랑이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았는데 그런 걸 보면 작가는 아무래도 여자는 지켜줘야 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인식이 강한 로맨티시스트가 아닐지...

여기서도 그런 느낌이 강하다.

자신이 반한 여자 오데트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탈링은 이미 형사라기보다 그녀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랑에 빠진 남자일 뿐...

그렇다면 과연 그의 이런 진심에 부응해서 오데트의 무죄가 증명될 것인가? 아니면 이런 그의 진심에 강력한 뒤통수를 칠 것인가?

오늘날의 추리나 스릴러소설에 비해 사건이 복잡하거나 아주 강력한 범죄의 동기 같은 게 나오거나 하지 않아 다소 밋밋하다 느낄 수 있지만 결국 모든 동기의 기본인 인간의 탐욕과 욕심 그리고 애증이 밑바탕에 깔린 것은 오늘날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비교해가며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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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조앤
제니 루니 지음, 허진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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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시에는 분명 옳다고 믿었던 일이 지나고 나서 보면 착오였고 잘못된 판단으로 드러나는 일이 많다.

사람의 일이다 보니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치관도 신념도 시대적 상황도 바뀔 수밖에 없는데 변화된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 혹은 선택의 잘잘못이 가려지게 된다.

레드 조앤은 그런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든이 넘은 조앤의 집으로 MI5 요원들이 들이닥치고 그녀를 심문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죄는 국가기밀을 적국에 넘긴 것으로 그녀가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 닉조차 그녀가 왜 그렇게 엄청난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조앤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하에 저지른 일이라고 고백한다.

이야기는 현재 MI5 요원들 앞에서 심문을 받는 시점과 그녀가 과거 스파이를 했을 당시의 시점으로 번갈아 가며 보여주면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집에서 나와 당시의 여성으로선 드물게 대학 그것도 자연과학을 전공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조앤은 그곳에서 그녀의 운명을 바꿀 두 사람을 만난다.

바로 그녀의 첫사랑이자 잊을 수 없는 연인 레오와 그의 사촌인 소냐

러시아에서 건너온 두 사람 중 특히 레오는 공산주의 사상에 강렬하게 매료되어있을 뿐 아니라 조국 러시아를 위해서 공산주의 사상이 반드시 뿌리내려야 한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혀있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런 그를 사랑한 조앤에게 그녀가 있는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추진되었던 프로젝트 정보를 넘겨달라는 레오

당연히 그녀가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사랑 때문에 스파이의 길로 접어들었을 거란 예상을 깨고 그녀는 단호히 이를 거부하는 강단을 보인다.

그녀는 레오를 사랑하지만 그가 요구하는 것은 그녀의 신념과 정의에 반할 뿐 아니라 처음에는 그의 사상에 매료되었으나 그녀가 그의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들기에는 너무나 냉철했다는 것이 레오의 폐단이 된다.

그렇다면 연인의 요구마저 거부했던 그녀가 왜 스파이가 된 걸까?

조앤이 러시아에 넘긴 기밀문서는 핵폭탄 제조와 관련된 것으로 그녀의 이런 선택은 결국 국제정세를 뒤흔들 너무나 큰일이었지만 그녀는 단지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우는 힘은 또 다른 파국을 맞게 된다는 걸 알기에 힘의 균형을 위한 결정이라고 한다.

그녀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계기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는데 자신과 연구소가 만든 핵폭탄이 단순히 독일을 견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누군가 죄 없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자각은 그녀로 하여금 조국을 배반하는 결심을 굳히게 한다.

물론 당시의 그녀는 자신이 조국을 배반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단지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훔친다기 보다 서로 공유한다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실행한 것일 뿐 이후 벌어지는 사태의 진전에 대해서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들 닉과 MI5 요원들의 입장에선 나라 간 힘의 균형을 위해 실행했다는 그녀의 말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지만 그녀가 스파이를 했을 당시인 1930년대 후반과 2차 대전이 발발하던 때는 이러한 생각이 터무니없다기 보다 그럴 수도 있다는... 아니 독일의 나치즘이 한창일 때는 정치인들조차 러시아를 적국이 아닌 독일에 대항해 싸우는 우방국으로 여겨서 정보의 공유가 불법이 아니었다는 걸 감안하면 조앤에게 약간의 면죄부를 줄 수도 있을듯하다.

하나둘씩 드러나는 정보 앞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회상에 젖는 조앤은 과연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금한 가운데 그녀에게 다가온 운명적 사랑의 결말과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제서야 드러나는 진실이 안타까움과 함께 연민을 불러온다.

여자 스파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섹시하고 매력적인 팜 파탈이 아니라 사랑 앞에 흔들리고 이념보다 정의를 위해 결단을 내릴 줄 아는 과감성에 누구도 여자인 그녀가 한 짓이라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허를 찌른 평범하면서도 똑똑했던 조앤의 이야기는 실제 KGB를 위해 가장 오랫동안 스파이로 활동했던 스파이 멜리타 노우드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매력적이고 스릴도 있으며 가독성도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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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 온 소년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59
캐서린 마시 지음, 전혜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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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겪어보는 난민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다.

그들이 특히 유럽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부유한 나라들이 조금 관용을 베풀고 더불어 살수 있도록 좀 해주면 좋을 텐데 하고 막연히 난민의 처지를 동정했다면 이제 그게 우리나라의 내 문제가 되고 보니 생각이 달라지는 걸 깨닫게 된다.

남의 일일 땐 너그러울 수 있어도 그게 나의 안전, 이익과 상충될 땐 사람들은 맹렬하게 반대하게 된다는걸...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 막연히 난민인 한 소년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려놓고 인류애를 호소하는 그런 내용일 거라 짐작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 소년이 난민으로서 온갖 고초를 겪는다는 건 맞지만 눈물에 호소하거나 동정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테러와 전쟁을 피해 살던 곳을 어쩔 수 없이 떠나온 피난민이자 그들 역시 희생자라는 사실을 어린 소년들의 입을 통해 사람들에게 환기시킬 뿐...

소년 아흐메드는 한날한시 엄마와 동생 등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빠와 고향을 떠나 안전한 유럽으로 피난을 오지만 그 과정에서 아버지 또한 눈앞에서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는다.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아흐메드는 우연히 낯선 곳에서 한 가족이 살던 집 지하실을 발견하고 터를 잡게 되면서 그때부터 숨어지내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집의 주인들은 미국에서 온 가족으로 아흐메드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 맥스는 미국을 떠나 낯설고 언어도 통하지 않은 이곳 브뤼셀에 온 것이 불만이다.

사실은 모든 것에 뛰어난 누나에 비해 공부도 그 외에 다른 일도 잘하는 것이 없는 자신을 위해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한 부모의 결단이라는 걸 알면서도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은 현실에 좌절하고 있던 맥스는 우연히 자신의 집에서 마주친 아흐메드를 만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맥스 역시 무슬림에 대한 두려움과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꽃을 사랑하고 온화한 성격의 아흐메드와 친해지면서 이런 인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그리고 아흐메드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해 조금씩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변하게 되는 맥스는 심지어 자신을 괴롭히기만 하던 오스카조차도 사실은 자신과 친구가 되고 싶은 외로운 소년이었다는 걸 깨닫으면서 서로 힘을 모아 아흐메드를 위한 행동을 취하기 시작한다.

대담하게 아흐메드를 학교로 보내기 위한 작전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또 다른 친구를 설득해서 끌어들이는 등 점점 더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한 확신을 보이는 맥스와 아이들을 보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아이들이기에 가능한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하지만 유럽 곳곳에서 난민으로 가장한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자행하고 이곳 벨기에에서조차 폭탄 테러가 발생해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서로를 경계하게 되면서 아흐메드는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며 잠을 설치기 시작한다. 학교 내 분위기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날카로워져 난민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지기만 할 뿐 아흐메드가 설자리는 점점 잃어가기만 한다.

아흐메드는 그저 공부를 하고 싶은 자신과 같은 평범한 소년일 뿐인데 단지 무슬림이고 난민이라는 이유로 언제든 테러를 자행해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는 시선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하는 맥스는 친구 아흐메드를 위해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난민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눈을 통해 그들도 잠재적 테러리스트가 아닌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이야기하는 시리아에서 온 소년은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하는 난민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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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웅불
다카하시 히로키 지음, 손정임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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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도쿄에서 시골로 전학 온 아이 아야무는 늘 그러하듯이 이번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에 별다른 걱정이 없다.

잦은 이사로 인해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면 생긴 건데 이번에 온 중학교는 내년이면 학교가 폐교되는 만큼 올해가 마지막 졸업생이 되는 셈이고 아야무의 아버지도 이번 전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가족을 이끌고 타지로 옮겨 다닌 필요가 없다.

아야무가 고등학생이 될 때 즈음엔 안정된 직장에서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지금의 생활을 조금만 참으면 되는 만큼 다른 때와 달리 여유가 생긴 아야무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환경에 깊은 호기심을 느낀다.

그리고 반에서 달랑 6명뿐인 남학생들 사이에 끼지 못하면 1년 내내 괴로운 학교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재빠르게 간파한 아야무는 아이들의 리더인 아키라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아이는 늘 이상한 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친밀감과 결속력을 다지는 아이라는 걸 깨닫는다.

당연하게도 그런 놀이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벌칙을 받아야 하는데 아야무가 지켜본 바로는 그 대상은 미노루라는 아이로 항상 정해져있었다.

조금은 위험한 내기에도, 진 사람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사줘야 하는 내기에도 그 대상은 언제나 미노루였고 아야무의 눈에 보이는 이런 이상함이 다른 아이들의 눈에는 비치지 않는 건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없다.

아야무 역시 이상하다 느끼지만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고 무심히 지나칠 뿐 그 역시 아키라의 장난을 빙자한 폭력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치는 또 다른 이상한 점은 그런 장난과 내기를 빙자한 괴롭힘을 당한 다음날이면 미노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아키라의 곁에서 그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아이 역시 조금의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여기가 아니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참은 건지도...

이렇게 일상이 조용히 흘러가는 가운데 마치 옥에 티처럼 가끔씩 장난처럼 비일상적인 일이 벌어지지만 한 아이 즉, 미노루만 조금 괴로우면 모두가 장난처럼 지나갈 수 있다는 걸 어느새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아야무는 심지어 위험한 장난에 자신 대신에 그 아이가 걸리길 바라기까지 하게 된다.

그런 아야무의 심정의 변화를 깨달은 탓일까?

미노루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는 자신을 괴롭힌 아키라가 아닌 아야무를 향한다.

어쩌면 자신을 도와줄 수도 있었을 아야무의 외면이... 자신이나 친구들과는 달리 폭력이 벌어지는 일상에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아야무의 처지가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더 원망스럽기도 했는지 모르겠다.

조용하게 벌어지는 축제의 어두운 곳에서 폭발하듯 벌어지는 잔혹한 피의 향연은 누군가의 아픔과 부조리함을 외면한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처음 들었을 때 시적으로 들렸던 제목이 조금 무섭게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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